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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장 1-3절.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음
1절.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you were dead in your trespasses and sins,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καὶ ὑμᾶς ὄντας νεκροὺς τοῖς παραπτώμασιν καὶ ταῖς ἁμαρτίαις ὑμῶν,
and you being dead in the trespasses and the sins of you
직역하면 ‘너희의 허물들과 죄들로 죽어 있는 너희들’이란 뜻입니다.
‘살리셨도다’는 원문에 없고, 한글성경에 의미상으로 삽입한 것입니다.
‘있는’(ὄντας)이란 동사는 현재분사로서(being) 계속 죽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너희
1절의 “너희”와 2절의 “너희”는 이방인들을 얘기하고 3절의 “우리”는 유대인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기 전에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 다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은 불신자는 누구도 예외 없이 영적으로 죽은 존재입니다.
2. 허물
“허물과 죄”가 원문에는 복수형(τοῖς παραπτώμασιν καὶ ταῖς ἁμαρτίαις: the trespasses and the sins)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죄를 짓는 타고난 경향을 지니고 있어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짓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허물’(παράπτωμα)은 ‘잘못된 발걸음, 불법 침해, 탈선, 타락, 미끄러짐, 죄’(false step, a trespass, falling away, lapse, slip, false step, sin)를 가리킵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난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 허물에 해당하는 죄들이 로마서 1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로마서 1:28-31.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 죄
‘죄’(ἁμαρτία)는 원래 ‘표적을 맞추지 못한 것, 화살이 빗나간 것’( missing the mark)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죄책, 죄’(guilt, sin), ‘윤리적으로 잘못한 것, 실패한 것’(fault, failure in an ethical sense), ‘죄악된 행동’(sinful deed)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법에 따르지 않고 빗나가서, 하나님의 법의 표준에 이르지 못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빗나갔고, 그런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이런 허물과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존재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란 십계명이나 율법의 규정에 분명히 기록된 계명을 어긴, 우상숭배 죄나 귀신 제사나, 살인 간음 도적질 부모 거역, 사기, 거짓 증거 등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죄는 종교법으로 처벌을 당하고 세상법으로도 처벌을 당하기도 합니다.
4.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1) ‘죽었던’은 원문에(ὄντας νεκροὺς) 과거가 아닌 현재분사(being dead)로 되어 있습니다.
즉 허물과 죄들로 죽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죽은’(νεκρός)이란 형용사는 ‘죽은, 생명이 없는, 죽게 된, 죽을 수밖에 없는’(dead, lifeless, subject to death, mortal)이란 뜻이고, 명사적으로 쓰일 때는 ‘죽은 몸, 시체’(noun: a dead body, a corpse)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죽은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치 전기가 스위치로 단절되어 있으면, 전등이 죽어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불신자들이 사람들이 어떤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2절에 ‘행하여’(περιεπατήσατε)는 삶의 방식, 행동 방식(conduct my life, living style)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불신자들도 다 육신적인 삶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의 삶은 영적으로는 죽은 상태에서 사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2)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즉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고 범죄함으로써 인류는 영적인 사망에 이르러 하나님과의 교통의 관계가 끊어지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3) 죽음이란 관계가 끊어진 것을 가리킵니다.
텔레비전에 전선이 열결되어 있으나, 화면이 나오지 않은 것은 그 텔레비전이 죽은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통 소식이 없고, 전화도 없고 찾아오지도 않으면, ‘그 자식은 죽은 자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도 도무지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고, 성령님의 교통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도 없고, 예배도 없는 그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4)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도 과거에는 허물과 죄를 죽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9장에 기록된 대로,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 3년간 전도하여, 에베소 사람들이 아데미 우상숭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인들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과거에 우리나라도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는 미신이 가득한 나라였습니다.
어디를 가려고 해도 그쪽에 손이 있나 없나를 보고, 손이 있다고 하면 꼭 가야 할 곳도 가지 않았고, 미신 때문에 부엌도 고치지 못했고, 집안에 샘도 파지 못했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무당을 불러서 푸닥거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워서, 미신이 많이 물러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주 작명, 아기 출산 택일, 부적, 귀신 제사, 무덤 명당이란 미신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5. 살리셨도다
이 ‘살리셨도다’는 말은 원문에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설명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2절.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 which you formerly walked according to the course of this world, according to the prince of the power of the air, of the spirit that is now working in the sons of disobedience.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ἐν αἷς ποτε περιεπατήσατε,
in which then you walked,
‘행하여’(περιεπατήσα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walked) 과거에 행했던(살았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 가운데서’란 ‘허물과 죄로 죽은 가운데서’란 뜻입니다.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κατὰ τὸν αἰῶνα τοῦ κόσμου τούτου,
according to the age of the world of this
‘따르고’(κατὰ)는 전치사인데(according to) 동사 형식으로 번역했습니다,
원래는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너희가 행했다’는 뜻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κατὰ τὸν ἄρχοντα τῆς ἐξουσίας τοῦ ἀέρος,
according to the ruler of the authority of the air,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τοῦ πνεύματος τοῦ νῦν ἐνεργοῦντος ἐν τοῖς υἱοῖς τῆς ἀπειθείας·
the spirit of the now working in the sons of the disobedience
‘역사하는’(ἐνεργοῦντος)은 현재분사로서(working) 현재도 역사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즉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가 불순종의 아들들(불신자들) 가운데서 지금도 역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그 때에’란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때’를 가리킵니다.
즉 허물과 죄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던 때를 가리킵니다.
한 마디로 예수 믿기 전을 가리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 사도가 전도하기 전에는 아데미 우상신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54-56년 3년간 에베소에서 전도함으로써 에베소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지금 이 에베소서를 쓸 때는 62년이므로, 에베소 교인들이 믿기 전이란 54년 이전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그 때’란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로부터 8년 전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에베소 교인들이 예수 믿기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은 가운데서 행하여’ 하나님과 단절되고 영적으로 죽은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2.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1) 불신자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된 생활을 하니까, 자연히 마귀를 따랐고, 이 세상 불신 풍조를 따라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단절되면, 반드시 불신 풍조와 마귀를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무 종교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지만, 불신 풍조를 따라 살고, 마귀를 따라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든지 마귀를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자신이 마음의 주인이 되어서, 자신의 지정의에 따라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지정의도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을 따라 살아가든지, 아니면 마귀가 주는 생각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울 왕도 하나님의 신이 떠나니까, 악신이 들어갔습니다.
사무엘상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이처럼 사람의 마음은 그릇과 같아서 성령님이 들어가시든지, 마귀가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진공 상태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에는 하나님의 신이 떠나니까, 그 자리에 일곱 귀신이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물론 기도하여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인간의 지정의가 정상적이고 온전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기도 하지 않고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마귀가 유혹하고, 이끌어서 지정의가 비뚤어지고, 악하게 변질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에는 성령을 따라 살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또한 로마서 8장에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13-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님을 따라 사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기도할 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2)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이 세상의 풍조’란 원문(τὸν αἰῶνα τοῦ κόσμου τούτου)에 ‘이 세상의 세대’(the age of the world of this)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이 세상의 세대’란 1장 21절의 “오는 세상(세대)”(τῷ αἰῶνι τούτῳ, μέλλοντι: the age this, coming) 즉 천국과 대조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에는 이 세상의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적으로 죽은 불신자는 무엇에 지배되어 살아가고 있을까요?
첫째는 2절에 이 세상 풍조요, 둘째는 사탄이요 셋째는 3절에 육체의 욕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상’(κόσμος: world)이란 ‘세상 질서, 우주, 세상살이, 세상의 관습( order of the world, universe; worldly affairs; the inhabitants of the world)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세상”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도 세상입니다.
원래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아름답게, 하나님 보시기에 좋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많이 악하게 변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이 많이 오염되어 있고, 기후 변화도 많이 악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란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했는데, 여기서 ‘세상’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본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을 떠난 불신 세상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사는 것과 불신적인 종교와 문화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18-1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일서 2장에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 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즉,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불신앙적인 세상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바울 당시에 에베소의 세상 풍조는 불신 풍조였습니다.
즉 태반의 사람들이 아데미 우상숭배의 풍조를 따랐고, 우상 귀신에게 제사하고, 술 먹고 음행하고, 악하게 싸우고, 거짓말하는 불신 풍조를 따라 살았습니다.
이러한 불신 풍조는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태반의 사람들은 귀신에게 제사하고, 무덤에 절하고, 술 먹고 음행하고, 악하게 싸우고 거짓말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불신 풍조를 따르는 사람들이 태반으로 많기 때문에, 이런 불신 풍조가 올바른 줄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인들은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이런 불신 풍조를 배척했습니다.
그러자 불신자들은 에베소 당시에나 오늘날도 귀신 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런 불신자들의 미움을 이상하게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베드로전서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추석 명절과 구정 명절에 세상 풍조가 귀신에게 제사하고 우상숭배를 하더라도,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은 이런 세상 풍조를 따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시기 바랍니다!
(3)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서 ‘공중’(ἀήρ: air)이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낮은 공중“(the lower air which we breathe)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우주를 셋으로 나누어 생각했는데, 지상은 사람이 사는 곳, 공중은 마귀가 있는 곳, 천상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공중의 권세잡은 자’란 사탄 마귀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마귀는 공중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 사회에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사탄 마귀의 악영향으로 귀신에게 제사하게 만들고 우상숭배 하게 만들고 온갖 죄를 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요한1서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10:30-31.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요한복음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리라.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사탄 마귀를 섬기는 불신자들은 마귀가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마귀는 불신자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하면서, 온갖 죄를 짓게 만들고, 결국 가정이 파괴되고 멸망에 이르게 하지만, 성령님은 거룩하게 살도록 하셔서 평안과 행복을 갖게 만듭니다.
불신자들은 술 먹고 방탕하고 거짓말하고 싸우면서 자유를 만끽한다고 하면서, 성도들이 거룩하게 사는 것을 비방하지만, 이 세상에서나 내세에서도 심판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4-5.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사탄 마귀는 불신자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하고, 불신자들은 ‘죄악의 낙’(히 11:25)을 누리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된 자유이고,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가는 것은 자유가 아닌 죽음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참된 자유입니다.
요한복음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불신자들이 제사하는 곳이나, 음란 공연하는 곳이나, 술집에 가면,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 풍조가 있는 곳이므로, 성령님의 은혜를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의 음악 같은 것을 들으면, 성령님의 은혜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배드리는 곳이나 기도회 같은 곳에는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음란한 공연장에는 마귀가 역사하고 있구나 생각하시고, 예배와 부흥회와 기도회와 찬양집회 같은 곳에는 성령님이 역사하고 있구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모임에 갈 때, 성령님이 역사하는 모임인가, 마귀가 역사하는 모임인가를 잘 살피셔서, 항상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란 악마 사탄을 가리킵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이란 불신자들을 가리키고, ‘순종의 아들들’이란 성도를 가리킵니다.
이 불순종의 아들들이란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로마서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역사하는’(ἐνεργέω: 에네르게오)이란 말은 마귀가 불신자 마음에 에너지를 공급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범죄하고 죽는 길로 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그 안에서 역사하여,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전서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불신자 속에 마귀가 역사한다는 것은 꼭 불신자가 정신 이상자라는 뜻이 아니고, 스스로 논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선하게 살아가기도 하지만, 영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은 신 불신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일반 은총’(common grace)이 있어서, 선한 양심과 과학적인 이성과 하나님에 대한 신지식을 상당히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 불신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의해서, 도덕 생활을 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과학 문명을 발전시키고, 아름다운 예술 활동을 하고, 의술로써 건강을 추구하고, 공동의 사회정신과 공서양속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자연이 부패하게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이 일반 은총(common grace)과 자연 은총(natural grace)은 우리 인간에게 너무도 소중한 하나님이 아직도 남겨놓으신 대단히 중요한 은총들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영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불신자는 마귀 편에 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과 어둠이 조화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고린도후서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요한1서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에베소 교인들도 원래는 불순종의 아들들로서 마귀의 자녀들이었으나, 바울 사도의 전도로 순종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함으로써, 불신자들을 마귀의 손에서 구원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6:10-18.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3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mong them we too all formerly lived in the lusts of our flesh, indulging the desires of the flesh and of the mind, and were by nature children of wrath, even as the rest.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ἐν οἷς καὶ ἡμεῖς πάντες ἀνεστράφημέν ποτε ἐν ταῖς ἐπιθυμίαις τῆς σαρκὸς ἡμῶν,
among whom also we all were lived then in the desires of the flesh of us
‘지내며’(ἀνεστράφημέ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lived) 과거에 육체의 욕심들을 따라 지냈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ποιοῦντες τὰ θελήματα τῆς σαρκὸς καὶ τῶν διανοιῶν,
doing the things willed of the flesh and of (its) thoughts
‘하여’(ποιοῦντες)는 현재 분사로서(doing) ‘항상 --하면서’ 지냈다는 뜻입니다.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καὶ ἤμεθα τέκνα φύσει ὀργῆς, ὡς καὶ οἱ λοιποί·
and we were being children by nature of wrath, as even the rest
‘이었더니’(ἤμεθα)는 미완료과거로서(we were being) 계속 진노의 자녀로 살아온 것을 가리킵니다.
1.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유대인들을 말하는데, 바울도 여기에 포함이 됩니다.
여기서 유대인을 지적하는 것은 이방인과 차이가 난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도 이방인과 똑같이 마귀의 종노릇 한 가운데 있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마귀의 자식임을 지적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러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마귀를 섬기고, 마귀 섬기는 풍습이 깊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즉, 명절 때 제사하고, 사주팔자 보고, 결혼이나 이사할 때 택일하고, 아기 작명하고, 풍수 지리 하고, 자동차 사거나 건축할 때 고사 지내고, 49제 하면서 귀신에게 밥 차려놓는 이런 일들을 많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지 않는 가정과 불신 결혼하면, 좋은 사돈 관계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고린도후서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또한 믿지 않는 자와 동업하거나 계모임을 하는 것도 고사 지내는 문제나 주일 문제로 원만한 관계를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강압으로 불신 가정에 시집 갔거나, 직장 문제로 이민을 갔을 때라도, 신앙을 지키고,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소녀는 아람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나아만 장군에게 전도했습니다( 열왕기하 5장).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생겼을 때, 전도자 빌립은 사마리아 지방에 가서 교회를 세웠고(행 8장), 안디옥으로 도망간 성도들은 안디옥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행 11장).
2.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1) ‘욕심’(ἐπιθυμία)이란 단어는 원래 좋은 의미의 욕망이나 소원을 가리키나(desire, eagerness, longing), 나쁜 의미로 욕심이나 욕정이나 과도한 욕망(passionate, lust, inordinate desire)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도 최후의 성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먹기를 원하고 원하셨다고 했습니다(누가복음 22:15. Ἐπιθυμίᾳ ἐπεθύμησα).
그러나 본문의 ‘육체의 욕심’은 나쁜 뜻으로 쓰였습니다.
(2) ‘육체’(σάρξ)란 사람의 몸이나 육체를 가리키고(body, flesh), 사람이나 인류나 세상을 가리키고(man, mankind, world, earth), 인간의 본성(human nature)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모든 육체는 풀이요”(이사야 40:6)라고 했을 때, 육체는 인류 전체를 의미합니다.
본문에서 ‘육체’는 타락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인간의 본성(sinful nature)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육체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과 대치가 된다고 했습니다(로마서 8:6-7).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우리 육체를 학대해서는 안 됩니다.
금욕주의자들은 육체를 학대했고, 가현설 이단자들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를 잘 보양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에서 ‘육체’는 죄악 된 본성을 가리키고, 여기서 ‘마음’(διάνοια)이란 ‘마음, 성질, 생각, 이해력, 통찰력, 지능’(mind, disposition, thought, understanding, insight, intellect)을 가리킵니다.
‘마음’이란 보통 좋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즉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고 했습니다,
또 우리에게 지각(διάνοια:마음)을 주사 참된 자를 알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5:20).
그러나 본문에서는 나쁜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는 ‘만물보다 심히 부패하고 거짓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5장 18-20절에서 ‘마음에서 온갖 악한 생각이 나온다’고 하셨을 때, ‘마음’(καρδία: heart)은 다른 단어입니다.
(4) ‘원하는 것’(θελήματα)은 복수형이고(things willed) 단수형(θέλημα)은 ‘뜻, 의지, 의지의 행동’(will, act of will)을 가리키고, 복수형은 ‘원하는 것들, 소원들’(wishes, desires)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나의 뜻대로 심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요한복음 5:30).
또한 ‘사람의 뜻’(θελήματι ἀνθρώπου)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베드로후서 1:21).
본 절에서 ‘원하는 것들’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즉 예수 믿기 전에는 인간 자신의 계획이나 생각대로 살고, 부패한 인간 마음의 뜻을 따라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성도는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ἐπιθυμίαν σαρκὸς)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19-23.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여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새 힘을 얻어서, 육체의 소욕을 극복하고, 세상 마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3.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진노’(ὀργή)란 ‘충동, 격노, 분노, 격정, 복수’(impulse, wrath, anger, wrath, passion; vengeance)를 가리키며,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심히 격노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진노의 자녀’란 ‘지옥 자식’(마태복음 23:15)과 같이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시지만, 마귀의 자녀들을 지독히 미워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이 다른 여자에게서 자식을 낳아오면, 서자라고 해서 아주 미워했습니다.
지금도 어떤 부인은 전처의 자식이 너무나 미워서, 잔인하게 학대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옛날 장화홍련전에 보면, 전처의 자식을 계모가 무척 괴롭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마귀의 자식은 진노의 자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6-7.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예수님께 순종하지 않는 불신자 위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웬 은혜인지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의 자녀가 된 것을 지극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도하시고 하나님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성령님 모시고 복된 생활 승리의 생활 해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