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잠서문을 덧붙이다. 〔立箴 幷序〕
정덕 경진년(1520, 중종15) 겨울 내가 여묘살이를 하던 중에 제석(除夕)을 맞이하였다. 세월이 쉬 흐르는 것에 대한 감회와 함께 도덕이 닦여지지 않아 제때에 서지 못함을 스스로 탄식하였다. 이에 잠을 지어 스스로 경책(警責)한다.
공손히 듣건대 공자께서는 恭聞仲尼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十五志學
십오 년 뒤 서른에 이르러서는 至于三十
능히 서게 되었다고 말씀하였네 乃克有立
선다고 하는 것은 무얼 말하나 曰立伊何
마음이 정해지고 도를 터득해 心定道得
내면은 충실하고 充實於內
외면은 방정하며 直方於外
우뚝 서서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卓然不倚
넓은 집에 거하여 대도(大道) 행하며 居廣行大
부귀해도 마음에 방탕함 없고 富貴不淫
빈천해도 지조를 바꾸지 않아 貧賤不易
이 세상의 그 무엇도 天下萬物
나를 꺾지 못함이네 莫我撓屈
이러한 경지를 섰다고 하니 是謂能立
성인이 되기 위한 터전으로서 進聖之基
하늘의 뜻을 이어 법을 세움이 繼天建極
실제로 여기에서 근본하도다 實本於斯
안타깝게 이 몸은 후학으로서 閔余後學
성인을 진정으로 흠모하지만 惟聖是慕
뒤늦게야 학문에 뜻을 두었고 志學苦晩
도를 들은 것 또한 늦어서였네 聞道亦暮
공부가 엉성하고 힘이 부족해 功疏力淺
배움의 효과 아직 못 거뒀는데 學未收效
책임은 막중하고 갈 길 멀지만 任重道遠
그래도 뜻을 버릴 수가 없기에 志猶不舍
성인에게 언제나 견주어 보며 援聖比度
돌이켜 나의 허물 반성하노라 反躬省過
차분히 내 마음을 고찰해 보면 驗之於心
섰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能立耶否
함양하는 공부가 불충분하고 涵養未充
마음을 보존함이 굳지 못하여 / 操存不固
천리의 유행에는 天理流行
어김이 없지 않고 未免違失
인욕을 제거해도 人欲消去
때로 다시 생겨나네 有時萌起
차분히 내 몸을 고찰해 보면 驗之於身
섰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能立耶未
기질과 습관은 좀 변화됐으나 氣習稍化
의리는 아직까지 미약한 탓에 義理猶弱
언행에 허물 많고 言行多過
표리가 같지 않아 表裏未一
사물이 밖에서 흔들어 대면 事物外撓
수응함에 차질을 빚기도 하네 酬應或差
차분히 내 행실을 고찰해 보면 驗之於行
섰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立耶未耶
신하 되고 자식 되어 爲臣爲子
본분을 다 못했고 不盡其職
예절과 의리 또한 爲禮爲義
극진하지 못했도다 不用其極
동정과 어묵이 動靜語默
절도에 맞지 않은 경우 많으며 多不中節
진퇴와 주선이 進退周旋
법칙을 잃은 적도 없지 않도다 或失其則
세월은 흘러가는 물과도 같아 歲月如流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인데 一往不復
가만히 내 나이를 헤아려 보니 究我年數
내일이면 어느새 삼십이로다 奄迫三旬
그러니 이때에 서지 못하면 及此未立
어떻게 범인을 벗어나겠나 寧免衆人
이 때문에 스스로를 돌아보느라 是用自省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구나 竟夕不眠
산사에 종 울리면 鍾鳴山寺
또 한 해가 시작되니 又是新年
천도의 변화 따라 天道旣變
계절도 바뀌리라 時物亦遷
나 이제 하늘의 덕을 본받아 我其法天
그 덕을 새롭게 하려 하노라 思新厥德
묵은 습성 말끔히 씻어 버리고 滌去舊習
오로지 성인의 법도 따르며 一遵聖法
경박함을 바로잡고 나태함 버려 矯輕警惰
남들보다 백배는 더 노력하리니 人一己百
성심 다해 오래도록 힘을 기울여 眞積力久
성인의 영역으로 들어가리라 期入聖域
지금부터 세월 흘러 自今以往
사십 오십 되는 날도 四十五十
또한 그리 멀지 않아 又無幾何
눈 깜빡할 순간일 터 轉眄忽及
그때도 알려짐이 없다고 하면 到此無聞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없으리 已矣可追
이 때문에 잠 못 들고 근심하다가 是用耿耿
잠을 지어 스스로를 바로잡노라 箴以自規
마음에 맹세하고 뜻을 세워서 標志誓心
목숨 다할 날까지 힘쓰려 하네 爲終身事
상제께서 굽어보고 계실 것이니 上帝實臨
나의 마음 어찌 감히 변하겠는가 我心敢貳
[주1] 입잠(立箴) : 이언적이 30세이던 1520년(중종15) 섣달그믐에 지은 작품이다. 공자가 30세에 섰다고 한 것에 근거하여, 자신은 30세가 되었음에도 학문적으로 확고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스스로 각오를 새롭게 하는 내용이다.
[주2] 여묘살이를 …… 맞이하였다 : 이언적은 1518년(중종13) 12월 정축(12일)에 조부상을 당하여 이해 12월에 상을 마쳤으므로 정황상 이 글을 지은 제석(除夕)에는 이미 탈상을 한 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여묘살이를 하던 중’이라는 구절은 조부상을 막 끝낸 시점이기 때문에 한 말일 뿐, 사실 관계로 보면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연보의 해당 부분에도 “12월에 탈상하였다. 제석에 〈입잠〉을 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주3] 넓은 …… 못함이네 : 넓은 집은 인(仁)을, 대도(大道)는 의(義)를 가리킨다. 맹자가 “천하의 넓은 집에 거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대도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도를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여, 부귀가 그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고 빈천이 그 절개를 바꾸게 하지 못하며 위무가 그 지조를 굽히게 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대장부이다.〔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與民由之, 不得志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下》
[주4] 하늘의 …… 세움이 : 성인(聖人)이 천자의 자리에 올라 세상에 지극한 준칙을 세우는 것으로, 왕통을 이어 제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이른다. 주희(朱熹)의 〈중용장구 서(中庸章句序)〉에 “대개 상고 시대에 거룩하고 신령스러운 분들이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지극한 준칙을 세운 때로부터 도통이 전해져 내려온 것이 원래 유래가 있었다.蓋自上古聖神繼天立極, 而道統之傳, 有自來矣.”라고 하였다.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