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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는 축구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중국 축구 협회 측에 견해에 동의한다. 오늘날 축구의 뿌리가 된 쿠주에게 감사를 표한다. By. 제프 블래터 2004년, 前 FIFA 회장 제프 블라터는 아시안컵 개최에 열린 축구 엑스포에 참가하여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축구의 역사가 단 한마디에 완전히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제프 블라터의 발언은 곧 중국 축구 협회와 아시아 축구 연맹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축구 엑스포에 참가했던 약 2300여 명의 스포츠 사학자들도 블라터의 의견에 동의했다. 오늘날 FIFA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축구의 기원과 함께 쿠주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축구의 기원은 정말 중국의 쿠주일까? 우리들은 제프 블라터가 한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가? 유렵에서는 여전히 중국의 쿠주가 축구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의 쿠주는 한국의 축국, 일본의 케마리에만 영향을 주었을 뿐, 전 세계에 영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쿠주는 주원장이 권력을 목적으로 금지 시키면서 사실상 명나라 시절에 완전히 사라졌다. 오늘날 축구 강국이라 불리는 잉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아시아에 속한 국가들까지 오래전에 축구와 비슷한 공놀이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축구가 없었던 시절에 사람들은 과연 어떤 공놀이를 했을까? 그 대표적인 공놀이로는 다음과 같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하파스톤(Harpastone) 한편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섬을 떠난 후 다시 배가 난파되어 한참을 표류하다 나우시카가 사는 스케리아 섬까지 오게 되고, 섬에 도착하고 나서는 지친 나머지 잠이 들어버린다. 빨래하러 온 공주와 시녀들은 빨래가 마르는 동안 공놀이를 하며 놀았다. (출처 : 나우시카 : 위키백과) 그리스 신화를 통해서 우리는 그 당시에도 공놀이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 공놀이가 축구와 비슷한 놀이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크리스토프 바우젠하인의 저서 <축구란 무엇인가>에 따르면, 이 공놀이는 공을 던지는 방식으로 춤을 추면서 점수를 매기는 스포츠일 가능성인 높은데, 오늘날의 리듬체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당시에 축구와 같은 공놀이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6-7세기,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군사 훈련이나 제사를 목적으로 하파스톤(Harpastone)이라는 공놀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자료 출처 : 야무진 야누자이 : Tour de Fotbol 중국의 쿠주 고대 축구 중에 하나인 중국의 쿠주는 한 나라 시절부터 제대로 된 경기가 진행되었다고 전해진다. 한 나라 문헌에 쿠주의 규칙이 기록되었는데 그 규칙은 다음과 같다. 정사각형 경기장에 반달 모양의 작은 골대가 양쪽 끝에 각각 6개씩 설치되어 있으며 24명의 선수들은 경기 전에 심판을 선출하여 경기를 해했다. 이후 쿠주는 당나라, 송나라 시절로 넘어오면서 남녀 모두에게 사랑받는 스포츠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쿠주는 평민층의 '바이다'와 궁중의 '추큐'로 분리되었으며, 속인 빈 가벼운 공까지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이는 대부분 상민층들만이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황제들의 엄청난 사랑과 함께 쿠주 클럽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실력이 좋은 선수들은 높은 부와 명예를 보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쿠주는 명나라 이후에 쇠퇴하게 된다. 사창가와 퇴폐업소의 매춘부들이 손님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쿠주를 이용하였다. 이로 인하여 쿠주의 명예는 날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명나라의 초대 황제 주원장이 권력을 목적으로 쿠주를 금지시키면서 쿠주의 시대는 끝이 나게 된다. 신라 시대에 김유신과 김춘추를 비롯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축국'이라는 경기를 했는데, 아마도 중국의 쿠주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한국의 유명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도 축국을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나라에 샹추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사에게 '탈장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하지만 쿠주를 열정적인 마니아였던 샹추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쿠주를 하였고, 결국 경기를 하는 도중에 사망하게 된다. ( 출처 :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7617) 수호지에 등장하는 고구라는 노비가 있었다. 어느 날 고구는 귀족들의 쿠주 경기를 지켜보다가 자신에게 공이 날아왔다. 그 순간 고구는 귀족들 앞에서 뛰어난 드리블을 보여주었고, 결국 신분이 상승하면서 관리가 되었다. ( 출처 : 야무진 야누자이 : Tour de Fotbol ) (당시 놀이의 방법이 이러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일본의 케마리 중국에 쿠주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케마리가 있었다. 쿠주와 다르게 케마리는 공을 일정한 높이로 걷어차서 횟수를 겨루는 경기였다. (오늘날 축구의 리프팅, 학생들이 즐겨 하는 노바운드와 비슷하다.) 케마리의 경기 규칙은 다음과 같다. 6-7평 정도의 경기장에 네 귀퉁이에 나무를 심어 경계를 표시했다. 벚나무, 버드나무, 단풍나무 등을 심었다고 하지만 격이 높다고 생각했던 소나무를 주로 심었다. 사슴 가죽으로 만든 공을 사용하였고, 여덟 명의 선수가 네 쌍을 이루어 경기를 준비한다. 지위가 가장 높은 궁정 인사가 시축을 시작하면서 경기가 시작되고, 선수들은 가능한 한 공을 땅에 떨어트리지 않고 차거나 패스해서 횟수를 겨루었다. 멋진 동작이나 에티켓과 전통을 준수하는 태도에 따라 추가 점수가 부여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연장자인 선수가 공을 높이 찼다가 기모노 자락에 받아내는 것으로 경기는 끝나게 된다. 12-13세기, 케마리는 엘리트 계층들을 통해서 일본의 큰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된다. 당시 퇴위한 고시라카와 천황, 재위 중인 고토바 천황이 열정적인 케마리 팬이었다. 특히 고토바 천황은 케마리 등급에 따라 양말의 색, 무늬 등을 지정하면서 최초로 케마리 복장 규정을 만들었다. 훈련과 기술, 규칙 등을 배울 수 있는 케마리 학교가 등장하고, 19세기까지 일본 미술과 문학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케마리도 영원하지는 못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 케마리는 소수 귀족들의 놀이로 전략하고 만다. 동남아시아의 세팍타크로 9세기, 말레이반도에서는 등나무 줄기로 만든 공을 가지고 '세팍라가'라는 오래된 공놀이를 했다고 전해진다. '세팍라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날 '세팍타크로'라는 스포츠로 발전하게 된다. 세팍타크로는 말레이 인도네시아어의 '차기'라는 뜻의 세팍(Sepak)+태국어의 '공'이라는 뜻의 따크로(ตะกร้อ)의 합성어이다. 축구와 배구의 혼합형 스포츠인 세팍타크로는 팔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사용할 수 있다. 배구와 같이 손을 사용하여 서브를 하게 된다. 선수들은 1m 50cm의 네트를 중심으로 경기를 하게 되며 공중에 떠 있는 공만 찰 수 있다. 대한민국은 세팍타크로의 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시안 게임과 국제 대회에서 수많은 메달을 기록하였고, 2012년 방콕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세팍타크로 강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라틴 아메리카의 울라마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울라마'라는 공놀이를 했었다. 선수들은 오직 엉덩이와 머리만을 사용하여 각각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작은 골대에 공을 넣는다. 사람들은 태양과 달,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목적으로 울라마를 했다고 전해진다. 즉, 이들은 공놀이를 신성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 종교인들이 이를 우상숭배로 여기게 되고 결국 울라마는 탄압받게 된다. 자료출처 : 야무진 야누자이 : Tour de Fotbol 이 외에도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은 '마른국'이라는 공놀이를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중세 유럽에는 영국의 몹 풋볼(Mob Football), 프랑스의 술(Soule), 피렌체의 칼치오(Calcio)등의 거친 축구를 즐겨 했다. (중세 유럽의 축구는 다음 편에서 등장할 예정이다.) 제프 블라터의 발언으로 축구의 기원은 중국의 쿠주가 되었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중국의 쿠주가 최초의 축구라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축구의 기원이 중국의 쿠주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오늘날의 축구가 중국의 쿠주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축구는 중세 유럽과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이에 대한 사실은 Football History 시리즈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작성자 : 김동우 (http://blog.naver.com/mancity4374/221046691764) -고대 축구의 대한 자료를 제공해주신 Tour de Fotbol의 야무진 야누자이님께 감사한다는 인사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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