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창조되기 전 이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창세기 1장 2절) 있었습니다.
‘혼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 ‘토후’는 “공허, 헛된 것, 무질서하고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상태”를 의미하며, ‘공허’ 역시 ‘토우’와 마찬가지로 ‘텅 빈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흑암’은 글자 그대로 캄캄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처럼 빛이 있기 전 세상은 무질서하고 아무 체계도 갖추어지지 않은 황량한 상태, 텅 빈 상태, 그리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함으로 뒤덮인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창조사역이 뭐냐. 빛을 창조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창세기 1장 3절~5절)
왜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셨을까요. 빛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 어둠의 인생을 보여준 사람들
우리의 삶도 어둠의 인생과 빛의 인생으로 구분됩니다. 어둠의 인생이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으로 뒤덮인 인생입니다.
인생의 분명한 목적이 없는 삶,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열매가 없는 삶, 삶의 허무와 우울함,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대한 깜깜함 등은 전형적인 어둠의 인생입니다.
1. 헤밍웨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대문호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는 어둠의 인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허무한 인생 말입니다.
“나이든 어부 산티아고는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85일째 먼바다에 도착해 마침내 청새치 한 마리를 잡는다. 그러나 청새치가 너무나 거대해 도리어 노인이 탄 돛단배를 끌고 가는 형국이 되어버린다. 이틀 동안 자기 몸으로 그물을 지탱한 채 청새치에게 끌려가던 노인은 도리어 청새치를 형제라고 부른다. 3일째에 남은 힘을 다해 지친 청새치를 작살로 찔러 잡은 노인은 드디어 싸움을 마치고 물고기를 팔 수 있으려니 기대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몰려온다. 노인은 몇 차례 싸움 끝에 간신히 상어를 물리치지만, 결국 항구로 돌아온 그의 곁에는 머리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의 잔해뿐이었다.”
인생의 허무함을 나타낸 이 소설로 헤밍웨이는 풀리처상을 받았고, 나중에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습니다만 61살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2. 니체
“신은 죽었다”고 외친 무신론적 철학자 니체도 어둠의 인생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아, 내가 캄캄하다면, 칠흑 같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면 나 얼마나 열심히 빛의 젖가슴에 매달려 빛을 빨려 했겠는가!”라고 어둠을 동경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이런 니체의 사상이나 철학을 가리켜 ‘허무주의 사상 또는 허무주의 철학’이라고도 합니다.
어둠의 인생을 대변한 니체는 개신교 목사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지만 기독교와의 대결을 통해 모든 기존 가치에 대한 거부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천박하고 병들고 약한 자만을 위하는 기독교 도덕은 노예도덕으로서 마땅히 파기되어야 하며 대신에 고귀하고 건강하고 힘센 자들을 위한 군주도덕이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까지의 모든 가치 기준이었던 신에 대해 죽음을 선고하고 새로운 개념으로서의 초인(超人)사상을 설파했습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이란 신의 죽음을 확신하는 자입니다.
그런 그의 인생 말로는 어떠했을까요. 끊임없는 병마와 싸웠고, 정신착란 증세로 고생했으며, 결국 길거리에서 쓰러져 12년 동안 혼수상태로 있다가 1900년에 심장쇠약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 어둠의 인생 배후엔 사탄 마귀가 존재함
성경에도 어둠의 인생을 산 사람들이 무수히 소개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구약성경 창세기 4장에 등장하는 가인과 그 후예들이요,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예수님을 은 삼 십에 판 가룟유다 등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대목이 있습니다.
이 어둠의 인생 배후에 역사하는 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탄, 마귀가 바로 그 존재입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요한일서 3장 12절)
동생 아벨을 죽인 원인에 대해 성경은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했기 때문이라고 증거합니다. 여기서 악한 자란 사탄, 마귀라고 성경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장 1절~3절)
공중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 등은 사탄 마귀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이것이 어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삶 말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그러므로 어둠의 인생엔 빛이 필요합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 빛이 필요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야 어둠의 인생에서 빛의 인생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 빛의 인생이 되는 비결
참 빛이 오셨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복음 1장 9절)
하나님께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빛을 창조하신 것처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삶이 어둠에 처해 있음을 아시고 구원의 빛을 보내셨으니 그 참 빛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어둠의 인생에 속한 사람들이 빛을 소망하면서도 빛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빛을 미워하며 대적하기까지 합니다. 이유는 몰라서입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한복음 1장 10절)
하지만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장 12절)
참빛이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그리스도)로 받아들이면(영접하면) 어둠의 인생에서 빛의 인생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선물)로 되어집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장 8절)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빛의 인생이 됩니다.
출처: [엄무환 칼럼1] 어둠의 인생 빛의 인생:뉴스와종교 - https://www.newsnr.net/13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