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벚꽃 군항제를 다녀오면서
인천안산초등학교
교장 권 혁 진
2006년 4월 8,9일 연휴를 이용하여 인천에 거주하는 고향의 동료들과 버스를 대절하여 진해의 벚꽃이 만발한 곳에서 열리는 군항제를 다녀왔다.
언제나 포근하고 정이 넘치는 시골 고향의 동료들과 4월8일 밤11시에 우리나라의 해군사령부와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진해를 출발하였다. 언제 보아도 정이 감도는 사람, 어린시절 뒷산의 넓은 잔디밭에서 소를 방목하며 풀을 뜯도록 하고, 볏짚으로 꼬아 만든 축구공으로 편을 갈려 축구경기를 하며 억지를 부리며 싸우면서 즐기던 고향의 사람들, 콩 밭에 공이 들어가 농작물을 망가진다고 야단을 부리던 노파들 모습, 먹을 것이 없어 산에 올라가 소나무의 송진과 줄기를 따 먹거나, 개구릴 잡아 구워 먹던 어린 시절, 산에 방목된 닭을 잡아 몰래 먹던 그들과 같이, 지금은 한분 두 분 저 세상으로 가고 이제는 우리가 세월이 흘러 그 노파들의 모습이 되어 하나의 추억으로 간직하게 된 고향의 세대들, 타향이 아닌 이 곳 인천, 서울에서 나름대로 생을 보내는 이들과 부부 동반으로 한데 어울려 진해를 향하여 떠났다.
아침에 도착하여 해장국으로 몸을 추수리고. 진해의 만개한 벚꽃에 감탄하며 해군사령부의 입구에 많은 인파들로 줄을 섰다. 모두 버스에 승차하여 해군사령부의 입구를 통하여 입장하였다. 모두 차로만 이동하고 개인적으로 도보는 허용되지 않았다. 경내의 잘 다듬어진 조경에 만개한 벚꽃은 온 세상을 하얀 꽃으로 덥었다. 나의 마음도 이제 저 꽃과 같은 하얀 마음으로 남은여생을 즐겨야 되겠다는 마음의 다짐 시간이다.
진해의 해군사관학교로 이동하였다. 벌써 많은 인파로 붐볐다. 거북선의 모형과 이순신 장군 기념관에 관람 인파로 줄을 서서 기다리며 관람을 하였다.
잠시 벚꽃의 유래를 생각해 보았다. 벚꽃은 장미과의 식물로 세계적으로 약 200여종이 분포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한라산을 비롯한 전국 산야에 왕벚나무를 비롯한 20여종이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 인천에도 많이 있다. 인천 대공원, 자유공원, 인천대학교 교정, 계양산, 문학산과 월미 공원, 수봉공원 등에 벚꽃 나무가 많이 있다.
그러나 진해하면 벚꽃을 연상하게 된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이곳에 군항을 건설하게 되면서 도시의 미화용으로 심게 된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그러나 해방직후 벚나무가 일본의 국화라고 잘 못 알게 된 시민들은 일제의 잔재라 하여 벚나무를 마구 제거하여 한 때 거의 종족을 감추게 되었다.
구 후 1976년 4월 진해를 방문한 대통령께서 잔해를 세계 제1위의 벚꽃도시로 가꾸어 보라는 분부가 있어 이를 동기로 민. 관. 군의 범시민 운동으로 벚나무 심기 운동을 전재한 결과 현재 32만여 그루의 벚나무가 식재되어 있다고 한다.
벚나무 개화가 시작되면 온 시가지가 벚꽃 터널을 이루게 되며 오늘날 이 벚꽃은 진해시민의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꽃으로서 진해 시화로 지정되어 관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일본의 국화라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왜(倭)국에서 식민적 첨병으로 들어온 나무인 것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벚나무는 일본에서 들여온 나무가 아니고 원래부터 우리나라 토양에서 자생하고 있었던 것으로 학계에서도 발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왕벚나무의 일본 원산지설을 가지고 논란이 되어 왔으나 우리나라 한라산이 종조원산이며, 자생지였음을 그들도 인정하게 되었고 우리 국민들도 우리나라 우리 토양에 자생하는 나무라고 믿어야 겠다.
이러한 벚나무의 만개시기를 맞춰 해군진해 기지사령부와 해군사관학교의 영내 관광, 군함 전시관, 박물관, 시내 곳곳에서 매년 4월1일부터 10일까지 다양한 벚꽃 축제행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여행 시간이 맞지 않아 이벤트 행사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였다. 봄의 향연을 마음 것 즐기는 진해시민이 부러울 정도로 만개한 벚꽃은 한 폭의 수채화로 남기고 싶었으나 머리 속의 연상으로 그림을 그려 두는데 그쳤다.
벚나무는 일찍 잎보다 꽃이 먼저 개화하기 때문에 더욱 화려하고 꽃 중에서도 제일이라 하여 ‘王 ’ 벚나무라고 한다. 진해지방의 벚나무가 꽃을 피는 시기는 대개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경이며, 개화해서 만개까지 약 5,6일후 5일이면 낙화하게 된다.
지금은 한창 만개한 시기로 바람이 불면 마치 눈이 내리는 듯하며 떨어지는 꽃잎은 개화광경과 더불어 아름다움을 한 층 더해 주워 모든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해 군항제는 1952년 4월 13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제작됨에 따라 충무공의 얼을 추모하기 위하여 제사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유래가 되어 1962년까지 11년간 매년 벚꽃 개화기와 더불어 해군기지사령부에서 주관하여 동상 제단에 추모제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3년부터 민. 군. 관의 화합을 다짐하기 위해 군항제가 예총에서부터 시작하였으나 2회의 행사를 마치면서 점점 규모가 커져 1965년 3회 군항제 부터는 군항제 위원회가 정식으로 발족하여 진해시로 이양되어 본행사를 거행하여 오던 중 1983년 8월 30일 이충무공 호국정신 선양회가 사단법인으로 발족되어 오늘에(제44회) 이르기까지 군항제를 대대적인 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진해를 뒤로 한 채 남해 올림픽 고속도를 통해 또 벚꽃으로 유명한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와 쌍계사를 거쳐 귀경할 일정이였으나 워낙 차가 막혀 차창 넘어로 보내는 데 그치고 귀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