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생태이동통로를 지나며 좌측으로 보이는 남봉담 톨게이트 요금소
▲134.7m봉 삼각점(△남양423 / 1987재설) 지맥길 우측 수풀 속에 있다.
▲134.6m봉에서 돌아본 조망. 칠보산이 흐릿하다.
▲134.7m봉에서 쉼을 하고 등로 따라 간다. 나무그늘이라 시원하다.
▲쉼터. 운동기구, 긴의자 쉼터만 보이면 쉬고간다.
▲능선 갈림길: 좌측은 노리고개로 가는 길이고 우측 뚜렷한 등로는 쉼터가 있다.
▲쉼터에서 물 한모금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데 동네 사람인 듯한 주민 한 명이 오기에 이 아래 노리고개가 무슨 연유냐고 물으니... 그런 고개가 있냐고 되묻는다. ▲앞쪽으로 송전탑이 있는 167m봉이 보이고 아래는 43번도로가 지나는 생태통로가 보인다. ▲등로 따라 내려서면 앞쪽으로 송전탑이 있는 167m봉이 보이고 아래쪽으로는 43번도로가 지나는 생태통로가 있으며 생태통로를 건너 지맥길은 직진으로 능선을 올라가야 하나 잡목으로 인해 오를 수 없어 우측 등산로 따라가다 적당한 곳에서 좌측으로 올라 송전탑167m봉에 오르고 지맥길을 이어간다. ▲철망 울타리 따라 생태통로로 내려간다. ▲노리고개: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와 왕림리를 잇는 고개로 예전의 고개에는 화성시 봉담에서 수원 영통으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가 시원스럽게 뚫려있는데 다시 동물 이동통로를 지나 절개지로 올라간다. 이곳은 도로공사 중 화성지방에서 처음으로 백제유물 인 적석총이 발견된 곳이라 한다. ▲노리고개 생태통로를 지나 송전탑이 있는 급경사로 바로 올라가야 하나 잡목으로 우측 좋은 길로 우회하여 올라간다. ▲43번국도 위 생태통로 ▲노리고개에서 바라본 봉담읍 분천리의 모습: 샘물이 많이 나는 동네라고 하여 분천리(汾川 里)라 하였다고 한다. 시내말은 옛날 이 마을 앞에 큰 시내가 흘렀다고 하여 불리어진 이름 이며 분촌은 마을의 지형 모양이 동이와 같다고 하여 분촌(盆村)이라고 불려오다가 조선시 대 말에는 분화촌(盆化村)이라는 마을이름이 널리 사용되었고 문화유적으로는 고려 의종 때 문신 최루백의 효성을 기르기 위해 설립된 정문 비각인 최루백 효자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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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167m봉을 지나칠 수 없어 좌측으로 길이 보여 올라간다.
▲송전탑167m봉에 올랐으나 아무 표시도 없고 잡목만 무성하다. 우측 잡목을 헤치고 나가니 길이 보인다.
▲167m봉NO39 송전탑에 올라 우측으로 칡넝쿨과 잡목을 헤치며 지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