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폐석
▲문봉산(文奉山.633m) 정상에서 살짝 내려가면 묵은 헬기장이 있다.
▲문봉산(文奉山.633m) 부여군 외산면 지선리와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 경계능선에 있는 산 만수산으로 갈라지는 능선이 보이고, 만수산 아래에는 조선시대에 생육신중 한명이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술한 김시습이 출가하여 말년을 보냈던 무량사란 사찰이 있는 곳이다. 문봉산의 위세가 괜찮은 곳이건만 이 산에 대한 자료는 어디에도 볼 수가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문봉산(文奉山.633m) 넘어에 있는 묵은 헬기장, 문봉산 정상에서 2분정도 내려오니 폐헬기장이 나오는데 보령시에서 이곳에 정상석을 세워놓았다. 이정표와 만수산에 대한 표지판이 있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이곳이 문봉산 정상은 아니다. 보령시에서 설치한 정상석은 정상이 아닌 폐헬기장에 설치했다 행정 편의적인 발상이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상수리재로 가는 이정표가 있는데 지선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지선리는 조선시대 참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숯이 유명하였고 백자(白磁)가 생산되었다 하며, 교하노씨와 여산송씨 그리고 전주이씨가 입촌하여 촌락을 이루었고, 본래 홍산군 외산면의 지역인데 1914년 군폐합에 따라 상비리, 장선리(長仙里), 지단리(芝丹里), 저동 일부를 병합하여 지단(芝丹)과 장선(長仙)의 이름을 따서 지선리(芝仙里)라 하여 현재에 이루고 있다. 70년대 초반부터 우량광산이 성황을 이루어 95년까지 지역 경제를 활성화 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 장선(長仙)마을, 모시를 많이 재배하여 모시울, 모새골, 저동, 마을 주변에 지초가 많은 안쪽 마을이 하여 지단내(芝丹內) 마을이 있다.
▲문봉산을 지나면서부터는 좌측으로 부여군 외산면에서 보령시 성주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고, 우측은 보령시 청라면이니 좌,우가 온전히 보령시로 접어든다.
▲문봉산을 지나서부터 잡목이 키만큼 우거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스틱으로 헤치며 바닥을 보며
가야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만수산 천재시인 김시습이 말년에 머물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 저기 보이는 만수산 아래 ‘무량사’이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되자 평생 은둔한 천재시인 매월당김시습이 말년에 머물다가 세상을 떠난 곳으로 유명하다. 김시습 영정(보물1497호)이 있다. ‘매월당시사유록(梅月堂詩四遊錄) 서두에 실려있는 김시습의 자화상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 있다. 해동에서 최고라고 말하지 격에 벗어난 이름과 부질없는 명예 네게 어이 해당하랴? 네 형용은 아주 적고 네 말은 너무도 지각없구나 마땅히 너를 두어야 하리 골짜기 속에
▲녹음의 소나무길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소나무가 많이 보이는 구간임
▲해발550m
▲마루금을 따라 노송들이 줄을 이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