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련사의 창건연혁에 대해서는 초창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주월사․ 운람사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하며 한편 신라 흥덕왕 때(826~836) 덕운(德雲) 스님이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제법 규모가 큰 사찰로 발전하였는데, 공민왕(1351~1374) 때에 변조(遍照) 스님이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축소되었고, 임진왜란으로 완전 소실되었다. 그 뒤 선조 38년(1605) 옥건(玉虔) 스님이 삼창하였고, 현종 2년(1661)에 극락전을 중건하였다. 하지만 자세한 사적이 전하지 않아 그 뒤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극락전의 석가모니후불탱화가 1791년 조성 봉안되었고, 1935년의 중수와 최근에는 1980년과 1993년에 중수하였고, 1997년 요사를 지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옥련사 오르는 길
옥련사 입구
옥련사 입구
옥련사 전경
옥련사 극락전
옥련사 요사
옥련사 요사
옥련사 석탑
옥련사 요사
옥련사 극락전 오르는 계단
옥련사 요사
옥련사 극락전
팔작지붕으로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규모의 다포계 집이다. 건물은 18세기경에 지었고 1935년에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듬직한 배흘림 기둥의 힘찬 모습과 공포의 화려한 장식이 조선후기 건축의 예술미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내부 단청은 조선후기의 단청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특히 내부의 천장에 그려진 용(龍)과 봉황그림, 들보의 외눈박이 황룡(黃龍)과 눈알이 튀어나와 검은 줄에 붙은 청색 잉어 그림은 다른 사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전각의 중심인 불단 위에는 125cm의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은 조선 중기 이후의 불상 중에서 상당히 균형이 잘 잡힌 수작이며, 손모양과 여래의 법의(法衣)가 매우 잘 묘사되어 있다. 지난 1970년대 후반에 이 불상을 개금할 때 복장유물로 석보상절(釋譜詳節) 두 권과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불상의 좌대 조각도 매우 훌륭하다.
옥련사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시도유형문화재 제355호
이 불상은 조선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미타여래좌상이다.
불상의 크기는 전체높이 132cm, 불두높이 25cm, 무릎높이 25cm, 무릎너비93cm이다.
본존은 머리와 육계의 경계가 명확하며 머리의 정상에는 원통형의 계주가 솟아있고, 머리 중심부에는 타원형의 중앙계주가 표현되었다. 눈은 옆으로 길고 좁게 퍼져있으며, 눈썹은 둥근 기미로 처리하였다. 코는 약간 둥근 각을 이루고, 입술은 은은한 미소가 흐르도록 표현하였다. 착의는 상의 위에 대의를 입은 이중 착의법이며, 가슴은 비교적 넓고 오른쪽 어깨에 반달형 대의 자락이 걸쳐 있다. 수인은 전법륜인을 취하고 있다. 무릎에 표현된 주름은 부채꼴형의 의습벽을 형성하고 있다. 1961년에 개금을 하였으며, 대좌는 개금하면서 제작된 것이다.
볼륨감 있는 신체굴곡이나 곡선적이고 형식화 된 의습선, 블록화된 신체구성, 원만한 얼굴형에 근엄하고 부드러운 상호, 전법륜인의 수인 등의 양식으로 볼때 조선시대의 양식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어 임진왜란 직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옥련사 극락전내 신중탱
옥련사 극락전내 지장탱
옥련사 고불전
옥련사 고불전내
옥련사 전경
옥련사 찾아가는 길
대구 5번국도, 중앙고속도로 → 의성IC에서 빠져나와 → 의성방면 5번 국도 → 봉양(안평방면) → 안평면소재지 → 옥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