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자 못지 않은 환호와 박수 터진 페르난데스의 준우승 연설
이정호 기자 입력 2021. 09. 12. 17:04 수정 2021. 09. 12. 17:51
[스포츠경향]
레일라 페르난데스. 게티이미지코리아
‘10대 소녀’간 메이저대회 결승에서 마지막 스포트라이트는 에마 라두카누(150위·영국)에게 집중됐다. 그러나 레일라 페르난데스(73위·캐나다)도 멋진 패자의 품격을 보여주면서 우승자 못지 않은 박수를 받았다.
페르난데스는 12일 미국 뉴욕의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여자 단식 결승에서 1시간 51분에 걸친 혈투 끝에 라두카누에 0-2로 졌다. 여자프로테니스(WTA)에서 한 차례 우승 경험이 있는 페르난데스는 이번 대회 3회전부터 오사카 나오미(3위·일본), 16강에서 안젤리크 케르버(17위·독일)를 연파했고 준준결승 엘리나 스비톨리나(5위·우크라이나), 아리나 사발렌카(2위·벨라루스) 등 ‘톱 5’ 선수 가운데 세 명을 제압하고 결승까지 올랐다.
페르난데스는 작은 체구 때문에 코치로부터 “프로 선수로는 너는 해내지 못할거야”라는 말을 들어야 했지만 메이저대회 결승에 오르면서 스스로를 증명했다. “지난 10년간 가장 어려운 결승 진출”이라는 평가가 나올만큼 험난한 대진을 뚫었다. 하지만 페르난데스는 결승에서 성사된 ‘10대 대결’에서 동갑내기 라두카누를 넘지 못해 생애 첫 메이저 우승 기회를 놓쳤다.
경기 직후 눈가가 촉촉히 적어있는 페르난데스가 시상대에 오르자,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큰 격려 박수가 터져나왔다. 아쉬운 감정을 힘겹게 참아온 페르난데스의 눈물도 터지고 말았다. 페르난데스는 이날 패배의 상처를 잊는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다음에 더 잘하고 훈련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지난 2주간 보여준 내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한다. 테니스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많이 성숙했고, 행복하다”고도 했다.
페르난데스는 가족과 팀에 고마움을 전한 뒤 “어릴 적에는 코트에서 (로저)페더러처럼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더 외향적으로 관중들과 소통할 때 훨씬 잘 뛰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됐다”며 뉴욕 팬들의 특별한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인정했다.
페르난데스는 마지막 한 마디로 더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진행자가 준우승 트로피를 전하기 위해 돌아서는 순간, 잠시 마이크를 청한 페르난데스는 “20년 전 나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이후로 뉴욕이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안다. 저는 이 순간에 뉴욕 시민들이 매우 강하고 뛰어난 회복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이날은 현지 시간으로 9·11 테러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코트 한 곳에도 9월11일이 새겨져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결승 패배의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순간임에도 차분한 목소리로 “뉴욕 사람들이 행복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간 것만으로,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나 자신을 더 믿게 됐다”고 경의를 표하며 “나도 뉴욕처럼 더 강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패자임에도 감동적인 연설로 큰 박수를 받은 페르난데스에 대해 WTA닷컴은 “페르난데스가 2주간 뉴욕을 사로잡은 방법”이라고 표현했다. 전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 앤디 로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9·11 테러 20주년을 기억하면서 마이크를 달라고 요청한 페르난데스는 내가 본 선수 가운데 가장 세련되고, 가장 성숙한 사람 중 하나였다. 페르난데스는 겨우 19살”이라며 놀라움의 박수를 보냈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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