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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에서 구원받은 신자가 걸어가야 할 거룩한 삶의 과정인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성경적 정의와 오해 그리고 성화의 세 가지 측면을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성화(聖化)'의 참된 정의와 오해 바로잡기
용어의 뜻: 성화의 핵심 의미는 '깨끗해지는것' 이전에, 거룩한 목적을 위해 '분리되는 것(성별, 성적 구별)'을 뜻합니다. (예: 구약의 안식일, 제사장, 시내산의 구별 및 예수 그리스도의 성별)
잘못된 견해들:
완전 성화론: 예수를 믿은 후 특정 계기를 통해 내주하는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완벽한 성품을 갖게 된다는 주장.
점진적 개선론: 인간의 옛 성품이 점차 개조되어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주장.
성경적 사실: 성경이 말하는 성화는 위의 두 견해와 다르며, 아래의 세 가지 측면(성령, 피,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2. 성화의 세 가지 측면
① 성령으로 말미암는 성화 (예비적· 실제적 성화)
내용: 죄인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기 전에,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깨우치고 세상과 구별하사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는 사역입니다(살후 2:13, 고전 6:11).
특징: 순서상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 칭의보다 앞섭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성령은신자의 시선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고정시켜 실제적인 성화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②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성화 (신분적·절대적 성화)
내용: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리신 희생 제사의 피로 말미암아, 신자가 심판 아래 있는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영원히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히 13:12, 10:10).
특징: 이 성화는 단번에 이루어진 완전하고 절대적인 성화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온전케 되었으므로(히 10:14) 이 신분적 성화에는 아무것도 더하거나 뺄 수 없습니다.
③ 하나님 말씀으로 말미암는 성화 (실제적·점진적 성화)
내용: 이미 피로 거룩해진 신자가 이 땅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진리)을 통해 날마다 더러운 습관, 부정한 것, 하나님의 마음에 대치되는 행동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해 나가는 과정입니다(요 17:17, 에베소서 5:26).
특징: 성경을 읽으며 성령의 조명으로 자신의 잘못된 습관(예: 흡연, 옛 행실 등)을 깨닫고 자백하며 끊어내는 과정입니다. 이 실제적 성화는 완전한 하늘 본향에 이르기까지 평생에 걸쳐 지속되는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3. 결론: 성화의 요약
성화는 신자가 세상으로부터 떠나 하나님께로 구별되는 전 과정을 말합니다.
성령의 사역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마음의구별을 얻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인해 하나님 앞에 영원하고 완전한 의인의 신분으로 구별(완성)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순서에 따름으로써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거룩함을 이루어 갑니다.
💡 한 줄 요약
**성화(聖化)**란 거룩한 목적을 위해 '분리'된다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단번에 얻은 '완전한 신분적 거룩함'**을 기초로 삼아, 내주하시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삶 속에서 죄를 멀리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점진적이고 실제적인 거룩함'**을 이루어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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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聖化)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는 이 성화에 대한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을만한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낱말은 "거룩함” (sanctification)입니다.
중생의 축복을 알고, 우리가 완성된 구속(救贖)을 통해 구원받은 것을 깨닫고,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얻었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한 확신은 다음 질문을 하게 합니다. "믿는 자가 거룩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성화"라는 용어의 실질적인 의미에 대해서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 간에 다양한 견해차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명백한 두 번째 은혜의 사역이라고 칭하는데, 그 견해에 따르면, 이미 의롭다함을 얻은 자가 후에, 주님의 뜻에 자신을 완전히 굴복시킴으로써 내주하는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그의 온성품이 내주하는 죄에서 완전히 깨끗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더 이상 어떤 악의 방해도 내적으로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위의 견해를 거절하고, 성화는 옛 성품이 점차 개선되어 마침내 하나님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견해를 견지합니다. 이제 여러 성경본문을 살펴봄으로써 그 두 견해 모두 하나님 말씀에 나타난바 없으며 성화는 그 두 견해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화라는 단어 자체는 분리된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거룩한 목적을 위해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을 살펴보면 성화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 데 놀라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구별하셨다는 기록을 대합니다.
그분은 모든 일을 쉬실 때 일곱째 날의 거룩성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따로 구별되었습니다. 율법이 주어진 시내산은 거룩하게 구별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거기서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결례와 같은 외적인 정결케함으로 자신을 거룩케 하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그것은 물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마음 상태에 영향을 주지 못했고 다만 몸만 깨끗케 했을 뿐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사람들이 죄를 저지르기 위해 자신을 거룩케 구별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것은 참 의아한 거룩입니다.
이사야서 마지막 66장 17절에서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에, 부정한 일을 위해 구별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한 일이었으나 이교도 관습에는 맞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의미에서 우상에게 구별되었으며, 따라서 그 단어 자체는 성별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거룩히 구별되셨습니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요 10:36). 주 예수님은 항상 무한히 거룩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따로 구별되어 세상에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라" 고 말합니다(벧전 3:15). 다시 말해서, 너희 마음에서 하나님께서 본래의 위치를 차지하게 하고, 너희 마음을 그분께 거룩히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성화"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첫째로, 성령으로 말미암는 성화와,
둘째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성화와,
셋째로, 하나님 말씀으로 말미암는 성화를 대합니다.
첫째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성화입니다(롬 15:16).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그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시대에 유대 민족은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이었습니다. 그 백성은 이방인에게서 여호와께로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이방인이 성령에 의해 거룩케 구별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할 때 성령께서 사람들로 그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신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그 사실이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13).
순서를 주목하십시오. 먼저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요 그 다음이 진리를 믿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성령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지 못하면 아무도 복음 진리의 말씀을 믿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사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복음을 전하러 나갈 때 우리는 공중 앞에 서기 전에 기도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말씀이 좋은 토양에 떨어져 열매맺도록 듣는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시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서, 구원받지 않은 남녀 사람들의 죄악된 삶을 지적한 후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순서를 주목하십시오.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입니다. 다시 말해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과 양심을 깨끗이 씻기 위해 제시되고, 성령께서 그 사람을 깨우쳐 다른 무리와 구별시키고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고, 그런 다음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선교회에서 말씀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서 30분쯤 앉아서 놀라운 간증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허랑방탕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개입하사 그들에게 새 생명을 주셨고 그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는지를 증거했습니다. 나는 그 간증에 깊이 감동된 나머지,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주제를 완전히 바꾸어 이 본문을 택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집회가 끝나자 한 형제가 창백하고 서글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자기에게 좀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그에게 다가 갔더니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오늘밤 신학을 뒤죽박죽 섞어버렸습니다."
"아, 그래요?" 내가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잡아주시지요.
나는 신학을 엉망으로 섞어버리길 원치 않습니다."
"말씀드리지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성화를 칭의 앞에 놓았습니다. 먼저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면 아무도 거룩케 될 수 없습니다. 칭의가 첫 번째 축복이고 성화는 두 번째 축복인데 당신은 그것을 바꿔버렸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하지만 저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요?"
"실수를 했습니다. 당신은 성화를 칭의 앞에 놓았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었느니라'고 기록 했으니까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잘못했습니다.
당신이 성경을 잘못 인용한 것입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한번 성경을 살펴볼까요?"
나는 그에게 성경을 건네주었고 그가 그곳을 찾아 읽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었느니라.' 잠시 기다려보세요. 인쇄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저의 성경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그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자기 성경을 가지고 돌아와서 다시 읽었습니다.
"...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었느니라."
개정역 성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 없나요? 그가 물었습니다. 어떤 이가 개정역 성경을 가지고 오자 그가 그곳을 찾아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기록된 데가 있는 줄은 미쳐 몰랐는데요.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글을 쓸 당시에는 거룩의 문제에 대해 잘 몰랐을 거예요."
그는 자기의 이론을 포기하지 않고 도리어 영감 받은 사도를 정죄하려 했습니다.
당신도 하나님 말씀에서 이런 말씀을 대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앞서 말했듯이 나는 특별히 믿은지 얼마 안 되는 어린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얼마 전만 해도 당신은 하나님의 일에 관해 전혀 아는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세상일에 폭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죄의식 속에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무겁게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러던 당신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당신을 거룩케 하고, 세상에서 분리시키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듣고 당신의 영혼이 그 복음을 흠뻑 들이마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당신은 진리를 믿었고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첫 번째 서신 1장 2절에서 동일한 사실을 암시합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언제 가련한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까요?
믿음의 순종을 통해서 그는 뿌려진 피 아래 처하게 됩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문 인방과 설주에 피가 뿌려진 집 안에 들어갔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들어가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의 거룩케 하는 사역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구원의 지식에 이르기 전에 시작되는 성화의 한 측면입니다. 그것은 예비적인 사역이며, 그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그것을 믿고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그런 다음 이제 그의 평생에 걸쳐 성령께서 실제적인 성화의 사역을 이뤄 가시는 것입니다. 즉,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점점 더 세상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더욱 사로잡히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사로잡히고 우리 눈이 그분께 고정될 때 우리는 그분을 닮게 되는데 그것이 실제적인 성화입니다.
그러나 성화에는 또다른 측면, 즉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성화가 있는데 특히 히브리서에서 발견되는 성화가 그러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에서 우리는 이런 말씀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성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성화를 말할까요? 그것은 주 예수님을 믿는 신자를 하나님께로 성별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서신(히브리서) 10장에서 우리는 복스런 주님께서 십자가로 가셔서 거기서 죄를 위한 한 제사, 즉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한 제사를 드리셨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때로 어떤 사제가 단 앞에 서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죄를 위해 피 없는 제사를 자주 드린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제사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제사로 죄 문제를 해결하셨으며 다른 속죄 제사는 영원토록 불필요합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심으로써 아버지 뜻을 이루시고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에 히브리서 10장 10절에서 이런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다시 말해서, 그 구주를 믿은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성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심판 아래 있는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그분께 구속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대속의 모든 효험 안에서 그분 자신에게 분리 되었습니다.
그 구절 아래를 계속 읽어 내려가보면 히브리서 10장14절에서 놀라운 말씀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성령의 영감으로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면 우리 중 일부는 감히 믿으려 하지 않을 놀라운 사실을 말합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당신은 이 사실을 믿습니까?
여기서 당신은 절대적인 의미의 성화를 발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는 영원히 온전케 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아무 고소도 퍼부어질 수 없습니다. 그의 죄는 제거되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그의 죄악이 그에게서 멀리 옮겨졌습니다. 이제 그는 그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고전 1:30)"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자신의 소명에 대해 말할 때 언급한 성화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행 26:16-18).
당신은 그 성화에 아무것도 더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개선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거기에서 아무것도 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완전합니다. 그 성화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습니다.
이어서 성화의 세 번째 측면, 즉 하나님 말씀으로 말미암는 성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우리는 복스런 주님께서 그분께 속한 사람들을 위한 중보자로서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 17:17-19절에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미 거룩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의 모든 효험 안에서 하나님께 성별된 자가, 이제 거룩한 삶, 실제적인 성화의 삶, 날마다 더러운 것과 부정한 것과 하나님의 마음에 배치되는 것에서 더욱 멀리 분리되는 삶을 살아가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화의 실제적인 측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에베소서 5장 25-2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친숙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그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복스런 책(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묵상하는데 많은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하고 물은 다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실제적인 성화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께서 우리로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데 사용하시는 도구입니다.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가령 당신이 성경을 읽다가 오랫동안 당신이 행해온 어떤 일을 정죄하는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그 행동에 잘못이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읽어 내려가다가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것이 잘못이었구나. 다시는 그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되겠구나."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께 나아가 잘못을 아뢴 다음, 그 일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달라고 은혜를 구합니다.
한 회심한 자를 알고 있는데, 그는 회심한 후 얼마간은 담배를 몹시 즐겼습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신을 올무에 빠뜨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그의 경험을 들려줄 뿐이며, 당신이 그 경험을 듣고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흡연을 무척 즐겼습니다. 어느 날 그는 성경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당신은 그 구절을 흡연과 관련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 말씀이 그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련한 죄인으로 죄에게 종노릇하던 시절에 얻었던 더러운 습관을 여기 애굽 밖에까지 가지고 나왔다니." 그는 곧바로 그의 방 선반 위에 있던 담배상자와 파이프를 다 추려서 불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담배와의 인연은 이제 다 끝났어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므로 깨끗해지고 싶어."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위해 하신 일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떤 이들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진실되게 자신을 그분께 내어드린다면 주님께서 능히 당신을 그 흡연습관에서 건져 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이라고 지적해주는 부분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은 그 부분을 판단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거기서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당신은 진리에 의해 성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볼 때, 당신은 온전히 성화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신분적인 성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성화를 생각하고 있다면, 당연히 당신은 온전히 성화되었습니다. 당신은 현재 모습보다 더 성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실제적인 성화를 생각하고 있다면 더이상 죄와 접촉하지 않을 하늘 본향에 이를 때까지는 아무도 자신이 온전히 성화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뜻 안에서 그분과 온전히 동행하며 살리라고 다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 내가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오늘 일을 돌아보며 그분을 근심시켜드린 부분이 생각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물론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자백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성화는 조금씩 진전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성화를 생각할 때 분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분리를 위해서, 즉 하나님께로 구별된 백성이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끄시는 성령의 사역에 의해 구별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속(救贖)한 보배로운 피에 의해 영원히 구별되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뜻을 배우며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리는 것들에서 정결케되고 분리되고 있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