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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山仰止 景行行止( 고산앙지 경행행지 ) 시경에 나오는 말로 사마천은 사기에서 공자를 위의 말로 찬사하였다고 하며, 많은 유학자나 존경을 받는 위인은 위의 시경 구절을 인용하여, 존모의 의미를 더하였다고 한다.
한산이씨 중에서 가정 이곡과 공의 자이신 목은 이색 이후 18세기 조선에서 학문으로 최고의 칭송과 영남의 으뜸으로 손꼽히는 대유학자는 대산 이상정이다. 별칭이 소퇴계인것도 있지만 목은 이색을 가장 많이 빼어닮은 학자로 불리우면서 안동시 남후면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
그 만큼 후손들이 존모하고 그 행적이나 사상들을 따르고 실천하고 싶은 것은 공이 남기신 행적이 타인과 달랐기 때문일것이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에게 대산 이상정이 살아생전 고산의 행적을 자세히 아는 이가 더물고 몇몇 일부의 방송이나 온라인 글에서 고산서원은 "고산앙지 경행행지" 라는 한자 문구에서 발췌하였다고 소개만 하니 매번 이런 형태의 글을 접할때마다
해산공파 후손으로써 가깝게는 대산 이상정의 재종아우이면서 저자의 8대조 직계이신 약와 이현정(일명 강동할배)과 공의 아우 휘 사정, 휘 택정, 휘 술정 네분은 대산 이상정에게 배웠으며, 그 배움의 배경에는 대산의 열네번째 숙부이신 휘 명화 할아버지(저자의 9대조 약와 이현정의 생부)가 55년을 자식 뒷바라지 하며, 가문을 추스리고, 공의 자녀 4분이 모두 뛰어나고 현달하여 그 중 생원 진사시 문과급제가 나오면서 명가의 반열에 올랐으며, 주변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명가가 되었다.
이는 약와 이현정이 대산 이상정의 재종아우인 동시에 첫 제자로 대산 이상정 이후 두번째로 안동 수은공파( 소호문중)에서 문과급제를 하였다.
2018년 5월 31일은 한산이씨 역사상 아니 세계역사상 한산이씨 수은공파가 세계에 위상을 드높인 날이다.
세계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인 영남 만인소가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세계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공론화, 대의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혹자는 칭송하는 기록유산이다.
한산이씨 일가님 중 많은 분들이 저에게 전화나 sns로 영남만인소 이야기를 글로 올려줄 수 없는지 부탁을 하고 관심이 많아서 일부 영남 만인소의 명단과 내용을 잠깐소개하여 드렸지만 내용이 방대하고 하여 논문형식으로 기고를 할찌 아니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나누어 소개할지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추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저자의 많은 직계선조가 영남만인소에 참가하였고 저자의 선조. 또한 있어 좁게는 가문의 경사이지만 넓게는 세계유네스코 기록유산물에 이름을 올려 한산이씨의 경사가 아닌가 싶다.
이른 경사의 수은공파 초석에는 대산 이상정이 있었고, 끊임없이 공의 학행을 본받고 실천하고자 하였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고산서원의 어원을 정확히 알려면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할 고문서가 바로 대산집이다.
내용이 방대하여 대산집의 내용중 고산서원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것 중 고산잡영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산집(大山集)
대산집 제3권
시(詩)
고산잡영 병기 〔高山雜詠 幷記〕
보현산(普賢山)의 한 줄기가 동쪽으로 나와 정령(鼎嶺)이 되고, 갈라져 남북으로 두 줄기가 되었다. 남쪽 줄기는 서쪽으로 110리를 내달려 송현(松峴)이 되었고, 북쪽으로 꺾여 몽현(夢峴)이 되었으며, 또 동쪽으로 꺾여 원수봉(圓秀峯)이 되었다. 북쪽 줄기는 서북쪽으로 향하여 갈라산(葛蘿山), 토령(兔嶺), 월봉(月峯)이 되었고, 원수봉의 동남쪽에 이르러 정수봉(靜壽峯), 제월봉(霽月峯), 일제봉(日躋峯) 등이 되었다. 제월봉 아래에는 취벽(翠壁)이 있는데 높이가 수십 길이고 너비도 마찬가지이다.
그 위에는 측백나무가 무성히 자라 그 울창함이 사랑스럽다. 물은 두 산의 사이에서 발원하여 벼랑과 나란히 아래로 흐른다. 공산(公山)의 남쪽에 이르러서는 들판이 끝나고 산이 높은데, 산골짜기에는 초목이 무성하다. 물속엔 어지러운 돌들이 빼곡하며 세 번 꺾여 취벽 아래에 이르러서는 물이 감돌아 못이 되었는데, 넓고 깊으며 맑고 푸르러 작은 배를 띄울 만하다.
또 세 번 꺾여 낙동강(洛東江)으로 들어가는데 전후로 굽이진 것이 모두 일곱 곳이다. 원수봉이 마침내 떨어져 나와 남쪽으로 내려오고 동쪽으로 굴러 중간 크기의 언덕이 되는데 이곳이 바로 제4곡(曲)이다. 뒤는 높고 점점 낮아지다가 끝나는 곳에 이르러서는 좌우가 조금 움푹 들어가고 가운데는 약간의 비탈을 이룬다. 앞에는 모두 암석으로 뭉쳐지고 절벽을 마주 대하면서 앞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 이 산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내 나이 30세 때 어떤 일로 인해 여정으로 이곳을 지난 적이 있었는데, 높은 산과 깊은 물, 그리고 바람과 안개가 감도는 것이 너무도 좋아 마음 깊이 이곳에 은거하려는 생각을 가졌었다. 바로 산을 사서 집을 짓고서 은거하며 소요하는 곳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그저 왕래하며 마음속으로 잊지 못하였다.
정해년(1767, 영조43) 봄에 드디어 세 칸에 여덟 개의 기둥으로 흙 언덕 위에 짓게 되었는데, 동인인 이학보(李學甫)와 김직보(金直甫)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일을 주관하였다. 그런데 띠를 얹자마자 상을 당해 슬픔에 경황이 없어 또 2년이 지났다. 언덕진 곳은 땅이 시원하게 툭 트였지만 물이 가깝고 바람이 많아 오래 거처할 수는 없었다. 결국 언덕 안쪽으로 옮기기로 하였는데 촌락이 가까워 우아한 운치에는 맞지 않았다.
그러나 물줄기가 만나 두루 감싸고 형세가 고루 원만하며, 산 전체의 중앙을 차지하여 바위 봉우리와 계곡이 마치 공읍(拱揖)을 하듯 그 앞을 둘러싸고 있다.
10월 16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거의 십수 일 만에 대충 완성하였다. 30년을 마음에서 잊지 못하다가 비로소 공사를 하게 되었고, 또 3년 만에 대충 완성하였다.
당실(堂室)이 완성된 뒤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따진다면 또 약간의 시일이 걸릴 것이다. 나는 내년이면 벌써 60세가 되니, 얼마의 시간을 누릴 수 있을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예전 나그네로 지나던 곳에 엄연히 내가 살 산수의 집을 이루었으니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골짜기는 고암(高巖)이라 통칭하고 또 별도로 암산(巖山)이라 칭하는데, 마침내 이 둘을 합하여 고산(高山)이라 이름하였으니, 대개 《시경》 〈소아(小雅)〉의 “고산을 우러른다.〔高山仰止〕”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
집은 총 3칸인데, 가운데 한 칸은 대청으로 만들어 정춘(靜春)이라 이름하였으니, 정자의 말을 취한 것이다. 방은 남쪽에 두었는데 이름을 응암(凝菴)이라 하였으니, 《중용》 27장의 뜻을 취한 것이다. 주인이 자는 곳은 북쪽에 두었는데 이름을 낙재(樂齋)라 하였으니, 《논어》 첫째 장의 뜻을 취하여 장차 원근의 벗들이 오기를 기다리려는 것이다.
낙재의 북쪽에는 소나무 세 그루가 있는데 우뚝 솟은 모양이 사랑스럽다. 그 아래에 대(臺)를 만들고서 세한(歲寒)이라 이름하였다. 바위는 만대(晩對)이고, 못은 광영(光影)이다. 만대의 동쪽에는 양쪽으로 절벽이 휑하니 있고 가운데에 대가 하나 있는데 정락(靜樂)이다. 또 그 남쪽이 총계대(䕺桂臺)이다. 갈매기 노니는 물가, 송골매 깃드는 바위, 낚싯대 드리우는 바위, 찻물 끓이는 아궁이 그리고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까지 모두가 내가 보며 즐길 만하며, 앞뒤의 여섯 굽이는 또 어우러져 좋은 경치를 이루었다.
막내아우 휴문(休文)이 처음부터 나의 이러한 뜻을 함께하였는데, 지금 외로이 소후가(所後家)의 상복을 입고 있어 완성하는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였다. 훗날 아무 일 없을 때에 마땅히 서로 이 즐거움을 함께할 것이다. 자제 중에도 함께하려는 자가 있다면 또한 막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이 나에게 누리게 한 것이 적지 않은데, 어떻게 닦아야 이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높은 산을 우러러보며, 큰길을 행하도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고 하였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시에서 인(仁)을 좋아함이 이와 같구나. 도를 향하여 가다가 중도에 쓰러지더라도, 몸이 늙음을 잊어 남은 연수가 부족한 줄을 모르고서 열심히 날로 부지런히 하여 죽은 뒤에야 그치는구나.”라고 하였으니, 인의 그릇이 무겁고 그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면 그 좋음을 알 수 없고, 알지만 돌이켜 실천하지 않으면 자신의 몸에 소유할 수 없으며, 소유하였지만 부지런히 하여 자신의 몸에 종신토록 행하지 않는다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잃어버리게 된다. 중도에 그만두는 것과 한계를 그어 나아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로 불인(不仁)으로 귀결된다.
공자가 사람들을 잘 이끌어 주는 것에 대해 안연(顔淵)이 일찍이 크게 찬탄하며 말하기를 “문으로 나를 넓혀 주시고 예로 나를 단속하게 하신다.〔博我以文 約我以禮〕”라고 하였다.
넓혀 지식을 다하고 단속하여 실제를 실천하되 부지런히 힘쓰고 순순히 따라서 그만두지 않는다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더디냐 빠르냐는 다만 재주가 얼마나 민첩한가와 힘쓰기를 얼마나 깊이 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비록 그렇지만 빨리 이루고자 서두르면 얽매여 지속이 어렵고 잠깐 했다가 그만두면 중단되어 성과가 없으니, 비록 뜻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스스로 도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점차로 젖어 들어 천천히 행하면서 빨라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환하게 이어 밝혀서 두려운 마음으로 혹시 잃을까를 염려해야 한다. 독실하게 지키고 유구하게 유지하면서 부지런히 자신의 힘을 다한다면 아마도 거의 인을 좋아하는 실제를 충족하고 조석으로 이 산에 사는 데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이따금 책 읽기가 피곤하거나 뜻이 풀어졌을 때에 옷을 챙겨 입고서 지팡이 짚고 나가 본다면, 아지랑이와 구름이 펼쳐졌다 걷혔다 하고 꽃과 새는 한창일 것이며 바위는 고요히 바라보기 적당하고 못은 가만히 곁에 서 있기 적당할 것이다.
그리고 높은 곳에 올라 홀로 읊조리고, 대에 기대어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물가의 바위 위에 앉아 물고기를 구경하고, 모래밭을 거닐며 갈매기를 가까이한다면 세상 모든 모습이 눈앞에서 바뀌며 나의 즐거움도 그것들과 함께 무궁할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한가로이 지내면서 쓸모가 없는 세월이겠지만, 위아래로 살펴보고 좌우로 돌아보는 때에 주위의 경관과 나의 뜻이 모두 앞에서 언급했던 점차 젖어 들고 이어 밝히는 데에 따른 공효와 꼭 들어맞아 은연중에 서로 부합한다면, 그 옛날 인자(仁者)가 산을 좋아하고 지자(智者)가 물을 좋아하며, 바람을 맞으며 노래를 읊조리겠다는 흥취가 대개 이러한 것이리라. 아아, 이것을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후로 질병이나 일이 있지 않는다면 반드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종적을 감추고서 마음을 가다듬고 학문을 연구하여 지난날의 허물을 조금이나마 보완한다면, 하늘이 나에게 이러한 것을 누리게 한 것이 우연이 아님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니, 또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암대(巖臺)와 물굽이는 각기 이름이 있는데 또 그림과 시로 그 승경을 기록하여 즐거이 찾아오는 벗들과 함께하려 한다. 기축년(1769, 영조45) 12월 가평일(嘉平日)에 주인이 기록하노라.
구절 칠언 (九絶 七言 )
고산정사(高山精舍)
우뚝 솟은 첩첩 산 엄연히 제 모습 간직한 채 / 嶷嶷層巒儼自持
푸르른 한쪽 면은 집을 마주하여 기이하여라 / 靑蒼一面當軒奇
부지런히 도를 추구하여 종신토록 일삼으면 / 孶孶嚮道終身事
굽어보고 우러르는 사이에 드는 생각 있으리라 / 俛仰中間有所思
‘당(當)’ 자는 거성(去聲)이다.
응암(凝菴)
지극한 도 가득함은 예나 지금 그대로니 / 至道洋洋自古今
묘한 엉김 원래 마음 벗어나지 않는다오 / 妙凝元不外人心
명성 밝힌 한 권의 책으로 문호를 열어 / 明誠一部開門戶
공정에 따라 노력하며 촌음도 아껴야지 / 努力工程惜寸陰
정춘헌(靜春軒)
충융한 한 기운을 하늘이 전하여 / 冲融一氣轉洪匀
사시는 변화하여 모두 봄이 된다네 / 四序推移摠是春
이 마음 욕심 없이 고요할 수 있다면 / 倘得此心無欲靜
크건 작건 일에 따라 천진함 드러나리 / 洪纖隨處露天眞
낙재(樂齋)
늙어 학문이야 아직도 마음 어지러운데 / 白頭爲學尙迷心
멀리서 찾아오는 벗들 너무도 고마워라 / 多謝諸朋肯遠臨
옛사람의 진정한 즐거움 알고자 한다면 / 欲識古人眞樂處
익히기를 익숙히 하여 기뻐함 깊어야지 / 習時須熟悅時深
만대암(晩對巖)
가파른 절벽 한쪽 찬 허공에 기대고 / 巉厓半面倚寒空
저물녘 그림자는 원기 속에 늘어지네 / 夕影離離元氣中
뜬구름 피고 지는 일 상관하지 않고서 / 不管浮雲舒卷事
창연한 그 빛은 예나 지금 그대로네 / 蒼然一色古今同
광영담(光影潭)
맑고 깊은 한 줄기 고요하고 티끌 없이 / 澄泓一道靜無埃
맑은 물이 근원에서 끊임없이 흘러오네 / 活水源頭滾滾來
삼라만상 모든 일의 참모습은 담박하니 / 萬象森羅眞體澹
푸른 하늘 찬 달이 깊은 밤에 떠 있어라 / 碧空寒月夜深開
총계대(䕺桂臺)
그윽한 계수 떨기 소산은 그늘지고 / 幽幽䕺桂小山陰
싸늘한 가을바람 호랑이 우는 듯하네 / 憀慄秋風虎豹吟
세모에 왕손은 어느 곳에 있는 것인가 / 歲暮王孫何處在
반초가 부르고 구름 깊은 곳 누웠어라 / 反招歌罷臥雲深
정락대 주자 시의 “조용하여 산수의 즐거움이 있다.”라고 한 구절을 인용하여 이름한 것이다. 〔靜樂臺 用朱詩靜有山水樂之句名〕
푸른 절벽 가운데 쪼개져 절로 대를 이루고 / 蒼厓中劈自成臺
일천 봉우리 그늘지고 한 줄기 물이 감도네 / 千嶂陰陰一水回
곳곳마다 가득한 인과 지의 즐거움이여 / 隨處洋洋仁智樂
옛사람의 소식이 고요한 가운데 찾아오네 / 古人消息靜中來
세한대(歲寒臺)
모든 나무 쓸쓸하여 대지도 음산한데 / 萬木蕭條大地陰
곧은 자태 눈서리의 침노를 용납 않네 / 貞姿不受雪霜侵
세한대만 홀로 있어 공연히 서글프니 / 寒臺獨立空怊悵
세모에 누구와 괴로운 마음 함께할까 / 歲晏何人共苦心
십육절 오언 (十六絶 五言 )
낚시터〔釣磯〕
그늘진 바위 위엔 이끼가 끼어 있는데 / 石面蔭荒苔
잔잔한 물가에 굽어보듯 자리하였네 / 俯臨漪漪水
말없이 앉아 무심히 낚싯대 드리우니 / 忘竿坐無言
가득하여라 잠기고 뛰어오르는 이치가 / 洋洋潛躍理
차 아궁이〔茶竈〕
물가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어 / 傍水石開
천연적으로 아궁이 이루어졌네 / 天然自成竈
맛을 분별하기엔 겨를이 없고 / 辨味吾未暇
공은 막힘 열어 열기를 담을 뿐 / 功存導滯燠
육우(陸羽)는 물맛을 분별하여 차를 달였다. ○ ‘오(燠)’는 열기가 안에 있다는 것이다. ‘호(號)’ 자 운(韻)에 보인다.
송골매 깃드는 바위〔鶻巖〕
푸른 바위 천길 높이 솟았는데 / 蒼巖千仞高
그 안에 쓸쓸히 송골매 깃드네 / 中有寒棲鶻
밝은 달에 길게 한번 울어 대면 / 月明一聲長
강가 하늘 정히 찢어지려 하네 / 江天定欲裂
갈매기 노니는 물가〔鷗渚〕
추운 날 갈대숲에서 자다가 / 天寒蘆葦宿
달 밝은 밤 물가를 날아가네 / 月明洲渚飛
광대한 물결 만리에 퍼지는데 / 浩蕩波萬里
자유로이 아무 시비도 없어라 / 自在無是非
달빛 아래 작은 배〔月艇〕
시골의 어부 작은 배 타고 나가 / 野人乘小桴
그물 놓는 소리 전하여 오는데 / 施罟聲濊濊
고기잡이 끝나면 돌보는 이 없어 / 漁罷管無人
산봉우리 달빛만 가득 실었어라 / 滿載峯頭月
안개 낀 버들〔烟柳〕
바람을 맞아 한들거리다 / 臨風定依依
안개 머금고 나부끼누나 / 含烟更裊裊
누가 장난치며 살며시 부는가 / 何人弄輕吹
그윽한 흥취 다하지 않았어라 / 幽興轉未了
남쪽 시내 〈운곡이십육영〉에 〈남쪽 시내〉가 있다. 〔南澗 雲谷二十六詠有南澗〕
남쪽 골짜기 그윽하고도 깊어 / 南谷窈以深
맑고 시원한 시냇물 쏟아 내네 / 泠泠瀉澗水
길이 천 년 전 사람 생각하노니 / 永念千載人
고운 이름 우연히 비슷하여라 / 佳名偶相似
북쪽 방죽〔北堰〕
촌부들 저수지를 열어 / 野人解堰水
물 끌어와 농사를 짓지 / 灌漑事耕耘
가을 언덕 누런 구름 겹치면 / 秋壠黃雲合
귀한 음식 임금님께 바치네 / 玉食供吾君
부서진 탑〔廢塔〕
옛 탑은 어느 시절 것이런가 / 古塔定何年
지금은 절반이나 무너졌네 / 如今半傾圮
불사가 유궁으로 변했으니 / 佛宇變儒宮
문풍이 이로부터 시작이네 / 文風從此始
옛 우물〔古井〕
은은하게 바위틈에서 생겨나지만 / 隱隱巖際生
가득하니 밤낮으로 그치지 않네 / 盈盈日夜息
살펴서 과행과 육덕 행해야 하니 / 果育吾當以
먹지 않은들 어찌 맘에 슬프랴 / 不食寧心惻
돌 징검다리〔石矼〕
마을 사람 벌채를 위해 / 村人爲樵采
물속에 돌 줄지어 깔았네 / 列石峙水中
배와 노 사용함만 못하지만 / 縱乏舟楫用
내를 건너는 공 동일하다네 / 均之濟川功
흙 돈대 기문에서 말한 흙 언덕이다. 〔土墩 卽記所謂土坂〕
작은 언덕 물에 닿아 그치어 / 小阜臨水止
그 모습 너무도 맑게 트였네 / 面勢極淸曠
정자 지으려다 많은 바람 두려워 / 欲亭畏風多
한가히 걸으며 뜨는 달 바라보네 / 間步候月上
삼나무 오솔길 평해의 월송정에서 종자를 가져온 것이다. 〔杉徑 取種平海越松亭〕
우뚝하니 추위 아랑곳 않는 자태 / 擢擢傲寒姿
동쪽 바다에서 옮겨 심은 것이지 / 移根自東海
정신은 달의 찬 기운을 나눠 받았고 / 精神分月寒
기색은 하늘의 검푸른 빛과 같구나 / 氣色參天黛
돌 잔도〔石棧〕
돌 잔도는 어느 해에 열리었는가 / 石棧何年開
분명 육정을 부리어 만들었겠지 / 應勞六丁叱
멀리 바라보니 연하가 다하였는데 / 騁目盡烟霞
지팡이 의지한 채 허리 다리 쉬어 보네 / 倚策憩腰膝
서관(書館)
고요한 솔과 계수 사이의 서관 / 蕭蕭松桂館
그 안에 책 읽는 사람 있어라 / 中有讀書人
때때로 글을 물으러 찾아와 주니 / 時時來問字
외롭지 않게 이웃 됨이 무척 고맙네 / 多荷不孤鄰
전가(田家)
띠를 이은 두세 채의 전가 / 茅茨三兩家
밥 짓는 연기에 성긴 울타리 둘러 있네 / 烟火疎籬隔
김매기 끝마치고 호미 메고 돌아올 제 / 耘罷荷鋤歸
어둑어둑 산에는 해가 저무네 / 曖曖山日夕
칠곡시 칠언 (七曲詩 七言 )
일곡(一曲)
공산의 남쪽 가에 물은 그윽한데 / 公山南畔水幽幽
어지러이 돌 삐죽하여 배 엎어지기 쉬워라 / 亂石參差易覆舟
두려워하는 일념이면 물을 건널 수 있으니 / 惶恐一心能利涉
구당협도 예부터 평온히 흐르는 물이라네 / 瞿塘從古是安流
이곡(二曲)
들판 다하는 곳에 물이 처음 고이고 / 平郊欲盡水初渟
돌 잔도 이끼 낀 돌 굽은 물가 둘렀네 / 石棧苔磯繞曲汀
아이 어른과 늦봄에 바람 쐬고 목욕한 뒤 / 童冠暮春風浴罷
옷을 떨쳐입고 높이 세심정에 오르네 / 振衣高上洗心亭
삼곡(三曲)
푸른 언덕 양쪽으로 열리어 물이 깊은데 / 蒼岸雙開一水深
안개 구름 조석으로 평지 숲에 드리우네 / 烟雲朝暮暗平林
시험 삼아 유연대 위에 올라가 앉아 보니 / 試向悠然臺上坐
천년토록 뉘 알리오 산을 바라보는 마음 / 千年誰識見山心
사곡(四曲)
고요한 물 깊은 산에 절로 마을 이뤘는데 / 水靜山深自一村
텅 빈 서재 종일토록 사립문을 닫았어라 / 虛齋終日掩柴門
물가 새는 자려 하고 뜰의 꽃은 피었는데 / 汀禽欲睡階花笑
한 가닥 향로 향기에 말없이 앉아 있네 / 一炷爐香坐不言
오곡(五曲)
심춘대 아래에 물은 넘실 흐르고 / 尋春臺下水溶溶
우뚝 솟은 오랜 절벽 옛 사찰은 비어 있네 / 老壁嵯峨古院空
한 가닥 무지개다리 나루터에 걸렸으니 / 一帶虹橋橫渡口
누구런가 시내 건너는 공을 이루었어라 / 何人能辦濟川功
육곡(六曲)
끊긴 산기슭 구불구불 옥병풍 마주하고 / 斷麓逶遲面玉屛
돌밭의 잡초 사이에 정자가 남겨졌는데 / 石田荒草認遺亭
성색을 하찮게 여겨 돌보는 이 없으니 / 等閒聲色無人管
예전처럼 산은 비고 물은 절로 맑아라 / 依舊山空水自淸
칠곡(七曲)
넓은 들판 산도 트여 편평히 내만 흐르고 / 野闊山開但平川
숲 너머 울타리엔 밥 짓는 연기 보이네 / 隔林籬落見人烟
기이한 유람 끝날 적에 다시 고개 돌리어 / 奇遊欲盡重回首
호리병 속 별천지를 찾아가 누리리라 / 去管壺中別有天
[주-D001] 이학보(李學甫) : 이종수(李宗洙, 1722~1797)로, 학보는 그의 자이다. 본관은 진성(眞城), 호는 후산(后山)이다. 문집으로 《후산집(后山集)》이 전한다. 대산의 문인이다. 《高山及門錄 卷1》
[주-D002] 김직보(金直甫) : 김종경(金宗敬, 1732~1785)으로, 직보는 그의 자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호는 구재(苟齋)이다. 1774년(영조50) 문과에 급제하였다. 대산의 문인으로, 대산과 함께 《심경강록간보(心經講錄刊補)》를 편찬하였다. 《高山及門錄 卷1》
[주-D003] 상을 당해 : 대산은 1767년(영조43) 12월에 부인상을 당하였다.
[주-D004] 정춘(靜春)이라 …… 것이다 : 정자는 정이(程頤)를 가리키는데, 그가 “고요해진 뒤에 만물을 보면 자연히 모두 봄의 뜻이 있다.〔靜後見萬物 自然皆有春意〕”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4 存養》
[주-D005] 이름을 …… 것이다 : 《중용장구》 제27장 “만일 지극한 덕이 아니면 지극한 도가 모이지 않는다.〔苟不至德 至道不凝焉〕”에서의 ‘응(凝)’ 자를 취한 것이다.
[주-D006] 이름을 …… 것이다 : 《논어》 〈학이(學而)〉의 제1장에서 “벗이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다면 기쁘지 않겠는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한 뜻을 취한 것이다.
[주-D007] 휴문(休文) : 대산의 동생인 이광정(李光靖)의 자이다.
[주-D008] 소후가(所後家)의 …… 있어 : 이광정의 생부는 이태화(李泰和)로 대산의 친동생이지만 종숙부인 이지화(李志和)의 후사가 되었으며, 1768년(영조44) 소후모(所後母)의 상을 당하였다.
[주-D009] 시경에 …… 하였으니 : 《시경》의 내용은 〈소아(小雅) 거할(車舝)〉에 보이며, 공자의 말은 《시집전(詩集傳)》의 주석에 보인다.
[주-D010] 인의 …… 때문이다 : 《예기》 〈표기(表記)〉에서 공자가 “인의 그릇이 무겁고 그 길이 멀어 들려는 자가 감당하지 못하고 가려는 자가 도달하지 못한다.〔仁之爲器重 其爲道遠 擧者莫能勝也 行者莫能致也〕”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D011] 그 …… 흥취 : 《논어》 〈옹야(雍也)〉에서 공자가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智者樂水 仁者樂山〕”라고 하였고, 《논어》 〈선진(先進)〉에서 공자가 제자들에게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찌하겠느냐?”라고 물었을 때에 증점(曾點)이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완성되면 어른 대여섯 명과 어린이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서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감탄하며 허여하였다.
[주-D012] 가평일(嘉平日) : 납일(臘日)을 말한다.
[주-D013] 명성(明誠) …… 책 : 《중용》을 말한다. 《중용장구》 제21장에서 “성실을 말미암아 밝아짐을 성이라 하고 밝음을 말미암아 성실해짐을 교라 하니, 성실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실해진다.〔自誠明謂之性 自明誠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라고 하였다.
[주-D014] 익히기를 …… 깊어야지 : 《논어》 〈학이(學而)〉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D015] 그윽한 …… 그늘지고 : 은자가 사는 산속의 풍경을 비유한 말이다. 한나라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에게 초빙된 문사 중에 소산이라 일컫던 부류가 있었는데, 이들이 지은 〈초은사(招隱士)〉의 처음에 “계수나무 떨기로 나니 산이 그윽하여라.〔桂樹叢生兮山之幽〕”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D016] 세모에 …… 누웠어라 : 왕손은 진(晉)나라의 왕강거(王康琚)를 가리킨다. 그가 지은 〈반초은시(反招隱詩)〉에 “작은 은자는 산림에 은거하고, 큰 은자는 시장에 은거하네. 백이는 수양산에 숨었고, 노자는 주하사에 숨었다네.〔小隱隱陵藪 大隱隱朝市 伯夷竄首陽 老聃伏柱史〕”라고 하였다.
[주-D017] 곳곳마다 …… 즐거움이여 : 《논어》 〈옹야(雍也)〉의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라는 말을 인용하여, 산수 가득함을 즐기고 있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주-D018] 가득하여라 …… 이치가 : 사물에 드러나는 이치를 말한다. 《중용장구》 제12장에서 “《시경》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른다.’라고 하였으니, 상하에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라고 하였다.
[주-D019] 육우(陸羽)는 …… 달였다 : 육우는 당나라의 문인인데, 그의 저술인 《다경(茶經)》에 차를 달이는 데 좋은 물을 구분하여 설명한 내용이 있다.
[주-D020] 운곡이십육영(雲谷二十六詠)에 …… 있다 : 운곡(雲谷)은 주희가 한때 머물던 곳으로, 그가 이곳 주위의 풍광 26곳을 오언절구의 시로 남겼는데 그중 두 번째 시가 〈남쪽 시내〔南澗〕〉이다.
[주-D021] 살펴서 …… 하니 : 과행(果行)과 육덕(育德)은 과단성 있게 행하고 덕을 기른다는 말이다. 《주역》 〈몽괘(蒙卦) 상(象)〉에 “산 아래에서 샘이 나오는 것이 몽이니, 군자가 살펴보고서 과감하게 행하고 덕을 기른다.〔山下出泉 蒙 君子以 果行育德〕”라고 하였다.
[주-D022] 먹지 …… 슬프랴 : 쓰이지 않아도 슬퍼할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주역》 〈정괘(井卦) 구삼(九三)〉에 “우물이 깨끗한데도 먹어 주지 않아 내 마음에 슬픔이 된다.〔井渫不食 爲我心惻〕”라고 하였다.
[주-D023] 육정(六丁) :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정묘(丁卯), 정사(丁巳), 정미(丁未), 정유(丁酉), 정해(丁亥), 정축(丁丑)의 여섯 음신(陰神)으로 천제(天帝)가 부린다고 한다. 양신(陽神)은 육갑(六甲)이라 한다.
[주-D024] 칠곡시(七曲詩) : 고산정사(高山精舍) 앞을 흐르는 물줄기의 일곱 굽이를 읊은 시이다.
제1곡부터 각각 늠연교(凜然橋), 세심정(洗心亭), 유연대(悠然臺), 고산정사, 심춘대(尋春臺), 무금정(舞禁亭), 무릉리(武陵里)를 읊었다고 한다. 《김문기, 高山七曲 園林과 高山七曲詩, 퇴계학과 한국문화, 제47호,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10, 213~239쪽》
[주-D025] 구당협(瞿塘峽) : 중국 장강(長江)의 삼협(三峽) 중 하나로 물살이 세기로 유명하다.
[주-D026] 아이 …… 뒤 : 《논어》 〈옹야(雍也)〉에서 공자가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智者樂水 仁者樂山〕”라고 하였고, 《논어》 〈선진(先進)〉에서 공자가 제자들에게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찌하겠느냐?”라고 물었을 때에 증점(曾點)이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완성되면 어른 대여섯 명과 어린이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서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감탄하며 허여하였다.
[주-D027] 호리병 속 별천지 : 선경(仙境)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비장방(費長房)이 시장에서 약을 파는 어떤 노인을 따라 그의 호리병 속으로 들어갔더니, 그 안에 해와 달이 걸려 있고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後漢書 卷82下 方術列傳 費長房》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이정원 (역) | 2015
고산서원의 의미를 고산잡영 병기에 나오는 일부 내용을 통해 잠깐 소개하였지만 수 많은 의미중 일부에 불과하다.
차후 여건과 상황이 허락한다면 추가 의미를 더하고자 하며,
고산칠곡의 시는 이전에도 몇번 소개한바 있어 모두 다 잘 아시리라 믿는다.
고산칠곡의 시를 대산 이상정 이후 고산칠곡의 시를 흠모하고 고산칠곡의 시를 다른 형태로 남기신 분이 수은공파 소호문중에는 또한 있다.
차후 다시 기술하고자 한다.
두서없이 긴 내용을 끝까지 읽어주신 한산이씨 일가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부산대학교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중인 저자가 부족하지만 지난날 저자의 직계 8대조 약와 이현정의 재종 형인 대산 이상정 선조님을 너무나 존모하여,
2018년 9월 14일 다가오는 중추철에 앞서 잠시 시간을 내어 삼가 글을 게시해 보았다.
첫댓글 내용이 처음 접하기에 몇번을 읽고
기회가되면 안동시에 있는 고산서원을 방문하여 대산 선조님에 행적을 더 알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용감사합니다 백옥헌 봉사손 종석드림
몇해전 사육신 백옥헌 휘 개 선조님의 책자를 부산화수회 추계 모임시 받아서 읽어본적이 있습니다 물론 선조님 봉사에 힘쓰시고 가끔 큰뫼에 봉사소식을 잘보고 있습니다. 항상 열심히 일해주시는 종석 일가님이 자랑스럽습니다. 다만 한양이 저가 사는곳과 다르고 아직 배움이 부족하여 경제활동관련등등 이유로 서울사육신행사에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으나 훗날을 기약해야 될것 같습니다.
백옥헌 휘 개 선조님과 저희 수은공파의 직계 선조이신 판중추공 맹진의 차남. 휘 유기 등이 지난날 단종복위 운동으로 함께 하였고 그날 이후 백옥헌의 후사를 다행히 종석 일가님의 선조가 고종시절 이어 받아 봉사를 해주시니
한산이씨 최고의 자랑중하나이자 대단한 일을 하시는 것은 분명 칭송받아야할 일입니다.
고산서원 향사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년 음력 3월 중절 대략 양력으로 4월 둘째주 일요일 오전에 있습니다 30~50명 정도 후손들이 참여하는데 기회되시면 방문해보시면 좋은것 같습니다. 그 이외에는 대산종택에 방문하시면 언제든지 고산서원 방문이 가능하실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보내십시요.
감사합니다 기회가되면 뵙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주나라 춘관 예조 임관 을 들으매
절문이 알맞게 조화되었음 이로다
국가 참의로 한나라 공복으로 부름을 받을시
그 직임이 높을 수록 청빈성이 요구되어 집니다
임금의 마음이 이러한 중대 가림을 공손히 생각하여
매 사 이랑 모두 여론이 위와 같으셨습니다
외숙부께서 지금 새로이 제수를 받으시매
옥패가 빛을 발하며 융화하며 나타나신 것입니다
사통팔달 형통한 성은을 입고 다니시니
신령스럽게 빛나고 붉게 채색하여 정무에 임하시니
저가 볼때 북한산이 한강으로 횡진하였습니다
가득차서 막히는 형상으로 영웅적 생기임을 경모합니다
가정께서 목은을 한번 부르시니 모두 화해지나니
온천하를 거듭 분주하게 달려 돌풍을 쟁취
목마르지 않고 흐름을 계속할 깊은 근원으로는 곤룡포 자락 자락에 경사로움이 넘쳐
병조예조 양참의 제수받음으로
一家의 연이은 구슬이 쌍 옥소리 령롱으로 되었도다
묘당에 소금매화가 고루 고루 연이어 좌정하니
흑두가 반드시 장차 삼공 반열에 오르실 것입니다
크게 탄식하는 외손은 홀로 불행하여
떠돌이 신세로 타향살이 해서 쑥바가지와 같으니
하늘이나 목숨이나 모두 누구로 하여금 그렇게 하였나
십년 성상 판국이 대바구니 울타리 번롱이 상하도록 재촉하였네
단지 끝에 안 즈음에 어지러움이 옮을 회고하다
위 수에서 고기잡음은 곰만하는 것이다
고관의 두터운 후록이 어찌 이 가문에 있어
임금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마땅히
마땅히 충성을 다해야 하며 호수와 산에 길이 옥색비단으로 표묘하게 막혀 기러기 나르는데에 깃털과 날개 없는 한이 얼마뇨
언제든 가서 뵙고 이 회안을 풀어 볼 날이 오랴
천의 근심을 허공에 날리려 목숨 잔으로 일작올립니다
時李種善拜兵曹參議 그때 이종선 작은 외할아버지 께서 병조참의에 제수되다
태제선생문집 에서. 이맹균 외삼촌 의 참의 제수받음에 대한 찬양시로 최근 문혜공 할아버지에 대한 자료 수집임
淸나눌반차례서崇 맑을청요긴할요. 班序要높을숭 공유성심중차선
주자매여론상동
공손할공생각惟성심중이차가릴선
이랑疇물을咨매양每여론상동
즉금구씨신득제
화거옥패광현융. 빛날華떨?祛구슬玉찰佩빛光나타날顯녹을融
亨형통할형네거리구붙을着회초리,입을편다닐行임금벽인
신채환혁임조중
귀신신채색彩빛날환붉을혁임조정朝중
我觀한수한山횡진江 나아볼관漢산횡진횡단하여 진입하시니 강
방박숙기생영웅 방박숙기생영웅
가정일부를 唱 목은 和 화할.
奔달릴. 달릴走. 사해爭다툴쟁 달아날추趨풍
源深可見流不渴 근원원 깊을深 옳을가 볼견 흐를유 不아닐불 渴목마를갈
餘남을여 慶경사경 천자의옷곤袞袞長길장無없을무終마칠종
구슬벽璧
해동잡록(海東雜錄)
海東雜錄[三] 權 鼈
本朝[三]李孟畇
문혜공 이맹균(李孟畇)
○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지밀직사(知密直事) 종덕(鍾德)의 아들이다. 고려의 신우(辛耦) 때에 나이 15세로 등제하였으며 문명(文名)이 있었다. 특히 시를 잘하였다. 이조에 들어와 벼슬은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다가 죄에 연좌되어 유배되어 죽었다.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일찍이 〈송도(松都)〉라는 시를 지어 슬퍼하였는데 그 중 둘째 연에,
영웅은 이미 갔으나 산하는 남아 있으며 / 英雄已逝山河在
인물은 남천(南遷)하고 옛 도읍은 비었네
상원에 꾀꼬리와 꽃은 보슬비에 젖었는데 / 上苑鶯花微雨後
여러 능의 풀과 나무는 석양 속에 기울더라 / 諸陵草樹夕陽中
하였으니, 감회와 한이 많은 글이다. 《용재총화》
○ 아들이 없는 것을 한하여 시를 짓기를,
인도가 인에서 시작하고부터 / 自從人道起於寅
부자가 서로 전하여 이 몸에 이르렀네 / 夫子相傳到此身
나의 죄가 무엇이기에 하늘에게 버림받아 / 我罪伊何天不弔
남의 아비 되지 못하고 백발만 새롭다 / 未爲人父白髮新
하였다. 동상
○ 학문이 정심하고 필적도 뛰어나서 한산(韓山) 가목(稼牧 가정(稼亭) 이곡(李穀), 목은(牧隱) 이색(李穡) 부자(父子))의 풍이 있었다. 관직은 찬성(贊成)에 이르렀다.
만년에 죄 없이 불운하였고 또 후사가 없어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등백도(鄧伯道)가 자식이 없자 하늘도 무심하다 하더니, 문혜(文惠)도 역시 그러하구나.” 하였다. 《필원잡기》
해은 대원 일가님 감사합니다
태재선생문집에 나오는 시 번역에 교정을 부탁드립니다
오문 ᆢ
을미 동에 예조 참의로 승진하였다 고 졸기에 있어서 1415년 45세 때 생질 태재선생이 읊은 시로 양경공께서도 병조참의에 제수 되셨다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번역이 필요하네요
48개 색인중 동명 이인 몇분 제외한 내용중 미번역분과 발굴하지 못한 부분을 찾고 이습니다
교수님 자세히 읽어본 이후 답장드리겠습니다 남은 연휴 잘보내십시요
기다리겠습니다 고전색인에 휘 맹균으로 찾으면 48개 항목이 나옵니다 태재선생문집에서는 처음 발견한 내용으로 번역이 없어서 저가 인도에 갔을 때 번역해 본 내용입니다
문양공의외손자로서 외손자로서 문혜공 판중추공의 생질되시는 분이 태재선생입니다
대구 불로동에 서원 향사하시는 분이시죠
교수님 시간이 쫓기여 일부만 보냅니다 아직 전체적으로 가다듬지 못하여 나중에 못한부분 정리하여 보내드리지요
수고 많았습니다
제목을 보내 드리지 못해 그런 해석을 하게 해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