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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에 대한 제문〔祭栗谷文〕
아, 슬픕니다. 하늘은 어찌하여 형에게 따사롭고 화락하고 쇄락하고 통달한 자질을 주고서도 오래 살아 장수하는 복은 아울러 주지 않았으며, 하늘은 어찌하여 형에게 인서(仁恕)하고 성명(誠明)하며 차분하고 순수한 학문을 닦게 하고서도 세상에 은택을 끼치는 복을 겸하여 주지 않아,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시귀(蓍龜)같이 믿어 지위를 숭반(崇班)에 올리게 하고서도 임금의 교화를 도와 이룩할 때는 그 방도를 다 시험해 보지 못하게 하였으며, 우리 유림(儒林)들로 하여금 태산북두(泰山北斗)같이 우러르게 하여 이름이 중화(中華)에 떨치게 해 놓고서도 시기하여 흘겨보는 자가 그 사이에서 헐뜯게 하였단 말입니까.
덕(德)은 두터웠으나 녹(祿)은 박하였으며, 옛날과는 부합하였으나 오늘날과는 어그러졌으며, 이치에는 넉넉하였으나 운수에는 부족하였습니다. 이에 온 세상을 경륜할 명망을 짊어지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깊은 지우를 받고 있어서 장차 큰 사업을 이룩할 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밀어내고 배척하는 자가 한둘이 아니어서 끝내는 하늘이 돌고 땅이 굴러서 사기(事機)가 바야흐로 새로워졌는데도, 가액(加額)한 손이 미처 내려오기도 전에 운망(云亡)의 탄식이 먼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옥이 감추어지고 좋은 향기가 사라지매 슬픔을 억눌러도 종천(終天)의 애통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온 나라의 중외 사람들이, 위로는 뜻이 있는 선비로부터 아래로는 어리석은 필부필부(匹夫匹婦)에 이르기까지 모두 놀라 통곡하고 목 놓아 울면서 서로 조문하되, 비록 일면식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눈물부터 먼저 줄줄 흘리는 것입니다.
아, 슬픕니다. 천지간에 있는 우리의 도는 드러날 때도 있고 흐려질 때도 있으며, 행해질 때도 있고 실추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민멸되는 데 이르지 않았던 것은 그 지위를 얻어서 그 도를 행한 것이 세대가 혹 멀어지기는 하였으나 서책에 갖추어 놓아 그 도를 밝힘으로써 사람들을 착해지게 하였으며, 그 책임을 떠맡은 진유(眞儒)들 역시 서로 잇달아 나와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자(程子)와 주자(朱子)로부터 세대가 멀어지자 성학(聖學)이 더욱 외로워져서 인욕(人慾)이 제멋대로 횡행하고 천리(天理)가 장차 없어지게 되었으며, 공리(功利)와 과거(科擧)의 습속이 날로 사람들을 그르쳤습니다.
형은 평소에 분연히 탄식을 발하며 저에게 뜻이 서로 같다고 하면서 함께 노둔함을 채찍질하였습니다. 혹 마주하여 강론하고서도 흡족하지 않으면 또다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끝까지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형이 옳다고 하는 바를 저는 혹 그르다고 하였으며, 제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형은 혹 그렇다고 하면서 분분하게 편지를 주고받은 지 지금까지 30년이나 되었습니다.
크게는 천지와 산천으로부터 작게는 초목과 곤충, 음양과 귀신의 변화, 성기(誠幾)와 동정(動靜)의 미묘함에 이르고 가까이로는 쇄소응대(灑掃應對)의 인사(人事)에서부터 멀리로는 진성지명(盡性知命)의 천리에 이르기까지 분석하는 것은 그 정밀함을 극도로 하였으며, 종합하는 것은 그 큼을 다하였습니다. 이에 성현들이 미처 궁구하지 못했던 바와 부부(夫婦)들이 알 수 있는 바 및 행장(行藏)의 의리와 진수(進修)의 방도에 대해 형은 이미 다 탐구하여 쉼 없이 익혔으며 저 역시 대충이나마 한두 가지는 알았습니다.
저는 시형(柴衡)의 천한 몸으로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머리가 세도록 쓸쓸한 골짜기에서 지냈는데, 형도 말세 세상과는 뜻이 맞지 않아 관직을 내던지고 경전을 탐구하면서 서로 한평생을 보내기로 기약하였는바, 이 사업을 거의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중년에 형은 이 세상에 드문 성상의 지우(知遇)를 받아 나갔기에 장차 자신을 이루어 준 공부를 미루어 나가 다른 사람에게 미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론(異論)을 떠들어 대는 자들이 가로막고 우리 백성들이 불행하여 이미 당대에 이 도를 능히 행할 수가 없었으며 또 유편(遺編)에 이 도를 능히 밝혀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실낱같은 명맥이 끊어져서 어두워져 알지 못하게 되었는바, 하늘의 뜻을 참으로 알 수가 없으며 귀신의 마음을 참으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아, 슬픕니다. 우리 형이 과연 우리 동방을 내버려서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까. 두드려 보아도 들을 수가 없고 물어보아도 답하지 않으며 슬피 울부짖어도 저를 알아보지 못하니, 이미 다 끝나 버렸으며 이미 다 글러졌습니다. 쇠같이 쟁쟁하던 목소리와 옥같이 아름답던 모습을 이 세상에서 이제 다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붕우들이 강마(講磨)하자고 부탁하는데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문인들이 개발해 줄 것을 믿고 있는데도 그것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후세에서 도를 닦는 사명을 맡겨 주었는데도 그것을 걱정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같은 조정에 있는 진신(縉紳)들이 모의(謨議)하고 주획(籌劃)하는 데에 의지해 결정하려 하는데도 그것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북쪽에서 수자리를 살고 있는 군사들이 한 해가 넘도록 갑옷을 입고 있으면서 날마다 자신들을 돌아가게 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데도 그들을 애처롭게 여기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정사가 번거롭고 부역이 과중해 타향 땅을 떠돌고 있는 홀아비나 과부 들이 고개를 빼들고 발꿈치를 치켜든 채 자신들을 구해 주고 자신들을 살려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우리 성상께서 조심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깊어 200년간 전승한 종사(宗社)를 모두 가져다가 한 사람의 신실한 신하에게 부탁하고서 경장(更張)함이 있기를 바라는데도 그 마음을 본받지 않으며 떠받들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살아서는 머뭇거리고 사모하면서 이 세상을 잊지 않다가 죽어서는 서로 끊어 버림이 이처럼 심하단 말입니까.
아, 슬프고도 슬픕니다. 우리 형은 물이 솟아오르고 산이 우뚝 솟은 듯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이 문장에 뛰어났다고 일컫지 않았습니다. 형은 오늘날을 환히 통하고 옛것을 두루 아는 드넓은 견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이 견식이 많다고 일컫지 않았습니다. 형은 소를 해체하고 얼음이 풀리는 듯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이 지식이 많다고 일컫지 않았습니다.
형은 밝게 비추어서 운수를 헤아리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이 지혜와 술법이 뛰어나다고 일컫지 않았습니다. 형은 강하(江河)를 거꾸로 쏟는 듯한 유창한 말재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이 말을 잘한다고 일컫지 않았습니다. 형은 담박하고 욕심이 적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이 청렴하다고 일컫지 않았습니다. 형은 할 말을 다하면서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이 곧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은 어리고 천한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면서 혹시라도 상할까 걱정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이 자애롭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은 부모를 봉양하면서 생사 간에 그 정을 극진히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이 효성스럽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은 형제 사이에 처해서는 종시토록 그 사랑을 다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이 우애롭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은 상대방을 성의로 대하면서 겉치레를 꾸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이 신의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은 임금을 지극한 정성으로 섬겨 숨기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형이 충성스럽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것은 제가 우리 형에게 바라는 바 전체가 혼연(渾然)하여 한 가지 기예나 한 가지 행실로써 그 이름을 이루어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슬프고도 애통합니다.
우리 형은 천분(天分)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서 하늘 위를 나는 봉새이고 닭의 무리 속에 서 있는 학이고 구름이 걷힌 푸른 하늘이고 달이 비치는 얼음 항아리였습니다. 위에서 전해 받은 바가 없었으나 기다리지 않고서도 일어났습니다. 《소학》을 공경히 믿었으며, 《근사록》을 높이 숭상하였습니다. 사서(史書)에도 두루 통하였으며, 여러 경전의 뜻을 밝혀냈습니다.
참으로 능히 일찌감치 발탁되지 않고 순서에 따라 내면을 수양하여 은약(隱約)의 가운데에서 여유롭게 노닐고 본원(本原)의 자리에서 푹 젖어 지내면서 오랜 시일 동안 공정(功程)을 쌓아 정밀히 생각한 것이 관철되고 축적한 것이 심후해지게 하였다면, 수사(洙泗)의 학문을 계승하고 염락(濂洛)의 연원을 이음으로써 분명한 단서를 찾아 이를 책으로 저술해 후대에 남겨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실추되지 않은 도를 완미하고 해와 달이 거듭 빛나는 데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한때에 지우(知遇)를 받은 것이 펼쳐져 쓰였어도 유감이 없을 것이고 거두어 간직하였어도 유감이 없었을 것입니다. 천지의 바른 도리를 체득하고 조화의 운행을 떠맡아 우리 유도(儒道)를 위하고 우리 백성들을 위하는 것이 참으로 그 사이에서 덜어지거나 보태지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혼자 있거나 미처 발현되기 이전에 닦은 것은 가면 갈수록 더 정밀한 지경에 미치지 못하였고, 계획하고 시행하거나 조처하고 처리하는 사이에서 바라는 것은 도리어 지나치게 드러나거나 지나치게 서두른 점이 있었습니다. 헌면(軒冕)은 장막을 내렸을 때에 휘황하게 빛났으며 음려(陰沴)는 요직을 맡고 있던 날에 나타났는데, 물러나게 해 달라고 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으며 대한(大限)이 잠깐 사이에 궁해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자신에게는 사탕수수를 끝까지 다 먹지 못하는 탄식이 있었으며, 다른 사람에게는 때맞춰 내리는 비가 흡족하지 못한 한스러움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이른바 “조물주가 장난을 쳐서 우리의 도가 장차 궁해지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형을 이 세상에 내려보내면서 기대하였던 뜻이 끝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아, 애통합니다.
형은 평소에 제가 도체(道體)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 것으로 허여하였는데, 늘그막에는 논한 바가 점차 서로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학문상으로 혹시 새로운 견해를 주장하면, 사람들은 모두 의심스럽다고 여겼는데 오직 형만은 홀로 저를 믿어 주었습니다. 드러나고 어두움은 서로 현격하게 달랐지만, 서로 간에 기약하고 기대하는 마음은 머리가 세어서도 더욱더 커졌습니다. 그리하여 짐은 무겁고 길은 멀어서 함께 종신(終身)의 걱정거리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저보다 우리 형이 먼저 죽을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죽어서도 지각이 있다면 역시 저의 슬픈 마음을 알 것입니다. 제가 말할 때 화답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제가 길을 갈 때 수작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이것이 자주자(子朱子)가 말한 “나의 왼쪽 팔을 맡기고 오른쪽 팔을 내준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제가 슬피 울부짖으면서 애통해하고 애석해하는 것이 뭇사람보다 훨씬 더 심한 것입니다.
아, 저는 형보다 2년 앞서 태어났으니 금년의 제 나이가 쉰하나입니다. 형은 그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도 능히 몸을 보전하지 못함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저의 쇠약하고 잔열한 몸이 또한 어찌 이 세상에 오래 살아남을 수가 있겠습니까. 단지 몸을 닦고 허물을 고치고서 지하에서 서로 만나 보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이 인간 세상에 다시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우리 형과 더불어 서로 깊이 허여한 것은 이제 삶과 죽음으로 갈렸다고 해서 달라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즉 제가 죽기 전까지의 날들은 모두 우리 형이 힘을 쏟던 바에 나아가 힘쓸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평지를 가면서도 깊은 연못에 임한 것같이 하고, 상유(桑楡)의 끝에서 두려워하고 삼가서 마침내 성취한 바가 있어 아득하니 깜깜한 속에서 서로 저버리지 않도록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 말은 다함이 있으나 정은 끝이 없으며, 눈물은 다함이 있으나 애통은 끝이 없습니다. 형은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길게 통곡하노라니 숨이 끊어지는 듯합니다. 삼가 형은 흠향하기 바랍니다.
祭栗谷文
嗚呼哀哉。天胡賦兄以溫潤和樂灑落淸通之資。而不幷假以期耄之壽。天胡修兄以仁恕誠明從容純粹之學。而不兼畀以澤世之福。使吾君信之如蓍龜。位極崇班。而贊化之未試其術。使儒林仰之如山斗。名振中華。而睢盱者指摘其間。德之厚而祿之薄。合於古而乖於今。優於理而短於數。負一世經綸之望。荷千載際遇之深。若將有爲而擯擠之者非一。卒乃乾旋坤轉。事機方新。加額之手未下。云亡之歎先至。鞰玉含香。抑而終天。此所以擧國中外上自有志。下至匹夫匹婦之愚。驚摧呼哭。失聲相弔。雖未識面而涕泗先下者也。嗚呼哀哉。吾道之在天地間。或顯或晦。或抗或墜。而終不至泯滅者。得其位行其道。世雖或遠。而修諸書明其道。以淑諸人。眞儒之任其責者。亦能相繼而不絶也。程朱旣遠。聖學益孤。人慾橫流。天理將滅。功利科擧之習。日以誤人。兄於平日。奮然興歎。謂余志同。共策駑鈍。或對講而未洽。又交書而硏窮。兄之所是。我或非之。我之不然。兄或然之。紏紛往復。三十年于玆。大之爲天地山川。小之爲草木昆虫。陰陽鬼神之變。誠幾動靜之妙。近而灑掃應對。遠而盡性知命。析之極其精。合之盡其大。聖賢之所未窮。夫婦之所可知。行藏之義。進修之方。兄旣探翫不舍。而我亦粗識其一二。我以柴衡之賤。一簞一瓢。白首空谷。兄又叔世寡合。投紱窮經。相期百年。庶卒斯業。中年兄被聖明不世之知。謂將推成己之功。以及于人。而異論夭閼。斯民不幸。旣不能行此道於當世。又不能明此道於遺編。使垂絶如綫之派。否晦而莫之。知。天意誠不可知。而鬼神誠不可測也。嗚呼。吾兄果棄吾東方而至於斯耶。叩之無聞。問之不答。悲呼而莫我知。已矣哉已矣哉。如金之聲。如玉之容。不可復見於今世矣。何朋友講磨之有托而不之念耶。何門人開發之有恃而不之恤耶。何後世修道之有屬而不之憂耶。何同朝縉紳謨議籌畫之倚以爲決而不之顧耶。何戍北將士擐甲周歲。日望還我而不之憐耶。何政煩賦重。流離鰥寡。引領佇足。活我生我 之有待而不之哀耶。何聖上兢惕憂懼之深。都將二百年宗社。付之一介臣。冀有更張。而不之體不之奉耶。何生之遲回眷戀。不忘斯世。而何死之相絶之深耶。嗚呼哀哉。嗚呼哀哉。吾兄有水湧山出之文。而吾不以文章稱。有通今博古之見。而吾不以多見稱。有牛解氷釋之識。而吾不以能識稱。有燭照數計之智。而吾不以智術稱。有江河倒懸之辯。而吾不以善言稱。恬淡寡慾而不以爲淸。盡言不諱而不以爲直。撫幼賤猶恐有傷。而不以爲慈。奉父母生死極其情。而不以爲孝。處兄弟終始盡其愛。而不以爲友。接 人悃愊無華。而不以爲信。事君至誠無隱。而不以爲忠者。所望於吾兄。渾然全體。不欲以一藝一行而成其名也。嗚呼哀哉。嗚呼哀哉。吾兄天分超邁。鳳翔風表。鶴立鷄羣。雲開碧落。月照氷壺。上無所傳。不待而興。敬信小學。尊尙近思。旁通史氏。發揮諸經。苟能登擢不早。充養有序。優游隱約之中。涵泳本原之地。累以功程。積以時日。精思者貫徹。蓄貯者深厚。續響洙泗。接源濂洛。的有端緖。載書垂後。玩心乎文武之未墜。收效於日月之重光。則其遇乎一時者。舒亦無憾也。卷亦無憾也。其體天地之正。任造化之運。爲斯道爲斯人者。固無損益於其間也。今乃不然。修於幽獨未發之前者。未及乎逾精逾密。而望於設施事爲之間者反有以太露太速。軒冕煌燿於下帷之時。陰沴蝃蝀於當軸之日。求退不得。大限俄窮。在身者有啗蔗未窮之歎。入人者有時雨未洽之恨。誠所謂造物之所戲。而吾道之將窮也。天之期下地降斯人之意。竟安在哉。嗚呼哀哉。兄於平日。許我以於道體有所見。晩來所論。漸無異同。我於學問上。或有新見。衆人皆以爲疑。而惟兄獨信之。顯晦雖殊。相期相待之心。白首逾大。任重道遠。共抱終身之憂。那知今日遽 先吾而死耶。死而有知。其亦知吾之戚戚也。吾言之而和者誰歟。吾行之而酬者誰歟。此子朱子所謂任左肱而失右臂者也。此所以吾之哀號痛惜。獨異於衆人者也。嗚呼。吾生先兄二歲。今年五十有一也。以兄之如許精神。而不能保如此。況我之衰朽殘劣。亦何能久於世乎。只祈修身補過。相見於地下而已。復何有心於人間世哉。雖然。與吾兄相許之深。不可以生死而殊異。則未死前日月。是皆報吾兄用力之地也。敢不履平地若深淵。惕若於桑楡之末。卒有所成就而不相負於冥冥之中也耶。嗚呼。言有窮而情不終。淚有盡而痛無極。知乎不知。長慟欲絶。伏惟尙饗。
첫댓글 구봉 송익필님이 율곡을 추모하시며 지으신 제문
정감에 슬픔. 애도. 감회가 느껴집니다.
원문과 변역문을 대조하며 읽으니 참 공부도 되는 거 같고요.
구봉선생은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중봉 조헌과 학문을 논하는 대유학자로 문인으로는 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 약봉
서성과 참판을 지낸 김반 등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당대의 학문이 대단했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