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버꾸놀이 상쇠계보
용강리 와룡마을
전견용(작고) →박성남, 이태주(작고) → 양향진
-전견용분께서 연행하시는것을 보고 따라다님 주로 마당볿이와 버꾸놀음 등 판놀음 하시는것을 보고 배움
-이후 박성남, 이태주분으로 상쇠가 바뀌고는 꽹가리나 버꾸, 장구를 메고 직접 치배로 활동함, 정월 마당볿이와 당산굿 등 판놀음 을 연행함, 특히 이태주 분은 사설,덕담 등 우스개소리도 잘 하심 또한 곱새춤등 잡색연희도 흉내를 내어줌
용강리 관동마을
차정옥(작고), 정남기(작고) → 이석(작고)→ 양향진
-차정옥님은 친구의 할아버지로 갱미갱 가락을 치실 때 정성스러웠음, 당산굿을 할때 거꾸로 들어가는 등의 지극히 일반적인 가락과 진법을 연행하심
-정남기님은 외할아버지신데 부쇠였으며 엄하셨던지라 보고 듣기만 함
-이석님은 가는귀가 먹어 말귀를 못알아 잡수셨음, 윗대 분들의 가락을 정확하게 대를 이음. 즉 당산굿, 마당볿이 판놀음 등
그리고 관동마을 추명환님은 상쇠는 아니지만 소리를 잘하여 노래와 상여소리를 배움
우산리 교촌마을
박순기(작고) →김봉석(작고) →상쇠없음
-박순기분을 통해 덕석기를 처음 봄, 교촌(향교)매구라 했으며 열두마당에 대해 언급했으며 진법 등 구체적인 판놀음을 직접 전수받음 특히 버꾸놀음 시키는 상쇠가락은 버꾸소리를 도드라지게 하기위해 쇳가락을 막고치는 부분이 많은것을 알려줌. 당시 광양농고학생들에게 매구를 가르키기도 함
-김봉석 때부터 교촌매구는 소멸함, 대포수놀음과 음매캥캥등 상쇠놀음 전체보다는 부분적인것을 묻고 배움
세풍리 해창마을
홍종태(작고) , →상쇠없음
홍종태분께는 오채질굿에 대해 배움, 학익진 등을 언급함, 주로 마당볿이와 당산굿등 일반적인 가락을 구사함, 버꾸놀음 또한 교촌매구나 용강매구와 동일했고 교촌매구 기능상실 후 몇차레 해창마을에 가서 마을잔치에 술도 내고 하면서 교류를 가짐. 귀가 많이 먹어 거의 말소리를 듣지 못 함
-홍종모는 홍종태의 친동생, 홍종태의 귀가 먹어 가끔 대신 나서기도 하였는데 홍종태의 기능에는 못 미침
골약동 하포마을
정용기(작고)
정용기분께는 외채질매구에 관해 여쭤본바 남원매구와도 연관있음을 확인함.
음매캥캥은 잘 사용치 않고 지갱깽을 주로 사용함.
당산굿이나 마당볿이, 마당놀이 등 현재 마을에서 연행중이나 악기잽이가 없어 이 또한 소멸됨,
이후 하포풍물단을 결성하여 양향진이 지도교수로 자리하고 정용기와 활동중에 점차 소멸되 가는중임
이상은 양향진이 현재 연행하고 있는 광양버꾸농악을 완성하는데 기초가 되는 가락을 연행하신분들이다.
용강리 와룡, 관동 마을은 양향진이 태어나고 자란마을로 모태가 된곳이니 버꾸농악 전반에 대해 보고 배운곳이며
우산리 교촌마을 박순기는 진법을 잘 구사했고, 세풍리 해창마을 홍종태는 오채질굿을, 골약동 하포마을 정용기는 당산굿을 잘 구사하여 양향진이 보고배우거나 직접 전수받아 현재를 이루었다.
또한 여타한 동네상쇠분들은 이론적 설명 및 가락구성, 진법 등에서는 거의 무지했으며 그냥 노는가락 위주로 연행하였음.
다압면, 진월면 태인동 등에서는 예전 상모놀음을 모두 했다는 증언을 들었고, 하동 , 남해 등과 교류가 있었다는 구술을 들었으나 특출한 가락은 없었고 버꾸놀음은 광양관내 공통적으로 우세였음을 확인함.
용강리 강정 마을 한용배의 꾀꼬리 상모놀음은 도드라졌으며, 용강리 관동마을 추송암의 열두발 상모놀음도 직접 봄
광영큰골농악 초기에 직접 찾아간 바 상쇠가 없어 이곳 저곳에서 초빙하는 양상이었고 양향진이 직접 가르친 제자들을 지원하거나 직접 도와드린적도 있음, 이후 확인된 바 상쇠는 부산쪽의 가락으로, 토속가락이 아닌 부산의 것을 연행한 내용을 확인함
이러한 마을농악들이 현재에 들어서서 모두 소멸된 상태이며 광양버꾸농악보존회의 활동으로 유일하게 현존함
/ 자료 정보 : 광양버꾸농악 보존회 이사장 양향진
2025.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