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사
서울시 은평구 대서문길 북한산
2016년 하기휴가철을 맞아 경북 청송군, 봉화군의 사찰들을 모두 찾고 다음으로 서울 북한산의 절터와 절집을 찾아
부처의 행적을 찾기로 하고 며칠의 일정으로 북한산국립공원 북한산성 입구부터 막무가내 들어서다.
북한산에 산재해 있는 절이나 옛절터가 많은 것은 경주의 남산 만큼이나 버금가는 듯하다. 현존하는 사찰의 수가 무려 70여 곳이라하니 가히 불국지임을 알 수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북한산성을 들어서서 오르는 길에 처음만나는 고요하고 작은 절집이다.
행정구역상 북한산성 대서문 안으로는 경기도 고양시이며, 성안을 들어서기전에 있는 용암사는 서울시 은평구로 구분된다.
용암사는 1960년대 북한산 노적봉 아래에 있는 노적사 주지이던 정천스님이 서원하여 의상봉 아래 세운 자그마한 암자로 그 역사는 길지 않다.
*북한산 일출봉 아래 세워졌던 고찰 용암사는 지금은 근처에 절터만 남아 있는 북한치영 승군 군영으로 지금의 용암사와는 다르다.
북한산 주능선 최남단 북한산성에서 올려다 보면 원효봉과 의상봉이 눈에 들어온다.
이 가운데 전장150m 폭 10m의 살아있는 모습의 용바위가 자리하고, 그아래 용바위"라는 뜻의 용암사"를 세웠다.
좁고 가파른 오르막은 아침 일찍나선 나를 숨차게 한다.
대웅전
25평 남짓한 대웅전은 용의 머리부분에 해당한다.
대웅전에서 내려다 보면 북한산성 입구는 물론 서울시와 고양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정천丁天스님
1960년 당시 인근 노적사 주지로 있던 스님은 끊임없는 수행과 기도로 북한산 곳곳을 돌며 자신의 수행과 기도를 담금질해낼 토굴을 찾던 중, 어느 날 용바위에서 깜박 잠이 든다. 꿈 속에 부처님이 "영원히 기도할 수행처는 바로 네 발아래에 있다" 현몽에 깨어보니 과연 부처님 말씀대로 토굴터에서 바라본 지형은 왼쪽 위로 원효봉이, 오른쪽 위로 의상봉이 잇닿아 있었다. 스님이 잠들었던 곳은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길지였다.
스님은 지체없이 인법당을 세우고 요사를 지었다.
스님은 용암사를 창건하고 1968년 재단법인 선학원에 등록한다. 당시 법당과 요사 그리고 대지 150평으로 구성되었다.
정천스님은 "의상대사가 세웠다지만 그 흔적만 남아있던 용암사를 다시 세운 것만으로도 부처님의 가피다" 고 말씀하셨다.
본래 용암사는 신라시대의 고찰이다.
1300여 년전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원효성사와 북한산에서 서로 마주보며 도를 닦았다는 설화도 용암사 창건설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현재에 흔적과 전하고 있는 것은 寺名과 다소의 기록물, 그리고 1776년 건립된 풍계당 부도와 조선시대 후기작으로 추정되는 석탑과 석등이 남아있다.
옛 기록으로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서 1761년 북한산을 유람하며 용암사에 들른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용바위와 거북바위를 병풍삼아 앉아있는 용암사를 칭송하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나무석가모니불
2016. 8. 3 이른아침
북한산을 오르며
용암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