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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수필의 사회참여에 대하여/강범우
1. ‘수필문학’의 특이성
바다는 江을 거부하지 않는다.
수필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위대한 바다다.
수필 문학은 그 어느 다른 문학보다 현실적이고 리얼(real)하다. 그것은 시(詩)처럼 어떤 신비한 힘에 관련된 관념, 연상, 정서, 심상 등의 내포적 의미(connective)와 기능이 언어(言語)의 의미 상태를 요구하는 글은 아니다. 때문에 시는 그림이나 노래처럼 우리에게 느껴지지만, 수필은 ‘이야기 글’이고 지적(知的)인 글이다.
자기가 세계를 인식하는 ‘마음의 地圖’다.
키에르케고르(S.A.Kierkegaard)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정신이다. 정신이란 무엇인가? 정신이란, 자기(自己)다. 자기란, 무엇인가? 자가란, 자신이 스스로에게 관계하는 관계다.”
소설처럼 꾸며내거나(fiction) 과장이 필요 없다. 자기와 함께 나눈 이야기, 경험, 행위, 생각, 느낌을 진솔하게 명시적(明示的)으로 제시하는 글이다.
‘삶’이란, 결국 의미를 찾는 일이다. 인간은 실존(實存)이다. 실존의 본질은 자유(自由)다. 자유는 자기를 선택하는 일이다. 일찍이 Goethe는 “현실은 작가가 자기의 이미지를 보여 주는 거울”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금세기의 실존주의 철학자 Sartre는 “우리는 자기의 판단과 책임하에 시시각각으로 자기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수필의 정신은 처음부터 현실의 삶과 밀착해서 발생하고 성장해 왔다. 그러기 때문에 높은 이념이나 사상보다는 잔잔한 삶의 무늬(紋)속에서 자기를 찾으려 했다.
아메리카의 에세이스트 A. 에드워드 뉴턴이 말한 것처럼, “지구라는 유성에서 삶을 고집하는 한, 세상 잡사에 생각이 미치고, 깊이 생각하는 바 있지 않겠소. 투표, 축구, 보잉 오는가 했더니 벌써 가 버리고, 희․ 노 애 락에 우(愚)까지 곁들인, 온갖 경험을 해야 하고, 희망과 욕구가 치솟다가도 실패의 잔을 들이켜야 하고, 세상 잡다한 풍경, 음향, 냄새들을 경험해야 하는데, 이 온갖 잡동사니를 에세이(essay)말고 어디다 담을 수 있겠는가?”
수필은 시에서와 같은 리듬의 매력도 없고, 소설에서와 같은 스토리의 매력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수필이 대중에게 욕구를 채워 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일상의 실존의 삶을 이겨 가는 적나라한 인간의 진실한 냄새가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라는 것은 자기 주위와의 관계(關係)를 만들어 가는 힘(力)을 뜻한다. 수필 문학은 이 관계 속에 살아가는 자(者)의 간절한 외침이다. 그러기 때문에 수필 문학은 ‘인간의 존엄 속’에 있어야 할 문학 형태다. 이 존엄성이 제자리에 서있지 않고서는 표현의 기술, 사건의 묘사, 문장의 구성이 잘 되었다 하더라도 좋은 수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2. 실존주의와 참여 문학
두 차례에 걸친 제국주의 전쟁과 파시즘에 의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젊은이 세대는 ‘부조리’니, ‘절망’이니, 하는 말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이것은 비인간적인 전쟁이 만들어 낸 인간 실존의 문제로 지평(地坪)에 나타나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 작가의 사회 참여를 부르짖은 것은 주로 프랑스 사상계와 문단이었다.
‘참여’란 불어로 앙가즈망(engagement)이다. 이 말의 어의는 ‘구속’된다, ‘약속’된다는 뜻이다.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이것을 ‘참여’ 또는 ‘참가’한다는 뜻으로 씌어졌다. Satre나 Camus 같은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작가도 미래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나 사회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외쳤다. 그들은 미래 사회가 지배적인 악(惡)에 의한 부정이라고 보고, 그에 대한 투쟁이란, 사회에 참여하고, 투쟁하는 일은 양심 있는 지성(知性)의 도덕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노동 운동과 혁명을 통한 사회 발전, 즉 사회주의적 사회에로 이행할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런 체제의 건설이 이루어지면 인간의 실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Sartre의 「구토」나 「자유에의 길」 이나 「실존주의는 Humanism이다」등은, 난해한 ‘존재와 無’를 통속화한 작품들이다. 惡의 신앙으로서의 의식 구조의 해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지난날의 A.Gide작 인간을 찬미하고 ‘성실’이라는 아름다운 개념도 그 베일을 벗겨 버리고, 추악한 인간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과거, 현재, 미래하고 하는 인간의 시간 문제나, 나와 타자와의 관계나, 사랑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無와 否定으로 환원했다. 왜냐 하면, 의식 존재의 인간은 근본적 구조가 부정(否定)이기 때문이다.
이 거창한 ‘실존’의 사상이나 ‘참여’의 행동 미학도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것은 사회주의적 Humanism과 현대 사회의 비인간적 사회구조의 철학적 해명도 없이 인간의 실존적 권리를 회복하는 길은 예술의 ‘참여’나 ‘투쟁’에 있다고 보는 것은 실존주의가 인간적이라는 매력적인 개념으로서의 언어적 표현으로 그치고 마는 역사적 운명일는지 모른다.
300년 전에 프랑스의 종교 사상가 파스칼(B. Pascal)은 수상록 「팡세」(Pensees)에서 신(神)이 없는 인간의 비참한 삶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인간의 위대한 실존적 삶의 가능성을 가르쳐 주었다. Sartre는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비참함 위에 그의 실존의 철학을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거부하는 가운데 인간이 살아가는 실존의 올바른 길(道)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인가?
3. ‘참여’의 한국적 한계성
서구의 ‘참여’나 ‘사회성’은 멀게는 프랑스 혁명 이후, 가깝게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일어난 사조였지만, 우리의 참여 문제는 천 4~5백년 전부터 있어 온 사상이다. 우리의 ‘참여’는 오히려 사회의 정의나, 상생(相生)의 원리에 두었다. 상대의 원효(元曉)사상도 하나의 대중 참여의 사상이다. 원효는 투쟁의 시대에 살았다. 밖으로는 신라가 고구려, 백제와 싸우고, 안으로는 귀족들과 민중이 화합을 못하고, 중국에서 들어온 불교가 여러 종파로 나누어져 싸우던 시기다. 그럴 때 원효는 화정(和정)의 논리로, 육두품(六頭品:귀족)의 출신이지만, 남루한 속인의 복장을 하고, 귀족이면서도 <무애(無㝵)>라고 이름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광대짓을 하며, 민중 속에 뛰어들어 민중적 인간, 분열을 극복한 통일적 인간의 창건을 위한 실천자로 참여했다. 그 뒤, 근세에 이르러 김시습, 서경덕의 뒤를 이어, 명문의 집안에 태어나 일찍이 과거에 급제한 허균(許筠)도 탐관오리의 부패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홍길동전」을 쓰며 사회 개혁을 위한 불 속에 뛰어든다. 허균의 사상은 뒷날 실학 사상에 이어져,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과 같은 민중의 소리를 대변하는 명사들을 낳았다.
현대에 들와서도 신채호, 이광수, 한용운 선생등과 상록수 운동의 심훈, 씨알운동의 함석헌, 저항 시인 이육사, 윤동주, 김수영, 김지하, ....이런 사람들은 모두 ‘참여의식’을 가지고 한국 사회의 장래를 걱정하며 글을 쓴 대표적 사람들이다.
한국의 ‘참여’나 ‘군중’이란 개념은 서구의 그것과는 그 뜻이나 사회적 배경이 다르다. 우리는 오히려 사회의 정의(正義)나 상생(相生)이나, 공생(共生)의 사회성 속에서 찾아야 옳을 것 같다.
인간은 사회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삶을 ‘현실’이라고 지칭할 때, 우선 생각되는 것이 우리들의 존재이고 생활이다. 땅을 갈고, 씨를 심고, 동물을 사육하고, 또는 하천에 제방을 쌓고, 가고 오는 길을 놓고, 터널을 뚫고,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어 간다. 인간은 사회 환경을 만들어 감과 동시에 자기(自己)를 형성해 간다.
‘삶’이나 ‘생명’이라는 것은 자기와 주위와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힘(力)을 뜻한다.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를 보통 주관과 객관의 관계라고 한다. 나는 주관이고, 환경은 객관이다. 주관이란, 작용하는 것을 말하고, 객관이란, 그것에 대하여 있는 대상을 의미한다.
수필 문학은 본래가 사회적 성격을 띤 문학은 아니다. 그러나 수필 문학은 그가 살아가는 환경 속에 살아가는 자의 간절한 외침이다. 때문에 수필 문학은 본질적으로 생활 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매우 리얼한 문학 형태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히 사회성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수필의 독자는 한국이나, 서양에 있어서나, 소설과 같이 다방면의 독자를 갖고 있지 못하다. 수필은 시적 분위기의 산문이면서도 시의 독자와도 또 다르다. 시는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지만, 수필은 대중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다가선다. 그것은 절실한 현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못내 잊지 못할 사랑의 이야기라든지, 허물어진 꿈과 같은 절실하게 아파하는 삶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이체(F. Nietzsche)의 ‘짜라투스트라’는 철학이며, 시며, 수필이지만 절대 대중과 전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대중적 기질은 대중을 경멸하면 경멸할수록 그 위선이 없는 진지한 정신에 대중은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이것이 수필이 갖는 사회성(社會性)이다.
한국 문학사에서 ‘민중 문학론’이나, ‘참여론’(V-narod)의 본격적 전개는 계급주의 문학이 대두되기 시작한 1920년대 초라 할 수 있다. ‘백조파(白潮派)’의 밝은 낭만주의 문학의 반동으로 일어난 신경향파의 박영희, 김기진, 최서해와 같은 작가들에 의해 제창되었다.
신경향파 이전에도 『개벽』(1920. 6), 『공제』(1920. 10), 『시민공론』 (1921. 11), 『신천지』(1921. 7), 『신생활』(1922. 7) 등의 잡지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작가의 현실에 대한 ‘참여’ 문제가 전례 없이 깊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특히, 현철(玄哲)이 『개벽』지에 발표한 「문화 사업의 급무로 민중극을 제창함」(1921. 4)이라든가, 시인 김억(金億)의 「민중 예술론」(개벽. 1922. 8~11), 팔봉(八峰), 김기진의 브-나르도(V-narod)운동의 제창과 소설 「붉은 쥐」(개벽. 1924. 11), 조명화의 「땅 속으로」 (개벽. 1925. 3), 주요섭의 「살인」 (개벽. 1925. 6), 최학송의 「기아와 살육」 (개벽. 1925. 6), 이기영의 「가난한 사람들」(1925. 5),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구루마꾼」 「엿장사」 등을 발표하면서, 식민지 치하의 민중의 삶에 대한 비참한 생활상을 폭로하면서 대중의 사회적 참여 의식을 고취했다.
이 무렵, 1925년 8월에는 박영희, 김기진, 이활, 김영팔, 이익상, 박웅대, 이적효, 이상화, 김온, 김복진, 안석주, 송영 등에 의하여 카프(KAPF :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되어 장안빌딩에 간판을 걸고 조직적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에 조명희, 최학송, 박팔양, 이기영, 이양, 최승일, 조중곤, 윤기정, 한설야, 유완희, 김창술, 홍양명, 임화, 안막, 김남천 등이 참가하여, 1935년 6월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해산될 때까지 10여 년 간 한국 문단의 중심 세력으로 활약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민중’이란 말이 문화 예술의 전 영역에 걸쳐 또다시 널리 사용되었다. 민중 문화, 민중 예술, 민중시, 민중 미술, 민중 종교, 실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사실 따지고 보면 프랑스 문단에서 제창된 ‘앙가즈망(사회참여)’의 사상이 다분히 내포되고 있었다.
대중(mass)뿐만 아니라, 피플(people), 포플러(popular), 퍼브릭(pubic), 시티즌(citizen), 폴코(Volk) 등의 말이 있기는 하지만, ‘민중’이란 말과 잘 부합되지 않는다. 송건호의 「민중의 개념과 실체」(1976, 『월간대화』11월호)에서는, “민중이란 다분히 동양적, 혹은 제3세계의 개념이라고 여겨진다”고 했다. 이만열 교수도 「한국사에 있어서의 문중」이란 연구 논문에서 “한국사에 보이는 민, 농민, 서민과 노비, 노복, 천민 등의 피지배 계층을 망라하는 어휘”로 민중을 설명하고 있다.
조동걸의「한국 민중론」에서는 “민중은 근대 사회와 더불어 형성된 사회 계층이다. 봉건사회에서도 신분적 계급에 따라 ‘서민’이란 말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회 계층으로서 역사 발전에 추진력을 발휘할 만큼 조직적이지 못했다.” “민중이 형성되고, 그 기능이 나타나려면, 서민이 사회 구성상의 모순을 인식하고, 자기 위치를 자각하고, 그 모순에 도전하는 계층으로 형성할 때를 말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봉건 사회의 붕괴와 근대 사회의 형성이 진행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고 말했다.
광해군 때의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도 ‘민중’이란 말을 쓰고 있다. “민중은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으로 나눌 수 있다. ‘항민’은 무식하고 천하며, 자기 이익이나 권리를 주정하려는 의식이 없는 각성되지 않은 민중이다. ‘원민’은 요즘 말하는 소시민을 말하며, 각성이 분명하지 못하나, 잠재적 상태에 놓여 있는 부류다. ‘호민’은 자기가 받고 있는 부당한 대우와 사회의 부조리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무리를 말한다.”
옛날에도 ‘서민’이나 ‘군중’이란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중’이니 ‘참여’니 하는 말은 근대사회와 더불어 형성된 자각적 사회 계층을 지칭하는 말이다. 조동일의 「한국 민중론」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민중이나 참여 의식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사회 구조상의 모순을 인식하고 자기 위치를 자각하며, 그 모순에 도전하는 계층으로 성장했을 때이며, 역사적으로 봉건 사회의 붕괴와 근대 사회의 형성이 진행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민중 운동이나 참여 의식은 서양에 비해 훨씬 뒤지는 수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혁명과 같은 사회 혁명도 겪어 본 일이 없고, 산업 혁명과 같은 경제 혁명도 경험하지 못한 사회 구조다. 서민이나 백성이란 말이 ‘민중’으로 불리어지고, 각성된 계층이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3.1운동을 전후한 시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3.1운동의 좌절과 글에 따르는 새로운 각성, 또 이 시기는 세계사적으로 볼 때,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불안한 역사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마르크스주의가 현대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세계 각국이 그 수용에 광분하던 시기다.
우리 사회의 계급 의식의 성숙도는 낮았으나, 3.1운동에서 실패한 이후, 20년대 초부터 각종 사회 운동은 지식인 위주로 전개되어 오던 종래의 성격에서 점차 벗어나, 생산 주체이면서 억압되고 소외 받고 있는 농민이아 노동자와 같은 ‘민중’을 지향하려는 변모가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민중 운동’이나 브-나로드(V-narod)와 같은 ‘사회 참여’는 꼭 문학 분야나, 수필 부문에서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고, 한국 문화 전반에 걸친 사회 현상으로 이해해야 될 것이다.
우리 문단도 1967년이 저물어 갈 무렵에 ‘참여’와 ‘순수’의 문제가 표면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우리는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는 현실이다. 이론화된 앙가즈망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로 귀착된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 문단에서 실존주의나 앙가즈망에 대한 사조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67년 10월 17일자 신문 논설에 “계급이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작가를 규탄한다.”는 글이 실려 있는 것만 보아도 그 시기의 형편을 짐작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실존주의나 ‘참여’ 문학도 프랑스적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파시스트들에 의해 잔인하게 짓밟혔고, 자본주의 침략에 반기를 든 지성인들의 외침이었으나, 결국 암담한 역사의 싸움이며 생존을 위한 순수한 깃발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한국의 ‘참여’의 문제는 전논리적(前論理的)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적 전통(傳統)은 윤리적(倫理的) 주체와 지식을 분리하지 않고, 주체는 지식 속에 내면화되어 삶의 역동적 힘으로 작용한다.
우리의 ‘참여’는 그런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고, 먼 첫날부터 바르게 사는 ‘도덕적 용기’나 상생(相生)의 원리가 곧 문학의 사회성(社會性)이나 참여 의식이라 할 수 있다.
- 월간문학 2001년 10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