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과 <무진기행> 속의 벌교와 순천만

갈대밭과 새들의 안식처인 순천만 대대포구 하구.
소설 <태백산맥>에 보면, 서울에 머물던 김범우가 벌교에 내려와 감회에 젖는 장면이 이렇게 표현돼 있다.
“그는 숨을 들이켤 때 스르르 감겨진 눈을 그대로 감은 채 숨을 토해내며 고향의 냄새를 음미하고 있었다. 갯내음과 땅내음이 어우러진 그 미묘한 냄새도 고향만이 주는 특이한 냄새였다. 그 냄새 속에는 이상하게도 바람에 갈대잎 슬리는 소리, 기러기 울음소리 같은 것도 섞여 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갯가이면서도 포구가 한정도 없이 길어 정작 바다는 멀리 밀쳐두고, 민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반원을 그린 산줄기에 그 넓은 낙안벌을 품고 있는 고향은 언제나 두 가지 정취를 함께 느끼게 하는 풍광 아름다운 곳이었다.”
조정래 선생이 말하듯 벌교는 갯내음과 땅내음이 어우러진 곳이며, 갯가이면서도 포구가 한정도 없이 길게 펼쳐진 여자만(순천만)에 잇닿아 있다.

벌교 읍내에 자리한 홍교.
벌교에서 만난 남도여관 주인은 조정래 선생이 아들과 친해서 어린시절에 자주 이 곳에 놀러왔다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준다. 장난도 잘 치고 눈이 똘망똘망했던 그 아이가 소설가가 될줄은 몰랐다고 여관 주인은 감회에 젖는다. <태백산맥>에 나오는 남도여관이 바로 이 곳인데, 아직도 여관은 옛 왜식 건물을 유지해오고 있다. 소설에 나오는 ‘소화다리’도 홍교 아랫녘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예부터 남도에서는 벌교 가서 돈자랑,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는 벌교가 여자만과 포구를 끼고 있어 일제 때부터 보성과 승주, 고흥과 순천 일대의 교통중심지이자 상업중심지였으므로 제법 돈이 흔했고, 내로라하는 주먹들도 꽤나 모여들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순천 가서 인물자랑 하지 말고, 여수 가서 멋자랑 하지 말라는 말도 여자만이 가져온 풍요와 관련이 깊은 말이었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남도여관. 여전히 옛 왜식건물에 다다미방이 남아 있다. 이 여관집 아들과 조정래 선생은 어린시절 친구 사이로 지냈다고 한다.
벌교를 품은 보성 땅은 이순신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지금의 조성면 우천리 고내마을에서 군량을 얻고, 보성의 군기고에서 무기를, 회령에서 수군과 전선 열두 척을 얻어 누란의 위기에서 백성을 구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해전사상 유례가 없는 13척의 전선으로 133척을 무찌른 명랑(울돌목)해전의 이면에는 바로 보성에서 얻은 물심양면의 도움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순신은 보성에서 열흘간 머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정유년(1597) 8월 14일 밤 이순신은 보성읍내 열선루에 올라 권토중래를 꿈꾸는 시를 읊었다.
한가로운 바다에 가을빛 저무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달이 칼과 활을 비추는도다.

벌교에서 순천만 가는 길에 피어난 매화. 매향 너머로 봄 들판이 보인다.
새벽달이 칼과 활을 비춘다는 문장은 단순하지만 명쾌한 의지를 상징한다. 그가 보성에서 보낸 열흘은 조선 최대의 위기의 시기였다. 그의 근심은 개인적인 명예회복이나 입신양명에 있지 않았다. 그의 단순한 칼과 활은 오로지 왜적을 향한 것이었다. 조정의 무능은 그의 순수한 열정을 외면했지만, 그에게는 아직 조선의 백성이 있었고, 조선의 바다가 있었다. 그는 기꺼이 조선의 바다로 나아가 기적처럼 승리했다. 이순신이 지켜낸 조선의 바다는 지금 석양에 물들어 있고, 기껏해야 나는 카메라를 비추는 저녁해를 본다. 벼르던 칼과 겨누던 활은 어느덧 녹이 슬고 삭아버렸다.

순천만 대대포구에서 와온포구 쪽으로 가다 만난 복사꽃.
벌교의 여자만은 순천으로 넘어오면 순천만이 된다. 고흥 쪽에 여자도라는 섬이 있어 고흥과 벌교, 여수 쪽에서는 여자만이라 하고, 순천에서는 순천만이라 한다. 이름만 다른 같은 만이지만, 어쩐지 여자만과 순천만의 어감은 사뭇 달라 보인다. 여자만이라고 할 때 좀더 찰지고 옹골찬 느낌이 드는 것이다. 순천의 와온리에서도 벌교의 장암리나 대포리처럼 뻘배(널)를 타고 나가 참꼬막을 잡는다. 사실 와온포구는 일몰 명소로 더 알려진 곳이지만, 아는 사람들은 와온포구보다 농주리 쪽으로 해안을 따라가다 만나는 앵무산을 찾는다. 여기에서는 순천만의 갈대밭 군락과 칠면초 군락지 사이로 흐르는 민물줄기와 갯벌과 바다가 한눈에 다 내려다보인다.

보성 오봉리에 남아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이식래 초가와 돌담.

진정한 순천만의 매력은 동천 서천(이사천)이 만나는 길목인 대대포구에서부터 시작된다. 대대포에서 화포 인근 갯벌까지 펼쳐진 이 곳의 갈대밭과 찰진 갯벌은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 철새들의 가장 안전한 월동지이자 가장 풍족한 먹이창고이기도 하다. 흔히 갈대는 강물과 바닷물이 어우러지는 접점 갯벌에서 적수가 없는 우점종을 차지하고, 바다쪽으로 한발 더 나아가면 칠면초가 우점종을 차지한다. 칠면초는 한해 동안 일곱 번이나 색깔이 변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오랜 동안의 침수와 건조 상태에서도 잘 자라 그 서식반경이 서남해에 두루 걸쳐 있다. 영종도 갯벌이나 강화갯벌, 순천만 등에서 불그스레하고 더러 자줏빛으로 빛나는 염생식물을 보았다면, 그게 바로 칠면초 군락이다. 국내 최대 규모인 순천만의 갈대밭은 약 30만 평에 이르며, 칠면초 군락지까지 포함한 순천만의 갯늪은 총 50여 만 평에 이른다.

겨울이면 순천만은 철새도래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무분별한 동력선 운행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겨울이면 이 곳에는 흑두루미를 비롯해 황새와 고니, 저어새는 물론 흰뺨검둥오리와 혹부리오리 등의 진객들이 찾아와 겨울을 난다. 특히 최근에는 180여 마리의 흑두루미떼가 순천만을 찾고 있어 새 전문가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대대포 인근 갈대밭에는 탐조를 위한 원두막 시설이 되어 있지만, 상당수의 탐조객들은 대대포에서 동력선을 타고 물길을 따라가며 철새들을 관찰한다. 몇몇 새 전문가들은 탐조를 위한 동력선 운행에 반대하고 있다. 동력선이 내는 엔진소리와 잦은 탐조운행은 그 자체로 새들에게는 심각한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빈번한 동력선 운행을 제한하거나 무동력선을 운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대대포구 선주들에게는 1인당 3만원 이상씩 받는 배삯이 겨울철 짭짤한 소득이므로 몇몇의 목소리는 텅텅거리는 동력선 엔진소리에 묻혀버리고 만다.

농주리 앵무산 정상에서 바라본 순천만 일대와 저녁 노을.
잘 알려져 있듯 이 곳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소설에 나오는 안개나루 즉 무진(霧津)과 갯벌과 갈대밭은 대대포구를 중심으로 한 순천만과 닮아 있다. 결정적으로 순천이 고향인 그가 소설에 고향의 정서를 등장시켰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무진기행>에는 이렇게 표현돼 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해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벌교 앞바다에서 만난 풍경. 어부가 포구 인근에 세워놓은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소설에서 무진은 안개가 지독한 가상의 공간이다. 그것은 안개처럼 앞이 보이지 않던 1960년대의 시대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의 순천만과 대대포구는 암울하고 허무한 공간에 다름아니다.

순천만 와온포구의 일몰.
순천만은 보성과 순천, 고흥과 여수 땅을 폭넓게 에두르며 뭍으로 우묵하게 들어와 있다. 바다이면서 뻘밭인 순천만은 이 곳 사람들에게 가도가도 푹푹 빠지는 늪이었지만, 퍼내도 퍼내도 줄지 않는 곳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순천만 갯벌은 본래부터 있던 갯벌의 20%에 불과하다. 일제시대 때부터 경제개발시대까지 여기저기 갯벌을 메워온 결과이다. 개발과 도시화가 가져온 오염도 가속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오염원을 정화하고 하수처리장 노릇을 해온 것은 자연 그대로의 갈대밭과 숨쉬는 갯벌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순천만이 거대한 자연의 정화조 노릇을 해줄 지는 미지수다. <무진기행>에서 표현하고자 한 암울함과 허무함이 이제는 순천만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 글/사진: 이용한 http://blog.daum.net/binkond

보성의 미력옹기. 대를 이어 옹기 인간문화재의 맥을 이어오는 곳이다.
<여행정보> 순천만에 가려면 호남고속도로나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타고 와서 남해고속도로로 바꿔 탄 뒤, 순천 인터체인지 혹은 승주 인터제인지로 빠져나오면 된다. 벌교까지 오면 코앞이 순천만이다. 벌교는 알다시피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된 곳이고, 인근의 보성에는 대를 이어 옹기를 만들어오는 ‘미력옹기’가 있고, 오봉리에는 다섯칸짜리 멋진 초가(이식래 초가)도 자리해 있다. 벌교에서 순천의 와온포구로 가려면 2번 국도를 타고 가다 17번 국도로 갈아타면 된다. 갈대숲은 대대동 인근에 펼쳐져 있다. 문의: 보성군청 061-852-2181, 순천시청 744-8111.
첫댓글 아주경치가 좋은곳에서 태어나섰어요~~
대단하네 태백산맥도 무진기행도 읽으면서 푹 빠저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메말랐을까
자세한 설명과 어우러진 사진을 보고 마음이 찡한데 더욱이 훈이님이 태어난곳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한없이 깊어요...........^^^^좋은자료 감상 잘했읍니다
그렇지 벌교....헤메다가 헤메다가 돌아가야 할곳,우정도 사랑도 그곳에서 멈추리......
나는 벌교하면 한가지밖에 생각안나여~~고교 2년때 전국 무전여행(그땐 가능한 시대였음)을 18일간하고 거의광주에 진입하기전 벌교에서 하루 묶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고을 깡패에게 두들겨 맞는 사건이 있어서~~ 혹시 "훈이"님이 가담한 건 아니겠죠? 이것도 즐거운 추억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