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 (8) 심봉사, 몽운사 주지승을 만나, 공양미 삼백 석을 약속하다.
심청이 승상 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심청이 일어서며 부인전에 여쭙기를,
"부인의 덕택으로 종일토록 놀다 가니 영광이 비할데 없사오나 해가 저물어 이만 집으로
돌아가겠나이다." 하였다.
이에 부인이 섭섭해 하며 비단, 패물과 함께, 양식을 주어 시비를 함께 보내며,
"심청아 말 들어라. 너는 나를 잊지 말고 모녀 간의 의를 두기 바란다."
"부인의 어진 처분 누누히 말씀하시니 가르침을 받겠나이다." 하며,
하직 인사를 올리고 돌아왔다.
한편, 심봉사는 무릉촌에 딸을 보내놓고 , 말벗 없이 혼자 우두커니 앉아 딸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는 고파 뱃가죽은 등에 붙고 방은 추워 썰렁하고 추녀 밑에 잘 새는 푸득대며 날아 드는데
먼 데 있는 절에서 치는 쇠북 소리까지 들리는바, 틀림없는 저녁인데 청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조바심을 일으키며 사립문 쪽 으로 귀를 바싹대고 있었다.
"우리 딸 청이가 응당 쉬이 오련만 , 무슨 일에 골몰하여 날 저무는 줄 모르는가 ? 부인이 잡고
안 놓는가? 풍설이 스슬하여 추워서 못 오는가 ?" 온갖 궁상을 떨고 있을 때,
새만 푸드득 날아가도, "심청이 너 오느냐?"
낙옆이 제 풀에 버석 해도, "청이 오느냐?" 하며 ..혼자서 성(城)을 쌓아다, 부쉈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딸이 돌아오는 기척이 없으니, 심봉사 가깝하여 지팡 막대 걸터 짚고
더듬더듬 , 딸 오는 길로 마중을 나갔다.
이렇듯 더듬거리며 주춤대며 동리 어귀로 나가는데 개천 비탈에 이르러 발을 삐긋 하며 미끄러지더니
데굴데굴 굴러 개천에 풍덩 잠기게 되었으니 , 면상에는 진흙을 뒤집어 쓰고 ,의복은 다 젖었다.
깜짝 놀라 개천에서 발을 빼려고 할수록 더 빠져들게 되었고 사방에 물 조차 출렁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니 , 심봉사 덜컥 겁내어 소리를 지르는데,
"아무도 없소 . 사람 살리시오."
몸이 점점 깊이 빠져 허리에 물이 도니,
"아이고 나 죽는다."
차차 물이 더 올라와 목에 가지런해 지자,
"허푸허푸, 아이고 사람죽어."
내인거객이 끊어진 저녁에 누가 있어 심봉사를 건져줄꼬 ?
그때 몽운사 화주승이 절을 중창하려고 권선문을 둘러메고 시주 집에 내려왔다가 절을 찾아
올라가던 중 심봉사의 외침을 히미하게 들었다.
"이 울음 소리가 어디서나는고 ?"
중이 소리난 곳을 찾아가니 어떤 사람이 개천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다.
중이 깜짝 놀라 굴갓과 장삼을 훌훌 벗어 던지고 짚었던 구절 죽장조차 내 던져두고 행전,댓님,
버선을 날래게 벗고 ,누비바지 아래를 둘둘 말아 자개미에 딱 붙인 후 ,징검징검 심봉사 곁으로
들어가 허리를 후려 안고 , 어뚜름 이엉차 밖에 앉힌후 , 자세히 보니 이전에 보았던 심봉사라 ..
"허허 ,이게 웬 일이오."
심봉사 정신을 차려,
날 살린 이 누구시오."
"소승은 몽운사 화주승 올시다."
"그렇지 활인지불이로군 ! 죽을 사람을 살려 주시니 은혜 백골난망이오."
중이 심봉사 손을 잡고 인도하여 그의 집에 이르러 방안에 앉힌후, 젖은 의복을 벗겨 놓고 마른 의복을 입힌후에 ,물에 빠진 내력을 물었다.
심봉사가 신세 자탄하며 전후사에 말을 하니 중이 말 하기를 ,
"우리 절 부처님은 영험 하시어 빌어서 안 되는 일이 없고 구하면 모두 응 하시나니 , 부처님전에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로 올리시고 지성으로 빈다면 생전에 눈을 떠서 광명천지 만물, 좋은 구경을
하실 것이요, 아울러 흠이 없는 사람이 될것 입니다."
심봉사 그 말을 듣고 처지는 생각 않고 눈 을 뜰수 있다는 말 만 반가워서,
"이보시오 대사 !. 공양미 삼백석을 권선문에 적어 가시오."
그러자 중이 허허 웃으며 말하되,
"적기는 적지만 댁의 가세를 둘러보니 삼백 석은 주선할 길이 없을 듯하오."
심봉사 불쑥 화를 내며,
"여보소 ,대사가 사람을 몰라 보네. 어떤 실없는 사람이 천상천하 유아독존,대자대비한 부처님 앞에서
빈 말을 한단 말이오. 거짓을 약속타가 눈도 못 뜨고 앉은뱅이마저 되게. 사람을 너무 재미 없게
여기지 마시오. 당장 적어, 그렇지 아니하면 칼 부림이 날 터이니."
화주승이 허허 웃고 권선문에 올리기를 제일층 홍지(紅紙)에
"심학규 쌀 삼백 석"이라 대서특필 하였다.
작성자 소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