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용 감독의 <피막>



나의 종교적 관심은 주류 종교가 아닌 무속 신앙에서 시작되었다. 종교라기보다는 미신으로 천대받았던 굿과 점술 등의 민간 신앙은 제도적 종교와는 다른 어떤 생명력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각 지역에서 열렸던 마을 굿을 보러갔던 기억이나 대학 졸업논문으로 가칭 <무속에서 발견되는 생명력>을 쓰려고 했던 것도 무속에 대한 열정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속에 대한 관심은 2000년도 초, 문화영성대학원에서 들었던 <무속신앙과 가톨릭> 강좌로 종결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제 무속의 실질적 영향력은 사라져 버렸다.
오랫동안 숨겨진 기억을 다시금 부추긴 영화를 보게 되었다. 1980년 이두용의 감독의 <피막>이었다. 이 영화는 우리의 전통적인 굿 장면을 상세하면서도 대규모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오랜 민속적 형태인 ‘피막’을 영화의 소재로 삼아 한국적인 정서와 그 정서 속에 숨어있는 가부장적 폭력과 이기적인 남성 중심 세계를 고발하고 있다.
영화는 한 마을의 부유한 양반 가문의 종손의 병에서 시작한다. 종손의 병을 고치기 위해 집안 어른들은 각지의 무당들을 부르고, 그들 가운데서 영험한 젊은 무당 옥화가 선택된다. 무당은 병의 원인이 억울한 원혼의 저주에서 기인했다고 말하며, 억울한 원혼의 흔적을 찾는 형태로 영화는 진행된다. 결국 이 집안에서 발생했던 비극적인 살인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으며, 그 과정에서 살인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과거 억울한 죽음은, 일찍 남편을 여윈 청산과부가 외로움 때문에 저지른 자해가 원인이 되어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 한 집안 어른의 결정이 결국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피막에 거주하고 있는 사내와 동침하게 된 여인은 병이 회복하고, 다시 살아난 여인은 피막의 사내와 가까워지면서 임신하게 된다. 결국 집안의 수치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사내와 여인은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사실 옥화는 죽은 사내의 딸로서 아버지의 원한을 갚기 위해 집안 사내들을 유혹하여 집안의 비밀을 파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살인사건의 전모를 알아서 치밀한 복수극을 진행한 것이었다. 영화 마지막, 옥화는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불붙은 피막과 함께 사라진다. 피막의 소멸, 그것은 오랜 억압의 제거와 같은 상징이다. 피막은 죽음에 다다른 사람들을 살아있는 사람과 격리시킨 후, 죽음을 기다리게 하는 장소였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죽음과 삶의 경계로서 일종의 방어막이었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외로움과 버림받음을 처절하게 경험하는 공포의 장소였다. 영화 마지막, 피막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의 하소연의 울림은 그들의 서러움을 증언해 주고 있었다.
이 영화는 무너져가는 유교적 질서의 부정적 측면을 냉혹하게 보여주고 있다. 양반 집안에서 남편이 일찍 죽은 여인들은 평생 외로움 속에서 살다 소멸되어야 했다. 특히 젊은 여인들의 육체적 고통은 유교적 악습의 하나의 상징이다. 죽을 때야 허용해 준 자유는 오히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집안의 명분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체면을 위하여 거짓 열녀를 만든 후 여인과 사내를 제거한 것이다. 개인의 행복이나 자유보다는 집안의 체면이 중하다는 명분으로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잔혹한 풍습은 오래된 야만적 행위였다. 이것은 충분한 개연성을 갖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었을 것이다. 현재도 종교적 영향력이 큰 저개발국에서는 이러한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영화는 탄탄하고 짜임 있는 구성을 통해서 전개되고 있다. 옥화의 복수극을 기본 줄기로 과거에 벌어졌던 과부와 사내의 비극적인 사랑이 재현되고, 타인의 개인적 가치를 손쉽게 파괴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에는 부끄럼 없는 양반계급의 탐욕이 절묘하게 표현되고 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자신의 육체를 희생하는 비극적인 모습의 옥화는 당시 사회 속에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페미니즘 시각에서 볼 때 조금은 불편한 과부들의 성적 욕망에 시달리는 모습이 등장하고 있지만, 분명 사회적 한계 속에서 고통받았던 여인들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영화는 무속의 다양한 내용을 영화 속에서 재현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굿거리 모습, 작두를 타는 무당의 동작, 신 내림 받은 신딸과 신엄마의 관계, 고장 무당과 타 지역 무당과의 관계 및 갈등, 피막의 역할과 효용 등 민간 신앙이 생활 속에서 큰 영향을 발휘하던 조선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 속 사건 전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무속적 신앙은 민중의 고통에 대한 위안보다는 민중의 고통을 은폐하고 양반 계급을 위하여 억울한 죽음을 생산하는 부정적 측면 또한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약 40년 전, 아직 곳곳에서 무당굿이 익숙하던 때, 영화 <피막>은 민간신앙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묻고 있었다. 종교와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만나야 하고, 종교는 인간에게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 속, 옥화 역을 맡은 유지인의 모습은 청순하고 상큼하면서도 비밀을 담고 있는 젊은 무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또한 청상과부의 역할을 매력적으로 소화한 김윤경의 모습도 기억이 남는다. 영화는 결국 찌질한 남자들의 탐욕과 그것에 희생당했거나 고통받았던 여인들의 아픔과 기억으로 마무리되었다. 피막이 불타는 모습은 오랫동안 인간을 지배했던 불평등의 역사를 태워버리려는 의지로 기억하고 싶다. 인간이 인간을 이용하는 비극적인 관계의 종식과도 함께.
첫댓글 무속 신앙은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못했기에 미신이라 치부되고, 세계로 퍼진 종교는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고등 종교로 나아갈 수 있던 것이지,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