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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개인 숲을 거닐고, 탈출과 알탕도 하다 (7구간)
1. 일자: 2016. 7. 2 (토)
2. 봉우리: 죽엽산, 국사봉
3. 행로/시간
[비득재(08:06) 1.9km ~ 죽엽산(07:57) 6km ~ (전나무 숲) ~ 작은넉고개(10:43) ~ (87번 국도) ~ 큰넉고개/육사생도비(11:17~11:43) 2.3km ~ 국사봉(12:57) 2.6km ~ (알탕) ~ 소학1리(13:26)]
4. 동행: 송암님, 바람님, 산거북님, 유박사님, 다리님, 옥혜님, 명동
< 한북정맥 7구간 산행을 준비하여 >
여름 산행은 만만치 않다. 그것도 햇볕 쨍쨍한 낮 산행은 고역이다. 한북 7구간이 그럴 것이다. 묘안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산거북님에게서 문자가 온다. 날도 더운데 무리하지 말고 짧게 끊어 가자는 취지다. 밴드에 올릴 공지 글을 준비한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당초대로 비득재~서파고개는 거리가 멀고, 수정 계획 큰넉고개~화현고개는 이동시간이 길다. 무언가는 내려 놓고 또 무언가는 무리를 감내해야 답이 나올 듯하다.
1안.
1) 코스: 큰넉고개 10.3km ~ 서파 5km ~ 화현고개(운악산 입구)
2) 거리/시간: 15.8km, 6시간 30분.
3) 들머리 차편: 동서울, 3000번 시외버스 ~ 마산3리, 33번 버스 ~ 우금삼거리. 51km, 약 2시간.
4) 날머리 차편: 화현고개, 7번스 ~ 포천 내1리, 3000번
시외버스 ~ 동서울터미널. 54km, 약 2시간.
5) 시간 계획: 07:00 동서울 ~ 09:00 큰넉고개 ~ 15:30 화현고개
2안.
1) 코스: 비득재 1.9km ~ 죽엽산 6km ~ 큰넉고개 2.7km ~ 국사봉 5.7km ~ 수원산 1.7km ~ 서파(명덕삼거리)
2) 거리/시간: 18.2km, 7시간 30분
3) 들머리 차편: 의정부역 ~ 비득재, 택시 15km(1.5~2만원).
30분.
4) 날머리 차편; 서파교차로, 7번 버스 ~ 포천 내1리, 3000번 시외버스 ~ 동서울터미널, 54km, 약 2시간.
5) 시간 계획: 07:00 의정부역, 택시 ~ 07:30 비득재 ~ 15:00 서파삼거리
정보를 정리하다 보니 산행보다 오고 가는 차편 준비가 더 상세하다. 한북을 준비하며 얻은 소득 중 하나는 평소 멀고 귀찮게만 느껴지던 대중교통 이용 장거리 산행을 큰 부담 없이 받아 드리게 된 점이다. 마음의 지평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리라.
1, 2안 어떤 안을 택하던 지난 6구간과는 다르게 산행하는 맛이 느껴지는 길을 걷게 된다. 신호를 기다려 도로를 건너고, 마을을 지나고, 군부대를 크게 돌아드는 일은 생각보다 힘겨운 일이다.
주말에 비 예보가 있다. 비가 변수가 되겠으나, 오히려 장마가 기다려지는 건 나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 희망사항 >
장마의 순 우리말 오란비는 어감이 곱다. 오래 내리는 비란 말이다. 올해도 주초까지는 마른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재작년도, 작년도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일년 내내 가뭄으로 고생 했다. 그래서인지 흠뻑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산 길을 걷고 싶다.
임우(林雨), 비 내리는 숲이란 말이다. 숲에 단비가 흠뻑 내려 목마른 나무들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도 비를 맞고 싶다.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생기발랄한 방울방울이 그립다. 산행을 하루 앞둔 금요일 저녁 세차게 비가 내린다. 기쁘다. 더욱 기쁜 건 이 비가 내일 새벽에는 그치고 산행을 시작할 때는 날이 좋아진다는 사실이다. 싱그러운 숲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얼추 정맥이 반환점을 도는 시기다. 지난 절반을 돌아보고 가야 할 절반을 가늠해 보는 산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까지는 산행을 준비하며 기록한 내용이다.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의정부 가는 길에 >
첫 전철을 타도 약속된 아침 7시 동부광장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휴대폰 벨소리에 잠을 깨, 곧바로 집을 나선다. 밴드를 보니 어제 밤 유박사님, 아카님, 산거북님이 차례로 등장하여 재미난 이야기들을 나누었나 보다. 옥혜님에게서 톡이 온다. 오고 있단다. 기대치 않은 손님들의 등장에 기뻤다.
7시 조금 넘어 의정부역에 도착한다. 송암님은 시간 약속을 지키려 택시까지 타고 오셨단다. 집결 시간을 너무 서두른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되었다. 간단한 식사를 하고 택시로 들머리로 이동한다. 가면서 보니 비득재 인근에는 광릉수목원을 끼고 있어 그런지 제법 많은 음식점들과 숙박시설이 있다. 왠지 불륜, 좋게 말하면 로맨스의 기운이 강하게 도는 곳이다.
< 비득재에서 죽엽산 >
2주전 빙수를 먹던 카페 옆으로 난 소로를 통해 숲으로 들어간다. 물기 가득한 풀에 다리가 쓸린다. 10여분 걸었는데도 온 몸이 물기에 젖는다. 숲의 습기는 이내 높은 습도로 변하여 걸음을 붙들어 멘다. 연무에 가려 있고, 비고가 400미터 남짓이지만 죽엽산 오르는 길은 지난번 반대편에서 가파르고 우람하게 보이던 것처럼 만만치 않다. 초반, 모두 힘겨워한다. ‘엄홍길씨도 걷기 시작해 30분이 지나 오르막을 만나면 힘들다 한다.’라는 말에 위안을 삼아 본다.
옥혜님이 새로 장만한 배낭 자랑에 신나 한다. 할인을 해서도 만만치 않은 가격인데 은은한 카키색이 잘 어울린다. 나도 그렇지만 산꾼들이 장비 욕심을 내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30여분 걸었을까? 임도를 만난다. 쉴 틈도 없이 다시 거친 등로를 헤치고 오른다. 키 큰 금강송 군락이 나타난다. 녹색 일색인 숲에 붉은 기운이 감돈다. 안개 낀 숲의 운치가 그윽하다. 솔의 푸르름은 참나무의 그것보다 더 짙다. 숲에 온통 솔향이 진동하다. 숨 호흡을 크게 해 본다. 다량의 산소가 한꺼번에 폐에 들어온다.
죽엽산이 그리 멀지 않았으리라.
< 들머리에서 / 죽엽산 오르는 길의 소나무 군락 >
송암님의 토마토를 나누어 먹고 물을 마시고 쉬며 오른 끝에 출발 1시간 만에 죽엽산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아무 표식이 없다. 산악회 리본이 몇 개 달려 있을 뿐이다. 오면서 보니 금줄이 처져 있는 것으로 보아. 비득재에서 죽엽산은 비탐구간 인가 보다. 오늘 초반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죽엽이다. 언뜻 보기엔 밋밋하고 신통치 않게 보이지만 죽엽의 특징은 울창한 수림에 있다 한다. 이 말이 사실이란 걸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상 주변에 표식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작은 공터에서 쉬어 가기로 한다. 이번에는 유박사님이 손수 기른 토마토를 꺼낸다. 집 마당에 심은 놈은 열매가 주렁주렁한데, 사무실 건 달랑 하나만 달렸다 한다. 어제 밤 밴드에 올라온 그 놈이리라 여기고 아껴가며 먹었다. 토마토를 라면에 넣고 끊여 먹는다던 아카님의 부재가 아쉽다. 밴드 댓글로 봐서는 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 죽엽산에서 큰넉고개 >
길가 바위에 누군가 죽엽산 정상이라 써 놓은 곳을 지나자 기대하던 죽엽의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전나무인지 잣나무인지 구별이 가지 않은 커다란 나무기둥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누렇고 푹신한 땅, 검은 나무기둥, 푸른 나뭇잎, 연무에 젖은 하늘이 만들어 내는 숲의 풍경에 넋을 잃는다. 길을 나서길 잘했다.
사실 어제 오후만 해도 산행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욱신거리며 찌릿하게 파고드는 무릎의 진통은 시간이 지나도 가시질 않아 결국은 병원에 가 X-Ray까지 찍었다. 다행히 큰 이상이 없다 하여 길을 나섰지만 두 시간 가까이 걷고 내리막에 들어서자 통증이 찾아 든다. 쩔뚝거리며 걷는다. 숲의 풍광이 잠시나마 진통제가 되어준다.
< 죽엽산의 울창한 숲 >
모처럼 흠뻑 내린 흡족한 비에 젖은 숲 길은 걷기에 그만이었다. 날이 서서히 맑아 온다. 간간이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산을 걷기에는 그만인 날씨다.
작은 언덕에 올라선다. 어인 일인지 산이 파 헤쳐지고 있다. 내려다 보는 풍경에는 큰 마을도 보이고 차 소리도 들린다. 비 겐 하늘과 모처럼 들어선 개활지에 일행들을 멈춰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 한 장 훗날 오늘을 기억해 주리라 믿는다.
10시 40분 무렵 도로에 내려선다. 작은 넉고개이리라. 부근에 공동묘지가 보인다. 지나온 언덕이 파헤쳐진 건 아마도 묘지 조성공사 때문이었으리라. 화장이 대세인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 여겨진다.
< 작은 넉고개 인근에서 >
11시 무렵 큰 도로에 내려선다. 87번 국도다. 중앙분리대까지 있는 널찍한 도로를 건널 방법이 마땅치 않다. 차의 통행이 뜸해진 틈을 타 길을 건넌다. 들머리에서 이곳까지 오며 길 찾는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도로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곳곳에서 길이 사라진다. 돌아 나오고 험상궂은 개가 있는 집 뒤로 돌아 나와 겨우 등로를 발견한다.
다시 도로를 건너고 나서야 육사생도참전비가 세워져 있는 큰넉고개에 닿는다. 예상대로 정확히 8km에 소요시간은 3시간이었다. 산행을 준비하며 기초로 삼았던 지도의 정보와 일치한다.
정맥 길은 참전비 뒤편으로 나 있다. 일단, 주차장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쉬며 밥도 먹고 가야겠다. 선선한 날씨에 3시간 가량 걸은 것 치고는 에너지 소모가 크다. 높은 습도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점심상이 차려진다. 김밥과 빵, 다리님표 머리고기에 바람님표 막걸리도 있다. 막걸리 한 잔이 목구멍에 넘어가는 기분이 무척 좋다. 산에서의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만은 한 잔이 아쉽다. 두런두런 앉아 이야기 나누며 먹는 식사가 꿀맛이다.
해외 산에 가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북알프스, 말레이지아 코타키나발루 등이 어떠냐는 말이 나오며 출발은 기정사실화 된다. 일자까지 구체화된다. 늘 머리 속에서만 머물던 해외원정산행이 현실로 다가온다. 일단은 거두절미하고 무조건 간다에 한 표를 던진다.
< 큰넉고개에서 국사봉 지나 소학1리 >
25분여의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참전비를 둘러 보고는 국사봉으로 향한다. 밥을 먹고 걷는 초반 길은 늘 힘겹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다리가 길에 적응하는데 시간도 걸리고, 무엇보다 음식을 먹는데 꽤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이 소화되어 에너지로 변화하려면 최소 30분은 걸릴 테니 그때까진 힘이 드는 건 당연지사다. 그나마 오름이 죽엽산과는 다르게 계단식으로 진행되어 다행이다.
또 습도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땀이 등을 적신다. 여름 습기 찬 날에 비고 350미터를 치고 오르는 건, 힘에 겨워 일이다. 한참을 치고 올랐다 여겼는데 고도는 겨우 400미터 초반이다. 잠시 쉬어 간다. 평소와 다르게 바람님이 쳐진다. 늘 꼿꼿한 청년이셨는데 힘들어 하신다. 한참을 쉬었는데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다. 바람님은 더 갈수 있다 하지만 송암님의 언행이 단호하다. 현명한 판단이다. 송암님은 둘이서 내려간다 하지만 그리할 순 없다. 다 함께 돌아가기로 한다.
문제는 방법인데 일단 국사봉을 찍고 우측 지능선을 따라 내려가기로 한다. 그 길이 더 빨라 보여서다. 튼튼한 옥혜님이 바람님 배낭을 선뜻 멘다. 새로 산 작은 배낭 앞으로 파란색 가방 하나가 더해진다. 그래도 워낙 장사라 가뿐해 보인다. 어려운 상황이 되니 일행 모두의 협동심이 발휘된다. 산거북님과 앞장 서 길을 찾아 나선다. 고도 100미터 남짓을 끌어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1시 무렵 국사봉에 도착했다. 고도는 547미터다. 오늘 정맥 길은 여기까지다. 다 함께 환한 표정으로 주먹까지 불끈 쥐고 화이팅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하나된 마음이다. 산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이며, 무리하면 안된다.
< 국사봉에서 / 날머리 숲 풍경 >
철탑용 리본을 따라 하산로를 찾아간다. 등로가 선명치 않은 숲에서 길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한동안 안내를 해 주던 리본도 사라지고 생짜배기로 길을 만들어 가려니 고생이 많다. 산거북님이 앞장서고 모두 긴장하며 길의 흔적을 찾아간 끝에 1시간 여 만에 계곡과 만난다. 날머리는 그리 멀지 않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옷을 벗는다. 오랜만에 알탕을 한다. 무릎이 성치 않은 난 신발을 벗기가 쉽지 않아. 윗옷만 벗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시원한 계곡 물이 몸에 닿자 온갖 피로가 확 가신다. 기분이 하늘을 날아간다.
의도된 탈출이었지만 없는 길을 만들어 가며 숲을 내려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몸을 씻고 나니 일행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살아난다. 함께 길을 가는 벗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 에필로그 >
행복한 하루였다. 모처럼 흠뻑 비 내린 아침 숲을 거닐었고, 멈춤의 의미를 발견했고, 의도된 탈출을 했고, 덕분에 모처럼 계곡에서 몸도 씻었다. 걱정과 다르게 들/날머리 이동 교통편도 원활했고, 강변역 인근에서 한 뒤풀이도 흥겨웠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해도 삶은 행복해 질 수 있다.
송암 어르신의 리더십, 바람님의 의지, 산거북님의 정확한 판단, 유박사 형님의 커피와 토마토, 홍일점 다리님의 존재감과 맛난 음식, 옥혜님의 힘과 마음씀씀이에 감사한다.
의정부, 양주 시대를 지나 이제 바야흐로 동서울/강변 시대에 돌입한다. 누구에게는 좀 더 편한 접근성을, 또 다른 누구에게는 좀 더 멀어지는 거리로 다가오리라. 오늘 산에서 얻는 멈춤의 혜안이 앞으로의 정맥 길에서도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맞다. 멀리 하려면 함께 가야 한다,
< 한북정맥 7구간 궤적 >
첫댓글 즐거운 산행 이었습니다..^^
예, 저도 좋았습니다.
와서 보니 국사봉에서 우측으로 하산로가 있었네요.
다음 구간 준비 더 착실히 하겠습니다.^^
@산처럼 ㅎㅎ.. 그러면 담구간에는 그리로 내려가요. ^^
@산거북 예, 연구해 보겠습니다.
한북정맥 길 찾기가 쉽지않던데 여럿이 함께 즐거운 산행을 하는군요.
전 나홀로 수피령에서 비득재까지 진행했고 지금은 중단 상태입니다.
함께 하는 여러분 부럽습니다.
해오름님, 반갑습니다.
비득재까지면 많이 하셨네요.
기회되면 함께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