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특히 조선에서는 활쏘기를 ‘나라를 대표하는 기예’로 삼고 더없이 중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활쏘기에 관한 정리된 사법서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알려진 사예결해의 경우 명궁으로 소문난 무관 이춘기와 당대의 문인중 한명인 서영보의 합작품으로 그 내용이 쉽고도 명쾌하며, 비록 분량이 많지는 않으나 제목 그대로 ‘요결’이자 ‘비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귀한 자료를 세미나를 통해 소개하고 연구한 김기훈 교수님과 조영석 명궁님, 김상일 사두님 이하 구사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다만 그 내용중 ‘해설 제5조’의 일부 내용에 관해 좀더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문제는 ‘전수별이후수절’
사예결해의 해설편 제5조에는 ‘前手撇而後手絶(전수별이후수절)’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중국과 국내의 사법서들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댓구이며 그 해석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쾌한 문장입니다.
이미 얼마전 제가 작성한 ‘속칭 고자채기 사법의 실체와 변론’이라는 글을 통해 언급한 바 있듯이 이 ‘撇(별)’과 ‘絶(절)’은 중국의 옛 사법서들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간행된 옛 사법서에도 빠짐없이 인용된 유명한 글자이며, 활쏘기의 세부단계중 ‘발시동작’을 설명할때 반드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이 부분을 ‘앞손은 비틀고 뒷손은 버티면서’라고 해석했습니다.
‘앞손을 비틀고 뒷손은 버티면서’는 우선 발시동작이 아니라 시위를 당겨 버티며 굳히는 과정묘사에 가까와서 발시단계를 설명하는 ’决(결: 결단하다, 결정하다, 자르다, 끊다)’ 부분의 내용에 걸맞지 않으며 원문의 단어들을 바르게 해석했다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우선 문제가 되는 두 단어의 원뜻을 살펴봅니다.
撇(별: 치다, 때리다, 휘두르다)
絶(절: 끊다, 단절하다)
단어 자체만 보아도 ‘앞손은 비틀고 뒷손은 버티면서’라는 해석은 맞지않으며 오히려 이전 문장인 ‘여요한의’의 내용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이전문장에서는 만작의 형세에 대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이 ‘별과 절’은 사법에 있어서 ‘발시동작’을 묘사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법서인 왕거의 사경에 처음 등장하는데, ‘별’이란 ’화살을 보낼때 앞팔은 윗고자를 과녁을 향해서 앞으로 쓰러뜨리고’, ‘절’이란 ‘뒷손의 팔꿈치를 밑으로 향하게 하면서 손바닥이 위를 보게 내 뻗는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별의 세부해설로는.
‘줌손의 호구를 약간 풀고 중지, 무명지및 새끼손가락으로 줌통을 돌려 옆으로 눕히면 윗고자가 화살을 좇아 과녁을 가리키고 아랫고자는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오는데 이를 미기소(靡:쓰러질 其: 그것, 장차, 마땅히 弰: 활고자)라 한다.’
절의 세부 해설은
‘오른손은 시위에서 떼어 낸 후 힘껏 뒤집어 뒤로 보낸다. 이때 어깨, 팔, 손목이 수평을 이루어 손바닥은 위를 보게 해서 손금이 드러나게 하며 손가락이 벌어지지 않게 한다. 이를 압주앙완(壓: 누를 胕: 팔꿈치 仰: 우러를 腕: 팔뚝)이라 한다.’
이것은 글자의 해석뿐만 아니라 이 동작을 묘사한 삽화들(사림광기 수록외 다수)이 다수 존재해 다른 해석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백년 동안 중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다양한 활쏘기를 묘사한 그림들에서 이와 같은 동작을 묘사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림광기에 수록된 발시자세 삽화및 다수의 그림들. 제일 아래 사진은 본 필자가 별절법으로 발시한 자세.>
이 별절에 관해서는 왕거의 사경뿐만 아니라 이후 편찬된 대부분의 사법서에 두고두고 인용이 됩니다.
1. 기효신서(명나라 장수 척계광 집필): ‘별과 절은 활쏘기의 근본이다. 별과 절은 서로 호응하는 이치가 있다. 앞과 뒤에 동시에 같은 힘을 가해 동시에 방사하면 화살은 매우 빠르게, 그리고 평소보다 더 멀리 나간다. 이것이 수법(手法)이다.’
2. 사경(이정분): ‘절은 깍지손을 시위에서 떼어 내는 모습이 무엇을 자르는 것 같이 손바닥을 뒤집어 뒤로 뻗으면서 하늘을 향하게 해서 손금이 보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질(挃: 찌를 - 별의 다른 표현)은 줌손으로 윗고자를 앞으로 쓰러뜨리는 모습이 마치 무엇을 던지는 것 같이 윗고자는 과녁을 가리키게 하고 아랫고자는 왼쪽 겨드랑이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을 말한다.’
3. 사법비전공하중 사법약언: ‘앞손으로 줌통을 단단히 쥐고 줌손을 내뻗어 아래로 누르며 뒷손은 어깨와 같은 높이로 뿌리듯 뒤로 펴준다. 이런 모습을 봉황이 머리를 끄덕이고 용이 꼬리를 치는듯하다 라고 한다.’
4. 사결(서유구): ‘줌손을 앞으로 내뻗어 주먹을 아래로 낮추고 깍지손은 어깨 높이로 뒤로 뿌리듯 내뻗는다’라고 발시동작을 설명하며 ‘별절’을 다루고 있습니다.(서유구는 서영보와 동시대의 사람이자 같은 집안이라고 김기훈 교수님께서 밝혀 주셨습니다)
이처럼 ‘별’과 ‘절’은 사법에 있어서 발시동작을 설명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이 인용되며 가장 명쾌하게 밝혀진 ‘발시때의 앞뒷손 동작및 형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해서 사예결해의 내용중 앞손은 ‘별’하고 뒷손은 ‘절’한다는 ’전수별이후수절’은 기존사법서들의 내용을 종합해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손은 줌통을 앞으로 강하게 밀어 윗고자가 과녁을 향하고 아랫고자는 등에 닿을 듯이 비틀어 돌리며, 뒷손은 시위를 끊을듯이 뒷쪽으로 내뻗어 손바닥이 하늘을 보도록 한다’
마치며
저는 이 ‘별절’의 해석을 통해 오늘날도 반드시 이렇게 쏘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별절법은 훗날 중국에서 ‘척확세’가 등장하며 앞손의 ‘별’ 동작을 하지 않는 쪽으로 변화했고, 조선에서도 사법비전공하와 서영보의 사예결해, 서유구의 사결까지는 별절법이 인용되다가 ‘조선의 궁술’에 이르러서는 앞손 동작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게 됩니다.
사법은 시대에 따라, 장비에 따라, 유행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옛사법서에 이같은 내용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오늘날도 그리 쏘아야 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전(古典)’은 오늘날의 법식과 다르다고 해서 임의로 해석하거나 바꾸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본의가 아닐지라도 고전의 내용을 임의대로 해석해 널리 퍼지게 되면 마치 실타래가 뒤엉키듯 혼란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전사법은 고전대로 해석하고 연구해야 하며, 현대의 사법은 고전을 참고해 더욱 발전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마른땅에 단비와도 같은 우리 옛 사법의 비결이 발견되고 널리 퍼지게 된 것이 한없이 기쁘고, 이런 귀한 자료를 전해주기 위해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자칫 그 귀한 수고가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감히 경력일천한 신사가 의견을 내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서울 살곶이정 김세랑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