第十一章
桓因氏之子桓雄氏ㅣ生而有大志하야 繼承天符三印하고 修계除불하고 立天雄之道하야 使人知其所由러라. 於焉人世ㅣ偏重於衣食之業하니 桓雄氏ㅣ制無餘律法四條하야 使鰥夫로 調節하니 一曰人之行蹟은 時時淸濟하야 勿使暗結生鬼하며 煩濟化魔하야 使人世로 通明無餘一障하라. 二曰人之聚積은 死後堤功하야 勿使陳垢生鬼하며 濫費化魔하야 使人世로 普洽無餘一憾하라. 三曰頑 邪惑者는 謫居於曠野하야 時時被其行하야 使邪氣로 無餘於世上하라. 四曰大犯罪過者는 流居於暹島하야 死後焚其尸하야 使罪集으로 無餘於地上하라. 又作宮室舟車하야 敎人居旅러라. 於是에 桓雄氏ㅣ始乘舟浮海할새 照證天符修信하고 疏通諸族之消息하며 訴言根本之不忘하고 敎宮室舟車火食之法이너라. 桓雄氏ㅣ歸而修八音二文하고 定曆修醫藥하며 述天文地理하니 弘益人世라. 此는 世遠法弛하야 諸人之暗취摸 이 增詐端故로 欲保根本之道於日 用事物之間而使昭然也라. 自是로 始興修學之風하니 人性昏昧하야 不學則不知故也라.
환인씨의 아들 환웅씨는 태여날 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천부 삼인을 계승하여, 수계제불 (修계除불)1) 하였다. 천웅(天熊)2)의 도를 수립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유래한 바를 알게 하였다. 어느덧 인세(人世)가 의식(衣食)의 일(業)에만 편중하므로, 환웅씨는 무여율법(無餘律法) 3) 4조(條)를 제정하여, 환부(鰥夫)로 하여금 조절하게 하였다. 1조는, 사람의 행적(行蹟)은, 때때로 깨끗하게 하여, 모르는 사이에 생귀(生鬼)가 되지 않게 하고 번거롭게 막혀, 마귀(魔鬼)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세로 하여금, 통명무여일장(通明無餘一障)4)하게 하라. 2조는, 사람의 취적(聚積)은, 죽은 뒤에 공을 제시하여, 생귀의 더러움을 말하지 않게 하고, 함부로 허비하여, 마귀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세로 하여금, 보흡무여일감(普洽無餘一憾)5)하게 하라. 3조는, 고집이 세고 사혹(邪惑)6)한 자는 광야(曠野)에 귀향을 보내, 때때로 그 사옥함을 씻게 하여, 사기(邪氣)로 하여금, 무여어세상(無餘於世上)7)하게 하라. 4조는, 죄를 크게 범한 자는 섬도(暹島)8)에 유배시켜 죽은 뒤에 그 시체를 태워서, 죄집(罪集)으로 하여금, 무여어지상(無餘於地上)하게 하라 였다. 또 궁실(宮室)을 짓고, 배와 차(車)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거주(居住)하고, 여행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에 환웅씨가 바다에 배를 띄워 시승(始承)하여 사해(四海)를 순방하니, 천부를 조증(照證)하여 수신(修信)하고, 제족의 소식을 소통하여 근본을 잊지 않을 것을 호소하고, 궁실을 짓고, 배와 차를 만들고, 화식(火食)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었다. 환웅씨가 돌아와 8음2문(八音二文)9)을 수학하고, 역법(曆法)을 정하고 의약술(醫藥術)을 수업하며,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를 저술하니, 홍익인세(弘益人世)였다. 이는, 세대는 멀어지고, 법은 해이하여져서, 모든 사람들이 몰래 사단(詐端)을 모색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용(日用)하는 사물 사이에서, 근본의 도를 보전하여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비로소 학문을 하는 풍조가 일어나니, 인성(人性)이 혼매(昏昧)하여, 배우지 않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1)修禊除祓수계제불-禊祓 의식을 행한다는뜻
2)天雄-<澄心錄> 15志 가운데 天雄誌라는 명칭이 들어 있다.
3)無餘律法-復本情神에 기초를 두고 있는 철저한 종교정신을 엿보이는 律法이다.
죄악과 邪氣를 남김 없이 없애는 것이 목적이다. 무여율법은 支配的, 體系的, 强制的 성격을 띠고 있다.(추정 연대전 3898년 경)
-1- 桓國의 五訓
1.誠信不僞 (성신불위)
2.敬勤不怠 (경근불태)
3.孝順不違 (효순불위)
4.廉義不淫 (염의불음)
5.謙和不鬪 (겸화불투)
-2- 神市의 五事
1.牛加 主穀 (우가 주곡)
2.馬加 主命 (마가 주명)
3.狗加 主刑 (구가 주형)
4.豬加 主病 (저가 주병)
5.羊加 主善惡 (양가 주선악)
-3-
檀君朝鮮의 禁八條 (기원전 1282년경)
1.서로 죽이면 당시에 죽여서 갚는다.
2.서로 상하면 곡식으로 갚는다
3.서로 도둑질하면 재물을 빼앗고 남자는 그 집의 노예가 되며,여자는 女婢가 된다.
4.蘇塗소도를 헐개 한 자는 禁錮한다.
5.예의를 잃은자는 軍에서 복역한다.
6.일하지 않는자는 부역에 징발 한다.
7.邪淫사음을 한 자는 答刑한다.
8.詐欺사기를 한 자는 訓放하나, 스스로 속죄하고자 하면 면해도 公表한다.
(前記 ,註解<桓檀古記> p137 및 p191 참조)
-함무라비 법전을 거의 완벽하게 보유하고 있는 흑색 석록암 돌기둥은 1901년 고대 수사의 자리에서 발견되었다. 이보다 앞선 법전도 현재 알려져 있다. 이신(Isin)의 왕 리피트-이쉬타르(Lipit-Ishtar)의 슈메르 법전은 함무라비 법전보다 약 150년 앞선다. 그리고 셈족인 한왕 Bilalama는 그보다 70여년전 법(Eshnunna의법들)을 선포하였다.우르 제 3왕조의 찿건자 우르-남무의 법전(역주: 전2112)역시 더 앞선 것이다.이들 마지막 법전들은 조각만 남아 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함무라비에게 내려온 -연속된과거-발전의 직접적인 계통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1500여년의 기간을 통하여 법전은 더욱 엄격하고 정밀하게 발전되었다. Urukagina 라는 이름의 라가쉬국의 어떤왕은 전 2400년경 일련의 법들을 내놓고 있는데, 이들은 ‘법전’이라고 말하기 어렵더라도 그것은 이미 어느정도의 종합성과 조직성을 보여주고 있다.(李石佑역<서양고대사>探求堂 1985 pp49~50참조)
함무라비왕( 재위 기원전 1792~1750)
4)通明無餘-障-툭 트이게 하여 장애가 하나도 없게 하는것.
5)普洽無餘보흡무여-憾감-넓게 적시어 유감이 하나도 없게 한ㄴ것.
6)邪惑-간사하고 미혹함
7)無餘於世上-세상에 남지 않게 함
8)暹島섬도-暹은 햇살 오를 섬 나라이름 섬. 暹羅 는 1949년 이전의 泰國國號.
섬라는 우리의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곳이다.<三國遺事>駕洛國記가락국기에는 金首露王의 부인 許黃玉이 여기서 온 것으로 되어 있으며, <桓檀古記>高句麗國本記에는 백제인이 그들과 교역 하였다고 하였다. 타이 메콩강 중류에 있는 반치엔에서는 기원전 3500년경의 청동 유적이 발견된바 있다.
9)八音二文-8個國語와 二個國의 문자 倍達國에는 鹿圖文녹도문이 있었다. 二文은 원시한글과 漢字가 아니었을까.
第十二章
桓雄氏生壬儉氏하니 時에 四海諸族이 不講天符之理하고 自沒於迷惑之中하야 人世因苦라. 壬儉氏懷憂於天下하고 修天雄之道하며 行계불之儀하야 繼受天符三印이라. 敎耕稼蠶葛陶 之法하고 布交易稼 錄之制러라. 壬儉氏ㅣ啖根吸露하고 身生毛 하야 遍踏四海하야 歷訪諸族하니 百年之間에 無所不往이라. 照證天符修信하고 盟解惑復本之誓하며 定符都建設之約하니 此는 地遠信絶하야 諸族之言語風俗이 漸變相異故로 俗講天符地理於會同協和之
而使明之也라. 是爲後日會講之緖하니 人事煩忙하야 不講則忘失故也라.
환웅씨가 임검(壬儉)씨를 낳았다. 때에 사해의 제족(諸族)이 천부의 이치를 강(講)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미혹(迷惑)속에 빠져,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임검씨가 천하에 깊은 우려를 품고, 천웅의 도(天雄之道)를 닦아, 계불의 의식을 행하여,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갈고, 심고, 누에치고, 칡을 먹고, 그릇을 굽는 법을 가르치고, 교역(交易)하고, 결혼하고, 족보를 만드는 제도를 공포하였다. 임검씨가 뿌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므로, 몸에는 털이 길게 나가지고, 사해를 널리 돌아다니며, 제족을 차례로 방문 하였다. 백년사이에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천부를 조증(照證)하여 수신(修信)하고, 해혹복본(解惑復本) 할 것을 맹서하며, 부도(符都)1)를 건설할 것을 약속하니, 이는 지역은 멀고 소식은 끊어져, 제족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로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함께 모여 협화(協和)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치를 강(講)하여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후일에 회강(會講)의 실마리가 되니, 인사가 번거롭고 바빠, 강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1)符都-檀君朝鮮의 首都 天符의 도시라는 뜻이다. 부도는 단순히 단군조선의 수도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세계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써 四海의 公都였다.
第十三章
壬儉氏ㅣ歸而擇符都建設之하니 卽東北之磁方也라. 此는 二六交感懷核之域이오 四八相生潔果之地라. 明山麗水ㅣ連선萬里하고 海陸通涉이 派達十方하니 卽九一終始不 之其也라. 三根靈草와 五葉瑞實과 七色寶玉이 托根於金剛之臟하야 遍滿於全域하니 此一三五七磁朔之精이 會方成物而順吉者也라. 乃築天符壇於太白明地之頭하고 設保壇於四方이라. 保壇之間에 各通三 道溝하니 其間이 千里也오 道溝左右에 各設守關하니 此取法於麻故之本城이라. 劃都坊於下部之休하고 圖涵澤於三海之周하니 四律四浦ㅣ連隔千里하야 環列於東西라. 律浦之間에 又設六部하니 此爲諸族之率居也라. 符都 成하니 雄麗光明하여 足爲四海之總和요 諸族之生脈
임검(壬儉)씨가 돌아와 부도(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였다. 즉 동북의 자방(磁方)1)이었다. 이는 2와 6이 교감(交感)하는 핵심지역이요, 4와 8이 상생(相生)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즉 9와 1의 끝과 시작이 다하지 않는 터전이었다. 삼근영초(三根靈草)2)와 오엽서실(五葉瑞實)3)과, 칠색보옥(七色寶玉)4)이 금강(金剛)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두루 가득하니, 이는 1과 3과 5와 7의 자삭(磁朔)5)의 정(精)이 모여, 바야흐로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곧 태백산 밝은 땅의 정상에 천부단(天符壇)7)을 짓고 사방에 보단(堡壇)8)을 설치 하였다. 보단의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도량길로 통하게 하였다. 도랑길의 사이는 천 리였으며, 도랑길의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마고본성(麻故本城)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다. 부도의 하부를 나눠 마을을 만들었다. 삼해(三海)의 주위에 둥그렇게 못에 잠기었다. 사진(四津)과 사포(四浦)가 천 리 간격으로 연결되어, 동서로 줄을 지어 둘러쌌다. 진(津)과 포(浦)사이에 다시 6부를 설치 하였다. 6부에는 제족(諸族)이 살았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니, 웅려(雄麗)하고 광명하여 사해를 총화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제족의 생맥(生脈)이었다.
1)磁方-地磁氣가 있는곳. 곧 地磁界. 자계는 자석의 둘레나 전류를 통한 가느다란 철사의 둘레에는 이미 磁氣力자기력이 미치는 성질을 가진 空間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이 공간을 일컫는것이다.고대인들은 햇빛과 음과 자력을 만물의 근원으로 생각한 듯하다. 부도지는 햇빛만이 내려 쪼일 때, 소리로부터 천지가 창조되고 자방에 부도를 건설하였다고 하였다.
2)三根靈草-인삼-市에 온사람들이 瀛州영주 岱與山대여산 계곡에서 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그것을 영주 海蔘이라 하였으니, 능히 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갔다.<부도지 16장참조>靈草에 대한 이야기는 슈메르에도 있다.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는 친구인 엔키두의 죽음을 당해 인생이 덧없는 것임을 깨닫고, 슈룹파크의 불사의 왕인 우트나피시팀에게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물으러 가, 왕으로부터 홍수의 이야기와 長壽의 영초가 있는곳 까지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겨우 영초를 구해서 우르크 가까이까지 돌아온 길가메시는, 샘에서 목욕을 하는동안 그 영초를 뱀에게 빼앗겨버리고 헛되이 우르크로 돌아온다.
3)五葉瑞實-잣
4)七色寶玉-옥돌
5)磁朔-북쪽의 磁場?
6)太白山-檀君이 都邑한 太白山은 지금의 白頭山이 아니라 중국 陜西省협서성에 있는 太白山이다. 단군이 이곳에 도읍을 정한 것은 많은 다른 이유가 있지만 太白山이 옛 桓雄의 도읍지라는 데에 더 큰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단군은 후에 도읍지를 만주의 哈彌賓으로 옮겼다. 부도지에 따르면 堯의 습격 때문 이었다.
7)天符壇-天壇
8)堡壇-堡는 작은 성 보. 적을 막기 위하여 만든 견고한 구축물.壇은 제터 단. 즉 神壇.천부단이 순수한 신단 이라면 보단은 군사적 목적도 있는 것 같다. 마고성과 부도는 동일한 형태로 중심에는 천단이, 주위의 사방에는 보단이, 그사이에는 巢와 穹이 있었던 것 같다.그주위를 三條通溝삼조통구 즉 세겹의 도랑이 둘러 싸게 하였으며 다시 보의 좌우에는 關門을 설치 하였다. 巢에는 망루라는 뜻이 있으며, 穹에는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