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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승리는...우리의 믿음이니라* 수 4:1-24절) 돌로 기념하라 사람에게 기억상실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병입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 역시 과거에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눈앞에 있는 현실이 과거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우리 영혼의 재산입니다. 과거에 주신 은혜를 많이 기억하면 할수록 현재 닥치는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길 수 있고, 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과거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있다면, 우리는 영적(靈的)인 가난뱅이가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더 이상 대화(祈禱)할 거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열두 사람의 대표를 뽑아 제사장이 서 있는 곳에서 돌을 한 개씩 취해 요단강을 건너 그 밤에 머물 곳에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가나안 족속들과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앞으로 전진(前進)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건넌 사실을 잊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영적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과거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표를 남겨 놓아야 합니다. 즉 과거에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되었던 많은 일들을 일일이 기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참으로 부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Ⅰ.시작과 끝이 주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넜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나안 땅에 첫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가나안 생활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감당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가나안 땅에 첫 발을 내딛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시작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도대체 누가 이 일을 생각했으며, 첫 테이프를 끊은 사람이 누구냐? 는 것입니다. 일의 진행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언제나 다 일만 벌려 놓고,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계획하셨고, 시작하셨고, 또 끝맺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 하셨고,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책임지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하늘의 만나와 반석에서 나온 물로 먹이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면, 이제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의 삶도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즉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는 일과. 농사를 짓는 일과.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이방 족속을 완전히 몰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때까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앞으로도 계속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실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만 하면, 불가능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 지금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느냐? 하는 것만 분명하다면, 나머지 일들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며 산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습니다. 즉 악(惡)한 일을 생각할 때도 있고, 이기적일 때도 있고, 못된 짓을 하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 못된 짓을 못하게 막으시고, 부족한데도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큰 복을 받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지도 않은 기적을 체험하게 하셨고, 특히 14절)...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며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연출(演出)자와 배우(俳優)의 관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주도해 나가는 사람은 연출(演出)자입니다. 그러나 표현하는 사람은 배우(俳優)입니다.
배우는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최선을 다해 연기하면 됩니다. 그러면 연출자가 작품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연출자처럼 우리가 놀라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계획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연출 계획에 따라 순종하여 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복(福)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살펴서 *하라!*고 하시면, *아-멘*하여 순종하고, *하지 말라!* 하시면, 하지 않으면 됩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연출(演出)이 시작된 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요단강까지 와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祝福)주시고, 그들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그들이 할 일은 하나님의 지시(指示)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됩니다. 즉 *공격하라!*고 하면 공격하고, *물러서라!*고 하면 물러서면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요15:5절)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씀중심으로 신앙 생활하는 자체가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福)주시고, 큰 부흥(復興)을 일으키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인내(忍耐)입니다.
결국 언제까지 떨어지지 않고, 말씀에 붙어서 견디느냐? 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기적(奇蹟)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기브온 골짜기에서는 태양이 머무는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일치(一致)하지 않았던 아이 성 전투(戰鬪)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는 것은 마치 금고(金庫)를 열기 위해 다이얼(dial)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다이얼(dial)은 숫자가 하나라도 틀리면,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맞추면, 금고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보화(寶貨)를 다 가질 수 있게 됩니다.
Ⅱ.열두 개의 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기적으로 건넌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본문은 요단강을 건넌 것과 거기서 열두 개의 돌을 꺼내어 세운 것을 번갈아 가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섬유(纖維)를 짤 때, 두 실이 교차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요단강 하면, 열두 돌이고, 열두 돌하면 요단강이 되는 것입니다. 2-3절)백성이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한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넌 것을 잊지 못하도록 제사장이 선 곳에서 돌 열두 개를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땅에서 싸우면서 항상 요단강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명령하시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요단을 기억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 능력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을 높이 쌓아 올리신 하나님이 무슨 일을 못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일은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기억하고, 믿음만 가지면, 하나님이 또 능력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두 돌을 길 같이 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언제나 길갈에서 전투(戰鬪)를 시작하고, 그 쌓아 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요단강을 건넌 그 믿음으로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재산(財産)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고, 또 초자연적(超自然的)인 능력으로 나를 치료해주시고, 인도하신 경험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서 언제나 그 능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필사적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을 대표(代表)하여 한 개의 돌만 가져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 각 지파마다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4-5절)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어른이 어깨에 멜 정도의 돌이라면, 상당히 큰 돌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지파에게 돌 하나씩 메고 나오게 하신 것은 큰 은혜입니다. 이것은 각 지파마다 이런 능력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은 한 두 지파만 돕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파에게 동일한 능력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믿고,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눅19:13-27절 어떤 부자(富者)가 자기 종들에게 은전(銀錢) 한 므나 씩을 나눠 주면서 장사하게 한 비유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모든 종들은 다 똑같은 돈 한 므나 씩을 밑천으로 받았습니다. 이때 어떤 종은 열심히 장사하여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겨 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게으른 종은 한 므나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열 두 지파 모두에게 동일한 요단강의 기적을 밑천으로 주셨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여호수아처럼 철저하게 순종한 사람은 기적(奇蹟)을 열 번도 더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찮고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이 돌이 그냥 하나의 무서운 돌로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져온 이 돌은 요단 강 바닥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산(山)에서 캐온 것도 아니고, 잘 보이는 곳에 있던 돌을 가져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이 돌들은 제사장들이 발로 짖 밟고 있는 강바닥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인생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강 밑바닥에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 주셨기 때문에 물이 그들을 해치지 못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바닥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강 밑바닥의 인생 경험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닥에 내려가 보면, 그곳에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삶에 고난(苦難)이 전혀 없으면 좋겠지만, 고난(苦難)가운데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평안(平安)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돌들을 기념으로 가져오게 하신 것입니다.
Ⅲ.제사장의 사명 이스라엘 백성들 약 200만 명이 요단강을 건너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아마 하루 종일 건너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건너가기까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10-11절)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사 백성에게 말하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 서 있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백성들이 강(江)을 통과하기까지 서서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궤를 멘 제사장들은 하루 종일 언약궤를 메고 있었을까? 아니면 다른 제사장들이 교대(交代)해 주었을까? 아마 다른 제사장들이 교대해 주었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제사장과 언약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건널 때까지 요동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과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전쟁(戰爭)이나 재앙(災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것을 약속(約束)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제사장은 언약궤를 메고 있다가 피곤하다고 해서 불평하거나, 내려놓고, 자기 혼자 강에서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은 모든 백성들이 무사히 강을 건널 때까지 굳게 서서 강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통해 제사장들이 올라오게 하셨을 때, 비로소 육지(陸地)로 올라왔고, 제사장들이 땅을 밟는 즉시 물이 원래대로 흘러 언덕에 넘쳤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 제사장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백성들에게 봉사하는 직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가장 먼저 뭍에 들어갔고, 가장 나중에 하나님의 명령 없이는 그곳을 이탈(離脫)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들은 어느 정도 섬기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해서 자기 멋대로 근무 이탈(離脫)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명령에 의하여 움직여야 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사장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언약궤를 메고 물을 막고 서 있는 제사장의 사명과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혼자서 하루 종일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시간을 굳게 지켜야 하고, 세상 돈 버는 욕심과 괘락(掛絡)때문에 언약궤를 벗어 던지고 달아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가정과 교회와 민족을 지키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Ⅳ.약속을 지킨 지파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강 동편에서 자기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굳이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에서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파 사람들은 다른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이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한 것은 다른 이스라엘 지파가 자기 땅을 차지하는 것을 전제(前提)로 하고, 땅을 선불(先拂)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다른 지파 사람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지 못하면, 자기들의 땅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지파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는 것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강을 건넜던 것입니다. 12-13절)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무장한 사만 명 가량이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사람들은 대개 급할 때는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말하지만, 일단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 여유를 부리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만일 이 두 지파 반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너가지 않겠다*고 버틴다면, 이스라엘 지파끼리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일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 요단 동편의 사람들은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약속(約束)을 지켰고, 그래서 자기들도 요단강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고, 자기들도 돌을 하나씩 가져와서 기념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챙기려고 약속을 저버릴 때는 작은 것은 얻을 수 있을지? 는 몰라도. 큰 것은 놓치게 됩니다. 만약 요단 동편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더라면, 이 돌을 가져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도 가질 수 없습니다. 우선 땅은 차지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능력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약속(約束)을 지키고, 요단을 건넜기 때문에 그들도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고, 또 약속의 돌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땅을 차지하느냐? 나중에 차지하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땅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날의 사건을 통해 여호수아를 크게 하셨습니다. 14절)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며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기를 모새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 여호수아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했더니, 과거 모세를 통해 나타났던 것과 같은 기적이 여호수아를 통해 또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여호수아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라가 든든하게 세워지려면,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 *자기가 옳다*고 떠들어 댄다면, 그 나라는 망(亡)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이 아무리 훌륭해도 모든 사람들의 뜻을 하나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같은 생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부흥(復興)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같고, 생각이 같은데, 하지 못할 일이 있을까? 하나님은 또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패(成敗)여부가 얼마나 지식인(知識人)들을 신앙으로 가르치느냐? 하는데, 달려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21-22절)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征服)하는 것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농사(農事)도 짓고, 전쟁(戰爭)도 하는 중에서도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하는 것은 당장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힘은 바른 진리(眞理)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녀들에게 계속 진리(眞理)로 가르쳐야 자기가 왜 이런 고난(苦難)을 이겨야 하며, 왜 이런 전쟁(戰爭)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어려운 싸움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하면, 편하게 살고 싶은 유혹(誘惑)때문에 타락(墮落)한 가나안 사람들과 손을 잡고, 타협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약속(約束)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어려울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난다는 약속(約束)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讀者)여러분,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벧전2:9절)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가진 능력이 절대로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비법(秘法)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려울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요단강을 말리시고, 홍해를 가르신 능력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비법(秘法)입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이기는 비결(秘決)이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보면, 실패(失敗)하게 되어 입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가나안을 정복(征服)하는 것은 군사적(軍事的)인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 또 그것을 믿음으로 잘 받아들이므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358장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