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오셨다. 일상으로 돌아가신다며 오셨다. 다소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괜찮다고만 하신다. 살려주시니 다시 만난다고 하신다. 정말 고마운 시간이다. 살아있으니 만난다는 항상 하시던 말씀이 이렇게 실감이 날 수가 없다.
선생님 말씀 위주로 채록합니다.
질문자 : 선생님, 말씀 많이 안 하셔도 되니 쉬세요.
선생님 : 괜찮아, 그냥 쉰다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지만, 좋은 사람들하고 만나서 좋은 얘기를 하는 것이 쉬는 거야. 그것이 진짜 쉬는 거야. 육체가 극도로 피곤할 때는 잠자는 것이 최고야. 잠자는 것은 어제 충분히 잤어. 9시부터 자서 7시에 깼으니까 많이 잤어.
질문자 : 호리병 안에 새알이 부화가 돼서 화병 속에서 자라요. 점점 자라서 거기서 나오지 못하는 거죠. 병을 깨지 않고 새를 살려고 어떻게 살려서 내보낼까요?
선생님 : 생각해보자. 병을 깨지 않고 새를 나오게 하는 방법, 답은 있어? 몰라서 묻는 거야? (네.) 그것이 화두 중에 하나란 말이지? 그러면, 답은 없어. 질문만 있어.
질문자 : 그 질문을 듣고 문득, 그 새가 나라면, 애시당초 그 병은 없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 : 맞다. 그러면, 그것이 답이다.
질문자 : 그 생각이 들어오는 것이 남달랐어요.
선생님 : 그것이 불교식으로 말하면 깨달음이다. 자기가 누구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거지. 그 얘기는 자기가 무한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거지. 처음부터 호리병은 없었어.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것을 알게 되는 거지. 나가야 할 호리병이 없는 거야. 깨야 할 호리병이 없는 거야. 물리 세속에 대한 답이 아니지.
질문자 : 유명한 화두선 중에 하나라는데, 어떤 사람이 숲에 가는데 코끼리가 쫓아와서 도망을 가다가 언덕 밑에 나무가 있고 우물이 있어서 등나무 밧줄을 타고 우물 속을 들어갔는데, 밑에는 독사 3마리가 있고, 위에는 흰쥐와 까만 쥐가 갉아 먹고 있고, 밖에서는 코끼리가 기다리고 있고, 저 등나무 위에 벌집에 꿀이 다섯 방울 똑똑 떨어져서 먹는데, 너무 달콤하고, 여기서는 어떡할 거냐?
선생님 : 어떡하긴 어떡해. 꿀이나 빨아먹지. (웃음) 어떻게 할까? 현실을 나가야 할 것인가,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까? 답은 벗어날 수 없다. 이거야. 없다. 흰쥐, 까만쥐는 낮과 밤이고, 코끼리와 독사가 있는 사이에서 쾌감이라는 것이 오는 거지. 인생이잖아.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잖아.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런 말하는 거야. 깨달음. 다른 말로 꿈에서 깨어나는 거야. 그게 꿈이야. 깨어나면 아무것도 없어.
질문자 : 병 속에 든 새는 단순하잖아요. 뒤에 있는 이야기는 스펙타클 하잖아요. 감정 이입이되는 두려움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꿀 빨아먹고 있어요. (웃음)
선생님 :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저런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잖아.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못 된다고 궁극적으로, 내 힘으로 변경시킬 수 없는 일들이 있잖아. 우리가 그 속에 서 있는 거야. 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을 하는 거지. 평안을 비는 기도가 있잖아.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은 순히 받아들이게 해주시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이 둘을 잘 분간해서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도저히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거다. 받아들여. 받아들인다는 것이 끌여 들인다는 것이 아니잖아. 그냥 가만히 있는 거지.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돼.
내가 이번 화재 전부터 굉장히 내가 다운되어있었어.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 뭐든지 붕 뜬 기분이고, 의욕이 없고, 번역도 안 되고, 왜 이러지. 그런데, 그 전전날, 책을 보는데, ‘평생 네가 보는 원고가 한꺼번에 불이 났다. 니가 다니던 직장에서 아무 이유없이 해고 당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 너는 거기서 하나의 드라마로 봐라. 꿈이다. 꿈 보듯이 거기서 한 걸음 떨어져서 네 처지를 봐라.’ 이런 문장을 마음에 들어서 옮겼어. 그 다음 날, 내가 그렇게 되었어. 불나서 집사람은 뒹굴고 “엄마, 엄마” 그러고, 탁탁 타는 것을 보는 거야. 깨진 소리가 들리고 불길이 안에서 밖으로 나오고 한 20분 착실하게 봤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그런데, 순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더라. 아프게, 멍하니. 30분 지났을까? 소방차가 왔어. 마을 사람들은 아까부터 와서 우는 사람들도 있고. 윗 집 사람은 불이 났을 때, 소리를 지르니까 수화기를 들고 내려오면서 얼굴이 사색이야. 어쩔줄 모르는 거야. 그 친구가 신고를 한 거지. 아비규환, 아수라장, 평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어쩔 수 없이 바라보는 거야. 시간이 좀 지나고 하루 지나고 그 다음 날, 어머니 누워있던 그 자리, 부엌 바닥에서 막 호소하더라. ‘엄마 미안해, 엄마, 겁에 질린 얼굴, 어쩔줄 모르는 얼굴이 자꾸만 보여서 너무 힘들어. 엄마 그 모습을 나한테 안 보여줬음 좋겠어. 미칠거 같아.’ 그 날 저녁 지나고, 사흘째 되던 말, 나한테 짤막한 비젼을 보여주셨어. 바로 그 자리에서. 집사람한테 얘기를 할까말까 하다가 했어. “여기서 뭘 하실 거 같더라 뭔지 모르지만.” “이제 시작한다.” 저 분이 그러시는 것 같더라. 얘기했더니 깜짝 놀래. 자기도 똑같은 생각을 했대. 그러고 반전, 마음에 먹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순식간에 갑자기, 얼굴이 편안해지고 엄마의 겁에 질린 얼굴이 안 보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이더래. 그러면서 사람이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내가 안 보였는데, 보이더래. 옆에서 있는데, 얘기해도 귀에 안 들리고, 내가 안 보였대. 이틀째 되는 날은 내가 보이고, 사흘 째 되는 날은 활짝 펴서 있어.
내 딴에는 죽음과 부활을 경험했다. 원래 둘이 붙었어. 아픔과.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데, 그것은 잘못됐어. 사랑하면 운다는 얘기잖아. 사랑하기 때문에 운다, 씨앗이니까. 사랑은 눈물의 열매야. 눈물을 흘리니까 사랑이 꽃피어. 마을 사람들, 우리 아이들, 교인들, 소방대원들, 다 와서 수습하고 위로하고, 같이 아파하고, 그것이 사랑 아니야? 난 그게 보였어. 첫날부터 고마움이 보였어. 집사람이 이틀째, “다 가져가시고 고마움만 남겨놨네.” (웃음) 그랬어. 효선도 일생에 중요한 경험을 했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와온 해변을 갔다 왔어. 갔다 오는 동안에 네 사람을 만났어. 따로따로, 여지 둘, 남자 둘. 처음에 만난 사람은 동네 할머니, 저쪽 건너편에 있는데 인사를 했어. 같이 인사를 하는데 고맙더라. 남자를 하나 만났는데, 아무 표정 없이 가더라. 갔다 오다가 또 남자를 만났어. 40대 되었을까? 나를 쳐다보는 눈이 모르는 인간이 무슨 짓이야 무시하는 인상으로 지나가. 눈은 마주쳤어. 뭐야? 하는 눈이야. 그러다가 버스정류장에서 여자가 서 있어. 저 쪽을 보고 등지고 서 있어. 나를 못 봤지. 바로 내 앞에서 돌아서는 거야. 동시에 인사를 했어. 네 종류의 인간을 만났어. 똑같이 인사를 했는데, 두 여자한테는 공손하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 두 남자들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돌아오면서,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사는구나. 고마운 인간하고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는 사람, 이 사람들한테는 내가 말을 걸지 말자. 말이 안 통하니까. 고마운 사람하고 그렇게 살자. 이런 마음이 들었어.
집사람이 미생물 공부하잖아. 내가 미생물하고 얘기를 해 봤어. 미생물이 나보고 뭐라고 그런지 알아? “맞아 나도 미생물이야. 그런데, 네가 말하는 미하고, 내가 말하는 미하고 달라. 너는 작을 미를 쓰는데, 나는 아름다울 미를 써. 미생물은 맞지만, 네가 나를 볼 때, 네가 기준이 되면 나는 작지. 그러니 나를 작다고 하지. 나는 작은 생물이 아니야. 네가 우주의 기준이야? 나는 작은 것이 아니야. 나는 아름다운 생물이야. 왜냐하면, 우주가 아름다우니까.”
어제 안에 앉아있는데, 나무 사이에 연기가 훅 나오는데, 가슴이 철렁했어. 나중에 보니 모랫바람이야. 머리는 ‘아니야, 저거 쓰레기 태우는 거야. 걱정할 거 없어.’ 그런데, 가슴은 벌렁거려. 색깔만 검은 색이지. 똑같았어.
그저께인가, 아침에 저 분이 그러셔. 어떤 후배가 이거 어떻게 수습할 거냐고 물었어. 내가 무심코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We have no idea.” 그러고 끝났어. 그다음 날, “너 대답 잘하더라. 너 계획도 없고, 뭘 어떡해야 할 아이디어도 없다.” 짤막한 비젼은 봤지만, 알고 싶지도 않고, 내 몫이 아니야. “너 어제 대답 잘하더라. 앞으로도 계속 그래라. 나는 너한테 어떠한 아이디어도 안 줄 것이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 마음, 난 너한테 안 줄 것이다. 그런 마음이 혹시 들면 그것은 네 생각이야. 내 생각은 아니다.” 그러면서, “생각은 머리가 하는 거야. 손과 발은 생각을 할 수가 없어. 너는 내 손이지 머리가 아니야. 대책을 강구 한다면 머리가 하는 거지, 손과 발이 하냐? 잊지 마라. You have no idea.” “고맙습니다.” 했어. 뭘 하겠다는 생각이 버릇처럼 자꾸 들어와. 그럴 때, “앞으로는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금방 내가 취소했어. “나를 믿는 척 시늉하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당신이 주인이다 라고 하면서 내가 다 하잖아. 시늉만, 말만 하는 거야. 앞으로는 허락하지 않으신대. 앞으로 나는 네가 어떻게 믿는지 지켜보신대. ‘믿는 시늉은 이제 허락하지 않는다.’ 내 마음으로도 ‘이제 믿는 척은 그만하자.’
모든 예술이 모방으로 시작돼. 모방을 끝나면 예술이 아니지. 모방이라는 것이 비슷하게 하는 거잖니. 똑같이 시늉을 계속해야 해. 그래야 본론으로 들어가. 그래야 자기 그림이 나와.
너를 괴롭히는 사람인 듯 보이지만, 아니야, 다 덕분인 거야. 너를 이렇게 있게 도와주는 거야.
다소 이른 시간인데도 반겨주신 주인장의 정성이 듬뿍 담긴 정원에서 만나, 맛난 식사를 하면서 신문물도 경험해보는 아름다운 시간을 지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살아있으면 만나겠습니다.
금요일 3시. 우리들의 [의식혁명]은 계속됩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이리 정리해주니
곁에서 선생님 말씀을 듣는 것 같습니다.
모두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