關係_관계 3202 고가연
관계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관계’를 중요시한다. 친구들과의 관계, 가족들과의 관계, 선생님들과의 관계 이런 것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내 모습 이런 모습 때문에 내 자신에 솔직하지 못하고 속이고 거짓말을 한다.
조금이라도 ‘관계’가 엇나갈까 봐 늘 ‘나’ 자신한테 주문을 걸었다.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해 행복한 척해” 내가 나를 속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이렇게 웃고 있지만 나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은 행복해 보이고 괜찮은 나를 보겠지만 나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두렵고 나를 이야기 하는 말들이 무섭다. 나의 어느새 진실은 흐릿해져 가는 사람들의 물타기에 흘러간다.
‘관계’를 위해서는, ‘나’는 괜찮은 척 더 더 괜찮은 척 행복한 척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내가 싫다. 이런 행동을 하는 내 모습이 비참해진다. 나도 ‘나’한테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내 마음을 솔직히 말하고 싶은데 ‘관계’ 라는 게 무너질까 봐 두렵다. 아니 무섭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는 자식과 부모의 관계인데 내가 지금 희망하는 진로, 아니 부모님이 나한테 희망 진로로 걸어가고 있다. 나는 과거엔 부모님께 “이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요!”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돌아오는 말은 “안될 걸 네가 배고파봐야 정신 차린다.” 그 말 돈이 최고란 말 만약 그 말을 내가 굳게 믿었다. 좋은 딸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리고 부모님과 나의 ‘관계’가 좋아질 거 같아서
하지만 나는 내 마음속에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린 서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서 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할까 평생 들은 그 말 “안돼” 안된다는 말을 왜 그렇게 쉽게 하실까? 쉽게 결정하실까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왜 그걸 부모님이 되고 안 되고는 결정하실까 내 삶인데 하지만 그땐 나자신한테 주문을 걸었다 이렇게 하면 “좋은 딸이 되는 거겠지?”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진짜 ‘나’는 행복하고 있나? 이 질문에 쉽게 답을 못한다. 난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꿈을 꾸고 싶다. ‘나’를 한 번이라도 그냥 지켜봐 주면 좋겠다. 꿈을 현실로 데려오고 싶다. 지금은 많이 늦었겠지 과거의 나 자신을 후회한다. 그놈의 ‘관계’가 뭐라고 왜 ‘나’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과거의 나’를 꾸짖고 싶다.
어느날 난 시인의 시를 보고 나의 가치관 변화에 원동력이 되었다. 그 시는 한섬 시집에 있는 [삶이, 왜 냐고 물을 때] 라는 시이다. 내 마음을 울린 구절은 ‘삶이 소중한 이유는 그 삶이 곧 나이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나의 마음을 울렸다. 이게 하나의 계기가 되어 이런 내 모습을 반성하고 성찰하려고 한다. 더 나은 ‘나’를 위해 행복한 ‘나’를 위해 ‘관계’라는 틀에 벗어나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진실한 사람이 되라면 일단 나한테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솔직하게 사람이 되지 못 해서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결과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니 그 힘든 따위를 이겨내려고 한다. 내 자신한테 진실한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관계’에 목매지 않고 ‘나’의 진실된 모습에 집중하는 내 모습, ‘관계’의 틀에 맞추는 내 모습이 아닌 진짜 내 모습에 맞추는 모습, 끝없이 위로 위로 절대 멈추지 않고 올라가는 내 모습, 괜찮은 척 행복한 척하는 내가 아닌 진심으로 괜찮고 행복해하는 내 모습, 누가 뭐라고 해도 난 ‘나’라는 거 난 그냥 내가 되고 싶다.
굳이 뭔가 되려고 아등바등하는 게 아니고 난 그냥 ‘나’일 때 완벽하다는 거, 모든 일이든 늦지 않았고 할 수 있다고 다짐하는 내 모습, 과거의 모습 반성을 통해 다시 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미래는 내게로 온다는 거, 아프도록 시린 과거는 실은 미래 봄을 향해 달려왔다는 거, 과거에는 넘어지는 법만 배웠다면 지금은 일어나는 법도 배웠다는 거,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모습, 나도 한없이 너무도 소중한 걸 아는 모습 또 나는 내 자신한테 나무가 되고 싶다. “어떤 나무의 모습이냐? ”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 ‘나’라는 나무는 아주 커다랗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나’라는 나무 아래에 누워서 힘이 들 때 내 자신을 위로 해줄 수 있는 그런 ‘나’의 모습, 뿌리가 깊은 나무가 되어 누가 나를 차도 흔들리지 않고 사계절 동안 새로운 옷을 입는 나무처럼 학교에선 ‘관계’에 굴하지 않고 진실한 학생의 모습 등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는 나무라는 ‘내’가 되고싶다. 이 말은 즉 ‘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내 자신을 위해 나를 먼저 생각해 위로 해주는 ‘나’의 모습이다.
얼마 전부터 이 글을 쓰면서 나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가족들과의 ‘관계’가 계속 ‘나’를 붙잡았다.
“동생 때문에 지금 집에서 나 힘들어, 도와줘”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돌아오는 말은 “내 말도 안 듣는데 내가 어떻게 하니?”였다. 나는 이 말에 또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아니 말이 안 나왔다.
하지만 난 성찰했으니 끝내 말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웠다. 나의 진실과 빈자릴 좁혀 보려 애쓰지만 애를 쓸수록 길어지는 이 밤은 처음엔 힘들었다. 하지만 진실이 뒤돌아서면 난 잡을 수가 없을 거 같아 열심히 노력했다, ‘진실된 내 모습’이라는 기억들 사이에 있어 내 몸에 ‘진실된 내 모습’이 가득 펴버려 향기가 가득 채워질 수 있게 하였다.
드디어 ‘진실된 나’를 찾았다. 가족들한테 솔직하게 말했다. “내 손을 잡아줘, 나는 절대로 강하지 않아 그냥 괜찮은 척 한거야” 가족들은 놀란 눈치였다. 내가 첫째여서 가족들 앞에서 더 단단하게 행동했던 것은 맞다. 내가 강한 척 괜찮은 척을 하지 않으면 나만 바라보는 부모님은 실망하실까 봐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난 다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고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나무 같은 사람이 되었고 솔직한 사람이 되었다. 과거의 ‘관계’에 매달았던 내 모습은 비누로 깨끗이 씻어 상처 입은 것들은 다 씻어내면 그 속에 이쁜 마음이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관계’라는 크고도 작은 틀에 벗어나 때론 비누 같이 내 마음을 씻어내 나의 진실되고 이쁜 마음을 볼 수 있는 사람, 때론 나무같이 커다란 내 나무 밑에서 위로받는 ‘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