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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3장 1-7절. 통치자들과 불신자들에 대한 태도
1절.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Remind them to be subject to rulers, to authorities, to be obedient, to be ready for every good deed,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Ὑπομίμνῃσκε αὐτοὺς, ἀρχαῖς, ἐξουσίαις ὑποτάσσεσθαι,
remind them to rulers, to authorities, to be subject
직역하면 ‘그들이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도록 기억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복종하도록’(ὑποτάσσεσθαι)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 subject) 항상 복종하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ὑποτάσσω)은 ‘아래에’(ὑπό)와 ‘배열하다’(τάσσω)의 합성어입니다.
‘기억하게 하라’(Ὑπομίμνῃσκ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remind)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는 것이며, 원형( ὑπομιμνῄσκω)은 ‘기억하게 하다, 생각하게 하다’( cause one to remember, remind)는 뜻입니다.
개역성경에는 ‘기억하게 하라’가 2절 끝에 나와 있습니다.
순종하며
πειθαρχεῖν,
to be obedient
직역하면 ‘순종하도록 (기억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순종하도록’(πειθαρχεῖν)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 obedient) 항상 순종하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πειθαρχέω)은 ‘설득하다’( πείθω)와 ‘통치하다’(ἄρχω)의 합성어입니다.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πρὸς πᾶν ἔργον ἀγαθὸν, ἑτοίμους εἶναι,
for every work good, ready to be
직역하면 ‘모든 선한 일에 대해서 준비하도록 (기억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준비하도록’에서 동사(εἶναι)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 항상 준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1.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당시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탄압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권력자에게 항거하려는 마음이 강했고, 더구나 그레데 섬 사람들은 로마 정권에 항거하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기본 자세로서 권력자에게 복종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복종하고 순종하라’(ὑποτάσσεσθαι, πειθαρχεῖν)는 것은 마음에 안 맞더라도 억지로라도 복종하고, 마음에 맞은 것은 순종하라는 것이어서, 결국 국가 권력에 맞서 대항하지 말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2. ‘모든 선한 일을 행하도록 준비하라’는 것은 소극적으로 권력자에게 복종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한 일을 해서 칭찬을 받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로마서 13:1-3.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베드로전서 2:13-15.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2절.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o malign no one, to be peaceable, gentle, showing every consideration for all men.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μηδένα βλασφημεῖν,
no one to blaspheme
직역하면 ‘아무도 비방하지 않도록’ (기억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비방하지 않도록’에서 동사(βλασφημεῖ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laspheme) 항상 비방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투지 말며
ἀμάχους εἶναι,
peaceable to be
직역하면 ‘다투지 않도록 하는’ 것을 (기억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앞의 단어(ἀμάχους)는 ‘아니’(ἄ)라는 접두어와 ‘싸움’(μάχη)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다투지 않는 것’(abstaining from fighting, not contentious)을 의미합니다.
관용하며
ἐπιεικεῖς,
gentle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πᾶσαν ἐνδεικνυμένους πραΰτητα πρὸς 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
all showing humility toward all men
직역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겸손을 나타내 보이면서’라는 뜻입니다.
‘나타내 보이면서’(ἐνδεικνυμένους)는 현재 분사로서(showing) 항상 보이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ἐνδείκνυμι)은 ‘안에’( ἐν)와 ‘나타내 보이다’(δείκνυμι)의 합성어로서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다, 입증하다’( show forth by word or act, prove)라는 뜻입니다.
‘기억하게 하라’는 원문에 1절 초두에 나와 있습니다.
1. 본 절은 불신자들에 대해서 성도들이 취해야 할 태도를 교훈한 것입니다.
‘비방하지 말라’는 것은 불신자들이 비난받을 악한 일을 했을 때, 사람들이 그들의 악행을 비방하고 욕할지라도, 우리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비방하거나 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다투지 말고 관용하라’는 것은 불신자가 무고히 기독교를 비난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무고히 욕해도, 그들과 똑같이 다투지 말고 관대히 대하라는 것입니다.
3. ‘온유함을 나타내라’는 것은 괜히 기독교인을 얕보고, 건들고 시비하는 불신자가 있어도, 모세나 주님이 참으시는 것처럼 온유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민수기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이처럼 우리가 온유한 태도를 가져야 할 이유는 3절에 말씀한 대로 우리가 과거에 불신자들처럼 죄악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겸손히 잘 참으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므이가 돌을 집어던지면서 욕했을 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겸비한 마음 자세로 시므이의 악행을 참았습니다.
사무엘하 16: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3절.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e also once were foolish ourselves, disobedient, deceived, enslaved to various lusts and pleasures, spending our life in malice and envy, hateful, hating one another.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Ἦμεν γάρ ποτε καὶ ἡμεῖς ἀνόητοι,
were being for once also we thoughtless
직역하면 ‘왜냐하면 우리도 그 때는 지각이 없는 자였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즉, 2절에서 불신자들의 악행을 참아야 될 이유가 바로 전에 우리도 어리석은 자였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동사(Ἦμεν)는 미완료 과거로서(were being) 계속 어리석은 자로서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어리석은’(ἀνόητοι)은 ‘아니’( ἄ)이란 접두어와 ‘지각이 있다’(νοέω)란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ἀπειθεῖς,
disobedient
이 단어는 순종하지 않는(disobedient) 것을 가리키면서, 불신하는( unbelieving) 것을 가리킵니다.
속은 자요
πλανώμενοι,
being misled
‘속은 자요’(πλανώμενοι)는 현재 분사 수동태로서(being deceived) 항상 잘못된 길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πλανάω)은 ‘방황하게 만들다’(cause to wander)는 뜻인데, 수동태는 ‘잘못된 길로 가다’( be misled)는 뜻입니다.
Usage: I lead astray, deceive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δουλεύοντες ἐπιθυμίαις καὶ ἡδοναῖς ποικίλαις,
enslaving to lusts and pleasures various
‘종노릇 한 자요’(δουλεύ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enslaving) 항상 종노릇 하면서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ἐν κακίᾳ καὶ φθόνῳ διάγοντες,
in malice and envy carrying over
직역하면 ‘악독과 투기 가운데서 살면서’란 뜻입니다.
‘일삼는 자요’(διάγοντες)는 현재 분사로서(carrying over) 항상 악독과 투기 가운데서 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가증스러운 자요,
στυγητοί,
detestable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μισοῦντες ἀλλήλους.
hating one another.
직역하면 ‘서로 미워하면서’란 뜻입니다.
‘미워하면서’(μισοῦ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hating) 항상 서로 미워하면서 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우리도 전에는’이란 예수님 믿기 전을 가리킵니다.
‘어리석은 자’란 지각이 없는 자(thoughtless)를 가리킵니다.
즉 ‘어리석은 자’란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는 자를 가리키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지 못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고린도전서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시편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53:1)
2. ‘순종하지 아니 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unbelieving),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disobedient)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3. ‘속은 자’란 마귀에게 속고,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에 속고, 자신의 정욕에 속아서 잘못된 길을 가는(be misled) 것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전서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4.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란 과거 불신 시대에 육신의 정욕과 쾌락에 종노릇 한 것을 가리킵니다. (롬 1:24-27)
5. ‘악독과 투기를 일삼는 자’에서 ‘악독’이란 인간의 본성적인 악독함을 가리키고, ‘투기’란 남을 투기하고 미워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불신자일 때는 근본적으로 사랑을 모르고, 악독한 마음을 품고 투기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6. ‘가증스러운 자’란 하나님이 싫어하는(detestable) 자요, 사람들끼리도 서로 싫어하는 자란 뜻입니다. (1:16)
7. ‘피차 미워하는 자’란 인간적인 우애나 사랑이 없이 서로 미워하는 불신자의 삶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불신자는 이런 악독한 상태에서 살고 있으나, 예수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성도는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됩니다.
물론 성도들도 때로는 성령의 인도를 놓치고 이런 악한 인간의 본성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갈 5:19-23)
4절.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hen the kindness of God our Savior and His love for mankind appeared,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ὅτε δὲ ἡ χρηστότης καὶ ἡ φιλανθρωπία ἐπεφάνη
when however the kindness and the love of men appeared
직역하면 ‘그러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신이 나타났을 때’란 뜻입니다.
‘나타났을 때’에서 동사(ἐπεφάνη)는 부정과거로서(appeared) 과거에 확실히 나타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사람 사랑하심’(φιλανθρωπία)은 ‘사랑’(φίλος)이란 단어와 ‘사람’(ἄνθρωπος)이란 단어의 합성어로서, ‘박애’라는 영어(philanthropy)의 어근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τοῦ Σωτῆρος ἡμῶν, Θεοῦ,
of the Savior of us, God
1. ‘우리 구주 하나님’이란 표현은 구주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표현하는 말로서, 목회서신에 자주 나타납니다. (딤전 1:1, 2:3, 4:10, 딛 1:3, 2:10, 2:13, 3:4)
2.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인간 사랑’이란 3절에 기록된 인간의 죄악 때문에 인간은 멸망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 구주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죄악을 대속하시고 부활 승청하셔서, 인간을 죄악과 멸망에서 구원해주신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로마서 11:30-32.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 ‘나타났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나타나심을 가리키는데( Christ's visible appearance) 역사적으로 과거에 예수님이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을 가리키고(the first coming), 다른 데서는 예수님이 두 번째 재림하실 것도 가리키는 말입니다. (히 9:8, 살후 2:8)
즉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구원의 은혜가 역사적으로는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나타났지만, 우리 개인적으로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성령으로 거듭날 때, 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한없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고, 우리의 죄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통회 자복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요 3:5) 거듭난 체험(experience of born again)입니다.
5절에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가 143장.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5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He saved us, not on the basis of deeds which we have done in righteousness, but according to His mercy, by the washing of regeneration and renewing by the Holy Spirit,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οὐκ ἐξ ἔργων τῶν ἐν δικαιοσύνῃ ἃ ἐποιήσαμεν ἡμεῖς
not from works of the in righteousness that we did we
‘우리’(ἡμεῖς)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행한’(ἐποιήσαμεν)은 부정과거로서(we did) 과거에 확실히 행한 것을 가리킵니다.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ἀλλὰ κατὰ τὸ αὐτοῦ ἔλεος
but according to the His mercy
우리를 구원하시되---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ἔσωσεν ἡμᾶς διὰ λουτροῦ παλινγενεσίας καὶ ἀνακαινώσεως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He saved us through washing of regeneration and renewing of Spirit Holy
직역하면,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그가 구원하셨다’는 뜻입니다.
‘그가 구원하셨다’(ἔσω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aved) 과거에 확실히 구원하신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우리를 구원하시되’(ἔσωσεν ἡμᾶς)란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다’((He saved us)는 뜻으로서, 과거에 확실히 구원하신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을 가리킵니다.
본 절은 로마서에 기록된 웅장한 구원론을 단 한 절로 표시한 위대한 구원이 구절입니다.
2.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의로운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옷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64:6)
우리 인간의 본성은 아담 이후로 타락하여, 3절에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짓되고, 더러운 정욕이 가득하고, 방탕하고, 악독과 투기가 가득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4절에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이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속량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고, 죄로 인해 마귀에게 붙잡혀 있던 우리를 마귀에게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형벌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으나, 우리는 지옥 형벌에서 해방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의 대속적인 희생과 죽음으로 인해서 죄과 마귀와 지옥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갈 2:16-17).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엡 2:8-9, 롬 4:4-5).
로마서 11:5-6.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3.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구원해주셨습니다.
이 ‘긍휼’이란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시 103:13)
하나님께서는 피투성이가 되어 버려진 아이 같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살려주신 것입니다 (겔 16:4-6).
모든 이방인들이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고, 장차 유대인이 구원받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긍휼로 될 것입니다.
로마서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로마서 11:30-32.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4. ‘중생의 씻음’(λουτροῦ παλινγενεσίας:washing of regeneration)이란 성령께서 우리 죄를 씻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중생의 씻음의 결과로 물세례를 받습니다.
‘씻음’이란 물로 씻음(washing with water)이나 물로 목욕하는 것(bath of water)을 가리킵니다.
‘중생’(παλιγγενεσία)이란 ‘다시’(πάλιν)와 ‘태어남’( γένεσις)의 합성어로서, 육신으로 죄인으로 태어났으나,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것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는 ‘위로부터 태어났다’(γεννηθῇ ἄνωθεν: be born from above)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5.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란 에스겔 37장의 해골 떼에게 성령의 생기가 불어 들어가니 해골 떼가 살아나서 큰 군대를 이룬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에스겔 37:9-10.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또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된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즉 죄로 죽은 인간이 예수님의 피로 씻어서 깨끗하게 되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것이 아니고, 성령님께서 새롭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셔야 비로소 구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을 봐도, 처음 예수 믿을 때, 눈물 콧물 흘리면서 죽을 죄를 회개하는 중생의 씻음을 경험했지만, 성령님께서 새롭게 해주셔서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섬기는 새로운 마음을 주셔야 실제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성화(聖化:sanctification)라고 합니다.
이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새출발하는 것이고, 이 성화의 삶은 평생 성령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함으로써, 평생 지속되는 과정입니다.
빌립보서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우리는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 충만과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아서, 날마다 새롭게 하심을 받아 나가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주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주님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om He poured out upon us richly through Jesus Christ our Savior,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οὗ ἐξέχεεν ἐφ’ ἡμᾶς πλουσίως
whom He poured out upon us richly
직역하면 ‘그를(성령을) 우리에게 풍성히 그가 부어주셨다’는 뜻입니다.
‘그가 부어주셨다’(ἐξέχεεν)는 부정과거로서(He poured out) 과거에 확실히 부어주신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τοῦ Σωτῆρος ἡμῶν,
through Jesus Christ, of the Savior of us
1.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셨다’는 것은 오순절 때 신약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신 역사적인 사건을 가리킴과 동시에, 각자 성도 개인에게 중생의 경험 때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신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행전 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도행전 10:44-45.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사도행전 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사도행전 19:6-7.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이 외에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만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교회 성도들이나 개인에게도 충만하게 임하신 사건들이 많습니다.
2.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가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셨다)는 것은 성령을 부어주신 분은 ‘그 분’(ἐξέχεεν:He poured out) 즉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διὰ: through) 부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ὑπό:by) ‘주어졌다’(수동태)가 아니고, ‘그가 성령을 주셨다’(οὗ ἐξέχεεν: whom He poured out)고 능동태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3. 이 문제는 교회 역사상 중요한 문제가 되어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Greek Orthox Church:희랍 정교회)가 갈라지는 이슈가 되었습니다.
즉 서방교회는 성령님이 하나님과 아들을 통해서(filioque: and from Son) 오신다고 주장했고, 동방교회는 성령님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신다고 주장해서, 세계 교회가 둘로 나누어진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filioque 논쟁)
그런데 구약 요엘서에서는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요엘 2:28), 이 약속대로 오순절날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행 2:16).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보혜사(성령)’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2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한편 예수님은 ‘내가 보낼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또한 예수님이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오순절에 부어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본 절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주셨다고 했습니다.
7절.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at being justified by His grace we would be made heirs according to the hope of eternal life.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ἵνα δικαιωθέντες τῇ ἐκείνου χάριτι
so that having been justified the by that grace
직역하면 ‘이는 그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어’(δικαιωθέ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justified) 과거에 확실히 의롭다 하심을 얻는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κληρονόμοι γενηθῶμεν κατ’ ἐλπίδα ζωῆς αἰωνίου.
heirs we should become according to hope of life eternal
직역하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우리가 상속자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γενηθῶμεν)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we should become) 우리가 확실히 상속자들이 되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1. 본 절은 6절에서 성령을 부어주신 목적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상속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는--우리가 상속자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ἵνα--κληρονόμοι γενηθῶμεν:so that--heirs we should become)고 표현한 것입니다.
2. ‘우리도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란 원문(δικαιωθέντες τῇ ἐκείνου χάριτι)에 ‘그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having been justified by that grace)로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우리의 선한 행위로 된 것이 아니고, 오직 그 은혜로 된 것임을 말씀한 것입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 ‘이는--영생의 소망을 따라 우리가 상속자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란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신 것은 우리 성도들이 영생 천국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은혜로 의롭게 하신 긍극적인 목적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려는 목적이란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4:6-7.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질상 죄악 투성이인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사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피 흘려 죽게 하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 자녀 삼아주신 것을 지극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옥 형벌을 받지 않게 하시고, 영생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 것을 무한히 감사하시고, 날마다 주님 모시고 영생과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