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2023 봄호 주제, <위기의 한국, 무엇을 할 것인가>
1. 2023년 창비 봄 호의 주제는 <위기의 한국,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이 코너에서는 2022년 대선을 통해 집권한 윤석열 정부가 현재 자행하고 있는 정치적 폭주가 가져온 문제점을 진단하고 시민들의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정권의 힘이 가장 큰 시기라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논조도, 해결을 위한 방법 제시도 그다지 힘이 있지 않다. 다만 어떤 고난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포기하지말고 행동해야 할 지침에 대한 원론적인 주장만이 있을 뿐이다.
2. 윤석열 정부는 집권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어떤 정부보다도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끊임없이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보통 대선 이후 1년까지는 대통령의 지지가 높은 편이라는 관례도 무너뜨리고 지지율은 30%대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1년 동안 정책을 통해 밝혀진 그의 정치철학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점이다. 말로는 공정, 정의, 자유, 법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편협하고 당파적인 정의와 자유이며, 법치는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해악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해결할 의사도 능력도 없으면서 자유와 공정,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시민 상호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성공하는 듯 보인다.”
3. 윤석열 정부와 그에 동조하는 보수 지방정부의 정책 중에서 대단히 위험한 방향이면서도 나름 지지를 받았던 결정이 있었다. ‘화물연대’ 파업의 긴급 명령권을 발동하여 강제로 파업을 중지시켰던 일, 노동단체의 회계사항을 강제로 공개하는 방안,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투쟁을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법적 고발을 하는 행태 등 법치를 강조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였다. 유해정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보인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오롯이 그들 자신만을 위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행동이라는 선동과 오해가 너무 뿌리 깊다. 주식투자가 보편화되면서 시장과 자신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사람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3. 정부가 자행하는 정책의 방향에는 ‘갈라치기’의 분명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사회적 연대와 시민적 공감을 파괴하는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정부의 정책은 경제적 위기와 시민적 불안을 자극하여 연대의 붕괴 및 정치적 냉소를 불러일으킨다. “정말로 걱정해야 할 것은 일상이 재난이 된 사회에 방치된 수많은 불안하고 위태로운 ‘생존자들’, 우리 시민들의 절망이다. 이 절망은 정권에 대한 회의, 사회적 연대를 통한 권리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4. 저자들은 현재의 절망 속에서 ‘촛불혁명’의 기억을 다시 소환한다. 촛불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협력하고 연대하면서 ‘변혁적 중도’의 힘이 강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 극단의 파괴성을 완화하면서도 사회의 진보를 향한 의지를 보유한 세력의 힘이 ‘촛불’이라는 특별한 변혁의 시간을 가져올 수 있었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중도의 현명하면서도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정치 세력이 사라진 무대에는 선동과 혐오만이 넘치는 강경세력만이 넘쳐날 것이며,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정치의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흐름은 선동적인 발언과 행동이며 그것에 대한 똑같은 극단적인 공격만이 활성화되어 있다.
5. 현재의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백낙청은 ‘살던대로 살지 맙시다.’라는 칼럼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고 극단적인 견해에 휩쓸리지 말며, 통합적인 시선과 합리적인 실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유해정은 <우리, 사라지지 말자>는 글을 통해 “비틀거리고 좌절했으나 끝내 포기하지 않던 힘(김진숙 타워크레인 파업, 희망버스, 학생인권조례, 세월로 기록사업 등)들이 차곡차곡 쌓여 오늘이 되었다. 그리고 내일을 열 것이다.”라고 말한다.
6. 그들이 말하는 한국 정치와 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대응자세에는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더라도, 여전히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어떤 방식이든 정상적인 선거로 집권한 대통령의 퇴진 계획을 논의하는 무리수를 제기한다거나, 보수 정권이 공격하는 노동계의 문제를 정화시키고 거듭날 필요성 대해 제언하지 못하고, 정치적 개혁에는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민주당의 무능에 대한 비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백낙청의 다음과 같은 말은 현재의 상황에 대한 지극히 정치공학적 진술이라는 점에서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유리한 점 하나는 민주당에 2기 촛불정부 건설을 꿈꾸는 대표가 있다는 점이고, 국민의 힘에서도 오히려 선거를 앞둔 상태이기 때문에 윤석열 간판으로 자신이 당선될 수 있겠는가 고민하는 의원이 많아지리라는 것입니다.”
7. 세계의 복잡하고 위험스런 상황을 강조하면서 국내 문제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 무엇보다도 가깝고 직접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결국 전체적인 문제해결의 단초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사회적 연대’와 ‘변혁적 중도’라는 방향은 분명 옳고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그러나 거기에 추가해야 할 점은 현 정부의 문제점만이 아닌 야당 세력과 진보 진영의 문제점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하며, 특정 세력에 대한 지지가 아닌 각각의 정책과 정치적 행위에 대한 합리적 판단을 통해 개별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이 정치, 사회, 시민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점이다. ‘내로남불’이라는 상투적이지만 지극히 파괴적이고 영향력 높은 행태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냉소주의만을 자극할 뿐이며 ‘변혁적 중도’의 탄생을 힘들게 할 것이다.
첫댓글 - 우연한 사건을 필연의 과정으로 나타나는 모양새로 만들고 싶어하는 흐름이 강하게 꿈틀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