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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장편소설>
첫 사랑 - 사랑은 후회하지 않는다. ( 12편)
강 성수
♥ 12-1
K의 기척이 느껴졌다.
귀가
“ 지구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인가?”
“ 그러네. 화려한 외출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네. 백조는 평생 울지 않는 새인데 임종 시 한번만 운다고 해서 시인이 마지막 쓰는 시도 백조의 노래(Swan's Song)라고 한다더군. 오월이라는 글로 마지막 우는 백조처럼 우아하게 장식하고 왔다네.”
“ 한번 들려주게”
“ 그러세”
오월
첫 사랑의 설렘도 첫 키스의 달콤함도 첫 사랑의 눈물도 이제 말하지 마라. 사월에 물드는 연두색 잎새도 오월의 장미도 유월의 웅장한 초록의 울림도 어린 시절 푸른 밤에 가려진 은하수도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 있는 보름달도 푸른 바람이 부는 고향 언덕의 극락지생(極樂之生)의 바위도 이제는 말하지 마라.
살아있을 그 날의 화려한 외출을 맘껏 향유하라! 희망(希望)이 있다면 절망(絶望)은 없다. 가슴을 펴고 푸르고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당당하게 가라. 다정다감한 어머니의 눈길처럼 눈부신 날들을 눈여겨보라. 오감(五感)에 비춰지는 모든 것들을 용서하고 양보하며 크고 굵은 사랑을 묻혀가며 살아가라. 가진 것이 있다면 아낌없이 나누고 공유하라. 뒤돌아보니 모두가 휴지조각이었다. 금력도 권력도 명예도 생명도 못내 잊지 못했던 사랑조차도 네 것은 없었다. 남겨져 있는 흔적은 오로지 너의 선행(善行)뿐이었다. 선(善)하게 살아가라!
오라! 참으로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노랑나비 하양나비가 떼를 지어 배추밭을 날아오르듯 우리 모두는 그렇게 날아오르는 것이니 눈부시게 장엄한 잔치는 이제 끝나서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생(生)이 무엇이었나를 아는 곳에서 무한시간을 공유할 것이니 못다 한 사랑에 한스럽게 우지마라. 오감(五感)의 세상보다 화려한 세상이 빛보다도 더 빛나는 세상으로 갈 것이니 헤어짐의 슬픔에 오열하지마라. 우리 모두 이곳이나 저곳이나 극락지생(極樂之生)의 무한 긍정(無限 肯定)의 완생(完生) 세상으로 가자!
오! 찬란한 나의 시간들이여!
보배로운 그 날들이여! 지나간 그리운 시간들이여! 가슴에 담아둔 보고 싶은 그리운 사람들이여! 아! 청춘의 한때 푸른 날들이여! 나는 정녕 그 아름다운 시간들을 잊지 못할 것이리라!
-푸른 바람이 부는 고향 언덕의 극락지생(極樂之生)의 바위에서-
♠ 12-2
사랑하는 사람
“ 그래,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 ‘생명의 주인’을 만나러 가야지.”
“ 가서 무엇을 할 건가?”
“ 외출 기간 중에 있었던 일을 평가받고 주인의 처분을 기다려야겠지. 외계에서 어머니의 자궁을 빌려 지구로 갔듯이 다른 세계로 가라고 하면 가고, 아니면 ‘낙원이나 천국이나 극락’의 세계로 가라고하면 그리로 가야지.”
“ 가고 싶은 곳은 있는가?”
“ 낙원과 천국보다 극락에 가고 싶네. 극락왕생이라고 하지 않나.”
“ 만나시게 되면 나한테도 알려주시게. 사실 나도 그분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이 많아서 그러네.”
“ 자네가 나한테 부탁을 할 때가 다 있군 그래. 알았네.”
“ 나는 자네가 만들어낸 자네 심장(心腸, 良心)에 있는 신성(神性, 하나님의 대변자.)이었으니까, 자네가 나를 부를 때는 언제든지 나와서 상담해 주곤 했네. 그래 저곳에서 지내보니까 어떻던가?”
“ 그냥 지낼 만 했었네. 실제로 큰 난리나 전쟁 통을 겪지 않았으니까. 좋은 시절에 좋게 다녀 온 셈이지. 지금 생각하니 ‘군대 복무’를 마치고 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드네. 한 자락 꿈이었지만.”
“ 자네는 착하게 살았으니 그럴 것이네만. 죄지은 사람들은 무서움에 떨고 있을 것일세.”
“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이네. 아무 연고 없이 문어나 낙지가 되어 그 몰골로 살다가 산채로 뜨거운 물에 들어가 죽음을 맞게 되겠는가! 죄를 많이 지으면 문어나 낙지로 수천, 수만 번은 태어나야 할 것일세. 그냥 둬도 지은 대로 다 받게 되는 것이니까 사람이 벌(罰)주려고 해서 애써 다른 새로운 죄를 지어서는 아니 될 걸세.”
“ 맞는 얘길세.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나?”
“ 고향 언덕의 극락지생(極樂之生)의 바위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과 망초 꽃이 피는 사이로 노랑나비 하양나비가 들판에 쌍을 지어 날아다니는 광경이 기억에 남네. 고향 밤하늘의 찬란한 별 빛도 그렇고.”
“ 그리고 ... 는?”
“ 집 사람이 마음에 남네.”
“ 왜? 자네를 극진하게 위하고 사랑했었지 않나?”
“ 그렇지, 자기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 마음에 남을 수밖에 더 있나. 내 앞에서는 자기는 없어도 되는 그저 나만 좋으면 되는 그런 사람이었지. 점심을 뭘 먹고 싶으냐? 고 물으면 자기는 상관없다며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한 사람이었다네. 자기가 먼저 뭘 먹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말해보라고 물으면 그저 당신이 골라서 가면 다 맛이 있다고 한 사람이었지. 그러다가 한번 뭘 먹으러 가자고 하면 안 들어 줄 수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네.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녀가 뭘 하던지 간에 “ 당신! 이것 잘못했소!” 하고 말한 적이 없이 평생을 살면서 “참! 잘했어요!”하는 말만 하고 살았다네. 그녀가 본심으로 나에게 잘 해준 탓도 있겠지만 그녀가 그렇게 지극정성이니 나도 그럴 수밖에 없었네.
♥ 12-3
아내와 약속
이제 다 지나간 얘기에 불과한 것이지만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나 어느 정도 결혼 얘기가 됐을 때 ” 결혼하면 우리 둘 사이에 헤어짐은 없다“. 그렇게 말했다네. 그 이유는 나하고 살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 천대 받는 것이 싫었기 때문인데 사실 나는 삶을 허심탄회하게 살고 싶었다네. 뭘 얼마나 잘 살아보겠다고 이혼을 하고 살겠나? 하고 생각한 것이네. 말하자면 생(生)에 있어서 큰 욕심을 부리면 다른 것을 많이 양보해야 될 것 같아서 큰돈이나 명예보다 그저 아프지 않고 천수를 누리고 나의 주변 사람이 고통을 겪어 나까지 아프게 하지 않은 그런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하였거든. 지금 보니 그렇게 살고 온 것 같네. 이 얘기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자네하고 얘기를 했던 부분인데 자네는 진즉에 잊어버렸나.”
“ 아! 기억하고 있다네. 어린 나이 때 자네가 어떻게 살고 가야 하는가? 하고 나에게 물었을 때가 아마 한 네 살이나 되었을 것이네. 그런데 첫 사랑 그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나?”
“ 지나간 추억(追憶)밖에 더 되나. 이미 오기 전에 그곳에서 다 풀었으니까. 그녀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네.”
“ 집 사람은 왜 마음에 남나?”
“그녀는 아침에 세수하고 깨끗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 ‘여보! 여보! 사랑하는 우리 신랑 잘 주무셨어요?’ 인사하는 사람이었거든 그리고 가슴에 안기거나 다리를 베고 누워서 ‘사랑하는 당신과 살아 이렇게 편하고 좋아요! 고마워요!’ 하는 말을 거의 매일하는 사람이었거든. 자네 그런 사람이 있을 지에 대하여 상상해 본적 있나? 나는 그녀에게 평생 따로 해줄 말이 없었다네. 그래서 행복하게 살다 올 수가 있었지.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고 말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집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후일에 헤어지는 날도 올 터인데 저 사람하고 어떻게 헤어지나? 하고 물끄러미 집 사람 모르게 자주 흘깃 흘깃 쳐다보며 살았다네. 받은 것이 많으니 그녀에게 빚이 많이 쌓여 있는 느낌이네. 그래도 이제는 서로 갈 길을 갈 뿐이잖나? 그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인연이라는 것이겠지만 돌이켜 보면 그녀와 같이 보낸 시간들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네. 한, 두 가지 에피소드를 얘기 해줄까?”
“ 한번 해줘보게나?”
♥ 12-4
에피소드
“ 집사람이 장모 되실 분한테 사진으로 나를 소개했더니 어디서 8살이나 많은 할아비를 데리고 왔다며 볼 것도 없다하며 노발대발하고 학교를 휴학시켜 버렸다네. 그 후에 장모님이 이사람 저사람 사진을 들이 밀며 선을 보라고 다그치니까 집사람이 새벽에 인천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이리에 있는 나에게로 도망쳐 왔지 뭔가? 하숙집에서 계속 같이 살 수도 없고 해서 친구 돈을 빌려 방을 한 칸 구했는데 그날 시장에 가서 석유곤로, 밥그릇과 수저 두 벌, 종지그릇 몇 개, 비키니장과 모기장을 사가지고 왔는데 둘이서 손을 잡고 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그림을 한번 상상해 보게? 우리 장모님이 얼마나 기가 찼겠나! 하하하! 상황이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주 신이나 있었다네. 나중에 장모님이 내려오셔서 방하고 살림살이를 다 얻어주시긴 하셨지만 말일세. 그때 그 시절이 시간이 갈수록 기막히게 그립네. 허허허. 아니? 이리 버스터미널에서 버스가 돌아 들어오는데 서로 알아보고 다른 사람이 쳐다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같이 손을 흔들고 애들처럼 난리를 쳤지 뭔가! 고목에 꽃이 핀 연애를 한 번 더 한 것이지 뭔가! 허허허. 지금 재미나게 사는 것을 보면 장모님도 제 짝이 다 있는데 공연한 걱정했다고 하고 계시겠지만. 허허허 ”
“ 또 하나는 뭔가?”
“ 배산 밑에 있는 할머니 점집을 찾아 갔는데 할머니가 하는 말이 ”자네는 사주에 물(水)이 많아 부자로 살 것이고 새 각시는 불(火)이라 조력을 잘해줄 것이니 천생연분이라 어디 가서 살더라도 솥단지를 걸기만 하면 잘 살게 될 사람들이라고 얘기해서 점을 보고 나와서는 희망에 차서 둘이 손잡고 신나게 팔을 흔들어가며 시내를 활보한 적도 있었다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뒤로 운이 활짝 핀 것을 보면 그 할머니 말씀이 전부 사실인 것 같으니 또 신기하지 뭔가! 허허허”
“ 만날 수 있다면 다시 만나보고 싶은가? 또 기회가 되면 같이 살아보고 싶은가?”
“ 당근이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똑같은 모습 그대로 한 번 더 꼭 같이 산다면 그러고 싶네. 다시 만나면 그때보다 더 잘해주고 싶네. ‘그녀는 나보다 더 잘해주는 여자가 있으면 그곳으로 가도 좋다’고 언제나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었지. 멍한 것이 아니라 아주 현명한 여자였다네. 그러면서 나보고 많은 칭찬을 해서 내가 감히 다른 짓을 못하도록 꼼짝 못하게 얽어매었으니까! 나보다 한 수 위였거든. 나를 보고,
“ 당신은 뭘 하던지 참 잘하는 사람이라고 추겨 세우는데 내가 실망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우스운 소리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잠자리에서도 이어졌다네. 물론 덕분에 나도 아무런 구속감을 느끼지 않고 편하게 살다 올 수 있었네. 전해 질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한 번 더 고마웠다! 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
“ 나머지 아이들은?”
“ 아들 며느리, 딸 사위가 잘 살아주면 고마울 뿐이지. 귀여운 나의 손자, 손녀가 보고 싶어지네.”
♠ 12-5
유체이탈(幽体離脫)
“ 어떻게 잘 될 것 같은가?”
“ 철이 들고서는 죽음에 대한 화려한 비상을 꿈꾸며 살아 왔네. 아주 화려한 비상 말이지. 이쪽 세상의 불합리한 현상이나 여러 가지 부조리한 일을 보며 이런 불편한 세상 말고 아주 편한 세상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줄곧 그런 세상을 꿈꿔왔다네. 이상한 얘기가 될지는 모르지만 사랑할 때 마지막 순간(Orgasm) 같은 그런 만족된 세상을 꿈꾸며 살아왔네. 그런 연고로 모든 남녀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일세. 사실 그것은 사후의 세상에 대하여 신(神)이 우리들에게 미리 보여준 ‘극락의 세상’인지도 모르네. 너희들이 착하게 살면 이런 곳으로 데리고 가마 하듯이 말일세. 그런 황홀한 시간에는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되니 육신의 존재도 잊어버리는 시간이 아닌가 말일세. 임종의 시간도 결국은 육신의 존재를 버리는 시간이니 유체이탈이라는 시간에서 그와 같은 황홀한 느낌을 가져보고자 하는 것이네. 아마 죽음의 시간에 그런 황홀한 느낌을 가지고 간다면 행복한 죽음을 맞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 가는 곳을 알고 맞는 행복한 죽음은 극락지생(極樂之生)의 완생(完生)으로 가게 될 것이네. 또 하나는 그 시간은 눈을 감고 있어야 감지되는 세상이라 그런 이유로 나는 눈을 감게 되고 보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네.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 더 높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으니까 말이지. 그런 ‘극락의 세상’에 가려고 ‘내 생명의 주인’을 찾아간다네. 내가 좋은 곳으로 가게 되면 자네도 당겨 줌세. 내 수발한다고 고생한 자네가 아닌가.”
“ 고맙네. 임종의 순간에는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 이곳에서부터의 ‘극락지생(極樂之生)의 완생(完生)’의 기쁨과 희망을 안고 경건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를 만나러 갈 것이네.”
뒤돌아보니 K는 사라지고 없었다.
♥ 12-6
하숙집 미팅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추운 겨울날 대학교 대운동장에는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신입생들은 군데군데 옹기종기 모여서 눈을 맞으며 웃으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내 눈에는 그림 같아 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집가서 떠나가 버려 시큰둥하니 재미가 없었다. 그때 한방을 쓰는 순호가 다가오더니,
“형님! 오늘 저녁에 하숙집 미팅이 있는데 가시려우!”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어린 신입생들도 나를 그냥 형님! 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어차피 앞으로 생활을 같이 하여야 할 것인데 더 어렵게 대하면 이질감만 커질 것 같아 그것이 더 낫겠다싶어 허용하고 있었다.
“ 이 나이에 미팅은 무슨! 너거나 갔다 온 나! 나는 생각이 없다.”
그녀와 헤어지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두려웠다.
“형님! 지난번에도 안 나가셨는데 이번에는 제 체면 봐서라도 한번만 나갑시다! 재미있는 형님이 왜 안 나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혼자만 방에 계신다고 꼭 모시고 나오라고 모두들 야단들이에요.”
“자석들! 왜 그리 성화인지 모르겠네, 그럼 나도 한번 나가 볼까?”
사실 방구석에 혼자 있기도 청승맞은 생각이 들었다.
“예, 형님 우리 친구들이 많이들 좋아 할 것입니다. 그럼 가시는 것으로 알고 준비 할게요”
미팅 장소에 나갔더니 다섯 명의 여학생이 나와 있었는데 미팅 주선자가 소지품 하나씩을 내어 놓으라고 해서 모두들 만년필을 하나씩 내어 놓았더니 여학생들 앞으로 가서 빙그레 돌리며 하나씩 잡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자! 이제 파트너들이 정해졌으니 각자 파트너하고 자유 시간을 보내시기 바라니 두 사람씩 나가도록 하세요!”
긴 말이 필요 없었다. 개인적인 사적인 시간을 많이 주자는 배려에서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모두들 짝을 지어나가고 나는 파트너와 함께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3학년 정도의 앳된 여학생과 29살 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혹시 복학생이세요?”
“아니요...”
“그럼 군대를 갔다 온 예비역이세요?”
“군대는 갔다 왔어요...”
내 대답엔 힘이 없었다. 상대가 너무 어리게 보여 관심이 없었다. 그랬더니
“와! 군대 간다고 기다리지는 않아도 되겠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지? 이 여학생은 벌써 같이 사귀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무슨 말이지요?”
“친해져도 나중에 군대 간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말이에요. 안 그래요? 그런데 몇 년 생이에요? 55년생 쯤 되나요?”
“그보다는 더 되겠지요.”
“그럼 54년생이네요”
“그 정도로만 해 둡시다.”
그녀가 가장 많은 나이로 계산했던 것이 54년생이었고 후일에 그녀의 일기장에 54년생과 미팅을 했다고 기록해 놓았었다. 그녀가 58년 생이었고 내가 50년생이었으니 무려 8살이나 많았던 것인데 4살이나 나이를 줄여서 말하는 셈이 되고 말았다. 사실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런 것을 다 생각하나? 싶었지만 그녀의 순수하고 착한 마음에 약간 끌렸다.
처음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순간 내 눈이 스르르 점점 커졌다. 물론 21살의 가장 예쁜 나이일 때여서 얼굴이 빛나고 예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얼굴 전체에 품위와 기품이 있는 보기 드문 좋은 상(貴相)의 기운이 있었다.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지만 온화한 표정의 복 돼지(?)상이었고 얼굴이 화사한 목단 꽃 같이 동그란 상이었다. 이렇게 생긴 여인은 남편을 공경하고 편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의 외할머니가 꼭 그랬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마을을 나가시면 한여름에도 꼭 모시적삼을 손질하여 입혀드리고 백구두를 신고 다니시게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선산군수가 될래? 이 병옥(외할아버지 함자)이 될래? 하면 군수보다 모두 외할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를 위하는 것은 종교나 신앙에 가깝다고 할 만큼 지극정성이었던 것이다.
“본이 어디에요?”
“경주김씨 대원군 파에요”
“신라 양반집 출신이라 다르기는 다르군요.”
그녀에게 처음으로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가서 뭐 좀 먹을까요?”
“예”
그녀와 나는 함께 나와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아담한 키가 나와 잘 어울렸다. 나는 여자가 오른쪽에 서면 많이 불편해한다고 말하고 왼쪽으로 서서 걷게 했다.
거리를 걷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연신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요?”
“나는 언제나 나보다 나이가 제법 차이가 나는 사람한테 시집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왜요?”
“아버지가 저 7살 때에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서 그런 거봐요”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때 이 말의 뜻을 잘 몰랐는데 후일에 결혼을 하고 나서야 이 말의 뜻을 실감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건강을 해치는 일 외의 모든 일은 모두 다 나에게 관대하였다. 어머니가 28살에 일찍 혼자가 되어 외롭게 사는 것이 어린 그녀의 눈에 너무나 아프게 각인되어 있어서 건강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면 어지간한 일은 다 용서가 되었던 것이다. 일찍 돌아가신 장인어른께는 죄송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혜택을 결혼 생활에서 덤으로 받은 셈이었다.
첫 사랑 그녀와의 얘기도 그녀에게는 자기를 만나기전에 있었던 별 관심 없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원인이 되었다. 보통의 여자 같으면 아직도 그녀를 못 잊어 하느냐? 하는 등의 핀잔을 했을 터인데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단지 그녀를 그렇게 좋아했느냐며 그 여자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커서 결혼하면 절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것이 심중에 있었기에 첫 사랑 그녀와의 일쯤은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지금 만나고 있는 것도 아니니 현실성 없는 다 지나간 일이며, 지금 당신이 나를 끔찍이 아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그런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그런 식이었다. 물론 나도 일부러 그런 얘기를 꺼내어 그녀를 불편하게 하는 그런 못난 행동은 하지 않았고 그녀도 필요 없는 논쟁을 피할 줄 알아서 매사에 그런 식으로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식당에서 음식이 차례차례 나오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더니 옆에서 나를 슬쩍 툭! 치는 것이었다.
“왜 배고프세요?”
“아니? 그런데 그것을 왜 물어요?”
“나오는 음식마다 눈이 따라가기에 물어 봤어요?”
“왜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에요?”
“음식에 눈이 따라다니면 안 되는 거래요. 음식이 사람을 따라 다녀야 부자로 산대요. 음식을 먹을 때도 그릇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집어서 얼굴까지 와서 먹어야 한데요. 거지들은 얼굴에 밥그릇을 대고 먹잖아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 어린 꼬맹이 여학생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네!”
제대로 한방 카운터를 맞았다. 옛날에 선비들이 대청마루에 앉아서도 고개를 빳빳이 곧추 세운 채로 밥이나 반찬을 떠서 입에 넣는 모습이 생각난 것이다. 꼬맹이 여학생한테 제대로 한방 맞았다.
“알았어요. 내가 나오는 음식 바라보는 것은 고칠게요.”
“나쁘게 듣지 않고 금방 수긍하는 것을 보니까 미안해요.”
“아니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요. 채신머리없이 굴어서. 하하하” 오랜만에 웃는 유쾌한 웃음이었고 갑자기 모든 것이 즐거워졌다. 이렇게 만난 그녀는 그 후로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천국처럼 살게 해주는 진국이었다. 언제나 웃고 밝고 헌신적이었으며 나하고는 대들고 싸우는 것을 모르는 내가 조금 시무룩하면 얼른 자기가 양보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한 번도 내 목소리가 크게 나오게 하지 않는 그녀가 오늘날의 집사람이다. 후일에 그녀가 말했다. 사실 미팅 있던 날 옆에 있던 여학생의 만년필과 맞바꾸었는데 그것이 나의 만년필이었다는 것이다. 하숙집 미팅에서 만난 것도 조금은 뜻밖의 우연이지만 바꿔진 만년필로 평생 해로하는 백년가약을 맺고 부부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인생에서 인연이 있으면 만날 사람은 어떻게 되던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인가? 그런 우연한 만남의 일을 운명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 12-7
‘친할머니’
꿈 18) 오래전에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큰집에서 키우던 많은 벌들이 허리에 띠를 두르고 장례의 예를 표하고 난 후에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다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친할머니는 참으로 자상하여 벌 한 마리 한 마리를 다 챙기고 쓰다듬어 줄 정도로 잘해주어 벌들이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따라다녔다고 한다. 혼자서 20여 통의 벌을 찬찬히 다 관리하셔서 꿀을 뜨는 날이면 주변 친척 되시는 아저씨들이 꿀을 먹으려고 큰집에 놀러오고 했단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어릴 때 내가 시골 큰집에 가면 언제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예쁘다고 해 주셨고 다락에서 맛있는 과일을 꺼내어 주시곤 하셨다. 친할머니는 그렇게 특별한 자상함을 가지신 분이었다.
병원에 나와서 같이 일하는 집 사람도 나이 어린 직원들한테도 꼭 존칭어를 쓴다. 어떤 때는 일하는 아주머니 같아 내가 볼 때 쓸데없는 과잉 공대를 하는 것으로 보여 나무라기라도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단다. 고향에서 진돗개 4 마리를 키우는 것도 자식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강아지 때 아프기라도 하면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화장실에 앉아서 밤새도록 무릎위에 안고 재운다. 사실 혼자 하는 얘기나 다름없지만 강아지와 끊임없는 대화를 하며 뽀뽀를 해대니 야단쳐도 소용이 없다. 개가 산속을 달리다가 발을 다쳐서 아프면 부엌문을 두드린다. 나오라고 신호를 보내면서 다쳤다고 신고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집사람은 얼른 약을 가지고 나와 정성스럽게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 준다. 그러면 그 전까지 별로 절지도 않았는데 그때부터는 마치 나 아픈 것 좀 보라는 듯이 절뚝절뚝하며 걸어 다닌다. 그러면 집사람과 나는 “저 녀석이 또 엄살 부리는 것 좀 보라!” 며 같이 웃는 것이다. 집 사람의 성품이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의 두 성품을 그대로 빼닮은 것이었다.
♥ 12-8
치과대학 합격
대학교 다닐 때 연애 시절 여동생이 이리에 왔다가 모친한테 가서 한다는 말이,
“ 엄마! 엄마! 이번에 오빠한테 갔더니 참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 오빠 시중을 잘 들어 주고 있어 깜짝 놀랐어요. 오빠가 까다로운 데가 있어 혼자 살 줄 알았더니 참! 놀랄 일이 다 있어요!”
하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후일에 이 말을 들은 나는 허허거리며 웃고 넘겼으나 집사람은 여동생한테,
“오빠는 전혀 까다롭지 않아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잖아요. 몇 가지만 조심하면 나머지는 다 내 마음대로 해도 아무 말씀도 안하시잖아요?” 했다는 것이었다.
또 사과를 먹을 때 언제나 가운데 통으로 남는 갈비살만 맛있게 먹는 것 보고 여동생은 올케는 꼭 그런 것만 골라서 맛있게 먹는다고 하면,
“그럼 아까운 것을 아무도 안 먹고 그냥 버려요? 사실 사과 갈비살인 이것이 더 맛있는 부분이에요”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여동생이 매번 식은 밥만 먹는 집 사람을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왜? 올케는 먹다 남은 식은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해요? 따뜻한 밥이 또 식은 밥 되니 따뜻한 밥부터 먹는 것이 좋지 않아요?”
“남은 밥이 더 식은 밥이 되면 더 먹기 힘들잖아요? 그러니 지금 먹는 것이 더 낳아요. 걱정 말아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열 가지를 서운하게 했어도 한 가지 잘해 준 것이 있으면 그것만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잘한 것은 언제나 남의 탓이고 잘못된 것은 모두 자기 탓을 하는 내가 보기에도 좀 딱한 성품이 있는 사람이기에 나는 평생 집사람이 외로워하거나 착한 성품이 다치지 않도록 잘 데리고 보살피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기 살리기에 항상 신경을 써서 뭐든지 “참! 잘했어요!” 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 덕분인지 친구를 만나면 기죽는 일없이 언제나 유쾌하고 명랑하였다. 그날 하숙집 미팅을 할 때 같이 미팅을 했던 여학생은 후일에 시집을 안가고 독신으로 살고 있었는데 -집 사람이 한 10년 전에 만났을 때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 그날 미팅에서 그렇게 우연히 만나서 잘 살고 있는 우리를 보며 놀라기도 하면서 참 신기해하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여보! 내가 그 얘기를 소설로 한번 써 볼까 하는데 당신이 싫다고 한다면 그만두고......”
“하이고, 써야겠다는 것이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나한테 묻기는 왜 물어요?”
“공연히 당신이 신경 쓸까봐 그렇지?”
“내 모양이 이상하지 않게 나 재미있게 잘 써 봐요. 나야,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후라도 나한테 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아무 상관없어요. 나보다 더 잘해 주는 여자가 있으면 언제나 그리로 가라고 할 만큼 당신한테 자신이 있으니까....... 또 나 만나기전에 있었던 일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일정 부분 그 여자 분한테 미안한 마음도 있으니까 잘 써 봐요. 그래도 자기가 버린 남자를 내가 잘 데리고 살아주니까 그 여자 분도 나한테 고마워하겠지요. 호호호!”
“쌩 큐! 그럼 내가 어디 한번 써 볼게요.”
그녀와의 그간의 간단한 스토리는 집사람도 대충 알지만 써 보라고만 했을 뿐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읽어 본적이 없어 모른다. 나중에 보면 혼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대중소설이라 약간의 과장이 포함된 것도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다.
같이 대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그녀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내년에 치과 대학이 생긴다는 데 공부 한번 도전해 보시지 않겠어요?”
그 제안을 듣고 공부가 하고 싶었던 나는 무조건 수락을 했다. 그래서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 다시 공부를 해서 치과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가 그 1 년 동안 내가 입시공부에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에 치과대학에 입학을 했으니 그 때가 1979년이었고 30세가 되는 나이였다.
“치과대학 합격! 만세!” 그녀가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이제 내가 원했던 갈 길을 가는 구나!’ 싶었고 그 후에 1988년에 석사과정도 마치고 2007년에는 박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치과대학에 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집사람을 만나고 내 운(運)이 활짝 꽃피게 되었으니 오늘의 내가 있게 한 일등 공신이며 감사해야할 은인(恩人)은 외할머니, 친할머니의 성품을 그대로 빼닮은 집사람이었던 셈이다.
♥ 12-9
그녀 어머님
78년도 대학교 시험에 붙자마자 합격증을 들고 몽탄으로 내달렸다.
1978. 1. 10. 밤. 마침 어머님이 마당에 나와 계셔서 놀라지 않게 인기척을 내고 들어섰다.
“ 어머님! 안녕하셨어요? 저 왔습니다!” (겨울 호에 계속. 마지막호)
강성수: 시인, 소설가
경북 선산 출생, 아호는 태로. 원광대 치대 졸업(치과 교정학 박사) 목원대학교 이사.
재전부산고동문회 회장. 구미선산향우회 회장.<국제문예>시 부문 신인상 수상 등단.
『국제문단』소설 부문 -첫 사랑, 사랑은 후회하지 않는다-신인상 수상 후 10회째 영재중.
[국제문단문인협회]자문위원. (현)대전 바르게 치과 원장. .kss28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