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氣)는 변함이 없다.
오늘은 나의 시조(始祖)님이신 박서 장군님의 시제일이다.
고려 고종 18년 몽고의 침입은 칭기스칸의 뒤를 이은 아들 오고타이가 부하장수 살리타이에게 별군을 주어 고려를 장악하도록 명하여 서북명마사(西北兵馬使)인 박서장군이 지휘하여 귀주성에서 막아 큰 공을 세워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 平章事)에 올랐으며 본래는 신라의 박혁거세왕의 후손으로 경명왕의 11세손이며 경명왕의 4子인 죽성대군 (죽성박씨(竹城朴氏))의 후손이였으나 충정공이란 시호를 받고 음성백(陰城伯)에 봉해짐으로써 음성(陰城)이란 관향(貫鄕)을 왕으로부터 하사받아 음성박씨의 시조가 된 것으로 역사적으로 위대한 공적의 장수들을 모시자는 무성묘(武成廟)에 김유신 .을지문덕. 깅감찬. 최영장군 등과 함께 이름이 오르고 우리나라 전쟁기념관에 호국인물로 선정되어 모셔진 분의 시제일로,
예부터 심부름을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가르켜 함흥차사(咸興差使)라고 하는데 이것은 조선초에 생긴말로 함흥차사의 대표적인이가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태조 이성계의 죽마고우인 충민공 박순으로 충민공 박순(중시조)은 시조인 박서님의 5世이며, 충민공 박순의 손자들을 "조선에 오옥(五玉)"이라 세상 사람들이 칭하였는데 형제들이 급제한 조선의 오옥(五玉) 중 대사헌공 박숙진은 경국대전(經國大典)인 총법전을 만드는데 실무하였고, 전라광주에 도로명인 '회재로'가 있는데 임란시 의병을 일으킨 임란공신 회재 휘 박광옥 선생의 호(號)로 도로명을 지명한 것으로 회재공 또한 박서 시조님의 후손이고. 성리학의 대인(大人)인 송자(宋子) 우암 송시열 선생이 억울하게 위리안치한 귀양을 갔다하여 이를 호소하며 일생을 학문(學文)에 의(義)를 대표적으로 행한 박성구(朴聖龜)는 시조님의 14세이며 나의 10대조로,
그동안 나의 시조님인 박서님의 분묘를 찾지 못하였으나 조상을 찾고자하는 후손들의 노력과 염원으로 박서 장군의 묘를 찾아 석물을 복원하면서 시제일을 새로이 정함에 시제에 참석하게 되었으며,
박서 장군의 묘를 풍수지리에 관심있는 후손들과 함께 논하였는데 내가 점검한 내용을 형과 론 그리고 기학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며 "이렇게 정확하게 점혈하신 분은 신의 경지에 도달하신 최고의 경지에 이른 분이 아니면 이 같이 점혈할 수 없습니다. 정확한 혈자리에 조상님들이 평안이 계시니 기쁘옵니다."라고 말하자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였고 한편으론, 놀라워 하며 명함을 달라고 하셨다. 그 중 교육자이셨고 풍수지리학을 수학하신 같은 항렬의 형님은 초면인 나에게 "풍수지리 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흠을 잡기 일쑤는데 이 동생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라고 대종회 일을 하시는 분에게 말하자 그분은 저에게 다가와 "시조님 사당의 터를 정해달라."라고 말하였으며,
시조님의 분묘 아래에 시조님의 子와 후손들이 모셔져 4 분묘 중 2기는 임좌(壬坐)이고 2기는 자좌(子坐)인데 이를 이해하지 못한 참석자에게 물형론과 형기론. 이기론. 기통론으로 입수와 좌 등을 자세히 설명하였고 또한,각기 분묘의 발복현상을 투시론으로 자세히 설명하며 정확하게 점혈하여 모셔진 것에 대하여 "시조님의 아들 불옥(佛玉) 백련거사와 백련거사의 후손 무학(無學)대사님이 이 자리를 점혈하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목사공파 회장님은 "년대가 맞나."라고 말하여 " 년대가 맞습니다."라고 말하였고 교육자이며 풍수학을 수학하신 분도 이를 인정하며 집안에 나 같은 학문을 하는 사람이 있어 매우 기쁘다며 자주 만나기로 하였으며,(백련거사의 제자가 청학도사이다.)
뿌리방송 관계자 중 상무와 국장 그리고 한빛신문 편집국장에게 나는 평소 알고 있는 사실내용인 신라 1대에서 5대왕이 박씨이며 경주에 1대에서 5대까지 모신 오능이 있으며 신라 경명왕의 8대 대군 중 네째 죽성대군의 후손인 박서 장군님이 음성박씨의 시조가 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는 선(仙)문화이며 이에 바탕인 기학(氣學)에 대하여 설명함과 함께 중공이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와 仙문화가 마치 중공의 것임을 주장하는 구체적인 내용, 그리고 우리나라 민족이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으며,
위와 같이 나는 시조님의 분묘와 시조님의 후손들의 분묘를 삼가 풍수점검하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풍수의 점검사항들과 기의 방향. 높이 그리고 혈자리 중심에 정확하게 시조님을 모신 것에 대한 경이로움과 700년이 넘어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의 방향은 변함이 없음과 평소 기는 변하지 않는다는 나의 지론이였지만 기는 몇 만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며,
인간이 대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기(氣)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대자연을 파괴하면 기는 소멸한다.라는 단순한 진리이지만 이것이 우주 대자연의 이치임을 거듭 깨달은 것으로,
조상님들이신 시조님과 시조님의 후손님들이 명혈에 평안하게 계시는 것을 직접 확인함에 오늘 나는 더 없이 행복합니다.
2010. 11.5
대동학 겸유
첫댓글 중시조급에 자리하고 계신 분들이 명혈에 자리하고 계시기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풍수학을 이해하는 사람들 모두 조상님을 혈자리에 잘 모시고자 한다면 우리나라는 크게 발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