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을 올리는 게 불가능해서 이렇게 글자만 올립니다.
< http://dondogi.blog.me/100133382964 : 강원 강릉 주문진수산시장 >
우리에게 주문진의 첫인상은 길게 늘어선 수산시장이다. 이름하여 주문진수산시장! 해산물하면 사족을 못쓰는 나기에 하늘 똥구멍이라도 찌를 기세로 차에서 내렸건만 어떻게 수산시장이라는 데가 펄떡 뛰는 생선은 고사하고 바닷물에 담긴 조개 한 마리 보이지 않을까? 온통 말린 것, 절인 것, 포장된 것 투성이였다. 동급으로 진열돼있는 사탕은 또 뭔지…….
‘이런 걸 두고 수산시장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주문진에서?’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란히 걷는 은영이가 던지는 말이 딱 두 가지 주제뿐이다.
“선배, 쥐포라도 사줄까?” ? 은영이는 쥐포를 즐기지 않는다. 쥐포는 내가 가끔 맥주를 마실 때 안주로 오메 좋은 것~ 하는 것인데,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이런 식으로 사는 건 별로 안 좋아하고, 이를 잘 아는 은영이가 날 놀린다고 하는 말일 게다. 쥐포가 없으면 어때? 냉장고를 뒤져 아무 마른반찬이나 하나 꺼내놓고 잔을 기울여도 은영이만 앞에 앉아있다면 술맛이 짠하게 난다. 이쯤에서 [은영이가 안주다!] 이렇게 적고 싶지만, 이렇게 적고 나면 꼭 이를 곡해해서 나쁘게만 보려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감히 그러질 못하겠다. 가게아줌마는 10 리 밖에서도 하는 말을 다 듣나 보다. 은영이가 아주 조그맣게 ‘쥐포’를 언급했는데도 지나치는 가게마다 아줌마가 나와 쥐포를 사라고, 맛있다고, 국산이라고 한마디씩 던졌다.
“선배, 옥수수는 어디서 팔까? 안 보여.” ? 은영이는 찐 옥수수를 엄청 좋아한다. 옥수수가 나는 계절에 떠난 강원도 여행 치고 옥수수 때문에 싸우지 않은 적이 없을 만큼 은영이는 옥수수에 집착하고 나는 옥수수가 귀찮다. 특히 길거리에서 사먹는 옥수수가 싫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강원도+옥수수만 갖고 싸운 건 아니다. 고향땅 대구에 가서도 싸우지 않은 적이 없고, 남해안 바닷가를 돌면서도 싸우지 않은 적이 없고, 심지어 해외에 나가서도 싸우지 않은 적이 없다. 옥수수는 그저 서로에 대한 불만을 구체화시켜주는 대상일 뿐이다. 은영이는 주문진수산시장에 차를 대는 순간부터 찐 옥수수를 찾았고, 나는 옥수수 사는 걸 계속 거부하다가 결국 3 개에 3,000 원에 사서 은영이 입에 물리고 나서야 은영이가 이 저주 같은 질문을 멈췄다.
우리가 차를 댄 곳은 수협 옆 부둣가였다. 차를 대고 나와 도로를 따라 걷는데, 도로 양옆에 늘어선 가게는 온통 포장된 걸 파는 가게뿐이었다. 어떻게 모든 가게가 한 가게도 빠짐없이 똑같은 걸 팔고 있을까? 그것도 다닥다닥 붙어서 말이다. 한참을 걸어가니 사거리가 나오고 그 옆에 주문진항이 있었다. 주문진에 발을 디디고 처음으로 만나는 제대로 된 바닷가 풍경이었다.
“은영아, 저기 가면 옥수수를 팔 것 같은데?” ? ‘역마살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지금껏 없던 찐 옥수수가 저기에 왜 있냐? 그렇게 말하고도 쪽팔리지 않냐? 네 눈엔 은영이가 그렇게 물로 보여? 은영이가 네 감언이설에 속으며 산 지 어언 15 년이다. 이제 니 의도쯤은 손바닥에 놓고 보고 있는 은영이라고.’
그렇다고 딱히 발길을 향할 곳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결국 주문진항으로 향했다. 주문진항은 생각보다 작았다. 저녁답이라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항구의 크고 작음은 새벽에 가봐야 안다고 했는데……. 군데군데 좌판을 놓고 문어, 멍게, 해삼 같은 걸 팔고 있었다. 그 중에 문어가 주종이었다. 한 아주머니가 약간 작은 문어를 한 마리 사면서 만 원을 냈다. 은영이는 찐 옥수수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찐 옥수수, 찐 옥수수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결국 한 가게로 가서 아주머니를 붙들고 물었다.
“아주머니, 여기 찐 옥수수 파는 데는 없나요?” ? 오메, 이 아가씨 봐래이.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돼 죽겠구먼 와서 옥수수 파는 데를 찾아, 야? 가르쳐 줘야 돼, 말아야 돼? 조금만 덜 예뻐도 그냥 확~ 안 가르쳐주겠구먼 너무 예뻐서 내가 가르쳐준다. 천기누설 한 번 하지, 뭐. …… “없어요.” / ‘천만다행이다, 우리 꿀물이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를 만나서. 은영아, 거꾸로 한번 생각해봐라. 니가 어느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서, “여기 산오징어 파는 데는 없나요?” 하고 묻는다면 그 아줌마가 너를 정상으로 봤겠어? 니가 지금 딱 그 짝이야. 나 지금 어디로 숨어야 되니? 숨을 곳 좀 가르쳐주고 묻고 다닐래? 너 때문에 나 지금 얼굴이 박피 중이야.’
은영이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단다. 기회다. 나는 은영이를 보내고 부둣가에 가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런 데서 과연 고기가 잡힐까?’ 하는 의구심이 채 들기도 전에 벌써 한 마리가 낚였다. 낚싯대가 엄청나게 휘었다.
사진기 준비! / 준비 끝! 됐나? / 됐다! 수면에 시선 집중! / 집중 끝!
서서히 끌려오는 물고기가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부둣가에서 하는 낚시질치고는 엄청나게 큰 물고기였다. 어른 팔뚝보다도 더 굵었다. 그런데 이런, 뜰채가 없다. 낚시꾼은 그냥 낚싯대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었다. 나는 낚싯줄 끝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잠시 후,
셋! 둘! 하나! 들어올려!
드디어 물고기가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기가 살짝 퍼덕이는가 싶더니 이내 바다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 놈이 다시 튀어올라 낚싯바늘에 걸려줄 리 만무하니 결국 놓친 것이다. 낚시를 하면서 이 때만큼 아까운 순간이 또 있을까?
“저거는 황어에요.”
옆에 있던 아저씨가 순수 강원도 발음으로 물고기 이름을 가르쳐줬다. 그런데 그 강원도 억양을 글자로 표현할 길이 없어 답답하다. 어떻게든 그 특유의 높낮이와 강약을 글로 표현해보면,
거 에 “저~ 는 황어 요.”
잠시 후 은영이가 왔다. 낚시구경도 끝이 났다.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 말고 좀 더 바닷가 가까이로 거닐었다. 가서 보니 노량진수산시장의 진짜 수산시장이 거기 있었다. 펄떡 뛰는 물고기가 있고, 물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오징어가 있고, 바닷물에 담겨있는 온갖 살아있는 것들이 있었다. 천천히 구경하며 걷는데 특이한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식당 앞에다 불을 피워놓고 사람이 나와 생선, 새우 등을 굽고 있었다. 굽히는 것 중에 배에 잔뜩 알을 밴 놈이 궁금했다.
거 래~요?”- ‘강원도 억양이 제대로 먹혔을까?’ 는 “저~ 뭐드
이래봬도 제천의 자랑 쾌걸님으로부터 사사 받은 억양이다.
원” 에 마리 “도루묵이 요. 여섯 만
래요?” ? ‘이 분은 날 어디 사람으로 알까?’ 그 할 때 그 이 “저게 말짱도루묵 도루묵
내가 자꾸 이러니까 은영이가 옆에서 그만하라고 옆구리를 찔렀다. 내가 은영이 때문에 무슨 예술을 못 하겠다.
“아저씨, 산오징어가 8 마리 만 원!” ? 아줌마, 그거 오징어 맞아요? 주꾸미 아니에요? 오징어가 어떻게 만 원에 8 마리나 해요? 혹시 오징어하고 주꾸미하고 구분하지 못 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오징어가 맞다. 살아있는 오징어가 8 마리에 만 원이었다. 저 놈의 펄펄 뛰는 오징어를 8 마리 사서, 몽땅 채썰어가지고, 초고추장 옆에 끼고 부둣가에 앉아, 뉘엿뉘엿 져가는 태양을 등뒤에 두고 소주 한 병 까면서,
“친구야, 한 잔 해라 마. 고생했다.” / “그래, 친구야.”
할 친구가 없는 건 내 인간성 탓이니 그렇다 쳐도, 산오징어는 징그러워서 못 먹고, 소주는 내가 술 먹는 꼴을 보기 싫어서 안 먹고, 여러 모로 술판보다 백배 나은 찐 옥수수를 뜯으며, 조금씩 발라 내 손에 올려주는 니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헤이고…… 사랑스럽냐……
“선배, 자, 먹어.” ? 내가 손에 들고 일일이 뜯어먹기 귀찮아서 옥수수를 잘 안 먹는 걸 어떻게 알고 이렇게 알알이 발라서 내 손에 쥐어주는지…… 넌 뭘 믿고 그렇게 사랑스럽냐? 지금 이 순간 내가 용왕이고, 니가 심청이 아니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그런데 너, 손은 씻고 다니냐? 지금 내 입에 들어가는 이 옥수수알갱이의 간에 센 게 비단 가게아줌마가 잘못 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오징어가 주문진의 대표어종이다. 어떻게 아냐 하면 주문진항 앞에 커다란 오징어동상이 서있었다. 그런 오징어를, 그런 주문진의 오징어를 맛도 못 보고 주문진수산시장을 떠났다. 은영이와 다니면 늘 이런 식이 된다. 우린 서로 좋아하는 게 달라서 되는 게 없다. 이상하게 왠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주문진수산시장이다.
우리는 주문진수산시장에 붙어있는 이사부디저크루즈(Isabu Dinner Cruse)를 타러 갔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
출처: 역마살 원문보기 글쓴이: 역마살
첫댓글 나 만나기 전에 요런 알콩 달콩이 있었구나...ㅎㅎ
우찌되었건 역마살의 인생은 아름다워~~~
돌담님이 이렇게 답글을 적어주시니까 이상하게 좋은 추억이 남은 것 같아요. 하지만 진짜 조금 힘들었어요,^^
그 날 밤, 다시 운전해 오는데... 은영이가 운전했었거든요. 저는 옆자리에서 완전히 뻗어버리고.
겨우 집에 도착해서 다짐했습니다. "우리, 다시는 이렇게 힘들게 여행하지 말자... 너무 위험하다."
다음에는 조금 더 여유롭게 여행하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즘 동해쪽으로 가시면 장치라는 생선 초초초초강추입니다.
그 맛있는 전복치보다 10배 더 맛있는데 큰 거 한마리에 2만원 미만으로 요즘 아주 제철이예요~
켁! 좀 빨리 가르쳐주시지... 그거 먹어볼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옥수수만 먹었다니깐요...ㅠㅠ
아이고.. 저희도 가서 장치찜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요..
저희가 먼저 갔으면 알려드렸을텐데 아쉽습니다...ㅠㅠ
장치찜 얘기를 잘 읽어봐야겠습니다. 기대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