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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도네시아 선교
(1) 기본현황
① 국명 : 인도네시아공화국(Republic of Indonesia)
② 인구 : 266,794,980명(2018추계)
③ 종교 : 이슬람교(88%), 기독교(5%), 로마카톨릭
④ 민족 : 자바인(45%), 순다인(14%), 마두루인 등 300개의 다민족
⑤ 특징 :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섬을 가진 나라 : 유엔지명전문가그룹(2017년) 조사 16,056개의 섬, 인도네시아 해양수산부 조사 17,504개의 섬 등록
(2) 역사
인도네시아군도에 자바원인의 후손들인 와자크인이 거주하고 그 후 제1말레이족이 말레이반도를 중심으로 수마트라, 자바, 보르네오, 셀레베스에 거주하며 네그리토족과 베도이족을 험지산령으로 축출하고 평야지대를 차지하였습니다. AD. 100년경 제2 말레이족이 중앙아시아와 중국 남서부로부터 이주해 농업과 전쟁으로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인도네시아는 19세기 영국학자가 인도양의 섬들(네시아,Nesos)이라는 의미로 지은 것이 국명이 되었습니다. 9~13세기경의 고대왕조 슈리비자야와 15세기 마자파히트의 통치가 이루어졌던 인도네시아는 1602년,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어 1945년, 제2차세계대전까지 지배를 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중에는 일본의 지배하에 있다가 다시 네덜란드의 점령이 있었으나 1949년 12월27일, 완전히 독립 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는 1945년 8월17일을 독립기념일로 지정하고 초대대통령으로 수카르노가 취임하였습니다. 독립 전후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 계속되었으나 1962년, 자카르타에서 아시안게임이 개최된 이후 1965년, 수하르토 장군이 무력으로 완전히 진압하였습니다. 수하르토는 수카르노로부터 권력을 이양받고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으며 중국인들을 인도네시아 원주민에 동화시키는 탄압정책을 시도하였습니다.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동티모르를 강제 합병하였습니다. 1998년, 혁명으로 부통령이던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1999년, 압두라만 와힛이 민주정부를 수립하였으며, 2004년, 직접선거를 통하여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대통령에 취임하였습니다.
(3) 지리와 기후
인도네시아는 17,509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최대의 섬나라입니다. 그 가운데 인구의 절반이 사는 자바 섬을 중심으로 수마트라, 칼리만탄, 파푸아, 술아웨시 등 5개의 섬을 중심으로 6,544개의 섬에 2억6천6백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동서 2,000km의 거리에 달하는 아주 긴 섬나라로 400여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2,000m이상의 고산이 81개나 있는 독특한 지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위5도에서 남위10도에 위치한 열대성 기후지방으로 연평균 25~27도를 이루는 1계절의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도네시아는 33개주, 2개 특별주, 1개 수도권으로 나누고 수도는 자카르타, 제2의 대도시는 수라바야로 전체인구의 50%이상이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4) 정치 국제관계
인도네시아는 1999년까지 국민협의회(MPR, Majelis Permusyawaratan Rakyat)에서 간선제로 선출하였으나 2004년 이후 직선제로 바뀌었습니다. 2014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취임하여 최초의 문민정부가 탄생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북한과 우리나라와 모두 수교를 체결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인도와 냉각기가 있었으나 1966년 이후 우호관계이 시대를 열었으며, 16세기 이후 이슬람의 형제국이었던 터키와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사바를 놓고 무력분쟁이 심하였고 현재까지도 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5) 민족과 언어와 종교
인도네시아는 300개 이상의 민족집단들이 250여종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민 절대 다수는 오스트로네시아(말레이폴리네시아)어족에서 속하는 말레이인이며 현재의 인도네시아인을 의미하는 이슬람교인들입니다. 두 번째로 큰 민족은 자바인으로 자바어를 사용합니다. 인도네시아는 힌두교를 신앙하는 사람들로 자바와 발리 내륙에서 벼농사를 짓는 자바인, 순다인, 마두라인, 발리인을 포함하는 60%의 힌두교인들이 있습니다. 또한 수마트라 섬의 말레이인과 셀레베스 남부의 마카사르족을 포함하는 이슬람교를 신앙하는 해안지방의 민족들이 있습니다. 또한 다야크족을 비롯한 소수민족집단들이 수천개의 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외에 죄대 민족집단인 중국인 구역으로 100년 이상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국민의 88%가 이슬람교를 신앙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전인구의 5%에 지나지 않으며 소수민족들도 각자의 토테미즘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교는 힌두교와 불교와 전통적인 토테미즘의 색채를 혼합한 성격으로 국민 대다수의 정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힌두교도들은 발리섬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중국인들은 불교와 유교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6) 경제
인도네시아는 전국토의 19%가 농지로 구성된 농업중심의 국가입니다. 1인당 GNP가 980달러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후진국인 인도네시아는 천연고무 주요생산국으로 고무가 주요수출품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목재산업은 석유와 천연가스와 함께 3대 수출품목입니다. 자본재와 가공광물은 국영기업이고 소비재는 민간기업이 담당하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가장 중요한 무역국은 일본이며 미국, 상가포르, 네덜란드가 비중이 큰 무역국으로 우리나라는 목재산업 등과 교류가 활발합니다.
(7) 인도네시아의 기독교 선교
인도네시아 기독교선교는 유럽 식민주의 정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초기 인도네시아 선교는 포르투갈 상선과 함께 상륙한 로마카톨릭이었습니다. 스페인선교사들이 필리핀을 경유하여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였습니다. 기독교는 네덜란드와 영국상선을 따라 상륙하였는데 화란개혁교회의 캘빈주의가 강한 선교지이지만 오늘날 캘빈주의 정신을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프란시스 사비엘은 인도네시아 암본섬에서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8) 로마카톨릭교회의 선교
645년경, 북 수마트라섬의 항구인 파로스에 무역업 종사자를 위한 경교의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후 15세기말 교황청의 복음화 의무이행 정책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선교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진출하였습니다. 1522년, 몰루카섬의 트르나테에서 포르투갈 선교사는 세례 요한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상바울 성벽의 정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최초의 로마카톨릭 선교사는 1512년, 몰루카섬의 "트르나테"(Ternate)였습니다. 1534년, 프란시스코 수도회 선교사들이 북할마헤레의 모로에서 부족의 추장과 일족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지만 포르투갈 상인들의 과다한 세금징수에 항의한 주민들이 로마카톨릭을 포기하고 선교사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1536년) 인근 자바섬에 파견한 로마카톨릭 선교사는 이슬람교의 강력한 저항으로 1584년 폐쇄되었습니다. 포르투갈 국왕은 스페인계 프란시스코 수도회 선교사들의 선교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 사비엘(St. Francis Xavier)을 파송하였습니다. 사비엘 선교사는 암본섬에서 9개월간 선교활동을 전개하여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로마카톨릭교회 설립 이전에 기독교회당이 7개가 있었다고 말하지만 확인은 되지 않았습니다. 1561년, 도미니크 수도회 선교사들이 티모르섬을 중심으로 동부 인도네시아에서 많은 신자를 얻었습니다. 1546년 암본에서 4,500명, 할마헤라에서 8,000명, 미나하사와 상히르에서 10,000명, 1580년 티모르에서 25,000명이 로마카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카톨릭 선교는 집단개종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이 약하여 형식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16세기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기독교 선교에 밀리는 형국을 맞이 하였습니다. 19세기, 선교가 재개되어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16세기의 로마카톨릭은 부족 원주민들의 보호차원에 의한 개종이 많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923년, 275,000명으로 급성장하였고, 1971년, 250만명으로 성장하였으며 현재는 7관구 31교구, 7,730교회 560만명의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1974년, 1,557명의 사제와 3,784명의 수녀가 운영하는 초등학교 2,930개, 중학교 615개, 고등학교 139개에 달하였고 전 인구의 2.3%, 전체 교육기관의 5%가 로마카톨릭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9) 기독교 선교역사
인도네시아 기독교 역사는 네덜란드와 동인도 회사(VOC,동양척식회사)의 설립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1605년, 네덜란드는 포르투갈을 추방하고 로마카톨릭 신자 3만명도 기독교로 집단 개종하였습니다. 그후 18세기 화란교회는 암본에서 27,000명, 미나하사와 산기르에서 12,000명 등 43,000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동인도회사의 핵심구성원들은 물질을 숭배하고 영혼구원에는 무관심한 자유파 기독교인들로서 해외선교에 악영향을 끼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1656년 개혁파가 제출한 자바섬 선교를 제안했으나 세수를 염려하여 거부하는 등 물질주의에 치중하였습니다. 동인도회사는 기업이 교회내적 영적권한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국가의 보호아래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7세기, 자카르타의 목사들이 서부 수마트라지역과 자바섬의 극히 제한적인 농촌지역에 파송되었고, 18세기에는 마장, 중부자바의 서마랑, 동부자바의 수타바야 지역에 교회가 설립되었지만 성장은 매우 더디게 진척되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현지인 교회지도자 양성을 반대하고 동인도회사의 파송지역으로 국한되는 등 기독교가 네덜란드 국가기업에 귀속되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본격적인 선교는 19세기 후반 유럽의 부흥운동과 선교운동의 영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화란선교회는 초기 독일인과 화란의 평신도를 중심으로 선교를 하였습니다. 자바섬 수라바야에 독일인 경건주의자 조하네스 엠데로가 시계제조공으로 선교를 하였습니다. 엠데로는 현지인 여성과 결혼하여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공무원 출신 라우렌스 쿨렌은 토착적 선교활동으로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후 동자바 선교사인 젤레마스는 목사로서 교회를 설립하였고 스티븐 니일은 동자바 교회의 영적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20세기 자바섬 기독교의 토착화에 기여한 선교학자 헨드릭 크레머는 원주민 세례를 현지인에게 이양하였습니다. 암본섬 선교는 1808년 네덜란드선교회 소속 스위스계 선교사 캄(Joseph Kam)이 시작하였습니다. 동부자바섬의 기존신자들을 교육하여 수라바야 경건파를 이루었습니다. 캄이 암본에 갔을 때 그곳에는 이미 2만명의 기독교인이 있었지만 그들은 로마카톨릭, 애니미즘(animism,정령신앙,精靈信仰)이 혼합된 신앙이었습니다. 캄은 암본을 중심으로 주변의 섬들에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하여 교회부흥에 기여하였습니다. 화란인으로 독일식 선교에 앞장 선 크라이트 박사(Albert C. Kruyt)와 화란성서공회의 아드리아니 박사(N.Adriani)는 중앙 술라웨시와 포소지방에서 선교를 하였습니다. 1909년, 성탄절에 포소지방에서 180명의 부족민들에게 집단개종을 실시하였습니다.독일 레니쉬 선교부의 놈멘젠(Ludwig lngwer Nommensen)은 북부 수마트라섬의 식인종 바탁족에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바탁족 선교는 미국 해외선교회 먼손(Samuel Munson)과 리만(Henry Lyman) 선교사가 먼저 시도하였으나 이들은 모두 순교하였습니다. 바탁의 사도로 알려진 놈멘젠의 헌신으로 추장을 전도하고 부족전체를 기독교화하였습니다. 바탁은 단일 언어와 전지역이 동일한 습관과 풍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의 선교부가 선교를 독점하였고, 식민지 정부가 학교설립에 적극 협조하였습니다. 성경번역을 속히하여 바탁의 생활을 지배하게 하였습니다.
미국선교부(CMA: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는 힌두교 성향이 강한 발리섬 선교를 하였습니다. 제프리 중국선교사는 1929년, 인도네시아 내 중국인 전도를 하였습니다. 미국선교부는 집단개종이 아니라 개인전도를 위주로 선교를 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보기 더문 원시부족 이리얀 자야에 대한 선교도 미국선교부에서 하여 주민의 83%를 기독교 신자화 하였습니다. 1965년, 공산폭동으로 한때 정체위기를 맞이 하였으나 교회의 부흥운동은 오히려 성장하는 특이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10) 인도네시아 기독교 현황
인도네시아 기독교회는 교단중심이 아니라 지역중심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바탁교회는 2400개 교회에 25만명의 신자들이 있고, 몰루칸교회는 800교회 53만명, 이리얀 자야 복음교회는 1,052교회 48만명의 신자가 있습니다. 미국선교부의 오순절교회는 1,540교회 128만명의 교세를 가지고 있으며 벧엘교회와 벧엘순복음교회, CMA등도 상당한 교세를 갖고 있습니다. 1960년대, 서부 티모르, 1970년대, 동부티모르와 중앙자바, 1980년대, 자카르타 대도시에서 부흥운동이 전개되어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교회지도자들이 물질만능주의에 몰입하여 교회가 기복신앙으로 흐르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인도네시아 선교는 집단개종이 많아 부족의 부족장이 교체되거나 사망한 후에 집단적으로 불신자가 되거나 분열하는 현상이 나타나 개인적 신앙고취에 주력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빈부격차로 인하여 보수주의 신학보다 자유주의 신학이 훨씬더 매력적이라는 점도 선교운동의 저해 요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11) 인도네시아와 선교
자바인(45%), 순다인(14%), 마두루인 등 300개의 다민족 2억6천6백만명이 살아가는 인도네시아는 전국민의 88%가 이슬람교인이며 기독교 인구는 100년동안의 선교에도 불구하고 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300만명의 기독교인 가운데 70%는 집단개종이거나 기복신앙인으로 이루어져 교육과 훈련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인도네시아 선교는 매우 부진한 상태로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종교정책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존중합니다. 그러나 1978년 8월, 종교적 긴장관계가 폭력적 수단으로 발전하자 회교국가 수립을 지향하는 이슬람교에 의해 법령 70호를 선포합니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종교를 가질 권리가 있으나 다른 사람을 공개적으로 개종시키려는 시도는 불법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이로서 소책자 배포, 야외전도, 심방전도를 전면 금지하였습니다. 그후 1993년 10월, 종교성장관은 기성종교인에게 새로운 종교를 전돟를 할 경우에는 형법을 적용하여 형사처벌할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종교성 장관은 예외적으로 전 인구의 0.3%에 해당하는 원시부족과 미개척 지역민들에게만 전도를 허용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종교성장관은 법령 77호를 발효하여 외국선교사들의 활동을 제약하였습니다. 외국선교사는 일정기간 동안 현지인을 훈련하여 현지인이 선교사역을 대행할 수 있도록 하고 그 후에는 인도네시아에 체류할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1992년 이전에는 체류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였으나 1992년 6월 노동법령 208호를 개정하여 3년으로 제한하였습니다. 그후 5년간 600명이던 선교사는 200명으로 현저하게 감소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선교의 최대 장애물은 이슬람교입니다. 전인구의 88%에 달하는 이슬람은 인도네시아가 알라신의 나라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슬람 지성인회 ICMI는 회교급진주의자들을 선동하여 신학교와 예배당 건축을 불허하고 일부지역에서 교회건물 파괴와 예배방해 등을 통하여 기독교로의 개종자체를 거부하는 폭력적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인도네시아 선교는 의료선교, 교육선교, 기술선교, 컴퓨터 전문인 선교 등 일반인의 직업선교로 대체해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1992년11월, 인도네시아 종교성은 인도네시아 신학대학과 관련한 인도네시아 교회 지도자 및 해외선교사들과의 회의에서 세계적인 기독학자와 지도자들을 단기간 초청하여 강의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외국인 교수들을 인도네시아 현지인 교수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한국교회는 역으로 인도네시아 기독학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국내에서 인도네시아 기독지도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교육과 훈련입니다. 집단개종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기독교는 뿌리부터 매우 연약하기 때문에 애니미즘에 가까운 토속적 기독교로 변질의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제자훈련과 성경공부 프로그램등을 확충하여 기독교인들의 영적 성장을 도모해야 합니다. 또한 인도네시아 선교에 있어서 취약점은 자립교회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농촌지역 극빈자층이 대부분인 기독교 신자들은 교회가 자신들의 생활을 후원해 줄 기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 교회가 스스로 자립하는 용기와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생산적 직업훈련을 병행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아직 260여개의 미전도종족이 전역에 흩어져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는 7만6천개의 소수 마을이 6,000개의 섬에 분산되어 생활하고 있고 이들 대다수의 마을은 문맹지역입니다. 5만개에 달하는 마을에는 교회가 전혀 없고 그들이 기록하는 문자로 된 언어조차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인구의 절반이 사는 자바 섬을 중심으로 수마트라, 칼리만탄, 파푸아, 술아웨시 등 5개의 섬에 한인교회가 있습니다. 이들 한인교회와 한인교회 평신도사역을 통하여 인도네시아 선교의 기초를 제공하고 확장하는 기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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