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을 태우고 바람이 난다(개정판)
이원호 ∣ B6(128×208) ∣ 양장본 ∣ 172쪽 ∣ 2019년 11월 10일 발간 ∣ 정가 12,000원 ∣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신간 소개
멈출 수 없는 애도
이원호 시인의 <새들을 태우고 바람이 난다>는 저 1980년대와 특히 1990년대를 향한 고졸(古拙)하나 낭려(朗麗)한 애도의 연대기다. 이원호 시인의 다기한 삶의 이력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를 그야말로 온몸으로 뚫고 건너온 청춘의 표상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물론 시인의 실제 삶과 그를 둘러싼 시대가 시인의 시 세계를 곧바로 입증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원호 시인의 경우에는 대체로 그렇게 보아도 무방하다. 그는 정말이지 자신의 이십대 전체를 당대와 더불어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원호 시인이 자신이 걸어온 저 과거에 대해 한편으로는 그리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분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당시를 살아간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자신의 이십대를 제대로 애도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멜랑콜리의 한 축은 끊임없는 소환이지만 다른 한 축은 자기모멸이다. 이원호 시인은, 그리고 그의 시는 이런 맥락에서 윤리적이다. 만약 이원호 시인이 비굴하고 무참한 현재를 단죄하기 위해 자신의 이십대를 호명하거나 선별해 제시했다면 그것은 기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원호 시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자신의 이십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 대한 애도의 완결이 불가능했다면 그 이유는 타의에서든 자의에서든 성급하게 그 시절을 닫아 버려서가 아니라 실은 아직도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원호 시인이 자신의 삶에서 그리고 이 시집 전체에 걸쳐서 발견한 “화두”는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떠나보냈지만 결코 떠나보낼 수 없는 그 무엇, 떠난 듯하지만 실은 여전히 떠나지 않은 그 무엇, 이곳에 현재로 지속하는 과거, 그것에 대한 그 자신과 우리의 태도 말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애도를 다시 가동하는 것이며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애도가 멈추는 순간 삶도 시도 불가능해진다. 과거가 삭제된 현재는 자폐에 지나지 않으며 그때 언어는 그저 독백에 불과하다. 애도는 윤리이자 미학이다. 이원호 시인은 그 작업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제 다시” “멈추지 않는 자유로운 행군”(「담쟁이」) 말이다. 그가 여전히 청년이며 또한 시인인 까닭은 이 때문이다.
이원호 시인은 1970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출생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법무법인 함백 대표 변호사이며, 경기도 남양주시 평화시민회 공동대표, 민변 통일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허위조작정보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추천사
누군가는 “이제” 와서 “다시” <노동의 새벽>을 읽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물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의 새벽”은 “아직도 흥건한 붉은 피를” 흘리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저 과거 속으로 떠밀어 버린, 이원호가 이십대를 보냈던,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지금-여기 도처에 여전한 것이다. 과거에 대한 애도의 완결이 불가능했다면 그 이유는 타의에서든 자의에서든 성급하게 그 시절을 닫아 버려서가 아니라 아직도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원호가 첫 시에서 발견한 “화두”는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떠나보냈지만 결코 떠나보낼 수 없는 그 무엇, 떠난 듯하지만 실은 여전히 떠나지 않은 그 무엇, 이곳에 현재로 지속하는 과거,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 말이다. 그것은 멈추지 않는 애도다. 애도는 멈추어서는 안 된다. 애도가 멈추는 순간 삶도 시도 불가능해진다. 과거가 삭제된 현재는 자폐에 지나지 않으며 그때 언어는 그저 독백에 불과하다. 애도는 윤리이자 미학이다. 이원호는 그 작업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제 다시” “멈추지 않는 자유로운 행군” 말이다. 그가 시인인 까닭은 이 때문이다.
―채상우(시인, 해설 중에서)
시인의 말
사방이 온통 벽이다
담쟁이가 벽을 짚고 벽과 더불어 자신의 국경을 넘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경계 안에 잠들어 있었다
저자 약력
이원호
1970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출생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법무법인 함백 대표 변호사이며, 경기도 남양주시 평화시민회 공동대표, 민변 통일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허위조작정보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중년 - 13
악의 꽃 - 14
넥타이 - 16
우상 - 17
새삼스런 발견 - 18
술자리 - 20
풍경 - 22
착오 - 24
동경에서의 하루 - 25
우산 - 26
대척점 - 28
골무 - 30
착한 가족 - 32
박제된 아침 - 34
그날 이후 - 36
미싱 - 37
선풍기 - 38
부자 - 40
그늘 - 41
제2부
백정의 딸 - 45
지슬 - 46
무명천 할머니 - 48
달의 노래 - 50
정방폭포에 서서 - 52
성산포에 서면 - 54
백야 - 56
술 - 57
열대야 퇴치기 - 58
계단 - 60
징검다리 - 62
어머니 - 64
제3부
가시 - 69
폭음 - 70
신발 - 72
지리산에 오르다 - 74
바람 - 75
관악산 - 76
팽나무 - 78
붕어 - 80
공부 - 82
교감 - 84
소백산에서 - 86
첫눈 - 88
전생을 기억하다 - 90
쿠바에서 띄우는 편지 - 92
바람과 동거하다 - 94
바람은 - 96
제4부
시 - 99
비 오시는 날 - 100
운명 - 102
작살 - 104
감기 - 106
이제 다시 - 108
시와 칼 - 110
악성 - 112
심금 - 114
독서 - 116
생각의 방생법 - 118
자화상 - 120
변증법 - 122
소멸 - 124
목련 - 125
등대 - 126
제5부
아침 - 129
살구 단상 - 130
지하철 2호선 - 132
시(時) - 133
이감 - 136
행복 - 138
물의 나이테 - 139
풋사과의 시간 - 140
고구마 - 141
광부 - 142
광어 - 144
동행 - 146
김장 - 148
선물 - 150
고백 - 151
입춘 - 154
날개 - 155
담쟁이 - 156
해설 채상우 멈출 수 없는 애도 – 158
시집 속의 시 세 편
폭음
이 바람은 어디서 오는가
저 멀리 킬리만자로에 사는 한 마리 새의 몸짓에서
바다의 대지 위 허공의 집을 지은 바람
외로움을 빚어 새를 낳았다
쪽빛 마당 먹이를 쪼는
새들을 태우고 바람이 난다
다 자란 새는 더러 나무에게 시집을 갔다
출가하고도 어미를 뜨지 못해
작은 날갯짓에도 안쓰러워 전신을 턴다 바람은
그때마다 구름은 온몸 흔들어 대고
떼를 지어 좌고우면하는 갈대들
밤새 술을 마시고야
새와 바람이 붙어 다니는 이유
내가 흔들리는 까닭을 알았다 ***
담쟁이
황량한 시멘트 벽
담쟁이가 기어오르고 있다
하켄을 박으며 한 발 한 발
암벽을 오르는 등반가
벽의 정밀한 살과 살 사이
빛살 같은 틈 움켜쥐고
벽과 허공 사이 자일 하나 없이
제 무게를 바람을 감당하며
조금씩 조금씩 중심을 이동하는 담쟁이
수직의 상승만을 원치 않는다
수평의 전진을 마다하지 않는다
곡선의 하강이 부끄럽지 않다
멈추지 않는 자유로운 행군
회색의 캔버스에 거대한 벽화를 새겨 놓았다
흔한 화구 하나 없이
맨손으로 자화상을 그려 놓았다
초록의 변방이 도달한 정신의 높이 ***
고백
아들이 수도공고를 간다
전기 기술자가 되겠다 한다
한양이 오랜 수도인 것처럼
정해진 인생길은 아니지만
애비는 짠하고 대견하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사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허나 아들아
누구도 해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노동으로
한생을 전구처럼 밝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지 않으냐
이 세상을 떠받치고 세우는 건
돈이 아니라
권세가 아니라
학벌이 아니라
너의 이마에 맺히는
건강한 땀방울
전봇대 같은 노동의 억센 팔뚝임을
결코 잊지 말아라
팔다리를 놀려 흘리는
땀과 눈물이 모여
하나의 전선을 이룰 때
연대의 물결 전류처럼 흐를 때
세상을 바꿀 영광의 그 이름 또한
노동자임을 잊지 말아라
네가 아니면
노동자가 아니면
이 땅의 백성이 아니면
누가 있어
갈라진 세상에 다리를 놓아
통일의 밥상을 지으랴
네가 바로
네 삶과 이 땅
세계와 역사의
주인임을
언제나 잊지 말아라
못난 애비는
네가 자랑스럽다
캄캄한 세상 구석구석
비추는 전등이 되거라
사랑한다 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