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私兵 없애기를 청하는 서장書狀
사헌부司憲府 신臣 권근權近과 문하부 낭사門下府郞舍 신 김약채金若采 등은 아룁니다.
병권兵權은 국가의 큰 권력이므로 통속統屬이 있어야지 분산하여 주관해서는 안 됩니다. 분산 주관하여 통속이 없으면 이는 칼을 거꾸로 잡고 남에게 자루를 쥐어 주는 것과 같아서 제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군사를 맡은 자가 많으면 제각기 도당徒黨을 만들어 그 생각이 반드시 달라지고 그 형세가 반드시 분산되어,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화란禍亂을 빚어내게 됩니다. 골육骨肉이 서로 해치고 공신功臣들이 보전되지 못하는 것도 항상 여기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이는 고금의 공통된 걱정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옛날에는 집에 무기를 간직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사병私兵이 없었다는 것을 말함이고, 예기禮記에 “사가私家에 무기를 간직하는 것은 예禮가 아니고 이는 임금을 위협하는 것이다.” 한 것은 신하가 사병을 소유하면 반드시 강포强暴하고 참람해져서 그 임금을 위협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니, 법을 세우고 교훈을 전하여 후세의 혼란을 예방한 것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옛날 송 태조宋太祖가 즉위한 초기에 조용히 담소談笑하면서 공신功臣들의 병권을 해체시켜 보전하게 한 것은 후세에 모범이 될 만하고, 노魯 나라의 삼가三家, 진晉 나라의 육경六卿과 한말漢末에 일제히 일어난 군웅群雄이나 당唐 나라 때에 멋대로 날뛰던 절도사節度使들이 모두 사병을 길러 난리를 일으킨 것도 후세의 경계가 될 만합니다.
생각하옵건대, 우리 태상왕太上王께서 개국하신 초기에 특별히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를 설치하시어 병권을 오로지 관장하도록 하신 그 규모規模가 원대했거늘, 당시 의논하는 이들은 “혁명 초기여서 인심이 아직 안정되지 못하였으므로 의외의 변을 대비해야 하니, 훈신勳臣과 종친宗親에게 각각 사병을 거느리게 하여 창졸의 변에 대응해야 됩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병을 모두 없애지 않아, 사병을 거느린 자들은 도리어 선동과 난리를 꾀하여 화를 예측할 수 없게 되었는데, 다행히 하늘의 도움으로 전하께서 난리를 평정하고 사직社稷을 안정시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사병에 대한 의논은 아직도 옛날과 같아, 고식적(姑息的)으로 옛 제도만을 따라 없애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대간臺諫이 사병 없애기를 청할 적에 전하께서는 “종친과 훈신은 다른 뜻이 없음을 보장할 수 있다.” 하시고 그들에게 다시 사병을 거느리게 하시더니, 오래지 않아 내란이 지친至親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로써 본다면 사병을 두는 것은 한갓 난리만을 빚어낼 뿐, 그 이로움은 볼 수 없는 것으로서 대간의 말이 이미 증험되었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병을 없애지 못하였으니 장래의 환란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더구나 외방外方 각도의 군마軍馬가 여러 절제사節制使에게 분속分屬되어 있으므로, 혹은 시위侍衛, 혹은 별비別陴ㆍ사반당私伴倘이라 하여 번거로운 상번上番과 요란한 징발徵發에 그 폐단이 매우 많으며, 많은 배종陪從들은 잦은 사냥으로 그 노고勞苦 또한 심하여 사람은 주리고 말은 지쳤으며, 눈비를 맞으며 사가私家를 지키므로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원망하는 것이 매우 딱합니다.
오늘날의 큰 폐단은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으니, 지금부터는 서울에 머무는 각도의 절제사를 모두 파罷하시고, 서울과 지방의 군마를 모두 삼군부三軍府에 소속시켜 국가의 군사로 만들어 체통體統을 세우고 국권國權을 중히 하여 인심을 안정시키고, 양전兩殿의 숙위宿衛를 제외하고는 사가의 숙직宿直은 모두 금단禁斷하소서.
또 조정에 나아갈 때 사반당이 무기를 가지고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시어 ‘옛날에 사가에는 무기를 간직하지 않았다’는 뜻에 합치되도록 하시고, 후일 서로 시기하여 변란을 일으킬 단서를 막으신다면 국가의 큰 다행이겠습니다.
請罷私兵狀
司憲府臣近,門下府郞舍臣若采等言。兵權。國家之大柄。當有統屬。不可散主。散主無統。是猶大阿倒持。授人以柄。難可以制。故典兵者衆。各樹徒黨。其心必異。其勢必分。交相猜貳。以成禍亂。同氣之相殘。功臣之不保。恒由於此。古今之通患也。故孔子曰。古者家不藏甲。言無私兵也。禮記曰。兵革藏於私家非禮也。是謂䝱君。言人臣而有私兵。則必至強僣以䝱其君也。聖人立法垂訓。以防後世之患。可謂至矣。昔宋太祖卽位之初。從容談笑。能解功臣兵權。使得保全。可爲後世之法。魯之三家。晉之六卿。漢末之群雄竝起。唐季之蕃鎭跋扈。皆畜私兵以構其亂。亦可爲後世之戒也。惟我太上主開國之初。特置義興三軍府。專掌兵權。規模宏遠。而時議者以爲革命之初。人心未定。當備不虞之變。宜令勳親各典私兵。以應倉卒。由是私兵未能盡除。而典兵者反謀煽亂。禍在不測。幸賴上天啓佑殿下。靖難定社。式至今日。私兵之議。尙復如舊。因循未除。臺諫已嘗上章請罷。殿下以宗親勳臣可保無他。使復典之。未幾。蕭墻之禍發於至親。由是觀之。私兵之置。徒以生亂。未見其益。臺諫之言。亦已驗矣。然私門之兵。今亦未罷。將來之患。誠不可不慮也。又况外方各道軍馬。分屬諸節制使。或稱侍衛。或稱別陴及私伴倘。番上之煩。徵發之擾。其弊甚多。陪從之衆。田獵之數。其勞亦極。人飢馬困。暴露雨雪。宿直私門。衆心咨怨。甚可愍也。方今巨弊。莫甚於此。願自今悉罷各道留京諸節制使。以京外軍馬盡屬三軍府。以爲公家之兵。以立體統。以重國柄。以攝人心。除兩殿宿衛外私門宿直。悉皆禁斷。朝路毋令私伴持兵根隨。以應古者家不藏甲之義。以防後日交猜搆亂之端。國家幸甚。
[주1] 노(魯) 나라의 삼가(三家) : 노 나라의 대부로 정사를 마음대로 한 맹손씨(孟孫氏)ㆍ숙손씨(叔孫氏)ㆍ계손씨(季孫氏)를 말한다.
[주2] 진(晉) 나라의 육경(六卿) : 진 나라의 강신(强臣)인 지(智)ㆍ범(范)ㆍ중행(中行)ㆍ한(韓)ㆍ위(魏)ㆍ조(趙) 6성(姓)을 말한다. 결국 진 나라는 이들 중의 한ㆍ위ㆍ조 3성에 의해 3분되었다.
[주3]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 : 이성계(李成桂)는 고려 우왕(禑王)을 폐하고 창왕(昌王)을 세운 뒤, 그 사병(私兵)의 군영(軍營)을 도총중외제군사부(都摠中外諸軍事府)라 부르다가 조선 건국 직후 이 이름으로 고쳤다. 정종(定宗) 2년에 중추원(中樞院)을 합치고, 태종(太宗) 원년에 승추부(承樞府)로, 3년에 삼군 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라 고치고, 세조 12년에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라 칭하였다.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 정태현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