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모섬[Patmos]
에베소의 남서쪽 90km, 에게해의 스포라데스에 속하는 작은 섬이다. 남북 길이 16km, 동서길이 9km, 면적 40㎢, 해안은 60km에 이른다. 2000년 현재 인구는 약 2,500명이다. 지표는 모두 화성암으로 이루어져 불모지이고 밀이나 포도나무의 재배가 약간 이루어진다. 산은 높지 않고 최고봉인 일리아스도 269m이지만 전망은 매우 아름답다.
로마제국시대에 종교·정치범을 귀양 보냈던 유배지였다. 《요한의 묵시록》의 저자인 요한이 로마의 도미시아누스 박해 시대 유배가서 《요한의 묵시록》을 기록한 장소로 알려진 섬이다. 요한은 18개월 동안 있었는데, 이곳에서 《요한의 묵시록》을 썼다.
이 시기를 대개 94~96년경으로 추측한다. 현재 이곳에는 밧모섬의 중심지인 호라 마을에 요한 수도원이 있고, 《요한의 묵시록》을 썼다는 요한의 동굴, 1713년경에 세원진 밧모 희랍정교회 신학교, 이곳에 요한이 최초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세례터가 있다. 성지 순례의 코스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두산백과)
밧모섬(Patmos 파트모스)은 터키 에게해 가까이 위치하고 있지만 그리스의 섬입니다.
터키 보드룸에서 배를 타고 사도바울이 잠시 머물렀던 고스섬을 거쳐 3-4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입니다.
쿠사다스 항에서 전세배를 이용하여 4시간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비용이 많이 듭니다.)
밧모섬은 16세기에는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서 자치 행정을 하다가,
1832 년 다시 터키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1912 년 이 후에는 이탈리아로 귀속되었다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7 년에 파리협정에 의해 그리스 영토가 되었다고 합니다.
밤에 밧모섬에 도착 해서 하루 자고 난 아침 모습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정상에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을 받은 동굴과 성요한 수도원이 있습니다.
집들이 흰색인 이유는 태양이 너무 강하여 그 열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밧모섬 중앙에 있는 교회입니다.
밧모 (Patmos) ~ "송진" 이라는 뜻으로 에개해에 있는 섬들 중에 아주 작은 섬이며
현재 지명으로는 그리스어로 피티노 (Pitino) 라 불립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많이 자라는이 지역은 우물이 있지만 물이 귀하고
우기인 겨울에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여름에 시용하며, 주변에 나무가 없어서 겨울에는 매우 춥다 합니다.
황폐한 이 곳 땅의 총 면적은 약 34 km 로서 제주도의 1/3 크기입니다.
밧모섬 스칼라항구의 그리스 국기입니다.
지금도 사람이 빨래를 하고 사는 곳입니다.
사도요한이 계시를 받은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사도요한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동굴입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계시동굴은 A.D.1090 년에 발견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17 세기 경에 동굴보호를 목적으로 동굴 위에 성 안나교회와 그리스 정교회 신학교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아래 큰 원은 사도 요한이 머리를 기대고 자던 자리에 구멍이 뚫린 곳이고,
위쪽의 작은 원은 일어 날 때 손을 붙잡고 의지 하던 곳입니다.
사도요한이 잡은 곳에 나도 손을 넣어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사도 요한이 연로한 고로 그와 함께한 브로고로 (Procorus) 가 대필하였다고 합니다.
초를 밝히면서 소원을 빕니다.
모든 기도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것을 구하는 것이 거룩한 기도입니다.
동굴 천장에 큰 바위가 세쪽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계시를 받을 때 큰 음성으로 인해 갈라졌는데 성부, 성자 , 성령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한 참을 머물렀습니다.
사도요한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요한 수도원 입구입니다.
성요한 수도원의 종각입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수도원 내부.
수도원 2층에서 보는 전경.
수도원 종각.
아침과 저녁으로 종을 칩니다.
우리의 영을 깨우는 종입니다.
잠에서 깨어나기를 원합니다.
바닥의 돌들이 반질반질 합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입니다.
가족.
성요한 수도원을 지키는 신부님입니다.
성요한 수도원 내부 교회의 모습입니다.
가족.
저 멀리 풍차가 보입니다.
성요한 수도원 옆 작은 화방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수도원을 내려가는 길.
정겨운 표지판.
동화같은 골목.
밧모섬에서 가장 큰 마트입니다.
없는 것이 없네요.
결정적으로 삼겹살이 보입니다.
참 오랜만에 보는 삼겹살입니다.
터키에서 살면서 1년 넘게 맛보지 못한 삼겹살입니다.
밧보섬에서 2일을 보내며 삼겹살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ㅎㅎ
해가진 밧모섬 바다입니다.
나비가 날아와 내 손에 앉았습니다.
밧모섬에서 하루.
요한계시록 1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예배드립니다.
요한계시록의 배경
로마는 BC 30-AD14년 까지 가이사 아구스도가 초대 황제로 등극하면서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는 때 호적령을 내린 사람입니다. 그 호적령으로 예수님은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이후 여러 황제를 거치고 AD54년 네로가 17세의 나이로 로마의 4대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 뒤에는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와 지략가 네로의 스승 세네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선대 황제를 암살하고 적자인 네로를 황제로 즉위시켰습니다.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아그립바)의 수렴첨정과 함께 5년 동안 선전을 베풀던 네로가 아내 옥토비아를 두고 노예출신인 아크테라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 일로 어머니 아그리피나와 갈등을 겪게 되고 황제를 독살하려 했다며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죽이고 자신의 아내 옥토비아는 자살을 하였고 네로가 아버지처럼 여기던 스승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까지 자살하고 폭군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AD 64년 경 로마에 큰 화재가 발생하고 이것이 네로황제의 방화로 소문이 나자 이 소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고 이 때부터 기독교 박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불안한 정치를 검투사와 기독교 박해로 관심을 돌린 것입니다. 이 때 사도바울과 사도 베드로는 핍박당하는 로마의 교회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로마로 왔고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이후 3-4년간 네로의 대 핍박이 계속 되다가 AD68년 네로황제가 자살을 하고 기독교 박해가 멈추었습니다. 이후 로마는 2년 동안 황제가 4번이나 바뀌며 혼란기를 거칩니다.
AD 69년 바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일어나 10년간 다스렸습니다. 로마시민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골로세움을 만들고 그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그 아들 티투스장군이 AD70년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의 모든 기물들이 수탈당하였습니다.
AD79년 바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죽고 아들 티투스가 황제가 되었습니다. 황제가 되고 곧 폼페이의 화산과 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2년이 되어 전염병으로 티투스황제가 죽고 AD81년 그 동생 도미티아누스가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 때 골로세움이 완성 되었습니다. 도미티아누스는 황제는 형 티투스의 딸(조카)과 관계를 가지고 임신을 하고 그 조카가 자살을 하면서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 때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반대하는 원로원들을 죽이고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을 하게 됩니다. 신이므로 모든 것을 초월하여 ‘자신의 말이 무조건 맞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기도교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독교 박해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신전들이 있는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사도요한은 일곱 교회들을 순회하며 말씀을 전하며 성도들을 위로하였습니다.
당시 소아시아에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핍박과 함께 기독교 내부적으로 고난을 회피하기 위한 영지주의가 만연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가 육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고 육체가 없으니 고난이 없고 예수가 고난을 당하지 않으셨으니 그를 믿는 우리도 고난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행위를 거부하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사도요한은 외부적으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와 내부적으로는 영지주의와 싸워야 되었습니다.
AD94년 에베소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신전 앞으로 지나는 모든 사람들은 신전을 향하여 절을 하고 지나게 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은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로마 군인에 잡혀 끓는 기름에 던져지는 벌을 받았지만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고 기름 가마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이 사도요한을 밧모섬으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밧모섬에 있는 18개월 동안 기독교 박해는 절정에 달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인내와 위로와 보낸 편지가 요한계시록입니다.
AD96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죽고 유배에서 풀려난 사도요한은 일곱교회를 순회하며 사역을 하다가 에베소에서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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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