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롱똥에서 물의 길을 따라 내 마음을 보다.
주산 김영화
산과 하늘 사이를 흐르는 물은 참으로 정직하다. 밖으로 나온 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산의 모습을 그대로 품는다. 강물 위에 하늘이 내려앉고, 산 그림자가 물결 따라 흔들린다. 우리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물을 바라보면서 물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텅롱똥에 들어서니 물의 모습이 달라졌다. 밖에서는 분명히 보이던 물이 어느 순간 땅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물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을 뿐, 땅속 깊은 곳에서 자기 길을 따라 흐르고 있다. 나는 그 물 앞에서 한동안 걸음을 늦추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일까?’ 그 생각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웃으면 웃는 사람으로 알고, 말이 없으면 말이 없는 사람으로 안다. 얼굴에 나타난 표정과 말과 행동을 보면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 나 자신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것이 내 마음의 전부는 아니었다. 기쁜 얼굴 뒤에 말하지 못한 생각이 있었고, 평온한 표정 아래에는 흔들리는 마음이 있었다.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갔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오래 남아 있던 경계도 있었다. 텅롱똥의 물처럼 마음에도 보이지 않는 길이 있었던 것이다.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세상은 점점 어두워졌다. 밖에서는 햇빛이 모든 것을 밝혀주지만, 동굴 안에서는 눈에 의지해서만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물소리가 먼저 들리고, 그 소리를 따라가며 물의 흐름을 짐작하게 된다. 그때 문득 마음공부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밝은 곳에서 나를 살피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일이 잘되고 마음이 편안할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어둠 같은 경계가 찾아오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그때 비로소 내 마음의 움직임이 드러난다. 화가 날 때 나는 어떤 마음인가. 서운한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엇에 걸리는가.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내 마음은 어디로 향하는가. 마음공부는 어쩌면 바로 그 어두운 곳으로 한 걸음 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밖으로 드러난 마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일어나기 전의 자리를 살피는 것이다. 화가 일어난 것을 탓하기보다 ‘왜 이 마음이 일어났을까’를 바라보고, 서운함이 생겼다면 그 서운함에 붙잡히기보다 내 안에 무엇이 주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텅롱똥의 물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빛이 없다고 해서 흐름을 멈추지도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물은 물답게 흐른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낮은 곳을 만나면 내려가며, 막히면 다른 길을 찾는다.
나는 그 물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걸어온 마음공부의 길을 돌아본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경계를 만났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었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바깥의 상황을 바꾸려고만 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그러나 마음공부는 바깥의 물길을 억지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의 흐름을 먼저 살피는 일이다. ‘지금 내 마음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 이 한 생각을 돌리는 순간, 경계가 공부의 자리가 된다. 밖의 강물은 산과 하늘을 비추지만, 동굴 속 물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그 물은 세상의 모습을 비추기보다 자기 안의 깊은 길을 따라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본래 마음도 그러할 것이다. 세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일과 사람들은 내 마음에 그림자를 만든다. 좋고 싫음이 생기고, 옳고 그름을 가르며, 얻고 잃음에 따라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의 아래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본래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마음공부란 그 자리를 잊지 않는 공부가 아닐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난 그 순간에도 내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어둠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물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텅롱똥의 물은 내게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둠 속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들렸다.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 귀가 물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물소리를 들었다. 보이지 않아도 흐르고 있다. 드러나지 않아도 살아 있다.
빛이 없어도 자기 길을 간다. 그 물소리가 마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너의 본래 마음도 그러하다.’ 밖의 세상이 밝을 때만 마음이 밝은 것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도 본래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인정이 없어도 나의 본래 자리는 있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마음의 근원까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그 자리를 잊고 있었을 뿐이다. 텅롱똥을 나오자 다시 햇빛이 눈에 들어왔다. 산과 하늘이 보이고, 물의 모습도 다시 눈앞에 드러났다. 밖으로 나온 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 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밖으로 드러난 물과 땅속으로 흐르는 물은 서로 다른 물이 아니다. 보일 때도 물이고 보이지 않을 때도 물이다. 밝은 곳에 있을 때나 어두운 곳에 있을 때나 물의 본래 성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을까. 세상에 드러나는 나와 깊은 내면의 나는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다. 다만 경계에 따라 다른 모습이 나타날 뿐이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만이 아니라, 그 모든 모습의 바탕에 있는 본래 마음을 얼마나 잊지 않고 살아가느냐에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물을 따라 걷는다. 눈에 보이는 물을 볼 때에는 세상을 보고, 보이지 않는 물을 생각할 때에는 내 마음을 본다. 밝은 동굴 밖에서는 삶의 모습을 보고, 어두운 동굴 안에서는 내면의 깊이를 살핀다. 그리고 한 생각 조용히 돌려본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물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다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곳으로 묵묵히 흐른다. 나는 그 물의 길을 바라보며 오늘도 마음공부의 길을 걷는다. 어쩌면 본래 마음을 찾는다는 것은 멀리 있는 무엇을 찾아가는 일이 아닐 것이다. 텅롱똥의 물처럼 이미 내 안에서 흐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일 것이다. 물이 물의 길을 따라 흐르듯이, 나도 나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걷는다. 오늘도 그렇게, 보이는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