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을 처음으로 샅샅이 한 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도서관에 대해서라면 관심과 애정이 크고, 그만큼 나름대로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고,
국내를 벗어나 다른 나라의 도서관들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하며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도서관들을 돌아다니면서 국립도서관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러자 곧 내 나라의 국립중앙도서관은
정작 자세히 살펴본 적이 없다는 자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맘 먹고 견학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무려 세 시간에 걸쳐 샅샅이...도서관을 살펴 보았습니다.
서초동...예전엔 교통이 좋지않아 지하철에 내려서 걸어가기 힘든 거리였습니다.
주변은 허허벌판이었고, 가까이에 편의시설도 없어서 정말 볼 일이 있지 않는 한 일부러 가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통이 너무 좋습니다. 고속터미널역에 내려서 가뿐히 걸어갈 수 있는 위치...고속터미널역 자체가
리모델링 후, 신세계백화점과 함께 있으면서 터미널의 시설 또한 흘륭합니다.
곁가지 얘기지만, 서울에 볼 일이 있을 때면, 고속터미널로 출퇴근을 하게 되고...이곳에서 밥도 사먹고, 차도 마시고,
남는 시간 쉬기도 하는데 정말 편리하고 좋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상징 존은 아마도 이곳일 겁니다.
1층에 들어서서 이용자 출입증을 발급받고 나면 가장 먼저 들어가게 되는 곳...정보 봉사실입니다.
노트북을 이용할 수 있고, 참고자료 상담을 할 수 있으며, 야간도서관도 운영되기에 이용자에게는 최상의 장소입니다.
저 붉은색 조형물이 뭘 상징하는지 들어본 적은 없지만...아마도 경계가 없고 유연한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을
말하고자 한 건 아니었을까...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렇게 하나의 공간을 이미지로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건 좋은 것 같습니다.
도서관 1층에는 대한민국 도서관 역사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박봉석이라는 분에 대한 설명과 업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1945년, 광복 후 극도의 혼란 속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여 국립도서관 개관의 초석이 되었던 분이랍니다.
1층 전시실에서는 특별 전시로 "그날의 영광, 내일의 기대"..국내 문학상 수상 작품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매년 노벨문학상, 공쿠르상, 맨부커상 등 세계 유수의 문학상이 발표될 때마다 독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데요,
국내에도 한국사회의 변천과 명맥을 함께 해온 수많은 문학상들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문학상 82개와 역대 수상작품 1,300여 점에 대한 정보를 모아 놓았네요.
한국 문학상의 역사와 수상작들을 살펴보는 건 훌륭한 논문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저도 좀 더 꼼꼼이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돌아섰습니다.
특히 최근 문학상을 수상한 젊은 작가들 중 문학평론가 신수정 교수와 안도현 시인이 추천한 네 명의 작가들의 방을
기획전시로 꾸며 놓았습니다. 소설가 손보미와 최진영, 시인 박준과 박성준...이가운데 <비밀독서단> 때문에
요즘 가장 뜨거웠던 박준 시인을 제외하고, 제가 아는 작가도, 읽어본 작가도 없다는 점이 좀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나는 그동안 요즘 문학과 멀리 살았던가...명색이 책 쫌 읽는다는 사람인데도, 명색이 서점 주인인데도...
한국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을 한 번 읽어보지도 않았다니...이건 뭐지...?
재미있었던 건 박준 시인의 방입니다...그는 그저 모텔방에서 시를 쓴다네요...
아무 살림도, 흔적도 없이, 불특정 낯선이를 위해 준비된 싸구려 화장품과 빗, 최신 텔레비전 한대가 전부인 모텔방.
거기서 그냥 메모지에 시를 쓴다네요...
이런 점이 소설과 다를 수 있겠구나 생각했네요...소설은 일단 쓰려면 종이도 많이 필요하고..ㅎㅎ...일일이 손으로 쓰기는
너무 힘들어서 꼭 컴퓨터가 필요하고...어떤 소설은 상자 몇 개씩의 자료가 있어야만 쓸 수 있는 법인데
시는 심플하다..이런 생각...(물론 시를 폄하하거나 가벼이 여기는 마음은 전혀 아닙니다).
도서관의 6층은 고전운영실입니다. 고서 및 족보자료와 동양의 고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용자 대부분이 연세 지긋하신 분들...자료를 쌓아두고 몰입하며 연구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지금은 모두 없어져버린 추억 속의 도서목록함...도서관이 폐가식이던 시절, 우리는 모두 저 목록카드에 매달려
자료를 검색했고 청구기호 써서 사서에게 열람을 요청하면 사서가 자료를 갖다주곤 했죠.
이곳에 흔적을 남겨 놓았네요...
6층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우리나라 모든 성씨의 족보가 여기에 다 모여있다는 겁니다.
씨족주의를 추구해서가 아니라..ㅎ...저도 '수원 백씨' 족보를 찾아서 들춰보지는 않고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 옛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족보...아들 없는 우리 집에, 나에겐 사촌이 되는 작은집 아들을
양자로 올려 족보상 큰집에 대를 이었던 백씨 아버지들의 혈통잇기를 새삼 생각해 보았네요.
5층에는 학위논문실과 지도자료실, 북한자료센터, 그리고 개인이 기증하여 마련된 개인문고가 있습니다.
정한모, 강원룡, 고바우 김성환 화백 등이 기증한 중요한 자료들과 그들의 친필 원고, 흉상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백 년 후, 신인류의 후손들은 저리 기억할 육필 자료들이란 것도 없을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돋보기 안경, 빛 바랜 노트...이런 거 대신 오로지 디지털 기억들만이 전시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인지, 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부쩍 이런 자료들이 정겨워보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제가 좋았던 곳은 바로 이 지도자료실입니다.
국가를 구성할 수 있는 핵심이 국민, 그리고 영토지요...땅이 없는 백성은 국가를 만들지 못하고, 국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시오니즘'을 부르짖으며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무지막지하게 영토를 차지했지요.
지금 우리 영토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분단으로 절반이 내 것인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상태로 날아가버렸고, 중국의 동북공정 앞에 위협받고 있으며
바닷길은 또 독도를 치고 들어오는 일본 때문에 고약한 상태가 되버렸습니다.
이럴 때 도서관은 우리 영토에 대한 자료찾기와 연구활동에 애써야 할 것 같습니다.
지도자료실은 전면에 독도문제를 내걸고 있어서 좀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연구는 하고 있는지, 얼마나 결과를 내고 있는지, 학계의 현황은 어떤지...궁금합니다.
북한자료센터는 도서관 내에 있지만 통일부 소속이라, 사전에 통일부에 예약한 사람만 입장이 가능하다는데
바로 며칠 전 북한 신문까지도 다 구비하고 있을 정도로 북한 자료를 폭넓게 수집해놓고 있다고 하네요.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어제 날짜 북한 신문엔 어떤 내용이 실려있을까, 보고 싶었습니다.
4층은 인문, 사회, 자연과학실이...3층은 연속간행물과 정부간행물실이 있습니다.
모든 신문과 잡지, 사보 등 발행되는 정기간행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층...드디어 최근 가장 화제의 중심에 서고 있는 문학실 '라키비움'입니다.
라이브러리 + 아카이브 + 뮤지엄 = 라키비움.
도서관과 기록관과 박물관의 형태를 한데 엮어 이용자들에게 전시와 열람의 편의를 제공하는 형태인데요.
외국 도서관처럼 편안한 소파와 창가 전망좋은 자리에 배치한 일인용 좌석, 녹색 스탠드의 이미지가 돋보입니다.
근대문학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특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백석, 윤동주, 정지용 등의 초판본이
전시되어 있어서 보기에 좋았습니다. 이 작가들의 초판본이 요즘 최고 베스트셀러인데요...이 출판상품이 어쩌면
개인 출판사가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진작에 발간했어야 할 책들이 아니었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초판본 자료도 모두 가지고 있고, 그 역사와 의미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는데, 이 책들을 소재로 독자들에게 우리 근대문학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한국인의 독서의식과 문화를 확장시켜나갔더라면 좋았겠다 이런 생각요.
한국 근대문학은 신문, 잡지, 단행본 등 대량 인쇄 출판기술에 힘입은 근대 매체의 발전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독자들의 문학적 감수성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글쓰기'와 그 문학적 양식을 창조하여 한국인들의 사상, 감정,
감각 등을 표현해 왔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기획한 이 전시는 한국 근대문학의 실물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활자로 읽어보도록
기획되었다고 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전시 자료)
자료가 서가에서 죽어 잠자지 않고, 이렇게 전시의 형태로 뛰쳐 나와 능동적으로 독자들을 만나고,
독자는 그 향취를 만끽하며 그 옆에 앉아 우리 문학의 현재를 읽어볼 수 있다는 것...이런 방식의 자료실 구성은
참 좋았습니다.
창밖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창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아침 9시, 문 열자마자 뛰어들어와야 한다네요...
정말 멋지고 또 부러웠습니다.
나도 매일매일 여기로 출근하고 싶다...이런 생각이 마구 드네요.
그동안 내 삶에서 국립중앙도서관이 너무 멀리 있었구나...이런 생각을 다시 한 번 했고요.
지금은 더욱 더 멀어진 충청북도 시골까지 와버려 이 좋은 곳을 가까이 하기 어렵게 된 것이 안타깝고,
청춘의 한 시절 멋진 도서관과 함께 했던 추억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 또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들의 이 대표 도서관이 시민들과 더 밀착된 형태로 일상 속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보다 더 근사한 열람실 개편과
이용자 서비스를 개발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가장 내 마음을 잡아 끌었던 곳은 "디지털도서관"이었습니다.
그곳은 별도로 소개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