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이 끝나고 3월 새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괴산을 비롯한 주변 학교 어린이 청소년들의 즐거운 견학 요청이 이어지고 있어요.
책방도 기지개를 켜고 2018년 첫 견학을 시작합니다.
괴산 감물초등학교 친구들이 학년별로 날짜를 정해 오기로 했는데요. 첫 순서로 3학년 전체 8명의 어린이들이 왔어요.
이미 지난해 책방을 드나들어 익숙해진 친구들...신발 벗고 들어서면서 "빨리 책 읽어야지" "실컷 읽자"...이런 소리를 해서 깜짝 놀랐네요.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ㅎㅎ...까불고 놀기도..ㅎㅎ...그래도 열심히 서가를 뒤지며 책을 찾고 읽고 또 읽는 모습이 참 기특하지요.
가장 먼저 친구들에 <열 두 달 나무아이>를 읽어주었어요.
그림도 예쁘고, 글도 참 예쁜 책이지요.
1월에 태어난 친구, 손 들어 볼까?
2월에 태어난 친구는?
....
친구들이 8명 밖에 되지 않아 생일이 없는 달도 있어요.
그럴 땐 우리 언니, 엄마, 동생 등 주변 사람들을 마구 떠올려봐요.
그리고 나서 페이지를 넘기죠.
"1월에 태어난 00 은 힘찬 날갯짓으로 새 날을 여는 동백나무 아이" 읽어주고는
"00은 정말 그런 친구인가요?" 물어보면,
"네" "아니오" "정말 그렇다"...등 온갖 대답이 쏟아집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아이가 되겠다 다짐도 해보고요.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 함께하기 좋은 그림책이에요.
책 읽어주기를 마치고, 아이들은 30분 정도 자신이 보고 싶은 책, 오늘 여기서 사가고 싶은 책을 골라요.
책을 다 고르고 또 읽기를 마친 아이들과 다시 한 자리에 모여서 내가 고른 책을 소개하는 "팝업카드"를 만들어요.
자리도 비좁고 불편하지만 어쩌면 우리 집 거실처럼 편안한 책방 바닥에 주저앉아 열심히 책을 만들어 봅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고른 책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그 책의 이야기를 담은 팝업카드를 열어서 소개합니다.
참 재미난 방식으로 자기가 고른 책들을 표현하고 있었어요.
친구가 만든 책을 발표할 때 주의깊게 잘 들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표가 끝날 때마다 친구가 소개한 내용 가운데 골라서 퀴즈를 냈어요. 맞춘 사람에겐 작은 수첩 하나 선물 !!
그랬더니 딴 짓하는 친구도 없고, 집중력 완전 좋아요. 역시 퀴즈 그리고 선물이 최고네요...ㅎ...
마지막으로 다함께 모여 사진 한 장 찰칵 !!
내가 고른 책 한 권, 내가 직접 그린 팝업북 한 권, 그리고 선물로 받은 수첩 한 권까지...
두 손 가득 책을 들고 나서는 친구들 얼굴에 웃음꽃이 한가득...선생님도, 책방지기도 보람 한가득.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도 물론 힘들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일도 이렇게 힘이 들고 품이 드는 일입니다. 결코 그 무게가 가볍다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두 시간 동안 꼬박 아이들과 함께 시간 보내고 책 8권 팔아서 책방은 과연 얼마의 수익을 올릴까요?
돈을 벌겠다고 나서서는 결코 이런 식으로 일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책방지기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책을 만든 출판사도, 공급하는 유통회사도, 지역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도록 되어 있는 지역 학교와 공공도서관도, 동네 작은 서점에 어떻게든 '갑질'을 하기보다는 연대하고 상생하려는 노력을 해야하지 않겠나...뭐 이런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봅니다.
(새해 들어 대형 유톹회사는 책 공급률(도매가)을 올리고, 항의하니 좋은 책들을 많이 펴내는 대기업 출판사가 공급률을 올려서 어쩔 수 없다 말하고, 도서관은 10% 할인도 부족해 법정 의무조항도 아닌 5% 추가할인까지 부득불 받으려하니....심지어 지역에 이리 고군분투하는 동네 서점 있는데도 쳐다도 보지 않는 지역 공공도서관까지...이런저런 일들에 마음 상하다 보니 문득 넋두리가 나오네요.)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권의 책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의 기쁨과 보람이 오늘도 책방 문을 열고 책 한 권을 팔게 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동네 작은 서점과 연계하여 어떻게든 서로 좋은 일을 만들어가보자 애써주시는 학교와 선생님들께는 정말 감사드리고요!!
자, 이제 또 뚜벅뚜벅 우리의 갈 길을 걸어봐야겠습니다.
첫댓글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