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 나의 삶
인천대건고 2학년 문학예술반
김종훈
나는 글을 썼다.
지금까지 계속 써왔다.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글이든 써 왔지만, 내 글들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게 누구의 탓인건 아니지만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글을 쓰는 일이 왠지 지겹고 피곤한 일이 되어 버렸다. 노트에 글을 또 써 내려 가던 어느 날 어딘가의 출판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마도 내가 원고를 제출한 무수히 많은 회사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내용은 나를‘새로운 형태의 이야기의 기록자’로 뽑았다는 이야기였다. 내 원고가 마음에 들었거나, 원고의 소재가 좋지 않더라도 내 글의 느낌이 마음에 들어 날 불렀겠거니 하고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
‘기록자’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내 글을 누군가 인정해줘서 글을 쓴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었다. 그런데 막상 가봐서 설명을 들어보니 말 그대로 나는 완전한‘기록자’였다. 손님이 들어와 기계 부스에 들어가 있으면 자동으로 세상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손님들은 원하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고를 수 있는데, 주인공을 선택하고 나면 자신의 생각이 연동되어 그 이야기들을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진행되는 이야기를 보고 기록해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기계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그들의 생각을 엿본다는건 흥미로웠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점점 많이 보다보니 이상한 공통점을 찾아냈다. 그들이 원했던 이야기는 소소했다. 그들은 작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어떤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보다는 그들이 선택한 일들에 대한 후회를 되돌리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그 후회한 행동이나 말 한마디는 시시했다. 그저‘그 때 내가 왜 말을 못 했을까’라든지 아니면 ‘그 때 그녀를 붙잡았더라면…….’같이 하나의 행동을 되돌리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은 그들의 이야기들보다 더 참신하고 흥미롭고 잘 짠 이야기인데 어째서 내 글들은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억울한 감정이 차올랐다. 일을 끝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억울함 반 호기심 반에 나는 기계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적당히 딱딱한 의자에 허리를 펴고 앉으니 내 기억들이 도미노들처럼 차례대로 펼쳐져 갔다. 제각기의 기억들이 아련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맨 처음 사랑을 하던 소년 시절의 나의 기억을 고르고선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소년인 나는 사랑에 빠져있었다. 귀신에게 홀린 듯 아무 때나 그녀가 떠오르고, 마음이 아려왔었다. 하지만 좋아한다 말 한마디 못 해보고 끝이 나버린 그때의 기억으로 들어갔다. 그 때의 나에게 필요한 건 그 애가 나에게 먼저 고백을 해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로맨틱하지 못한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어디서 엄청난 미인이 나에게 고백을 해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그 애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 내가 그 애한테 좋아한다 말을 할 의지만이 오직 필요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애도 나를 좋아했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나는 기계 안에서 아린마음에 그 애한테 고백을 했다. 그리고선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써오던 글은 신기루 같은 운명으로 얼룩진 허망된 이야기였다는 것을.
기계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밤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야기의 진행에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필요한건 운명적인 만남이 아니다. 바로 주인공이 용기 있게 행동 할 ‘의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파랑새를 잡으러 의미 없이 운명을 헤집고 다녀도 그렇게 얻은 파랑새는 햇빛 아래서 금방 죽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마음속에 있는 새장에서 애써 파란 비둘기라고 부정하며 파랑새 찾기를 거부하는 내 의지를 되돌려 놓는 것이다.
나는 내 삶속에서 지금까지 왜 파랑새를 쫓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