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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에서 배우는 사제의 승리/
“금년은 특히 불법의 사정(邪正)을 바로 잡아야 할 해이니라.”(어서 893쪽)
사도유죄에서 돌아오신 니치렌 대성인은 제자들에게 써 보내셨다.
올해야말로 정사(正邪)의 ‘결말’을!
때는 제자의 투쟁의 시대로 들어섰다.
대성인은 문하에게 호소하셨다.
“니치렌과 같이.” “니치렌과 동일하게.” “나와 같이” 제자여 일어서라! 라고.
스승의 열렬한 호소에 응한 제자가 있었다. ‘사제불이’의 정신에 일어선 위대한 제자가 기세 있게 등장했다.
“사제의 길도 제자의 자각이 중심입니다. 제자가 얼마나 강한 구도심에 일어서는가, 얼마나 강한 사명감에 일어서는가, 그 일념의 강함에 스승이 응하는 것입니다.”
생애의 총 마무리인 ‘결말’의 때에 제자들은 어떻게 싸우고 대성인은 무엇을 제자에게 의탁했던 것일까.
“가장 혹독한 곳을 바꾸어 보인다!”
이것이 지도자의 신조, 제자로서의 책무!
‘가장 혹독한 곳’으로!
니치렌 대성인의 미노부 입산 후, 닛코상인은 스루가 지방의 홍교를 한층 과감하게 전개하셨다.
당시의 스루가 지방은 군사적으로도 요충지.
호조 도쿠소가(호조가의 본가)의 직할지도 많았다. 당시 집권인 호조 도키무네 어머니의 영지도 있었다. 세력 있는 사원에는 막부의 유력 관계자가 ‘고용된 주직’으로 부임해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스루가 지방은 홍교가 가장 어려운 지역 중의 하나였다.
그 가운데에서 닛코 상인은 확대에 도전했다.
류센사의 승들을 잇 따라 문하로 삼고, 류센사가 있는 아쓰하라 지방의 농민들도 속속 입신시켜갔다.
그때까지 대성인은 경문대로 굳이 악에 도전하고 굳이 대난을 불러일으켜 싸워오셨다.
닛코 상인의 홍교는 대성인이 몸소 가르쳐주신 투쟁에 호응하는 것이었다.
일찍이 닛코 상인은 대성인이 이즈에 유배당하셨을 때에도 함께 가서 유배지에서 홍교확대를 완수해내셨다.
혹독한 상황 속에서야말로 절복의 불꽃을 불태우고 결과를 낸다. 실행이야말로 제자의 증명이다.
“가장 혹독한 곳에 뛰어들어 가장 훌륭한 곳으로 바꾸어 보인다! 이것이 진정한 지도자의 신조이며 진정한 제자로서의 책무의 투쟁이다.”(수필 신․인간혁명)
업어서라도
닛코 상인을 중심으로 진행된 홍교확대에 대해, 각 사원의 원주(院主)나 주직은 심상치 않은 위기감에 감싸였다.
그 당시 종교적인 권위를 이용하여 무가(武家) 등의 공양을 탐내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정의의 세력의 확대는 위협이 되었다.
신도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박해의 중심인물은 류센사의 원주 대리인 교치. 호조씨의 일족으로, 권력을 등에 업고 원주 대리의 지위에 올랐지만 그 실체는 세간의 눈으로 봐도 ‘무뢰한(無賴漢)’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절의 재산을 사유화하고 너구리 사냥, 사슴 사냥 등에 정신을 팔고 절의 연못에 독을 넣어 물고기를 죽여 그 물고기를 파는 등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다.
교치는 지방의 관리와 결탁하여 박해를 개시. 법화경을 믿는 대성인 문하를 ‘외도’ ‘사교’로 비난하고, 한 문하에게는 ‘법화경을 버리고 염불을 부르라는 기청문(서약서)을 써라’고 강요했다.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는 천태종이면서 염불을 강요한 것이다. 그 문하는 이것을 거부하여 승방을 빼앗겼다.
사태가 긴박한 속에 대성인은 젊은 문하인 난조 도키미쓰에게 보낸 편지에 “귀하(도키미쓰)가 퇴전한다면 스루가의 사람들은 신심하고 있는 사람도 퇴전하고, 이제부터 믿으려고 하는 사람도 묘법에서 떨어져버릴 것이다”(어서 1539쪽)라고 적으셨다.
한 사람의 청년도 퇴전시키지 않겠다는, 한없는 자애의 기대가 전해져 온다.
“퇴전하려고 하는 사람은 업어서라도, 안아서라도, 끌어당겨서라도 함께 훌륭한 묘법의 공덕을 받게 하고 싶다. ‘투쟁한 공덕은 이렇게 굉장한 것인가!’라는 것을 실감시켜주고 싶다.”(법화경의 지혜) 이러한 마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정사를 간파하는 힘을!
교치 등의 음모는 더욱 격화되어 갔다.
관리와 결탁하여 법화경의 신앙을 금한다는 막부의 명령서(교서)를 위조하여 정법의 확대를 저지하려고 모략을 꾸몄다.
비열한 유언비어이다. 유언비어를 이용하여 문하의 단결을 교란하려고 한 것이다.
대성인은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서가 가짜이며 모략문서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명백하지 않은가라고 갈파하시고 있다.(어서 1478쪽)
그리고 이 부인에게는 “더욱 더 신심을 강성하게 하심은 거룩한 일이외다. 거룩한 일이외다”(어서 1478쪽)라고 말씀하시며 유언비어와 모략을 간파하여 ‘더욱 더’ 신심을 깊게 하는 자세를 강하게 칭찬하시고 있다.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하는 사악한 유언비어에 미혹되어 신심을 잃어버린다면 불행이다.
SGI회장은 말하고 있다.
“타락한 인간에게 미혹될 정도로 어리석어서는 안 된다. 요는 간파하면 되는 것이다.”
“혼란한 정보의 진위를 끝까지 확인하여 정사를 간파하는 힘을 민중이 가지는 이외에 없다.”
악인은 명확히 하라
모략의 폭풍우가 불어 닥쳤다.
닛코 상인은 불석신명의 투쟁을 관철했다. 그 투쟁에 의해 무사는 물론, 농민 등 민중이 잇따라 입신해갔다.
아쓰하라 농민신도의 중핵이 되는 3형제, 이른바 ‘아쓰하라의 삼열사’가 대성인 문하가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정법의 세력이 확대되는 속에 이윽고 비열한 마의 손이 농민신도를 덮쳤다. 사전에 신도가 모이는 기회를 잡아, 일망타진하려고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쓰하라의 농민신도가 벼를 베고 있던 곳을 무기를 가지고 습격하여 20명의 농민신도를 부당하게 체포하고 연행했다. 게다가 교치 등은 ‘대성인의 문하가 무장한 농민을 지휘하여 류센사의 벼를 훔쳐갔다’라는 거짓 죄상을 날조하여 막부에 고소한 것이다.
대성인은 교치 등의 고소를 “터무니없는 허언이외다”(어서 852쪽) ― ‘전혀 근거없는 거짓, 엉터리가 아닌가!’ 라고 파절하셨다.
교치 등이 고소한 죄상은 현대의 형사사건에 해당한다. 관할은 사무라이도코로였다.
사무라이도코로의 책임자는 저 헤이노 사에몬노조, 고쿠라쿠사 료칸 등과 결탁하여 대성인을 죽이려고 한 권력자이다.
닛코 상인은 이 기간에 빈번하게 대성인과 서신을 주고받으셨다. 대성인으로부터 적확한 지시를 받았다고 생각된다.
교치측 소장의 내용이 명백해지자 닛코 상인은 조속히 변명서의 초안을 만들어 스승께 보냈다.
그 초안은 사건의 진실 된 경위를 밝히고, 교치측의 악행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이었다.
대성인은 그 초안에 가필(加筆).
전반 부분에 ‘입정안국론’의 예언이 적중한 사실 등을 덧붙여 진언망국의 현증을 나타내고 불법상에서 당당하게 파절하신 것이다.
전반을 대성인이, 후반을 닛코 상인이 집필하신 서장이 되었다.
SGI회장은 “‘류센사신장’은 실로 사제공전의 증거였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류센사신장의 서두에 대성인은 적으셨다.
“자과(自科)를 은폐하기 위하여 부실(不實)한 남소(濫訴)를 한 것.”(어서 850쪽) ― 자신들의 죄과를 숨기기 위해 허위를 내세우고 억울함을 호소하여 멋대로 재판을 일으켰다. 악의 본질을 갈파하셨던 것이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사기소송이며 소권의 남용이다.
SGI회장은 말씀하시고 있다.
●“‘악인은 명확하게 악인이다.’ 라고 나타내야만 한다. 어중간한 대응으로는 모두가 헤매고 만다.”
불이(不二)의 모습을 나타내어라!
‘불석신명’으로 정법을 홍통하신 대성인에게 응한 진짜의 제자가 민중의 대지로부터 등장했다.
이름 없는 민중의 영웅이 ‘불석신명’의 신심을 당당하게 나타내었다.
“제자가 얼마나 강한 구도심으로 일어서는가, 얼마나 강한 사명감으로 일어서는가, 그 일념의 강함에 스승이 응하는 것입니다.”(법화경의 지혜)
제자는 구도심을 불태웠다. 사명의 길에 자신의 몸을 바쳤다.
이에 대성인은 때를 느끼시고 미래영원의 전 인류를 위해 일염부제총여의 대어본존을 건립하신 것이다.
스승의 총 마무리 투쟁은 ‘사제불이’의 정신에 일어선 제자가 출현함으로써 완결되었다.
투쟁은 스피드
20명의 농민신도는 부당한 취조에도, 공갈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굴복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어떠한 권력도 그들의 신심을 파괴할 수 없었다.
그 불퇴전의 모습에 헤이노 사에몬노조는 초조함마저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헤이노사에몬노조는 둘째아들에게 명하여 염불을 부르도록 20명에게 강요했다.
둘째아들은 화살촉 대신 커다란 소리를 내는 나무 또는 사슴뿔로 만든 순무 모양의 속이 빈 깍지를 댄 화살을 마구 쏘아댔다. 비도한 고문이었다.
대성인은 그 자리에서 붓을 드셨다.
“참으로 예삿일이 아니며”(어서 1465쪽)라고.
닛코 상인으로부터 급보를 받은 것이 오후 6시 무렵, 대성인이 답장을 보내신 것이 오후 8시 무렵이었다. 신속했다.
SGI회장은 말하고 있다.
“투쟁에는 스피드가 중요하다. 우유부단하여 결단하지 않으면 그 사이 마에 먹히고 만다.”
대성인이 보내신 편지는 ‘성인 등 답서’이다.
대성인 자신이 끝부분에 그와 같이 적으신 편지이다.
닛코 상인 등 아쓰하라 법난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제자를 대성인은 ‘성인’으로 부르셨던 것이다. 최대로 칭찬하는 말을 제자에게 보내셨다.
용기로 이겨라!
‘성인 등 답서’에는 “여러분은 두려워하지 말지어다.”(어서 1455쪽) ―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라는 말씀이시다.
그 2주일 전에 보내신 ‘성인어난사’에도 “각자는 사자왕의 마음을 발휘해서 남들이 아무리 위협할지라도 겁내지 말지니라.”(어서 1190쪽) ― ‘니치렌 문하의 한 사람 한 사람은 사자왕의 마음을 끄집어내어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위협할지라도 기가 꺾여서는 안 된다.’ 라는 말씀이다.
대성인은 사법의 승과 권력자가 결탁하여 목숨에 미치는 탄압을 가해왔을 때 ‘사자왕의 마음’으로 굴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한 사람이야말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어서 957쪽)
SGI회장은 “‘사자왕의 마음’이란 최고의 용기입니다”라고.
아쓰하라의 농민신도는 ‘사자왕의 마음’을 끄집어내어 승리했다.
권력이 적의를 품더라도 어떠한 불합리한 처사가 있더라도 두려워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의심 없이 용기를 분기시켜갔다.
최고의 용기로 승리했다. 용기를 끌어올린 한 사람 한 사람의 연대가 권력의 마성을 생명의 차원에서 이겨낸 것이다.
“‘이렇게 하고 있는데’라는 등 소극적으로 된다면 그 일념 때문에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신심은 감상이 아닙니다. 신심은 용기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법화경의 지혜)
헤이노 사에몬노조의 말로(末路)는?
싸우는 제자들을 최대로 칭찬한 ‘성인 등 답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마음 굳게 나아가면 필시 무슨 일인가 생기리라고 생각되노라.”(어서 1455쪽) ― 더욱 강하게 나아간다면 반드시 현증이 나타난다고 단언하시고 있다.
그러면 박해한 자들의 말로는 어떠했는가.
확실히 대성인의 말씀대로의 현증이 나타났다.
헤이노사에몬노조. 아쓰하라 법난 후에 참언으로 막부내의 경쟁자를 멸망시키고 ‘군사’ ‘경찰’ ‘정무’의 절대적인 권한을 수중에 넣었다. 최고의 영화를 누렸으나 그 최후는 너무나도 비참했다.
아쓰하라 법난으로부터 14년 후 4월.
헤이노 사에몬노조는 자신의 장남에게 막부반역의 음모를 밀고 당한다. 장남이 아버지를 밀고한 배경에는 추악한 권력투쟁이 있었던 것 같다.
헤이노 사에몬노조의 저택을 막부의 군대가 포위하고 불을 질렀다. 그것은 저 아쓰하라의 농민신도들을 고문하고 처벌했던 그 저택이었다.
그 장소에서 헤이노 사에몬노조는 둘째 아들과 함께 죽어갔던 것이다. 둘째 아들은 아쓰하라의 농민신도에게 활을 쏘며 위협하고 염불을 부르도록 강요한 장본인이다.
권력을 손에 넣은 헤이노 사에몬노조에게 몰려들어 ‘영화’를 자랑하던 일족의 무리들도 동시에 멸망해갔다.
아버지인 헤이노 사에몬노조를 밀고한 장남도 사도에 유배되었다. 그 후 자손은 흔적도 없이 멸망했던 것이다.
닛코 상인은 헤이노 사에몬노조 일족의 멸망에 대해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라 법화의 현벌을 받은 것이니라”(본존분여장)라고 적으시고 있다.
헤이노 사에몬노조의 멸망에 대해 니치칸 상인은 이렇게 명기하시고 있다.
“간접적인 원인은 니치렌 대성인을 때린 대죄에 의한 것이며 직접적인 원인은 아쓰하라 법난의 때, 삼열사를 살해했기 때문이다.”(현대어역, 본존분여장)
법화경을 행하는 사제를 탄압한 과보가 얼마나 엄한가. 니치칸 상인은 명쾌하게 하나하나 논하시고 있다.
“헤이노사에몬노조가 목이 잘린 것은 니치렌 대성인의 얼굴을 때렸기 때문이다.”
“헤이노 사에몬노조가 가장 사랑하는 둘째 아들이 목이 잘린 것은 니치렌 대성인의 목을 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장남이 사도에 유배된 것은 니치렌 대성인을 사도에 유배시켰기 때문이다.”
니치칸 상인은 결론으로 “불벌의 인과의 예언은 이미 정확하게 부합하고 있다. (법화경 행자를 박해한) 대죄의 과보를 면할 수 없다”라고.
교치의 말로는?
아쓰하라 사람들을 박해한 장본인인 류센사의 원주 대리인 교치는 어떻게 되었는가.
제59세 니치코 상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다.
“(주변의 농민들을 비롯하여 누구 하나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을 만큼) 방약무도한 장본인(교치 등)도 전전긍긍하여 마침내는 지옥도에 떨어졌다. 류센사도 세 번의 화재를 당하여 함께 자취도 없어졌다.”(아쓰하라 법난사)
권위를 내세우고 온갖 책략과 악역을 일삼은 악려들은 ‘지옥도’로 떨어져 갔다.
악려가 살고 있던 절도 또한 멸망의 비탈길로 굴러떨어져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불법승부의 실증은 빨리 나온다”
불적과 싸우는 공덕은 크다!
대성인은 단언하시고 있다.
“불벌의 엄함으로 우리들의 공덕의 크기를 추찰하면 나의 문하의 사람들이 ‘십의 존칭으로써 부처를 공양하는 것보다 더욱 뛰어난 복덕’을 얻는 것은 의심없다”(어서 342쪽)라고.
대성인을 탄압하고 신도를 박해한 자들은 멸망했다. 일족도 멸망했다. 막부도 무너졌다. 불벌(佛罰)이 큰 것을 보고 묘법의 위대함을 깨닫고 ‘불적과 싸우는 공덕’의 굉장함을 알아야 한다.
싸울수록 현증은 빨리 나온다
대성인은 말씀하신다.
“과거 현재의 법화경의 행자를 경천(輕賤)하는 왕신만민이 처음에는 아무 일이 없는 것 같으나 마침내는 망하지 않음이 없느니라.”(어서 1190쪽) ― ‘말법의 법화경 행자를 경멸하고 멸시하는 권력자, 그러한 신하나 민중은 (박해한) 당시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최후에 멸망하지 않는 자는 없다.’ 라고.
“처음에는 아무 일 없는 것 같으나” 반드시 마지막에는 판가름난다. 불법의 인과는 엄연하다.
마키구치 초대회장은 ‘불법은 승부’이다. 불법은 ‘현증’이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생명’이라고 단언하셨다.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
그리고 “싸우면 싸울수록, 이쪽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불법승부의 실증은 빨리 나온다”라고.
이것이 ‘창가의 아버지’의 대확신이다.
‘자기중심’에 마가 틈탄다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것은 정사를 정하는 싸움의 때에 알 수 있다.
아쓰하라 법난이 한창일 때, 닛코 상인이나 난조 도키미쓰는 미노부에 계신 대성인에게 하나하나 보고하고 구체적인 지시나 지도를 구했다.
대난에 ‘사제일체’로 맞섰다.
이것에 비해 적에게 속아 퇴전하고 예전의 동지에게 적의를 드러내어 반역한 자들이 있었다.
다이신보와 산미보 등이다.
그들은 대성인의 명을 받고 아쓰하라에 파견된 이른바 ‘간부’였다.
어째서 퇴전하고 반역한 것인가. 그것은 원질과 질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성인으로부터 파견된 산미보는 후배인 닛코 상인에 대한 질투가 있었다. 산미보는 닛코 상인보다 선배격이며 히에이산에도 유학한 학승이었다.
자신은 인텔리라고 자만한 산미보가 아랫사람으로 보고 있던 닛코 상인을 보좌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질투의 불길을 태웠던 것에 마성이 침투했다고 니치코 상인은 통찰하시고 있다.
스승의 명으로 파견되어 후배 밑에서 활동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것이었다. 거기에 마가 틈탔다.
류센사의 교치 등은 동지를 원질하는 인간을 끌어들였다. 문하의 단결을 무너뜨리기 위해.
SGI회장은 말하고 있다.
“결국 신앙자는 불법을 중심으로 하는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가 둘 중에 하나밖에 없다. 어느 시대에도 퇴전자는 ‘법’보다도 자신의 ‘감정’이나 ‘이해(利害)’를 우선 시 하였다. 그 마음의 틈에 마가 파고든다.”
창가의 인생만큼 위대하고 가치 있는 인생은 없지 않은가!
이 학회정신을 잊지 말라!
서로가 사제로
오랜 기간 스승과 함께 신심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결 속에 사제가 있다.
사도에 유배되어 있던 니치렌 대성인은 고참인 세 명의 문하에게 중요한 법문을 쓴 글을 보냈다. 그 서(書)는 지금은 명확하지 않으나 그 추신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나의 곁을 직접 방문하여 법문을 익히고 가는 사람에게 법문을 들으세요. 그렇게 하면 서로 사제가 될 것이다”(어서 1223쪽)라고.
사도의 대성인 곁을 방문하여 직접 법문을 들은 사람들에게 자주 듣도록 하세요, 라는 말씀이다.
시조깅고를 비롯해 여러 문하가 대성인을 구도하여 사도로 건너갔다. 그들의 대부분은 장로들에 비해 후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러한 선배와 후배라는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제자와 같은 구도심으로 법문을 듣도록 고참 문하에게 지시하셨다.
선배도 후배도 서로 구별 없이 스승을 구도하는 속에 단결이 있다고 가르쳐주시고 있는 것이다.
선배나 후배, 여러 인간관계에 얽매여 순수하게 법문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사제의 길을 완수할 수 없다. 단결도 없다.
퇴전한 자들은 이것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제의 길에서 멀어져 갔다.
허영을 벗어던져라!
“거울로 삼으라고 하는 말이니라.”(어서 1191쪽) ― 후세에 대한 훈계로써 대성인은 사제위배의 대표적인 인물로 산미보를 어서 속에서 몇 번이나 예를 드시고 있다.
산미보는 어떤 인간이었는가. 현대를 위한 ‘훈계’로서 보고자 한다.
학재(學才)가 뛰어난 산미보는 문하를 대표하여 히에이산에 유학, 교토의 귀족 앞에서 설법하는 기회가 있었다. 산미보는 ‘면목을 세웠다’라고 대성인께 보고했다.
허영이다. 대성인은 그 득의양양한 보고를 엄하게 질타하셨다.
“이 불법은 최고의 법문이 아닌가. 아무 것도 두려운 것이 없는데 귀족에게 설법한 정도로 ‘면목을 세웠다’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자네는 니치렌을 천시하고 있는가”(어서 1268쪽)라고.
대성인은 자신을 “전다라의 집에서 출생하였노라”(어서 958쪽)고 당당하게 선언하시고 있다. “묘법을 행하는 자야말로 진짜 왕자이다”라는 기개이다.
당시 교토라고 하면 나라(奈良)와 대등하게 일컬어지는 종교의 중심지였다.
거기에서 설법한 것만으로 ‘면목을 세웠다’라고 한 것은 스승을 비하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질책이었다.
“대체로 니치렌의 제자는 교토(京)에 올라가면 처음에는 초심을 잊지 않는 듯 하지만 나중에는 천마가 붙어서 정기(正氣)를 잃어버린다… 산미보, 당신도 그와 같은 모습으로 되어 제천에게 미움을 받지 않도록 하시오.”(어서 1268쪽)
허영을 버려라. 거드름을 벗어던져라. 그렇지 않으면 제천의 가호는 없다. 자기편으로 할 수 없다. 엄애의 지도였다.
“필시 말투나 발음 등도 교토(京) 사투리로 바뀌었으리라. 쥐가 박쥐로 된 것 같이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니며 시골 법사도 아니고 교토의 법사를 닮지도 아니하고 퇴전하고 반역한 쇼우보와 같이 되고 말았다고 생각되노라. 말투는 시골 말투대로 하여라, 아니면 꽤나 어색하리라.”(어서 1268쪽)
비웃든 헐뜯든 한눈팔지 않고 홍교확대를 위해 나아간다. 그것이 사제의 정신이 아닌가.
이렇게까지 대성인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산미보는 퇴전하고 반역했다.
SGI회장은 말하고 있다.
“사회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위대한가. 지위를 얻는 것이 위대한가. 그렇지 않다! 아무런 지위가 없어도 창가학회의 간부로서 광선유포에 몸을 바치는 인생만큼 위대하고 가치 있는 인생은 없지 않은가! 이 학회정신을 잊지 말라! 이것이 도다 선생님의 마음이었다. 지금 나도 같은 호소를 하고 싶다.”
결국 존귀한 신심을 그릇되게 하는 것은 항상 ‘만심’과 ‘허영심’ 그리고 ‘질투’라는 추악한 마음이다. 더욱이 그 뒷면에는 반드시 ‘겁쟁이’의 약함이 숨어있다.
유명한 “니치렌의 제자 등은 겁쟁이로서는 할 수 없느니라”라는 엄계는 다름 아닌 바로 산미보에게 주신 것이었다.
퇴전자의 말로는?
아쓰하라 법난의 때 교치에 속아 퇴전하고 탄압에 가담한 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대성인은 “오타(大田)의 지카마사 ․ 나가사키 지로 효에노조 도키쓰나 ․ 다이신보의 낙마 등은 법화경의 벌이 나타남이로다.”(어서 1190쪽) ― 오타 지카마사, 나카사키 지로 효에노조 도키쓰나, 다이신보의 낙마 등은 법화경의 벌이 나타남인가 라고 말씀하셨다.
다이신보는 낙마가 원인이 되어 이윽고 민사(悶死: 몹시 괴로워하다 죽는 것)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산미보는 “이 일을 그 사람들도 내적으로는 겁을 먹고 두려워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되느니라.”(어서 1191쪽) ― ‘이 일(산미보가 사망한 일)은 그들(교치들)도 내심으로는 겁을 내고 있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산미보는 변사했다고 되어 있다.
스승의 사자후에 응하여 제자가 뒤를 이어갈지,
스승은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다
‘사자’의 투쟁을
아쓰하라 법난의 때 장승처럼 우뚝 서 싸운 청년이 있다. 난조도키미쓰이다.
도키미쓰는 문하들을 몰래 숨겨주고 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등 박해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동지를 지켰다.
권력이 적의를 드러내며 엄습해왔을 때 대성인이 도키미쓰에게 써 보내신 편지이다.
“원컨대 나의 제자 등은 대원을 세우라. (중략) 어쨌든 죽음은 일정이니라. 그 때의 한탄은 당시와 같으리라. 이왕이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법화경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라.”(어서 1561쪽)
‘불석신명’의 신심에 일어서라 라고.
추신에는 “이것은 아쓰하라의 일이 고마워서 말씀드리는 답서이니라”(어서 1561쪽)라고 있다.
아쓰하라에서의 도키미쓰의 싸움을 대성인은 보고 계셨다. 그렇기 때문에 붓을 잡으셨다. 도키미쓰는 “법화경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라”라는 말씀에 응했다.
막부가 주시하는 가운데 영지의 크기에 비해 과도한 공사(세금의 일종)를 할당받았다.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난조가는 매우 핍박한 재정이 되었다. 지두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키미쓰는 탈 말도 없고 아내나 아이들을 위한 의복도 부자유스럽게 되었다.
그러한 속에서도 도키미쓰는 대성인에게 공양을 보냈다.(어서 1575쪽)
대성인은 만년에 붓을 잡기가 곤란했음에도 불구하고 도키미쓰가 병으로 쓰러졌다는 보고에 자신의 병고를 무릅쓰고 붓을 들어 도키미쓰에게 혼신의 격려를 보내시고 있다. (법화증명초)
법화경에는 제자들의 맹세의 진지함과 기세를 나타내는 경문으로 “사자후를 작하여”(법화경 417쪽)라고 있다.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다.
‘작사자후’의 ‘사(師)’란 ‘스승이 전수하는 바의 묘법’. ‘자(子)’란 ‘제자가 받는 바의 묘법’. 그리고 ‘후(吼)’란 ‘스승과 제자가 함께 부르는 음성’.
‘작(作)’이란 ‘일으킨다’라고 읽는다. “사자후를 일으키는 것은 말법에 있어서 남묘호렌게쿄를 일으키는 것이다”(어서 748쪽)라고.
‘일으킨다’라는 것은 ‘능동’이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수동’적으로는 사자후가 되지 않는다.
“스승은 외치고 있다. 나머지는 제자가 외치는가, 어떤가, 입니다. 그것을 스승은 계속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다.”(법화경의 지혜)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