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6년, 양대박 <두류산기행록>
정오에 비로소 곡암(哭巖)에 도착하였다. 한 승려가 말하기를 “옛날 하동(河東) 수령이 상봉에 오르다가, 이곳에 이르러 힘이 다해 통곡을 하고서 돌아갔습니다. 그 대문에 곡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비루하구나. 하동 수령의 나약한 의지여. 자기의 힘을 헤아려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험한 곳을 덤벼들어 무모하게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하려 하다니. 겨우 숲 속에만 들어갔을 뿐 백 리 길을 반도 못 가고 말아 한 삼태기의 공이 허사가 되었으니, 어찌 수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종에게 물을 길어오게 하여 한 바가지씩 들이켰다. 여기서부터는 앞사람은 뒷사람의 정수리를 밟는 듯하고 뒷사람은 앞사람의 발 밑을 보면서, 넝쿨을 잡거나 나무를 부여잡고 올라가는데, 그 괴로움을 감내할 수 없었다. 지팡이를 짚고서 서 있기도 하고, 바위에 걸터앉아 쉬기도 하였다. 오춘간이 나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힘내 오르게나, 하동 수령처럼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말게”라고 하였다. 서로 격려하면서 올라갔다.
○ 1610년 박여량 <두류산일록>
우리동(于里洞) 중간쯤에 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그 밑은 조금 움푹하였는데 ‘하동암(河東巖)’이라 불렀다. 세상에 전하기를 하동태수가 이곳에 이르러 지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이 바위 아래서 묵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 1643년 <박장원>선생의 지리산기
그런 다음 말을 버리고 가마를 타고 하동바위에 도착하였다.
곁에 있던 중이 “옛날 하동군수가 이곳에 이르러 비를 만나 길을 잃고 헤맸기 때문에 이 바위를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하였다.
○ 1790년,<이동항>선생의 [방장유록]
백무당에서 동쪽으로 걸어갔다. 비로소 산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우리 일행은 숨을 헐떡이며 조금씩 올라가 하동바위에 이르렀다.
○ 1934년, 김택술 <두류산유록>
10여 리를 가니 '하동암(河東巖)'이라고 세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가 있다. 옛적 하동군수가 가마를 타고 산에 오르다 떨어져 상처를 입었다가 이 바위에 도착해서 죽었다고 '하동암'이라고 부른다. 그런 사연을 들으니 두려워서 처마 끝에는 서 있지 마라[위험한 곳에는 가지 마라]는 훈계를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