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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마 도경수
재업입니다.
"진짜 대단하다. 도경수."
"예?"
"4년인가 좋아했다며."
PX에서 간식거리를 사온 경수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제게 말하는 선임의 말에 그 자리에 멈춰서서 예. 그렇습니다. 하며, 긍정을 표했다. 아직까지 닦이지 않은 물방울이 경수의 턱선을 따라 티셔츠에 떨어졌다. 물이 묻은 손으로 관물대를 열어 안쪽에 붙어있는 사진을 확인했다. 데뷔 초의 해울을 알아보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 관물대의 사진을 보던 경수의 선임들이 여자친구냐고 물었던 적이 많았고. 경수는 그에 고개를 저으며, 응원하는 사람이라고만 대답했다. 몇 몇 후임이 어? 서해울이네요! 하고, 아는 척을 한 덕에 여자친구라는 누명은 벗었지만.
해울에게 짧은 메세지로 마지막 인사를 한 경수가 머리를 짧게 자르고 훈련소에 들어온 게 2014년 12월. 한 겨울에 공군, 성남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것을 감사할 정도로 혹한의 추위가 몰아쳤다. 공군도 1차 심사를 통해서 먼저 합격, 불합격으로 나뉘게 되고, 워낙에나 지원자가 많아 떨어지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고교 출결 + 자격증 및 면허 + 전공 학력 + 가산점을 그리고 면접을 통해서 고득점 순으로 선발을 하니까.
인터넷을 통해서 공군 합격 여부를 확인했을 때, 경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녀올 수 있을 때, 일찍 다녀오자. 라는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이렇게 확 붙어버릴 줄이야.
"야, 서해울 좋아하냐?"
"아, 예."
"예쁘더라. 사진들. 직접 찍었냐?"
"예."
오올, 선임들이 경수의 관물대에 붙어있는 해울의 사진을 보며, 경수에게 엄지를 들어보였다. 민망한 기분에 아직까지 얼굴에 맺혀있는 물방울을 수건에 닦은 경수가 선임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해울의 사진을 바라봤다. 무대 위에서 해맑게 웃는 해울의 사진을.
경수의 서해울 사랑 그 소식은 여러 소대에 퍼져나갔다. 심지어 티비에서 해울이 나오면 경수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다른 소대 이병이 달려나와 도 일병님! 해울님 나오십니다! 하며, 경수를 티비 앞으로 이끄는가 하면. 한참 해울이 광고하던 우유에 붙어서 나오는 해울의 사진을 잘라 모아 경수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 이게 무슨. 심지어는 서해울을 지키기 위해서 나라를 지킨다는 터무니 없는 소문까지 돌았다.
2소대 도경수는 그 정도로 유명했다.
"오. 이번에 서해울 위문 공연 온다는데."
"아, 들었습니다."
"사진도 자주 찍었으면 서로 알겠네?"
궁금하다는 듯 담배를 물며 물어오는 선임과 얼마 전 새로 들어온 경수의 맞후임이 경수를 바라봤다. 얼굴 다 가리고 다녀서 모를 겁니다. 그 말에 선임이 아쉽네. 하며, 하고 담배에 불을 붙였고. 경수는 이거 드십쇼. 각 잡힌 말투와 함께 맞후임이 건네는 음료를 받아마셨다. 위문 공연도 하는구나.
선임이 맡아준 맨 앞자리로 밀려간 경수가 무대 위를 바라봤다. 부대 안에 소문이 쫙 퍼진 덕에 경수가 선임들과 후임들의 손에 밀려 앞으로 나아갈 때, 아무도 그를 저지하지 못했다. 앞으로 밀면 더 밀었지. 누가 2소대 도경수를 앞에 나간다고 뭐라고 할 수 있겠냐고.
"도경수! 도경수!"
"아..."
"뭘 쑥스러워 해."
옆에서 경수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하는 선임과 제 이름을 복창하는 부대 사람들을 바라보다 머리를 부여잡았다.
"우와, 공군 부대는 진짜 처음 봐요."
"여신이다!!!!!!!"
"아, 감사합니다! 서해울입니다!"
해울의 첫 인사에 부대 전체가 여느 훈련 때보다 목소리를 크게 냈다. 우워. 하는 거대한 소리가 해울에게 닿자 해울이 어? 하고는 얼굴을 가린 채 웃었다. 그 모습을 앞에서 구경하던 경수가 지금 제 자신에게 카메라가 없다는 사실을 원망했다. 사스가 해울의 개.
장병들의 목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던 해울의 공연이 끝나고, 잠시 국군 장병들의 소원을 이루어드립니다. 라는 코너에 선임이 경수를 무대 앞으로 더 들이밀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벗어나려는 경수에 모든 선임들이 경수 앞을 막아섰다. 무대 앞에 혼자 튀어나온 경수를 보던 진행자가 '여기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튀어나오신 장병 분이 계십니다. 올라오세요!' 그 소리에 경수의 선임, 후임이 종이로 만들어진 플랜카드를 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와, 환호가 진짜 크네요. 원래 팬이세요?"
진행자의 질문에 경수의 시선이 저를 바라보는 해울에게 닿았다가 잔뜩 붉어져 뜨거운 열을 뿜어내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제 머리 위에 씌워진 모자를 더 눌러썼다. 저를 바라보는 해울의 시선과 주변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장병들에 경수가 굳게 닫혀있던 입술을 열었다.
"네."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모두가 모자를 벗어 위로 흔들었다. 도경수 고백해! 하는 큰소리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자기 소개 좀 해주세요."
"성남 방공 부대, 2소대 일병 도경수입니다."
소개가 끝나자마자 터져나오는 소리에 경수가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내가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선임들이 경수를 향해 야! 안아버려! 하는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그에 해울이 네? 하며, 마이크를 들이댔고, 마이크를 잡은 경수의 절친한 선임이 입을 열었다. 우리 경수 완전 팬입니다. 아, 상병 님...
"그럼 기념으로 포옹 한 번 하시고! 싸인도 받아가세요!"
"어! 제가 해드릴게요."
진행자의 말을 뒤로 해울이 다가오자 경수의 머릿 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내가 오늘 언제 씻었더라.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해울에 경수가 가만히 팔을 벌려 안았다. 마치 연인이 만난 것을 본 듯 강당에 건장한 남자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제 품에 안겨있는 해울의 머리를 감싼 경수에 해울이 눈을 꿈뻑였다. 경수는 익숙한 듯 해울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고는 떨어졌다. 멍하게 있던 해울이 다시 마이크를 집어들었고, 아직까지 모자를 푹 눌러쓴 경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도경수 일병님!"
아주 맑은 목소리로.
"힘내세요!"
경수를 응원했다. 그 말에 경수는.
"나라 열심히 지키고 돌아가겠습니다."
해울을 바라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것이 경수가 처음 받은 해울의 응원이었다. 자신이 응원하던 가수에게 듣는 힘을 내라는 말은. 어느 말보다 예쁘고, 어느 말보다 마음에 담기는. 그런 말이었다.
홈마 도경수
"근데, 여기는 어떻게 알았어?"
"일할 때 여기 와."
우연인 것 처럼 보자는 말. 경수는 그 우연을 만들기 위해 해울이 오기 전부터 창가에 앉아 해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따뜻함이 가득한 카페에 홀로 앉아있다 태블릿을 꺼낸 경수가 메일을 확인하고, 제가 보낸 메일에 회신을 한 출판사 직원의 메일을 확인할 때쯤 제 앞에 다가와 앉은 해울에 태블릿을 덮었다. 오늘도 핫초코를 시킨 해울이 저와 닮은 머그잔을 들고, 경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핫초코를 해울이 조금씩 넘겨내며, 저번에 제 코디가 물었던 말을 떠올렸다.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보라고 했던 그 말. 그리고, 수 많은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쇼핑백을 들고 왔던 경수의 부, 뭐. 그 친구 찬열까지. 팬싸에서는 나누지 못했던 얘기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해울이 경수를 바라봤다.
"왜?"
"생각해보니까... 너는 날 잘 알잖아."
"응."
"나는 널 모르는 것 같아."
핫초코 위에 올려진 크림이 묻은 것도 모르는 채 진지하게 말하는 해울에 경수가 가만히 냅킨을 잡아 해울의 입술 가까이에 댔다. 그 행동에 해울이 놀라 뒤로 물러났지만. 경수가 몸을 일으켜, 해울의 입술 위에 묻어있는 크림을 닦아냈다. 진짜 존잘이다. 진짜. 그렇게 경수의 손길이 해울에게 잠깐 닿았다가 떨어졌을 때. 아직까지 멍을 때리는 해울에 경수가 냅킨을 놓고는 턱을 괴고 바라봤다.
흡사 남자 연예인들의 화보를 보는 듯한 기분에 해울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게다가.
"어떤 걸 알고 싶은데."
"어?"
말은 얼마나 잘하는지. 경수의 목소리와 문장의 콜라보에 해울이 없는 부랄을 탁 친다. 라는 말을 떠올렸다. 해울의 반응에 날 모르는 것 같다며, 뭘 알고 싶어. 낮은 목소리로 이루어져 흘러나오는 경수의 말에 해울이 입을 틀어막을 뻔 한 손을 다른 손으로 잡아 꾹 내렸다.
여자 여럿 꼬셨을 거야.
해울의 요상한 표정을 본 경수가 한 쪽 눈썹을 올려 의문을 표했다. 아무 대답도 없이 저를 바라보기만 하는 해울에 그냥 제 앞에 놓여있는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들이켰다. 날씨가 추운데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니. 대답도, 질문도 없이 저를 바라보는 해울에 경수가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민망한 분위기가 사라진 건 해울의 질문에 의해서였다.
"무슨 일 해?"
긴 시간 동안 저를 응원했던 것도 그렇고, 가끔 트위터를 통해서 보였던 해독 관련 멘션들은 모두 '해독 재벌 아냐?' '조공 메세지북 빼고는 다 혼자 진행하잖아.' 이런 내용들을 나타내고 있었으니까. 7년, 그 동안 받아왔던 큰 선물들을 혼자 진행했다고 하니까. 궁금증이 하늘을 찌를 수 밖에. 제 물음을 듣고만 있는 경수에 해울이 발을 동동 굴렀다.
무슨 일 하냐니까아. 말꼬리를 늘이며 물어오는 해울에 경수가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망설였다. 백수일까. 아니면 잘나가는 집안의 막내 아들. 자신의 퍼스널리티를 떠올리던 경수가 제 앞에서 머그잔을 구경하는 해울의 머리를 제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마치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노크를 하듯이.
"응?"
"궁금하다며."
아무것도 없는 테이블 위에 손가락을 올린 경수에 해울이 의미 파악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아니, 또 어려운 퀴즈인가. 경수의 곧게 뻗은 손가락이 테이블과 만나 움직임을 그렸다. 그에 해울의 눈동자가 경수의 손가락의 동선을 급하게 쫓았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가 만나 글자 하나를 만들면 해울이 그것을 소리내어 읽었다.
'ㅎㅐ'
"해."
'ㄷㅗㄱ'
"독."
아씨, 장난하나. 제 반응에 만족스럽다는 듯 웃는 경수에 해울이 고개를 돌렸다. 토라진 듯 고개를 돌리고 밖을 구경하는 해울의 표정이 꽤 많이 쌓인 눈에 의해 풀어졌다. 그것을 앞에서 바라보던 경수도 고개를 돌려 해울과 같은 곳을 바라봤다. 새하얀 낙원. 새하얀 눈이 덮은 세상.
한참이나 경수와 무슨 일을 하냐는 주제로 실랑이를 할 때쯤 걸려온 전화에 해울이 경수를 바라봤다. 핸드폰을 한 손에 쥔 채로 몸을 일으키려는 해울을 따라 경수의 시선이 움직였다. 앞에서 통화해도 되는데. 경수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전화. 입모양으로 그렇게 말하는 해울에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해울이 자켓 하나 걸치지 않고 가게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추운 거 싫어하면서 또 저렇게 나가네."
경수가 반대편에 놓여있는 해울의 자켓 대신 가까이에 놓여있는 제 코트를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누구랑 노는데?"
"너가 누구랑 논다고 하면 다 알고 그래?"
- "거의 다 아는 정도지?"
"또 서해울 척척박사인 척."
추운 날씨에 해울이 몸을 벌벌 떨며, 들려오는 백현의 대답에 무심하게 대답했다. 제가 왜 매장 밖으로 나왔을까요. 하느님. 하늘을 향해 속으로 질문까지 하면서. 저를 걱정이라도 하는 것인지 하루마다 걸려오는 백현의 전화에 해울이 고마움을 느끼는 것도 잠시. 누구와 노는 거냐고 탐문을 시작함에 해울이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 깜짝이야."
- "왜. 넘어졌어? 조심 좀 해."
"그거 아니거든? 기다려!"
제 비명이 들리자마자 걱정을 하는 백현과의 전화를 잠깐 끊은 해울의 뒤에 서있는 경수를 바라봤다. 아니, 왜 나왔대. 잠깐 통화하려고 나온 건데... 들려있는 핸드폰을 보여주자 경수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나왔어? 해울이 입을 열 때마다 나오는 입김을 보던 경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대에서 보다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추운 거 싫어하잖아."
찬바람을 맞아 차갑게 식어버린 제 니트 위로 경수의 코트가 덮어졌다. 저번에 맡았던 그 향까지 바닥에 가득 쌓여있는 눈처럼 하나씩 쌓여갔다. 그렇게 몇 번 제 위로 덮어준 코트를 빨개진 손으로 정리하던 경수가 통화 마저 하고 와. 하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 "와, 이젠 전화도 막 끊으시고?"
"..."
- "서해울!"
"... 나 떨려."
- "뭐?"
"나 왜 떨리는 거야?"
추위에 떠는 게 아니라고. 해울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백현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화보 촬영 중에 전화를 건 백현은 얘가 추위에 떤다는 거야. 뭐야. 하며, 세훈을 붙잡고 같이 전화기에 귀를 가져다 댔다. 퍽 우스운 꼴이지만 지금 해울이 하는 말보다 우스울까. 누나 바보 아니에여? 세훈의 말에 백현이 그런가. 하고 공감했다는 건 해울만 모르는 이야기.
"통화 다 했어?"
"나 갈래."
"뭐?"
"나 가야돼."
"아, 그래. 나가자."
전화가 끝났는지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가겠다는 제 말에 무슨 일 있냐고 물을 수도 있건만 앉아있던 경수는 해울이 건네는 코트를 잡아들고, 해울의 코트를 건넸다. 언제 시켜놓은 건지 새 머그잔에 담긴 핫초코에 해울의 시선이 닿았다가 금세 떨어졌다. 보지 말자. 보지 말자. 해울이 마음 속으로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뇌였다.
"내일도."
"..."
"우연이겠지."
경수의 말에 해울이 알 수 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우연인 것처럼 만났으니, 내일도 우연인 것처럼 보자는 소리인가. 이해를 못하는 해울을 보던 경수가 집 어디야. 데려다 줄게. 하며 다정하게 물었고, 해울은 제가 끌고 온 차를 가리키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서로의 손가락이 찬 바람을 만나 빨갛게 얼어갈 때쯤 해울이 먼저 손을 흔들었다.
"나 갈게!"
"조심해서 가."
내일 보자.
우연을 통한 만남.
홈마 도경수
이제는 자연스럽게 외출을 준비하는 해울이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보고 실실 웃었다. 오늘은 또 무슨 대화를 할까. 경수도 저와 만나는 이 시간을 기다리지는 않을까. 오늘 옷이 괜찮은가. 여러 걱정들 사이에서 분홍색 코트를 꺼내입은 해울이 거울에 제 몸을 비췄다. 봄을 걸친 기분이 들었다. 한 바퀴 돌아 제 모습을 확인한 해울이 입술 위로 색을 덮은 뒤 방을 나섰다.
펑펑 쏟아지는 눈 사이로 검은 코트와 흰색 줄무늬가 수놓아져있는 목도리를 두른 경수가 발걸음을 내딛었다. 소복히 쌓여있는 눈 위로 경수의 발자국이 새겨졌다. 딸랑이는 종소리가 조용한 카페 안에 퍼져나갔다. 이제는 그런 경수가 익숙하다는 듯 가볍게 목인사를 한 알바생에 경수도 짧게 인사했다. 매번 같은 음료를 시키는 경수에 포스를 몇 번 누른 알바생이 경수를 바라봤다.
"해울 누나랑 친해요?"
"누나요?"
아, 카톡하는데 누나가 그렇게 부르라고 해서요. 또 언제 친해진 건지. 사람들이 등을 돌려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손을 내미는 해울에 경수가 아. 하며 반응했다. 친한 건 아니고. 카드를 내밀며 대답하는 경수에 알바생이 카드를 긁었다. 번호도 주고 받았어요? 경수의 물음에 알바생이 영수증과 카드를 건네며, 네? 하고 반문했다.
"번호도 받았어요?"
"아! 네. 누나가 가게 안 여는 날 생기면 알려달라고."
날씨가 안 좋으면 저희가 문을 닫거든요. 밖에 쌓인 눈을 가리키며 덧붙이는 말은 듣지도 않은 경수가 울리는 종소리에 고개를 돌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해울을 바라봤다. 또, 또.
"경수야!"
예쁘지.
옆에서 경수가 바라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완전 추워. 핫초코, 핫초코. 해울과 잘 어울리는 분홍빛 오버핏 코트 안으로 숨은 손을 꺼내 난로에 쬐는 해울에 알바생이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크림 완전 많이 올려줄게요. 그 말에 좋다고 웃는 해울이나, 신나게 뛰어들어가는 알바생이나. 경수는 한 손에 물이 잔뜩 맺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그 둘을 향해 시선을 바쁘게 돌렸다.
백현과 해울이 듀엣을 할 때도, 해울을 다른 남자 연예인들이 이상형으로 꼽아도 아무렇지 않았던 경수였다. 근데.
"누나, 근데. 누나 수록곡 중에 겨울의 소년 있잖아요."
"응?"
"그거 진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거든요."
"우와, 나 저번에 그거 팬싸에서 불렀었어."
진짜요? 그거 라이브로 들어보는 게 제 소원인데! 일 안 하냐고 묻기 민망할 정도로 조용한 카페에 해울과 알바생의 목소리가 울려나갔다. 저를 앞에 앉혀놓고 옆에 앉은 알바생과만 대화를 나누는 해울에 경수가 가만히 턱을 괴고, 둘을 바라봤다.
나중에 공연하면 부를게. 못 할 수도 있지만... 해울의 말에 알바생이 응원한다며,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경수가 그에 해울을 바라봤고. 해울이 고맙다며 밝게 웃었다. 이상하네. 제 앞에 놓인 핫초코가 식는 것도 모르는 채 대화를 나누는 둘에 경수가 닫혀있던 제 입을 열었다.
"핫초코 다 식겠다."
"아, 맞다!"
머그잔을 밀어주며 말하는 경수에 해울이 머그잔을 들어올렸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생글생글 웃으면서. 오늘 기분이 좋은 걸까. 경수는 하루종일 웃기만 하는 해울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것을 보던 알바생이 다시 해다가 드릴게요. 하며, 해울의 머그잔을 거둬갔고. 해울은 고마워. 하며, 또 눈꼬리를 잔뜩 휘었다.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해?"
"그냥 구경했어."
"응?"
"너 웃는 거."
그 말에 해울이 민망한 듯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테이블에 올린 손으로 테이블 끝을 만지작 거리면서. 그 모습을 보던 경수가 창 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봤다. 겨울이 언제쯤 끝나려나. 그런 경수를 바라보던 해울이 손을 뻗어 경수의 볼에 가져다 댔다. 여기 뭐 묻... 그 말에 고개를 돌린 경수의 입술에 해울의 손가락이 닿았다.
"뭐, 붙어가지고..."
"..."
"그래서 그래!"
고개를 짧게 끄덕인 경수가 아직까지 제 입술에 붙어있는 해울의 손가락을 제 손으로 감쌌다. 그 손을 이끌어 제 볼에 가져다 댄 경수가 해울을 바라봤다.
"난 안 보이니까. 네가 떼줘."
손이 붙잡인 채로 경수의 볼에 붙은 털을 숨을 참은 상태로 조심스럽게 떼어낸 해울이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때마침 나온 핫초코에 더 크게 반응하며, 알바생을 반겼다. 그 모습에도 태연하게 턱을 괸 채로 해울을 보던 경수가 제 앞에 놓인 음료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근데 형은 무슨 일 해요? 매일 여기 오는 거 보면 직장인은 아닌 것 같고. 또 다시 해울의 옆에 앉은 알바생에 경수가 들려오는 질문에 해울을 바라봤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 고민하던 경수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백수예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대답하는 경수에 저렇게 여유가 넘치는 백수가 있다니, 알바생이 입을 떡 벌렸다. 옆에서 경수 말에 집중하던 해울 또한. 진짜? 하며, 물었다. 카드 완전 멋있는 거 쓰던데? 또 알바생과 해울의 대화를 이어준 제 자신이 멍청해보여 한숨을 내쉰 경수가 신나서 대화를 나누는 둘을 바라봤다. 지금 내가 뭘 하는 건지.
"근데 경수야."
"응."
"사진 진짜 잘 찍더라."
"갑자기 무슨 소리야."
"다른 사람 같대. 더 예쁘다고."
사장님께 혼날 수도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알바생이 해울과 경수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벗어나고, 머그잔만 매만지던 해울이 고개를 숙인 채 하는 말에 경수의 시선이 해울의 머리로 향했다. 작다. 자그마한. 그 단어가 떠올랐다.
"아닌데."
"응?"
어떤 친구가 해울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가만히 제가 찍었던 해울의 모든 사진을 떠올리던 경수가 대답했다.
"내가 찍은 건 너야."
"..."
"그러니까."
경수의 말에 해울이 머그잔을 만지던 손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예쁜 것도 너야."
하염없이 곧은 경수의 시선에 해울이 가득 밀려들었다. 너는 부정할 수 없는 내 아름다움이다.
해울의 개
@Haeul_s_dog
루머 관련 물음 받지 않습니다. 해울이에게 상처가 될 멘션은 제게도 하지 마세요.
해울의 개
@Haeul_s_dog
해울이 휴식기 기간 동안 해울의 개도 잠시 쉬어갑니다.
해울의 개
@Haeul_s_dog
해울이 해치는 말들 모두 모으고 있습니다. 언젠가 돌려받으실 겁니다.
네가 내 꿈 속에 남기는 잔상.
그 잔상 마저 아리따우면.
나는 어찌 해야하나.
- 해독 '너를 위한 세상'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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