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참 빠르기도 하신 하나님!
박은자(예은교회 사모, 동화작가)
매월 두 번째 주일이면 교우들이 모여 앉아서 회의를 합니다. 지난 한 달간의 재정보고도 받고 특별히 도울 곳이 더 없나 의논을 합니다. 회의를 하다보면 목사님께 자동차 기름값을 드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번번이 거절합니다. 재정에서 기름값을 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름값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차라도 고장이 안 나서 돈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남편이 타고 다니는 차는 10년이 된 것인데, 2년 전 H 장로님이 선물해 주셨습니다. 아마 사고가 크게 났던 모양입니다. 다 쭈그러진 차를 정비업체에서 수리를 하고, 말끔하게 도색을 해서 저의 가정에 왔습니다. 너무 예쁘고 근사했습니다. 물론 그 차를 선물하신 H 장로님은 우리보다 더 못한 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런데 차가 주행 중에 갑자기 멈추어 버리는 일이 일어나서 당황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더 당황하게 되는 것은 차가 고장이 났는데 고칠 돈이 없는 경우입니다. 외상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는 남편은 차를 몇 날이고 세워 둡니다. 그러면 제 마음이 콩튀듯 불안해집니다. 그러다 돈이 마련되고 차를 고치면 세상이 다 내 것인 것처럼 행복해집니다. 아, 그렇지요. 세상은 언제나 제 것입니다. 세상만 제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언제나 제 편입니다.
지난 해 8월이었어요. 그날 회의는 특별했습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회의가 길어지는 것입니다. 이윽고 회의가 끝나자 식사를 하러 들어오시는 성도님들의 얼굴이 환한데 목사님의 표정이 밝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물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회계를 보는 K 집사님만 남았습니다. 어른 예배까지 함께 드린 아이들이 교회 앞 공원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고구마라도 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구마를 씻고 있는데 늦게 식사를 하던 김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사모님, 저는 오늘 교회에 그만 나올 각오를 하고 반대를 했습니다.”
순간 얼마나 놀랬던지 고구마를 씻다말고 K 집사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가슴이 뛰어서 그대로 고구마를 씻는 척 했습니다. 고구마를 솥에 앉히는 동안 마음이 가라 않았습니다. K 집사님의 식사가 끝나가는 것을 보고 K 집사님이 좋아하는 원두커피를 뽑았습니다. 커피가 꾸룩꾸룩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동안 목사님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커피의 향기가 참 좋았습니다. K 집사님이 커피를 받아들더니 말했습니다.
“오늘은 커피를 빼 주시는 것도 부담스럽네요.”
K 집사님은 무언가 몹시 불편한 듯 싶었습니다. K 집사님이 또 말합니다.
“사모님, 생각을 좀 해 보세요. 우리 교회 재정은 현재 마이너스 상태가 될 지경이어요. 그리고 그 대학생은 도와주지 않아도 됩니다. 4학년이니까 휴학을 해서 돈을 벌어도 되고, 또 우리 교회 청년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한 사람에게 백만 원을 주는 것 보다 십만 원씩 열 명의 대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면 더 좋구요. 그래서 제가 반대했어요.”
K 집사님의 말에 그냥 가슴이 콱 막혔습니다. K 집사님이 또 말합니다.
“정말이에요. 교회를 옮길 각오를 하고 있어요.”
교회를 옮기겠다는 K 집사님의 말에 가슴이 찔린 듯 아팠습니다.
“집사님, J는 정말 어려워요. 우리 교회가 꼭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저의 간절한 당부에 K 집사님은 더 강경했습니다.
“재정을 보지 않겠어요.”
회계장부를 제 앞에 밀어놓는 K 집사님에게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꼭 도와주어야 하는데....’
꼭 도와주어야 하는 J 학생, 그녀는 대학교 4학년 마지막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었습니다. 졸업작품을 준비하느라 여름방학에 일을 못한 것입니다. 대학교에 입학을 하자마자 야간에 일하는 공장에서 일을 해서 아버지가 안 계신 자리를 메꾸며 살아왔습니다. 건축공학과 4학년이지만 일을 하느라 자격증 하나 제대로 따지 못했습니다. 그런 J의 소원은 공부만 한 번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동생들이 있어서 얼른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야만 합니다. 등록금이 310만 원이 나왔는데, 어머니가 60만 원을 마련해 주었고 장학금으로 150만 원을 받게 되었지만, 아직 백만 원이 모자라는 것입니다.
처음 J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조건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임 목사님이 회의에 안건으로 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회계를 보는 K 집사님이 강력하게 반대했고, K 집사님을 따라서 교인들이 반대를 한 것입니다. K 집사님을 집에 태워다 주고 돌아온 목사님의 어깨가 축 처져 있습니다. 아이들도 다 돌아갔는지 조용하기만 합니다. 목사님이 말합니다.
“내가 오늘 놀란 것은 L 집사님까지 반대를 했다는 거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L 집사님은 없어서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아는 분 아니오?”
“L 집사님에게 왜 반대를 했는지 한 번 물어 보아요.”
“물어 본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미 다 결정된 일인데......”
주중에 L 집사님이 교회에 왔습니다. 이 집사님의 말에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J 학생을 안 도와주면 그 돈을 목사님이 쓰시게 될 줄 알고 반대를 했어요. 목사님이 사례비도 안 받으시는데 기름값마저 거절하시니까 걱정이 되어서요.”
그날 이후 K 집사님은 우리 예은교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K 집사님이 떠난 자리는 컸습니다. 그 집사님은 십일조를 드리는 분이었고, 또 감사헌금도 매주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재정 부분의 충격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이야 없으면 없는대로 꾸려가면 되는 것이니까요. 집사님은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 집사님 때문에 교회가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집사님을 이쁜 집사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교우들 모두가 그 분을 좋아했습니다.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그 집사님을 위해 윤 권사님은 반찬을 따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외항선을 타는 남편을 만나러 일본에라도 가게 되면 밑반찬들을 만들어 주시고는 했습니다. 깻잎이며 무말랭이며 장아찌는 외항선을 타는 남편에게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연락을 다 끊어버린 것입니다. 교우들 마음에 쓸쓸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H 장로님이 생각났습니다. 만약 H 장로님이 우리 교회에, 아니 그날 회의에 참석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도와줍시다. 그런데 새 학기가 시작되면 책도 사야할 테고... 백만 원 가지고 되겠습니까? 우리가 조금씩 모아서라도 더 도와줍시다.”
그렇게 말한 장로님은 당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전부 꺼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장로님이 우리 예은교회에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H 장로님이 보고 싶어서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눈물이 날 때마다 제가 가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신정호 조각공원입니다. 아름다운 조각품들이 있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졸졸 흐르는 곳입니다. 사방에는 우리 토종 꽃들이 피어 있고요. 마침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습니다. 공원을 걷고 있으려니 또 눈물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졸이고 있을 영비 생각이 자꾸 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님, 백만 원 해 주세요! 백만 원 달라고요.”
한참을 그렇게 떼를 썼습니다. 그런데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H 장로님이었습니다.
“J 등록금 아직 마련이 안 되었지요? 지금 사모님 통장에 100만 원 보냈습니다.”
와아! 참 빠르기도 하신 하나님, 백만 원을 보냈다는 H 장로님 전화에 웃음을 터트리자 하나님도 웃고 계셨습니다. 모자상 조각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해요.”
H 장로님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모른 척 하면 안되지요. J 이야기를 듣고 잠이 오지 않았어요.”
신정호 들꽃사이를 걸으면서 H 장로님 생각에 목이 메었습니다.
H 장로님을 만난 것은 꼭 3년 전의 일입니다. 그 분은 남편이 부교역자로 시무하고 있던 교회에 10년을 하루같이 후원해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해마다 7월 17일이면 도고에 있는 호텔 수영장에서 장애인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 행사가 가깝던 어느 날, 담임목사님이 도고 행사장으로 꼭 오라고 명령(?)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분은 매주 주보에 쓰는 제 글을 빼놓지 않고 읽으셨나 봅니다. 그 분을 만났을 때 그 분은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제가 아주 예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제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왜요? 제가 예쁜 줄 알았는데 영 아니에요? 글과는 영 딴 판이라 실망하셨어요?”
그러자 그분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아, 제가 말할 것을 다 말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처음 만난 이후, H 장로님은 저의 좋은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장로님은 저의 신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도움을 주셨습니다. 단 한 번도 망설임 없이, 기다려 본 적도 없습니다. 어렵다고 말하면 즉각 보내주셨으니까요. 한참 후에 장로님이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이너스통장에서 보내주셨다는 것을 처음 안 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부터 어려운 지경에 있어도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달팽이처럼 꼭꼭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늘 풍성했습니다. 왜냐하면 H 장로님을 생각하면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 졌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J 이야기를 듣고 또 보내주신 것입니다.
J를 만났습니다. 백만 원을 내밀자 J가 언제까지 갚아야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J에게 말했습니다.
“갚을 필요가 없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야. 그 동안 J가 열심히 살아서 선물로 주시는 거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네가 행복하기를 원하시거든.”
J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J가 동생들을 데리고 교회에 온 것입니다. J는 H 장로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두 달이 지나자 J는 엄마도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J의 졸업작품은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K 집사님이 우리 예은교회를 떠난 것은 섭섭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J네 가족이 모두 하나님을 믿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김 집사님과 바꾼 영비네 가족, 그런데 앞으로는 아무도 바꾸지 않고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은교회 교우들은 아직도 예쁜 K 집사님 이야기를 하며 그리워하니까요.
(크리스챤신문. 2003.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