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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갈 6:2-5)
(찬송가: 20장, 교독문: 1번(시편1편),
찬송가: 214장, 211장)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한국의 여인들은 아기를 낳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댓돌위에 놓여진 자기의 고무신을 다시 한 번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적신다고 합니다. 과연 아기를 순산하고 다시 이 고무신을 신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문지방이 흔들리고 대들보가 내려앉는 것 같은 산통을 겪어야만 아기가 세상에 태어납니다.
지금은 사순절 둘째 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절한 십자가의 죽음의 고통이 당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고통을 당하신 것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순절을 보내면서 나를 위해 피를 흘려주시고,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은혜 감사하며 주님을 생각하면서 경건하게 보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느 글에 보니까 남편이 강아지보다 편리한 점 5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돈을 벌어온다.
둘째, 간단한 심부름은 시킬 수 있다.
셋째, 훈련을 안 시켜도 대소변은 가린다.
넷째, 집에 두고 여행을 갈 수 있다.
다섯째, 같이 외출할 때 출입 제한구역이 적다. 입니다.
반면에 남편보다 강아지가 더 좋은 까닭 4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신경질이 날 때 발로 뻥 찰 수 있다.
둘째, 한 집안에 두 마리를 함께 길러도 뒤탈이 없다.
셋째, 강아지의 부모 형제로부터 간섭 받을 필요가 없다.
넷째, 데리고 살다가 싫증나서 내다버릴 때 변호사가 필요 없다. 입니다.
어쩌다 집안의 가장인 남편이 이처럼 대우를 받지 못할까요? 우리 믿음의 가정들은 남편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남편뿐만 아니라 아내도, 자녀도, 가족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가정 안에는 섬김과 사랑이 넘쳐야 하고, 그리고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작은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작은 천국이 되도록 가정 모두가 힘써야 합니다. 우리들의 가정 안에 이런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서로 짐을 지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에서 “너희”는 예수 믿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을 말합니다.
“짐”은 헬라어로 ‘바로스’인데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일’ 또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나 상태’를 뜻합니다. 다음은 ‘각자의 몫’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라”는 말은 헬라어로 ‘바스타제테’인데 일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짐을 벗을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도와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도 각자에 맡기신 직무, 직분을 잘 감당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무거운 시험을 겪거나, 혼자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감당하기 힘든 문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일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을 교회와 성도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어야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 각자에게 재능과 능력에 따라 여러 가지 직분을 주셨는데 이 직무를 책임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믿음의 성도들은 가정에서 아내는 아내로써, 남편은 남편으로써, 부모는 부모로써, 자녀는 자녀로써 그 해야 할 일, 더 나아가서는 직장과 사회와 나라와 민족에게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예수 믿는 성도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일하고 있는 일터, 나라와 민족에게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책임을 질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짐을 지고 갈 때 함께 나눠지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각각 자기 짐을 지고”, “이웃의 짐을 서로 지게 될 때” 지역과 사회는 건강하고, 교회도 건강하고, 성도도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공동체는 아름다운 결실을 풍성하게 맺습니다. 이렇게 될 때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웃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서로 나눠져야 할 짐이 있는데 그 중에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함께 나눠져야 할 짐은빈곤의 짐입니다.
빈곤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수입이나 재산이 적어서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에 의하면 최근 3년간 빈곤층이 55만 명이 증가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증가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전염병(코로나)으로 인한 경제실패가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2019년 12월에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코로나의 확산은 중소기업들이 파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소상공인들이 폐업을 하므로 실업이 증가하고, 신용불량자들이 늘어 빈곤층이 더욱 늘어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결과로 기초생활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이 270만 명으로 전 정부보다 2.4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이런 요인으로 인한 경기 침체는 결국 빈곤층이 늘어나게 되었고, 우리 주위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빈곤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의 문제가 되었고, 우리의 삶에 심각한 위기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놓고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며, 이런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가난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도 되지만 국가의 문제를 넘어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든 항상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6.25를 겪고 난 후 매우 어려웠습니다. 하루 삼시새끼 먹고 살기가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거지들도 참 많았습니다. 이때 가장 큰 이슈는 빈곤의 문제였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는 하루에 한 끼도 못먹고 사는 극도의 빈곤층이 수십억이 넘습니다.
이처럼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빈곤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삶의 지침서인 성경에서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참된 금식, 곧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58:6-7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 못 본체 하지 말고 반드시 그들을 도와주라고 말씀했습니다. 잠21:13에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잠28:27에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시9:12에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잠17:5에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보고 외면하지 말고 반드시 도와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외면하거나, 그를 못 본체하거나, 그를 가난하다고 조롱하는 사람에 대해 반드시 피 흘린 자를 심문하시듯 심문하며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짐을 덜어주는 사람에게는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며, 풍족하게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15:10에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잠11:25에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19:17에서는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 됨으로 반드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초대 교회는 교회 안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서로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습니다. 행2:44-45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하나님께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형성된 하나의 신령한 가정 공동체입니다. 이런 믿음의 공동체인 성도들은 빈곤의 짐을 지고 힘겹게 사는 분들을 외면하지 말고 힘써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기억하고 실행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의 삶은 더욱 더 윤택하고 풍요로워집니다.
나 살기도 힘든데 남을 도와주는 여력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을 하늘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넓게 봐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힘써 돕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삶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어려운 이웃들을 못 본체하지 말고 그들을 도와주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자신의 재산 중 절반이 넘는 200억 달러 이상을 사회에 내어놓은 세계 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가 즐겨 보는 책이 있습니다. <빈곤의 종말>(제프리 D 삭스 지음)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에 보면 지구상에서 극단적 빈곤 상태(절대 빈곤층, 하루 1달러로 사는 사람)에 처한 사람은 11억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선진국 국민총생산의 0.7%, 즉 소득 10달러(1만원)당 0.07달러(70원)만 할애하면 2025년에 극단적 빈곤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구상의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돕는 일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힘써 이웃을 도우면 세상은 아름다워 집니다.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헌신과 희생이 모아져 세상은 아름답게 변하게 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힘써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흡혈박쥐는 박쥐의 일종으로 특이한 체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물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데 이틀간 계속해서 먹이를 먹지 못하면 자기 체온을 정상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며 삽시간에 체중이 25%나 줄어들면서 60시간 정도 지나면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먹이 사냥에서 허탕을 치고 돌아온 박쥐는 자신의 생명을 위해 다른 동료에게 먹을 것을 구걸합니다. 그러면 그 동료는 자신이 먹은 것을 토하여 배고픈 박쥐에게 줌으로써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나 먹이를 풍족히 구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동생활’을 통해 서로의 생명을 돌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이좋게 먹이를 나눠주는 데에 하나의 규율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료가 위기에 처하여 먹이를 구걸했을 매 별다른 이유 없이 이를 거절한 박쥐에게는 그가 어떠한 위기에 처했더라도 결코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먹이를 나누어 먹는 것, 동료를 어려움 속에서 구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흡혈박쥐가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성도들에게 그들을 도와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실천하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고, 남이 사는 길이고, 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이고, 사회가 살고 지역이 사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삶을 사시길 소망합니다.
2.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함께 나눠져야 할 짐은 고통의 짐입니다.
고통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몸이나 마음의 아픔으로 오는 괴로움’을 말합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파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오는 고통으로 힘들어 하거나 절망하기도 합니다. 급기야는 생명을 끝은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이런 이유에 의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이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약5:14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마15장을 보면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이라는 지역에 오셨습니다. 그때 가나안 여자 한사람이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는데 귀신을 쫓아 달라고 예수님께 애원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라고 하면서 심한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런 심한 모욕을 받으면서도 예수님께 간절히 구해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딸의 고통을 보고 절망하지 않고 예수님께 찾아갔습니다.
왕상 17장을 보면 시돈이라는 지역에 사르밧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 기근이 심하여 먹을 것이 바닥이 났습니다. 이제 통에 한줌의 가루와 병에 기름 조금으로 한 끼를 먹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 3년 6개월 동안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기름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해서 사르밧 과부를 돌보셨습니다.
행20장을 보면 바울이 드로아라는 지역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특별히 그곳에 여러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바울이 저녁 늦게까지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그만 3층 난간에서 아래로 떨어져 죽었습니다. 바울은 기도하여 그 청년을 살려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파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고치며 위로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믿음의 성도들은 주위에 고통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MSN 뉴스에 보도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어린 학생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백발의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삭발을 단행해서 감동을 주었던 이야기를 미국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언론에 따르면 ‘교장 선생님 삭발 행사’는 최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서 열렸습니다.
이 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10살의 칼레브 모스리 학생은 지난 여름 뇌종양 판정을 받은 후 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빌 포스터 교장 선생님이 수 백 명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면도기로 머리를 빡빡 민 것입니다. 포스터 교장은 암투병 중인 모스리를 위해 재학생들이 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안 후, 2,000달러가 넘는 기금이 모이면 삭발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학생들은 교장 선생님의 약속 후 기금 마련 활동에 더욱 분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15,000달러가 넘는 기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약속대로 포스터 교장은 학생들의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등장, 삭발을 단행했는데 이날 행사에는 백발의 교장 외에 여교사들도 동참, 삭발을 하는 용기를 보여줘 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교장 및 여교사들의 삭발을 지켜 본 어린이들은 암과 싸우고 있는 친구의 쾌유를 비는 노래와 기도를 올렸는데, 일부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삭발 동참에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포스터 교장 선생님과 여교사들은 “대머리는 아름다워”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이날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암투병으로 머리가 빠진 모스리가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대머리 선생님들’의 공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주의에는 여러 가지 고통의 짐을 지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이런 일을 많이 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덜어주어야 할 짐은 영적인 짐, 죄의 짐입니다.
모든 인생은 예외 없이 죄와 심판의 짐을 지고 죽음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지고 있는 짐은 그 누구도 벗겨줄 수 없는 영적인 짐, 죄의 짐입니다.
롬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의 짐을 지고가면 누구나 사망으로 끝납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실천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예수를 비웃는 어떤 사람이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목사님! 교회에서는 늘 죄의 짐이 무거운 것이라고 얘기하고, 또 목사님은 죄의 짐을 버려야 한다고 하시는데 저는 죄에 대하여 아무 짐도 못 느끼거든요. 도대체 그 죄라는 게 얼마나 무게가 나갑니까?
한 50kg 나가나요? 아니면 100kg쯤 되나요?”
이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목사님이 이윽고 입을 열어 말을 했습니다. “선생, 만약 여기에 죽은 사람이 누워 있다면 그 위에다 무거운 짐을 올려놓을 때 그 죽은 사람이 무게를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을 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못 느끼지요 1,000kg의 무게를 올려놓아도요.” 목사님은 다시 말했습니다. “선생, 그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선생은 죄 가운데 죽어 있는 상태이기에 죄에 대하여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의 짐은 사망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생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유혹을 받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죄로부터 구원을 받지 못하면 결국 죄의 짐에 눌려 영원히 사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죄의 짐을 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죄의 짐을 지고 희생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죄의 짐을 대신 지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안식을 주셨습니다.
마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와서 안식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서로 서로의 짐을 지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특별히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죄의 짐을 지고 사망으로 가고 있는 이웃들의 그 무겁고 무서운 짐을 벗겨줄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전하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의에는 빈곤의 짐, 고통의 짐, 죄의 짐을 지고 가는 이웃과 형제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늘 돕고, 때를 얻든지 못 얻던지 전도에 힘쓰는 삶이되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의에는 빈곤의 짐, 고통의 짐, 죄의 짐을 지고 가는 이웃과 형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그들의 짐들을 덜어줄 수 있는 믿음과 여건을 주셔서 우리가 힘써 돕는 축복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