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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단이태석신부님/수단어린이장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베로니카~☆
교회와 성모 마리아
성모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한 지체이시고 교회 공동체의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도록 하실 때에,
마리아는 "예" 하고 순종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받아 들였으므로,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과 인류와의 연관성이 마리아를 통해서 작용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에게 육신을 취하시는 가운데 마리아 안에서 교회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마리아는 자신의 모성을 통해서 구세사적(救世史的) 능력을 받았으며
예수님과 더불어 공로를 세우신 것이다.
교회가 특정한 인물이나 계층에 관계없이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할 때,
교회의 정체(正體)는 마리아에게서 가장 완전하고 순수하게 표현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친으로서 교회의 원형(原形) 또는 예형(例形)이라 할 수 있다.
마리아 공경의 이유
마리아에 대한 우리 가톨릭 교회의 공경은 다른 성인들의 공경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특별하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각별한 혈연관계와,
예수 그리스도와 특별한 인격관계를 가지고 있고,
또 여러 가지로 예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시는 역할로 신앙인들과 깊은 관련을 맺고 계시기 때문에
특별한 신심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비신자 측에서는 가톨릭 교회를 마리아 교회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 38)."
이처럼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자기를 내맡기고 순명하시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범을 보여 주신 탁월한 신앙인의 전형(典型)인 마리아를 본받기 위해
공경하며 따르는 것이다.
구원의 중재자인 마리아
마리아의 하느님께 대한 순명 자세는 모든 인류의 구원과 직결된다.
왜냐하면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류는 구원되고 성부와 화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시기로 동의한 것은 인류의 구원 역사에 동의한 것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까지도 받아들이신 헌신적 사랑이었으며,
우리 모든 인간에게 구원의 어머니가 되어 주셨다.
"마리아는 성인들의 통공에 있어서 특별한 역할을 하신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교회헌장 62)."
즉 마리아는 끊임없이 구원의 역할을 그치지 않으시고 당신의 전구(傳求)로써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이처럼 구원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셨으나,
이 역할은 구원의 유일한 중재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방해하거나 감소시키지 않았다.
다만 마리아는 지상에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셨고,
천상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특별한 일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성인의 통공에 있어서도 최고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구원을 위한 마리아의 역할은 오직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기인(基因)하고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에서 이루어지며 우리와 그리스도의 결합과 일치를 도와주신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 베드로 대성당, 로마)
어머니이신 마리아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낳으시고 나서
세상의 모든 어머니처럼 아기를 양육하는 평범한 어머니로서 소임을 다 하셨다.
당신과 책임을 함께 하는 요셉과 더불어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가서 주님께 봉헌하였으며,
아기를 대신하여 시메온으로부터 아들의 사명에 대한 말을 들으셨다. (루카 2, 29-32; 34-35).
성모님은 어린 예수를 위하여 자기의 신분을 자각하고 행동하는 훌륭한 교육자셨다.
어머니는,
당신 아드님이 성장하신 후에도, 예수께서 선교생활을 시작하실 때에도,
이별의 고통을 맛보아야 하는 십자가 밑에서도, 항상 당신의 아드님 곁에 계셨다.
예수님이 성장하심에 따라 어머니 마리아의 역할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예수님이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분으로서
어느 누구한테도 예속되지 않는 독자적(獨者的)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아신 마리아는
예수님의 충실한 반려자로서 숨어 봉사하셨다.
이러한 어머니의 봉사와 역할은 십자가 밑에서 완성되었다.
시메온은 예수가 겪어야 할 운명을 예언할 때
"이스라엘 분열과 마리아 자신이 겪어야 할 믿음의 시련 때문에
그녀의 마음을 예리한 칼이 꿰뚫을 것"이라고 했으며 (루카 2, 34-35),.
사도 요한은 "마리아의 사명은 골고타에서 완성되었다 (요한 19, 25-27)."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십자가 밑에 서 계시는 마리아에게 하느님 왕국의 주권을 가진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부인"이라는 엄숙한 표현을 다시 하셨다.
그리고 거기 서 있는 제자 요한을 가리켜 "이 사람은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심으로써
마리아가 그 후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하게 될 새로운 지위를 공포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유언이시기도 하다.
*피에타
작품 명 “Pieta”는 ‘Pity’의 이탈리 어로, 예수의 죽음을 비탄하는 (Lamentation) 뜻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 젊고 순결한 성모 마리아로 표현하여
이 절세의 역작을 창작하였다고 한다.
예수의 몸이 나체인 반면 마리아의 몸은 우아하게 주름진 옷에 가리웠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성경의 정신을 유감없이 표현하였다.
마리아는 유난히 젊게 표현하여 순결한 모습으로 마치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듯한 착각을 갖게 하여
예수의 탄생과 그의 주검을 한 작품에서 보게 되는 신비스러운 경의를 느끼게 된다.
이 하얀 대리석 조각 앞에 서면 누구나 경건한 마음을 금치 못하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22살 때 “피에타” 제작에 대한 계약을 하고
작가 자신이 알프스에서 적합한 대리석을 찾아내어 1499년 그의 나이 29세에 이 조각을 완성하였다.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한 뒤 가장 만족한 환희를 감추지 못하고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서 유일하게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사인한 작품이다.
1964년 세계 순회 전시를 할 때 뉴욕에서 어느 미친 사람의 햄머 질로 이 조각이 손상을 입고 보수를 한 뒤부터
수정관에 보관하여 전시하고 있다.
하느님은 마리아에게 은총을 가득히 주시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하늘에 오르게 하셨다.
예수는 마리아의 태중에 임신되기 이전부터 하느님이셨고, 출생 이후에도 하느님이시다는 것을 뜻한다.
즉 마리아는 하느님이신 분을 낳으신 것이다.
동정녀에게서 예수님이 나셨다는 뜻은 예수는 인간의 부부생활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성령의 힘으로 예수를 임신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마리아는 성령의 힘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낳았고,
그후에도 하느님의 은총을 언제나 보존하였음을 뜻한다.
또한 마리아의 원죄 없이 태어났음과 하늘에 올림을 받았다는 사실은 모든 인간이 원죄에 물들은 채 태어나지만,
마리아는 하느님이신 예수를 임신할 몸이므로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았으며,
이러한 특별한 은총에 힘입어 죽은 후에도 그 육신은 하느님에 의해 하느님 나라로 들어올려졌음을 뜻한다.
성서 안의 마리아
가톨릭 교회에서 마리아에 대해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리아 자신 때문이라기 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그분의 아들이 세상 모든 것을 바꿔 놓으시기 때문이시다.
신약성서가 마리아에 관해서 길게 말하는 것은 아니나,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의 위치에 관한 기본적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모영보
그리스도를 따르던 초대교회 신자들의 관심은 그분의 수난, 죽음, 부활에 있었으나
점차 예수의 생애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관심도 커져 갔다.
마리아에 관한 가장 충분한 언급은 신약성서 중에서도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에 나온다.
루카복음의 앞 머리에 있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는 마리아가 중심인물이다.
또한 사도행전의 첫 머리에서 마리아가 이층방에서 사도들과 계속 기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성 요한도 예수님의 공생활에 관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마리아가 아주 뚜렷이 드러나시는 두 장면,
즉 카나와 골고타의 장면으로 꾸민다 (요한 2,1-12; 19,25-27).
성 마태오는 예수님의 탄생을 모세의 전통과 약속에 비추어 사색하면서,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채워졌다는 것을 말한다.
성 마태오의 메시지 요점은,
인간 어머니에게서 나신 예수님이 구원의 하느님의 새로운 현존을 백성들에게 가져온 약속된 메시아라는 것이다.
성 루카는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지위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좀더 깊이 보게 한다.
그의 신학적 목표는 예수님을 신적 메시아와 주님으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한다(루가 1,26-38)는 성모에 관한 중심 계시이다.
마리아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 혹 '총애를 받은 이'라고 불리운 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마리아의 역할이 특유하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 결과로 '은총을 가득히 받았다'고 루카는 알려준다.
주님께서 마리아 안에 계시고,
마리아가 총애를 받으시므로,
마리아는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다" (루카 1,42).
성전에서 한 시메온의 예언은 마리아를 메시아의 수난과 이어 주고 있다 (루카 2,25-35).
요한 복음은 마리아에 관해서 단지 두 번만,
한 번은 주님의 공생활 시초에, 또 한 번은 십자가 밑에서 말하지만
신앙이 두터운 이 여인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려 준다.
우선 예수님이 카나의 혼인잔치(요한 2,4)에서
당신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면서 또 골고타의 십자가 위에서도(요한 19,26) 사용하신 '여인'이란 호칭은
예수님의 구속 사명과 마리아의 역할이 독특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복음은 마리아가 제일 처음으로 기적을 요청하였다고 하는 사실(요한 2,1-11)로 보아,
마리아의 신앙이 예수님의 측근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골고타 언덕의 장면에서 예수님이 당신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라고 하신 말씀은
마리아가 모든 신자의 영성적 어머니이심을 상징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다.
벨라스케스의 성모 대관식, 1645년 작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마리아에 대한 성서 기록에 맞추어,
사도시대 직후의 신자들이 믿은 것은 마리아의 모성에 관한 것이었다.
테오토코스(theotokos:'하느님을 낳은 자',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명칭을 맨 먼저 사용한 사람은
3세기 초 로마에 살았던 성 히뽈리또였다.
그리스도에 관한 전통적 가르침은 말씀이
즉, 성삼위의 제 2위이신 성자로 마리아의 태중에 임신되는 첫 순간부터 육화(肉化)하였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임신하여 낳은 여인이 바로 그 사람의 어머니인 것처럼
마리아도 진정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마리아에게서 인간 육체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천상 성부께 영원히 낳음을 받은 것이지만,
강생을 통해서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임신하고 낳았다.
그래서 마리아는 진정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시다.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예수님의 어릴 때의 이야기는 그리스도가 성령의 힘에 의하여 임신되었고,
성령은 인간 아버지의 관여함이 없이 마리아를 '감싸 주었다'는 믿음을 분명히 전달하고 있다.
마리아에 관한 모든 교리가 그러하듯이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해서도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은 사람이라는 그리스도론에 비추어 사색해야 한다.
마리아가 오로지 성령의 힘을 통해서만 그리스도를 임신하였다는 것이 가톨릭 신앙의 교리이다.
교회는 또한 마리아가 동정녀로 남아 있으면서 예수님을 낳으셨다고 선포한다.
마리아가 당신 전 생애를 통해서 동정녀로 계셨다는 진리 또한 신앙의 교리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중대한 한 부분이란 것이다.
우리가 이 점을 보지 못할 때 마리아의 동정성의 의미도 찾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이 교리를 순수한 영성적 상징이나 신화로 해석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대한 역사적 차원을 인식 못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사건들의 영성적 의미를 음미하려고 노력한다.
동정녀로서 하느님을 낳으신 것은 강생을 통해서 하느님이 참으로 세상으로 들어오신 것을 증언하는 동시에
하느님이 예수님의 아버지시라는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낸다.
마리아의 동정성에는 또한 교회적 의미와 종말론적 의미도 있다.
교회는 동정녀 어머니로서, 말씀과 성사를 집행함으로써 그리스도 형제 자매를 낳는다고 비유할 수 있다.
또한 마리아는 사제나 수도자의 순결의 모범이시다.
티치아노 베첼리의 성모승천(1516-1518).
원죄 없이 잉태되시고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로 예정되었으므로,
하느님은 미리 손을 써서 마리아가 말씀의 어머니가 되도록 자격을 갖추게 하셨다.
마리아가 받은 특유한 은총과 특권은 하
느님의 사랑이 인간 안에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따라서 마리아는 우리 각자가 제한된 한도 내에서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도달해야 할 것을 가장 잘 표시해 준다.
마리아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는 데 있어
신앙, 희망, 사랑으로 성장하도록 기도하신다.
우리의 경우에는
세례의 은총이 우리의 '원죄없는 임신'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삶에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도 또한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의 '동정녀 모성'에 참여할 수 있다.
마리아는 "구속의 가장 훌륭한 열매이다"(전례헌장 10,3).
이 가르침은 마리아의 무죄함에 대한 절정적 표현이다.
마리아는 죄 많은 인류에 속하는 아담의 한 후손이므로 의당히 원죄의 죄과를 받았어야 하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로 말미암아 마리아를 원죄에 물들지 않게 하였다는 것이다.
교황 비오9세는 마리아의 원죄없는 임신은 계시진리라고, 1854년에 정식으로 정의하고 공포하였다.
위경과 마리아
"위경"(APOCRYPHA)이란 말은 "숨겨진" 혹은 "비밀"이란 뜻의 희랍어에서 유래하고,
정경으로 인정받은 성서 외에 폭넓은 작품들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로이든 정경과는 어떤 관련성을 가진 것으로 보지만,
성서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위경이란 말의 근본적인 의미는 소위 정경이 아닌 성서,
즉 교회로부터 성서로 공인받거나 혹은 전례에서 사용하도록 허락받지 못한 책들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경 중의 어떤 내용들은 신약 성서와 전례에서 곧잘 인용되었다.
두 번째 의미는 이같은 책들이 의심스러운 기원을 가졌거나
내용이 비정통적이고 밀교적(密敎的)인 성격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위경 역시 "거룩한 책이므로, 창의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로드 몬태규는 말한다.
위경 가운데에는 저술 형태가 각기 다른 세 가지 유형이 있다
교회적인 문학
교회적인 문학으로는 "바르나바에게 보낸 편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교황 성클레멘스의 첫째 편지"
그리고 "헤르마스의 목자" 같은 것들이다.
이런 위경들은 사도적 교부라고 불리는 일단의 단체들의 작품인 듯하다.
교의적인 가르침
"히브리인들에 의한 복음서" 같은 것인데,
이것은 교회 교부들이 한 번은 사용한 흔적이 있으나, 나중에 제외시켰다.
대중적인 신심, 민간 전승 그리고 올바른 전승
"야고보의 원복음서" "위-마태오의 복음서" "유년기의 복음서"
"니고데모의 복음서" "마리아의 죽음에 관한 책" 그리고 "목수 요셉의 역사" 등과 같은 것이다.
"마리아의 복음서"
이 책은 제3 유형에 속한 작품으로서 마리아께 대한 여러 가지 자료가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복음서가 말하는 마리아 기사의 공백을 메꾸려는 의도로 꾸며진 듯하다.
마리아와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위경은 야고보의 원복음서로 실로, 이 책은 "마리아의 복음서"라고 할만하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인격에 대하여 독립적인 관심을 보인 초대교회의 저서로 인정될만 하기 때문이다.
저술 연대는 2세기 중엽이고 작자 미상인 이 복음서는 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유아기의 복음서"
"위-마태오의 복음서" 그리고 그 뒤에 나온 듯한 "마리아의 탄생 복음서" 등과 함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에 대한 비평은 다니엘 롭스의 말이 유명하다.
"문체가 특히 아릅답고, 이야기를 구성하고 전개한 방법이 주도 면밀하며, 깊은 신심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작품들은 모든 위경 가운데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자세히 조사 검토해 보면,
모든 위경들이 정경의 높은 수준에 버금가는 작품들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야고보의 원복음서"에서 마리아와 관련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천사가 연만하신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에게 기별한 뒤, 마리아가 기적적인 방법으로 탄생하였다.
-세 살 때에 마리아는 성전에 봉헌되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징표를 통하여 남편감으로 간택하신 나이 많은 요셉에게 약혼하였다
(그 징표는 비둘기 한 마리가 그의 지팡이에서 날아 나와, 그의 머리 위에 내려 앉았다).
-복음서보다 더 자세한 성모 영보 기사가 수록되어 잇다.
-요셉이 의심하였다.
-예수의 탄생은 베들레험 성 밖의 어느 동굴속에서 있었다.
-조산원이 대사제 앞에서 마리아의 동정과 마리아의 해명을 증언하였다.
-무죄한 어린이들의 살해와 세례자 요한의 도피는 모두 헤로데의 분노 때문이었다.
-헤로데의 군사들이 즈카리야의 살해자들이다.
이 책의 자세한 내용에 따라 마리아와 관련되는 미술과 문학이 세기를 통하여 발전해 왔는데,
예를 들면, 다음의 내용이 크게 활용되었다
-마리아는 다윗의 후손이다.
-마리아의 탄생은 기적적이다.
-"주님의 형제들은" 전처가 낳은 요셉의 아들들이다.
-성모 영보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다.
마리아의 동정
많은 위서들은 한결같이 이 사실을 직접 언급하거나 암시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원복음서" 이외에도, 동정 사실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다룬 책은 다음과 같다.
① "솔로몬의 송시(頌詩)"
아마도 이 책은 1-2세기 동안 유대인-그리스도인들이 애송한 시편인 듯하다.
② 180-190년경에 소아시아나 혹은 로마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베드로의 행전"
③ 시빌린 예언집-2세기경에 출현한 유다-헬레니즘적인 책이다.
④ 이사야의 승천- 어느 유대인의 저서를 2세기의 한 크리스챤이 개작하였다.
⑤ 목수 요셉의 이야기-4-5세기경에 나온 이야기 책인데 아랍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마리아의 중재
어떤 위경들은 마리아의 중재와 전구를 암시하고 있다.
① 시빌린 예언집은 하느님이 타락한 인간에게 회개하도록 일곱 번의 기회를 주는데,
그것은 "거룩한 동정녀께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② 후대에 재편집된 "유아기의 아라비아 복음서"는 마리아께 나타난 여인을 위해 활동하신
아기 예수의 기적 두 가지를 기도하였다.
③ 3-4세기의 작품인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책은 주님께 간청하여 천상의 일을 자신들에게 알려달라고
마리아께 부탁하는 사도들이 등장한다.
④ "동정녀의 승천"은 3-4세기의 작품인데, 마리아의 중재 기사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⑤ 3-4세기 경에 기록된 "바오로의 묵시록"은 성자가 영광 중에 오시기 전에
마리아가 영광 중에 먼저 오신다고 묘사하였다.
마리아의 축일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책은 앞서 언급한 "원복음서"이다.
이 책에는 세 가지 축일이 언급되었다
마리아의 잉태, 마리아의 탄생, 마리아를 성전에 드리심,
역시 위경인 "마리아의 승천을 알리면서 궁극적인 이 축일을 암시하고 있다,
마리아의 호칭
여러 가지 위서가 마리아의 호칭을 수록하였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책에는 마리아를 다음과 같이 부른다 .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장막", "세상의 구원", "어머니", "여왕",
"종", "천상 임금의 어머니"
마리아의 수난
4세기의 작품인 "니고데모의 복음서" 혹은 "빌라도의 행전"은
예수께서 수난하시는 동안의 마리아께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였다.
-마리아는 갈바리아로 가는 길목에서 예수를 만났다(십자가의 길. 제4처)
-베로니카는 예수의 얼굴을 닦아드렸다(제6처)
-십자가 밑에서 마리아는 비애와 눈물에 젖어 있었고, 큰 소리를 질렀다.
"가말리엘의 복음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당신 어머니께 발현하셨다는 발현 기사로
이 위경의 대부분이 구성되어 있다.
기타
"원복음서"에는 마리아가 영보때에 가브리엘 천사를 두 번이나 보았다.
한 번은 마리아가 우물에서 물을 길을 때이고, 두 번째는 집에서 실을 짜고 있을 때였다.
"시빌린 예언집"은 성모 광경을 재미있게 그려 놓았다.
마리아는 웃었고, 그녀의 볼은 발갛게 달아 올랐다.
마리아는 기뻐 날뛰었으나, 마음으로는 부끄러워하였다. 그러나 용기를 내었다.
끝으로 "목수 요셉의 이야기"(4-7세기 작품)는 마리아가 늙은 요셉을 위로했고,
죽음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썼으며, 요셉은 가난한 이들의 기도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묘사하였다.
평생동정
마리아를 "평생 동정"이라고 부르는 성전(聖傳)은 마리아가 예수를 동정 잉태하신 후에도
항상 동정으로 남아 있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물론 모든 부부관계도 없었음을 포함한다.
또한 평생 동정이란 말은 예수의 잉태가 당신 모친의 동정을 손상하지 않았다는 뜻도 들어 있다.
복음서
복음서에는 이 가르침에 반대되는 증거들이 없다.
루카는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는 첫 아들을 낳았다"(2,7).
이것은 다른 자녀들이 전혀 없더라도 집안의 첫 아기에 관한 법률적 규정을 암시한다.
또 마태오는 이렇게 선언한다:
"아들을 낳기까지 그와 동침하지 않고 지냈다"(1,25).
셈족의 어법에서
"...전에 혹은...까지"라는 말은 장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사울의 딸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다"(2사무6,23).
복음서는 몇차례에 걸쳐서
"예수의 형제들"에 대하여 특히 야고보와 요셉을 언급한다(마태13,55).
그러나 이들은 예수의 어머니와 동일 인물일 수 없는,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마태27,56)라고 일부러 이름까지 지적한 다른 마리아의 아들들이다.
셈족의 세계에서 형제들이란 말은 가끔 친척과 동맹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형제지간이다"(창세13,8).
성전에서 예수를 찾는 기사와 특히 예수께서 당신 어머니를 사랑하던 제자에게 맡기시는
골고타 언덕의 기사는(요한 19,25-27) 마리아에게 다른 아들이 없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어쨌든,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관한 오래된 성전들은,
비록 "예수의 형제들"에 관한 언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 역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성전
150년 내지 20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야고보의 원복음서"는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이 되었을 때에는 이미 그가 나이 많은 홀아비로서 여러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 기사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대한 믿음이 이미 널리 전파되어 있었고
또 적어도 "예수의 형제들"에 대해 반대를 제기하는 시도임이 분명하다.
오리게네스(+254년)는 예수의 탄생 전과 후에도 마리아의 동정을 강력히 옹호한다.
그는 마리아가 영보 순간에 성령께 아낌없이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 후에 다른 자녀를 가질 수 있었다는 주장을 배격한다.
오리게네스에 의하면,
"예수는 남자들을 위한 정결의 시작이고, 마리아는 여자들을 위한 정결의 시작이다."
떼르둘리아노(+220년/230년)는 예외이다.
비록 예수의 동정 잉태는 주장했지만, 그는 영지주의에 반대하는 자신의 논증에 따라 문제를 풀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출생은 정상적인 사건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여러 자녀들을 두었다고 하였다.
350-375년경, 베로나의 제노는 교회의 전통적인 믿음을 자신의 수덕적인 저서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얼마나 놀라운 신비인가! 동정녀 마리아는 더럽혀지지 않고 잉태하였다.
잉태한 후, 동정녀는 출산하였다.
출산 후에도 그녀는 동정으로 남아 있었다."
성 암브로시오, 성 예로니모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의 열렬한 옹호자들이다.
그 뒤로는 평생 동정에 관한 성전이 확고부동하게 되었는데,
교황 시리치오가 보노수스 주교를 반박하는 편지는 평생 동정에 대한 교회의 공식 가르침이 되었다.
이 때 교황은 이렇게 반박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탄생하신 동정녀의 같은 태에서 다른 자녀가 태어날 수 있다는 근거없는
모든 이설을 단호히 거부한다."
또 막스 투리언이 말한 그대로,
16세기에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인 루터와 츠빙글리 그리고 칼빈 등이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주장하고 가르쳤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닌 것이다.
가능한 해석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가 영보 이전에 이미 동정 서원을 발했다는 이론을 전개한 첫 번째 인물이다(401년).
그러나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죤 맥휴의 설명은 이렇다.
"마리아와 요셉이 기적적인 잉태 후, 동정 생활을 결의했을 때,
그들의 동기는 예수에게 전적으로 봉사하기 위해 자신들을 바쳐야 하며,
또 아들이 사명을 완수함에 있어 장애가 될만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도였다.
그들의 동기는 결혼생활의 가치를 가볍게 본 것이 아니라 결혼보다 더 높은 이상을 구현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선택은 분명히 동정 잉태 사실 자체가 자극했을 것이다...
동정 잉태 그 자체는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 부르는 하나의 초대장이다 소명이었다.
마리아가 할 수 있는 대응 자세는
자신에게 위대한 일을 해주신 전능하신 분의 사업에 온전히 헌신하는 길밖에 없었다.
교회는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는 육체적 동정 때문만이 아니라
마음의 헷갈림 없이 온전한 사랑을 평생 동안 성자께만 살았기 때문에
"공경하올 어머니" "성실하신 동정녀" "찬송하올 동정녀"로 부르며 찬미한다."
교회의 성전과 교도권의 가르침은 마리아의 육체적 동정이 예수의 탄생에서 보전되었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그리고 이 육체적 동정은 임마누엘이 가져다 주신 완전한 기쁨과
마리아의 자발적인 동정 봉헌의 구체적인 표시로 보아야 한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의 깊은 이유를 이해하려면,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신 말씀에 대해
전인적인 응답을 하셨던 마리아의 위대성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성모승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되신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성좌의 고유한 권위에 따라,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천주의 모친 마리아께서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림을 받으셨다는 교의를 하느님이 계시하신 대로 공언하고 선언하며
분명히 정의하는 바이다."
이 말씀으로써, 교황의 무류권을 행사하신 비오 12세는 1950년 11월 1일,
성모 몽소승천이 믿을 교리임을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교황의 선언대로 승천 교리를 게시 진리로 믿게 되었다
(참조. 사도적 헌장, 무니피첸띠시무스 데우스<MUNIFICENTISSIMUS DEUS>).
교의(Dogma)의 내용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뒤" 마리아는 "영혼과 육신이 함께 영광을 받으셨다"
말하자면, 마리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 장차 얻게 될 신분을 이미 받았다는 뜻이다.
또한 지상적인 삶의 고유한 형태인 육체적 조건이
영생이 고유한 형태인 신비스럽고도 실제적인 신분으로 변화되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마리아의 경우, 이같은 변화가 어떻게 실현되었을까?
죽음을 통하지 않고, 즉, 육체에서 먼저 영혼이 분리되지 않고 직접 변화되었을까?
혹은 일종의 앞서 이루어진 부활일까?
이 교의의 결정은 마리아가 사망하였는지,
아니면 직접 천상 영광에로 올림을 받았는지 하는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학자들이 자유롭게 논의할 여지가 많이 있는 것이다.
이 결정은 마리아가, 아들 예수처럼, 사망하였으며,
그 얼마 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부활하셨다는 의견,
곧 마리아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승천과 같은 차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교회의 오랜 전승이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림을 받았다"고 표현된 것이다.
예수님의 경우는 "하늘로 올라가셨다"(승천)고 표현되는 것과 비교가 될 것이다.
마리아는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광을 받으셨다.
따라서 마리아의 승천은 몽소승천(蒙召昇天)이다.
비오 12세는 교회의 통상적인 교도권의 확고한 동의를 얻은 뒤에,
그리고 필수적인 조처를 취한 후에 마리아의 몽소승천을 믿을 교리로 정의하였다.
이러한 신조는 교도권의 가르침에 대한 신자들의 동의로 보편화되지만,
역사를 보면, 신자들이 교도권에 영향을 끼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신자들의 의식"도 "신학적 원천" 이 되는 것이다.
성모 몽소승천은 새로운 계시인가?
비오 12세의 선언대로, "하느님이 계시하신 교의"라고 하면, 계시의 원천을 밝혀야 한다.
사도적 헌장 "무니피첸띠시무스 데우스"는 이 점을 인식하고,
"확정된 진리"의 "궁극적인 기초"는 성서 "안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서 안에 있다고 해서 승천 교리가 성서 속에 직접
그리고 명시적인 형태로 기술되어 있어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의 현재 입장은 "하느님이 계시하셨다"는 표현은
실제로 또 명시적으로 계시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과 다름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승천 교리의 내적 논리에서 보면,
승천 교의는 신약 성서의 증언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것으로 학자들이 인정한다.
죽음은 원죄의 결과이다.
원죄에 물든채 태어난 예언자 엘리야도 승천의 은총을 입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당신 어머니의 육신을 원죄의 결과와 같이,
썩게 내버려 두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성모님의 육신은 성부의 권능이 함께 계셨고,
성령께서 임하셨고, 성자께서 머물렀던 또다른 감실이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루카 1, 35)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삼위일체의 하느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하신 것이다.
*감실
감실은 성당 안에 성체를 모셔 둔 곳으로,
구약 시대에 사람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던 초막을 뜻한다.
감실 안에는 성체를 모신 성합이 있으며, 그 밑에는 성체포가 깔려 있다.
또한 감실 앞에는 성체를 모셔 둔 것을 알리고, 현양하는 등불인 성체등을 항상 켜두어야 한다.
성체는 성당의 한 감실에만 늘(상시적으로) 보존되어야 하며,
성체가 보존되는 감실은 성당 안,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아름답게 꾸며져 기도하기에 적합하게 설치되어야 하고,
모독의 위험을 최대한 예방하기 위하여 견고하고 불투명한 재료로 만들어 고정시키고 잠그며,
감실 열쇠도 최대한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한다.(교회법 938조)
미사 후 성체를 감실에 모셔 두는 목적은 병자들에게 영성체를 시켜주는데 있고,
또 미사 때 외에도 성체의 형상 속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흠숭하도록 하는데 있다.
따라서 성체의 신비를 더욱 깊이 묵상하고 경배하도록, 장엄한 성체 현시를 권장하고 있다.
신자들은 성체가 모셔진 감실 앞을 지나갈 때는 깊은 절을 함으로써 존경을 표시해야 한다.
'감실'이라는 말은 본래 도교와 불교에서 사용되던 용어이다.
사당 안에 신주(神主)나 부처님상 등을 모셔두는 장(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 교회에서도 이 용어를 받아들여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모셔두는 작은 방을 감실이라 부른다.
구약에서 시나이의 계약은 출애급기, 레위기, 신명기 등에 나오는 내용인데
'만남의 장막' 또는 '잔치의 장막'이라 일컫는 곳인데 거룩한 장소이다.
여기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통해 만났다.
새 계약(신약)에서 하느님과 만나는 참된 장막(초막, 텐트)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곳이 아니라(히브 9,11-24 참조),
하느님의 아들(예수님)에 의해 이룩된 인간성을 가리킨다.
곧 그리스도의 몸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막이라는 뜻이다.
요한 1,14은 "그리고 말씀이 사람이 되셨으며, 우리 가운데 장막을 마련하셨습니다." 라고 말한다.
오늘날 감실은 잠금 장치를 한 것으로 잘 장식된 함 또는 장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보관한다.
곧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체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기 위해 꼭 필요한 딸린 장소가 감실인 것이다.
또 베일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감실 안 또는 바깥에 설치할 수 있다.
이 베일은 덮는 것으로 '장막'의 상징임을 강조하는 것이 된다.
감실은 제대 위에 놓여질 수는 있지만,
오늘날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교회의 벽안에 고정된 것으로 위치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체가 현존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붉은 등이나 등불을 켜둔다.
물론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를 마치고 수난감실로 이동할 경우 감실 문을 열어 두고
이 불도 끄게 된다.
신자들은 거룩한 성체를 방문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그것은 '잔치의 장막'에서 모세가 누렸던 기쁨을 이해함으로써 알 수 있다.
곧 "사람이 사람과 맞대고 이야기하듯이 주님께서 얼굴을 맞대시고 이야기 하셨던 것이다."(출애 33,11)
성체를 방문하고 성체조배를 드리는 것은 주님과 마주하여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된다.
마리아의 몽소승천의 의미
마리아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다"
그래서 "정녕 복되시다"(루카1,45). 이 주님의 약속이 마리아께 성취된 것이다.
영혼과 육신이 영광받으시고 현양받는 것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은총의 결과이다.
그러나, 당신이 지상에서 불리신 소명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마리아의 신적 모성 때문에 이런 엄청난 은혜를 입으셨다.
당신 태중에서 인간을 구원하려고
"말씀이 사람이" 되셨는데, 그 낳으신 육신이 어떻게 무덤 속에서 부패되어야 하는가?
원죄에 물듦이 없는 티없이 깨끗한 육신이 아닌가?
그리고 평생 동정이신 당신의 육신은 성자와 성자의 구세사적 목표에 전적으로 헌신되어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 하느님의 구세 목표는 곧 인간 구원, 즉 우리와 하느님과의 일치가 아닌가?
따라서 마리아가 천주의 모친이기 때문에 마리아가 천상 영광을 미리 입은 것은
종말론적 충만 곧 구세사적 목표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리아의 몽소승천은
세상 종말에서의 교회 현양을 위한 보증이 되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은 교회 헌장 8장(61항)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의 화신(化身)과 함께 하느님의 모친으로 예정된 복되신 동정녀는
하느님 섭리의 계획을 따라 세상에서 하느님이신 구세주의 좋은 어머니로서
남보다 각별히 친절한 주님의 동반자요 겸손한 종이시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획 속에서, 우리에게 계시던 그대로,
마리아는 당신 태중에서 사람이 되신 말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마리아는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위한 것 외의 다른 목적은 전혀 없었다.
마리아의 신적 모성 위에 확립된 이 일치는 구세 사업에서 "독특한" 협력으로 발전되었다.
영보 때의 "예"로부터 골고타에서의 괴로운 승낙까지,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당신 아드님 밑에서 아드님과 함께 구원 신비에 봉사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셨다(교회. 56).
하나도 잘못 없이 끝까지 "그리스도를 따른"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리아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아드님은 당신 모친을, 영혼과 육신과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림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공의회 교부들은 이렇게 언급한다.
"마리아의 모성은... 뽑힌 이들의 수가 찰 때까지 영구히 끊임없이 계속된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후에도 이 구원의 역할을 그치지 않으시고 계속하여
여러 가지 당신 전구로서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우리에게 얻어 주신다"(교회 62).
마리아는
"당신 모성애로써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이 지상 여정에서 위험과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돌보시어
행복된 고향으로 인도해 주신다"(교회. 62).
그러므로 마리아의 현양은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라 부르는 것이다.
성모님의 축일들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Solemnity of Mary, Mother of God (1월 1일)
제 1독서 : 민수 6,22-27 (주님의 축복)
제 2독서 : 갈라 4,4-7 (자녀되는 자격)
복 음 : 루카 2,16-21 (목자들의 환호와 예수의 할례)
오랜 역사를 지닌 '천주의 모친 대축일'은 최근에야 로마 전례 개혁에 따라 복원되었다.
1969년 이전에는 1월 1일을 '주님의 할례 축일'로 지냈다.
'천주의 모친 대축일'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여러 자료에 의하면, 예루살렘에서는 428년부터 8월 15일에 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58년부터는 아르메니아 교회 그리고 겟세마니 교회에서 거행되었다.
동방의 다른 지역에서는 조금 늦게 시작되었다.
소위 '하느님의 어머니의 날'로 불렸다.
그리고 성탄 전날이나 혹은 다음날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600년경부터 그레고리오력과 로마력은 성탄 후 8일에 마리아 축일을 지냈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대림절 4주 혹은 12월 18일에 마리아 축일을 지냈으며,
비잔틴 전례에서는 12월 16일에, 콥틱 전례에서는 1월 16일에 이 축일을 지냈다.
포르투갈에서 이 대축일은 1751년 베네딕도 14세의 회칙으로 말미암아
5월 첫 주에 온 지역에서 거행하도록 함으로써 그 절정에 달했다.
이 축일은 1914년에 여러 교구와 수도 단체에 퍼졌고 10월 11일에 거행되기도 하였다.
1931년 에페소 공의회 1500주년을 맞이하여 교회의 보편적인 축일이 되었으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은 그 일정을 옛것으로 복원하여 1월 1일로 결정하였다.
'천주의 모친 대축일'은 마리아의 신적 모성을 하느님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비추어서 거행되고 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회칙 [마리아 공경]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축일은 구원의 신비 안에서 수행하신 마리아의 역할을 기념하고,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를 맞아들이게 해주신' 거룩한 어머니께 드리는 특별한 존엄성을 찬미하는 날입니다"(5항).
갓 태어나신 그리스도께 다시 한번 경배 드리고,
천사의 기쁜 소식을 다시 한번 들으며, 평화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 평화의 선물을 청하는 좋은 기회임을 강조한다.
이는 1월 1일을 '평화의 날'로 정한 것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해 준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세계 병자의 날)
Our Lady of Lourdes (2월 11일)
제 1독서 : 이사 66,10-14 (어머니 품에 안겨 귀염받듯이)
복 음 : 요한 2,1-11 (가나의 혼인잔치)
이 기념일은 루르드의 성모 발현에서 비롯된다.
1858년 2월 11일부터 벨라뎃다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에게 18번이나 나타나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기념일은 1907년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설정되었으며, 성모 발현과 관련하여
보편 교회가 전례로 기념일을 지내는 것으로는 이것이 유일하다.
성모발현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인 '무죄한 잉태'와 관련하여,
우리들의 나약함으로 말미암은 우리의 죄를 돌이켜 보고 도움을 청하도록 하고 있다.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프랑스의 루르드에 발현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기념하는 날인 2월 11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제정하셨다.
이날 전 세계 가톨릭 교회는 병자들뿐만 아니라 병자들을 돌보는 모든 의료인을 생각하며,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동참하여
사랑과 봉사 정신을 키우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교회의 권위와 이름으로 기도한다.
렘브란트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복되신 동정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 축일
The Visitation (5월 31일)
제 1독서 : 스바 3,14-18 (시온의 딸아, 기뻐하라) 혹은 로마 12,9-16 (성도들 걱정나누고 나그네를 대접하라)
복 음 : 루가 1,39-47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이 축일의 기원과 동기에 대해서는 학자들간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 않다.
6세기경부터 대림 제 3주 금요일에 '동정녀의 엘리사벳 방문'에 관한 복음이 읽혀졌는데
이 축일은 1263년경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견해일 뿐, 학자들간에는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확실한 것은 1386년 프라하 시노드에서 프라하의 대주교 요한 옌슈타인(Giovanni Jensteni)에 의해
이 축제가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이 축제의 설정 동기는
단순히 그의 교구만이 아니라 보편 교회를 위한 교회 일치를 기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당시 교회는 교황이 아비뇽으로 유배되고, 다른 교황이 선출되는 등 여러 가지 혼란을 겪던 상황이었다.
교황 우르바노 7세(Urbanus VII)는 1390년을 성년으로 선포하면서 더불어 이 축제를 도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교황은 이 축제를 지내기 전에 승하하셨다.
결국 1389년 새로 교황이 되신 보니파시오 9세가 설정하였으나, 그 날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마리아의 옷이 보관되어 있다는 발케르네 성지의 축일(7월 2일)과 병행했다고 보고 있다.
또 요한 옌슈타인 대주교는 4월 28일에 거행하기를 원했다.
사순절의 시기를 피하고, 부활 시기 안에,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 다음에 거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로마 전례 개혁은 '주님의 탄생 예고'(3월 25일) 다음이면서,
'세례자 요한 탄생'(6월 24일)보다는 앞서는 5월 31일에 거행하도록 하였다.
마리아는 천사의 메시지를 따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한다.
이웃 사랑의 실천이다.
이러한 이웃 사랑은 위대한 두 인물을 만남의 터전이 된다.
세례자 요한이 어머니 태중에서 "기뻐하며 뛰놀았다"는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신비를 아울러 암시한다.
** 렘브란트(1606-1669)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네덜란드 화가이다.
그의 작품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보면 마리아는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로 달려가지 않고,
마부를 거느리고 말을 타고 여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녀가 마리아에게 망토를 입히고 있으며,
마리아는 베일을 쓰지 않고 왕관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다.
그리고 사제 즈카리야는 궁궐 같은 집에서 나와 계단으로 내려오는 중이고,
공작새는 등을 돌리고 닭들은 마리아를 향해 환호하듯 달려가는 모습이다.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바로 왕의 대관식이다.
대관식에서는 왕이 될 사람이 말을 타고 입장을 하면
먼저 왕의 이름을 발표하고 왕관을 씌우고 망토를 입힌다.
왕이 계단을 통해 왕좌에 오르면 사제는 이를 공인한다.
그러면 백성은 만세를 부른다.
마리아의 모습은 소녀의 자태가 아니라 여왕의 자태이다.
그분은 말을 타고 입장을 한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칭하고,
마리아는 왕관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망토를 입고 계단으로 오른다.
이에 사제 즈카리야는 여왕을 공적으로 인준하고, 닭들은 기뻐 춤추며 환호한다.
그런데 왜 공작새가 등을 돌리고 닭들이 환호하며 마리아에게로 달려가는 것일까?
그분은 부유한 자들을 내치시고 가난한 이를 들어올리신 분이시다.
그리고 왜 엘리사벳은 강아지 줄을 꼭 붙들고 마리아를 애절하게 바라보는 것인가?
그것인 마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라도 원하는 이방인 여인처럼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신 마리아의 은총 부스러기라도 원하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마리아의 영광은 땀과 눈물의 결실이다.
마리아가 들고 있는 손수건에서 떨어지는 두개의 물방울은 눈물방울일수도 있고,
땀방울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아픔들을 이겨냈기에 모든 이의 칭송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그분의 왕국인 천상 예루살렘은 암흑 속에 감추어져 있지만
주님의 뜻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그분은 복되신 분이다.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맞대고 보는 날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기 때문이다.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축일
Immaculate Heart of Mary (예수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
제 1독서 : 이사 61,9-11 (주님 안에서 기뻐하리라)
복 음 : 루가 2,41-51 (내가 애태우며 너를 찾았노라
쟝 에드(Jean Eudes, 1601-1680)는
교황 레오 13세로부터 비오 10세에 이르기까지 예수 성심과 마리아 성심의 스승이요,
첫 번째 사도로 불리고 있다.
그는 예수 성심 축일을 지내기 20년 전부터
그의 제자들과 함께 이미 2월 8일을 마리아 성심 축일로 지냈다(1643년).
5년 후 아우툰(Autun) 교구에서 공식적으로 축일로 지내게 되었으며,
비오 6세(Pius VI)는 이 축일을 팔레르모 교구에도 허락하였다.
비오 7세는 성모 성심을 축일로 지낼 수 있도록 청하는 모든 교구와 수도 단체에 허락하였다.
1914년 미사경본이 개정되면서
마리아의 성심은 부록으로 첨가되었고 지역에 따라 축일로 지낼 수 있게 하였다.
1942년 비오 12세는 온 세상을 '마리아의 무죄한 성심'에 봉헌하면서 전례 등급을 올렸고,
날짜를 승천 대축일의 제 8부인 8월 22일로 고정시켰다.
그러나 1969년 로마 전례 개혁은 다시금 지역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기념일로 이를 환원하고,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로 고정시켰다.
이 축일의 목적은 마리아의 깨끗하고 열절한 사랑의 마음속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그 기쁨을 축하하는 것이다.
아울러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마음에 주님이 거주하도록 거룩하게 하신 하느님을 기억하고 찬미하며,
우리 자신도 하느님 영광의 살아 있는 성전이 되도록 마리아에게 전구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순결하고 흠없는 성모 성심께 대한 이 신심에 대해
오랫동안 신중한 태도를 취하였다.
성모 성심께 대한 신심은 파티마(Fatima)에서의 성모 발현 후 더욱 널리 전파되어
1942년 교황 비오 12세는 파티마 성모 발현 25주년 때 세계를 성모 성심께 봉헌하였고,
전교회가 성모 성심을 기념하는 축일을 8월 22일에 지키도록 하였다.
1969년 이래로 로마 달력에 있어 이 날은
"여왕이신 동정 성 마리아 기념일"로 된 후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을 티없으신 성모의 성심을 기념키로 하였다.
그러나 성모 성심 공경은 예수 성심 공경과 성격이 아주 다르다.
예수성심은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나 인간은 배은하기 때문에 모욕된 사랑에 대하여 보속하는 사랑이 그 목적이지만
성모성심은 차라리 하느님과 예수께 대한 성모 마리아의 사랑이 그 목표인 것이다.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Our Lady of Mount Carmel (7월 16일)
제 1독서 : 즈가 2,14-17 (이제 내가 네 안에 머물리라)
복 음 : 루가 2,15-19 (목자들의 경배)
이스라엘 성지의 가르멜산은 25킬로미터에 달하는 산줄기인데, 이곳의 어떤 은둔지는 12세기 이전 것들도 있다.
그 가운데 중심에 해당하는 은둔지의 경당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였다.
13세기 중엽부터 이곳의 은수자들은 '가르멜산의 거룩한 마리아의 형제들'로 불렸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1252년 교황청 문헌들은 이미 이러한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14세기경 리용 공의회의 폐막(1274년 7월 17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7월 17일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기념하는 축일이 거행되었고,
그 수도원에서 계속 축일로 지낼 수 있도록 허락되었으며,
15세기말에 이르러 그 전날로 날짜가 바뀌었다.
중세 말에는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녀에게 헌정된 스카플라(Scaplar, 성모성의)가 널리 사용되었으며,
1726년 보편 교회에서 축일로 지내게 되었다.
로마 전례 개혁 이후 기념일로 남게 되었으며 이 축일 역시 마리아를 찬양하며
아울러 마리아의 중재적 도움과 보호를 주제로 하고 있다.
성모 대성당 봉헌 기념일
Dedication of Saint Mary Major (8월 5일)
제 1독서 : 묵시 21,1-5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복 음 : 루가 11,27-28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 행복하다)
로마의 성모 대성당(Sancta Maria Maggiore)에 관한 전설은
교황 리베리오(Liberius, +366)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교황은 자신과 요한 총대주교에게 마리아께서 8월 5일 로마에 눈이 내리면,
그곳에 성당을 지어 달라고 청하는 환시를 보게 된다.
8월 여름에 로마에 눈이 내리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눈이 내린 기적을 기념하여 교황 식스토 3세(Sixtus III, 432-440) 시대에
에스퀼리노 언덕 뒤편에 대성당이 세워졌다.
이 대성당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언한 다음해에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이 성당의 이름은 중앙 제단 아래 베들레헴의 구유를 만들었던 전통을 따라서
'구유의 거룩한 마리아'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이 축일은 처음엔 로마에서만 거행되었으며, 14세기부터 다른 곳에서도 거행되었는데,
이 축일의 보편화는 매우 서서히 이루어졌다.
그 동기는 이 축일이 눈의 전설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교회에 보편화된 것은 비오 5세(Pius V, +1572) 때였다.
오늘날의 대성당은 그 옛 성당은 아닐지라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이라는 것만큼은 사실이며,
또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성모 승천 대축일
전야미사
제 1독서 : 1역대 15,3-4.15.16; 16,1-2. (성궤를 장막 가운데 두었다)
제 2독서 : 1고린 15,54-57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있느냐?)
복 음 : 루가 11,27-28 (당신을 낳아 기른 여자는 행복도 하다)
당일미사
제 1독서 : 묵시 11, 19; 12, 1-6.10 (태양을 입고 있는 여인)
제 2독서 : 1 고린 15,20-26 (먼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복 음 : 루가 1,39-56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들어 높이셨다)
이 대축일의 기원은 불투명하지만,
동방교회에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며,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황제 마우리치우스(582-602)는 자신의 제국 전체가 이 축일을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이 축일을 로마에서 받아들인 것은 페르시아 침략으로 피난 온 동방 수도원들의 영향으로 보인다.
교황 세르지오(683-701)는 '주의 봉헌' '주의 탄생 예고' '성모 성탄' 축일과 마찬가지로
이 축일에도 행렬을 하도록 함으로써 축일을 더욱 성대하게 하였다.
교황 레오 4세(Leo IV, +855)에 의해 팔부 축일로 지내게 되었고,
중세에는 특히 남부 유럽지역에서 이날 첫 수확들을 축복하였다.
1970년 미사경본 개정에서 전야미사가 인정되는 유일한 마리아 축일이 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2주간 전부터 단식이 선행되었던 장엄 축일이다.
전야미사 본 기도문은 마리아의 육체가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음을 강조한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다는 것은 하느님 차원에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으심을 기념한다(마리아 공경, 6항).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신 분으로서 그분의 육체는 무덤에서 부패될 수 없다는 신앙이 드러나 있다.
그러한 영광은 미구에 우리들도 참여하게 될 영광을 의미한다는 신앙도 표현되어 있다.
아울러 마리아는 천상에서도 우리를 위해 중재하신다는 "성인의 통공" 신앙도 포함되어 있다.
여왕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The Queenship of Mary (8월 22일)
제 1독서 : 이사 9,1-6 (우리를 위하여 아들이 탄생하다)
복 음 : 루가 1,28-36 (성모영보)
1900년부터 마리아에게 왕권적 권위의 영예가 주어져야 한다는 요청이
로마에 쇄도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도왕 축일이 제정된(1925) 다음, 더욱 증가하였다.
1933년 포르토 사이드(Proto Said)의 대성당이 세상의 여왕이신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다.
비오 12세는 회칙 "Ad coeli Reginam(하늘의 여왕께)"을
통하여 마리아께서 여왕이심을 선언하였고 5월 31일을 축일로 지내도록 하였다.
그러다 로마 전례적 개정에 따라 성모 승천 대축일 제 8부인 8월 22일을 축일로 지내는 기념일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왕이신 만큼, 마리아는 어머니이시며 또한 여왕이시다.
그분은 하늘의 임금님이신 하느님께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시는 분이시며
성모 승천의 충만한 영광을 재확인하고 강조하는 축일(마리아 공경, 6항)이 되었다.
성모 승천의 재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The Birth of Mary (9월 8일)
제 1독서 : 미가 5,1-4 (아이를 낳은 여인) 혹은 로마 8,28-30 (하느님께서 미리 아시고 예정된 사람들)
복 음 : 마태 1,1-16.18-23 (예수의 조상들)
이 축일의 기원은 4세기경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던 축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미 5세기경에 예루살렘 성전 북쪽의 어느 경당이
안나 성녀에게 봉헌된 바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예루살렘의 주교였던 소프로니오(Sofronio di Gerusalemme)는
603년 이 교회가 마리아가 탄생한 곳에 세워졌다고 덧붙이고 있으며,
축일 날짜는 9월의 어느 하루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콘스탄티노플 전례력은 9월 1일로 시작되었다.
이는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가 12월 8일이므로, 잉태한 지 10개월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 축일을 로마에서 지내게 된 것은 7세기 경으로 간주된다.
역시 교황 세르지오 1세는 이 축일에 훠로 로마노에서 마리아 대성당까지 행렬과
[성모 호칭기도]를 하도록 하였다.
마리아의 탄생은 우리 구원의 여명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육화, 구세주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기 위한 준비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옛 전승에 따르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는 요아킴과 안나이다.
야고보의 원 복음서와 다른 외경에 의하면,
요아킴은 나자렛에서 태어나 안나와 결혼하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한 때 그는 광야에서 40일간을 기도하며 자식을 기원했다.
그러던 어느날 안나가 아기를 낳으면 하느님께 봉헌하겠노라고 약속함으로써
천사로부터 아기를 낳는다는 전갈을 듣고 마리아를 낳았다고 한다.
이 마리아가 곧 예수의 모친이며,
요아킴은 후일 성전에서 예수를 증언한 뒤에 곧 바로 운명했다고 한다.
한편 또다른 전승에 의하면 안나는 나자렛 태생으로 유목민 아카르의 딸이다.
그녀는 20세 때에 요아킴과 결혼하여 40세에 마리아를 낳았다고 한다.
이분들에 대한 공경은 6세기경부터 동방교회에서 시작되어
서방교회로까지 확산되었는데 요아킴은 더 늦게부터 공경을 받았다.
두 사람의 성덕과 영웅적인 행위는 성서 속에서
마리아를 둘러싸고 있는 가정 분위기로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마리아의 어린 시절에 관한 전설를 읽거나 성서에 나타나는 상황으로 추측해 볼 때
마리아가 여러 세대에 걸쳐 신심 깊은 생활을 해온 집안의 종교적인 전통에 심취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사 결정에 대한 마리아의 결단력, 그녀의 끊임없는 기도 행위, 율법에 대한 모범,
위기의 순간에 드러나는 확고 부동함, 친척들에 대한 헌신,
이 모든 것들은 마리아의 가정이 과거의 가장 좋은 것들을 간직하면서도
다음 세대를 기꺼이 기다리는 화목하고 굳게 뭉쳐진 가정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아베 마리아(AVE MARIA)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 1, 28)." 고 인사하였다는 말은
성모송의 첫 말로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신 첫 인사말이다.
아베 마리아(Ave Maria)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으로 시작하는 성모송에곡을 붙인 노래이다.
라틴어 문장의 아름다움과 마리아를 향한 신잔들의 신심에 힘입어
500년 전부터 수만은 작곡자들이 노래를 지었으며, 슈베르트, 구노, 바흐, 생상스의 곡이 대표적이다.
소담스러운 아베 마리아에서
평화로운 아베 마리아, 극적인 아베 마리아, 슬픈 아베 마리아까지,
유명 작곡가들이 곡을 붙인 다양한 아베 마리아가
오르간, 하프, 바이올린, 첼로 등의 다양한 악기와 함께 사랑을 받아왔고,
지금은 크로스오버적인 장르에서도 많은 팝페라 가수들이 불러 사랑을 바고 있다.
드라아 '천국의 계단'에 나온 곡인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는
뮤지컬 가수 레베카가 불러 대중적을 사랑을 받았었다.
작곡가들이 살았던 시대가 다르고 세상이 달라져도 마리아를 품고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마음은
늘 같은 결이었다는 것을 '아베 마리아'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아무리 천재적인 작곡 능력을 지닌 작곡가라도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없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경건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탄생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