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3] 전남대학교 개교 60년을 돌아본다 (1) 60년사 소고
근대․민주․국제화 거쳐 세계 속의 대학으로
(전남대학교는 지난 60년동안 어려움을 딛고 세계속의 대학으로 우뚝 섰다.
위 사진은 1955년 인문대 1호관이 신축공사중인 모습)
5대 단과대서 17개 단과대. 학생 3만여 명 규모 성장
판.검사 배출 전국 10위... 최고 지성의 산실 우뚝
SCI 논문 1년새 1000여개 발표 등 연구성과 창출
전남대학교는 동족상잔의 폐허를 인재양성을 통해서 재건하려는 선조들의 지혜로 1952년 6월 9일 개교하였다.
교육과 연구, 사회봉사를 통해서 지역과 국가의 발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라는 선조들의 염원이 담긴 것이다. 더불어 지역사회의 성원과 지원에 힘입어 만들어진 호남의 거점 대학이라는 숙명이 자리 잡고 있다. 광주의학전문학교, 광주초급농과대학, 목포초급상과대학, 사립대성대학이라는 기존의 독립적인 교육 기관들을 발전적으로 통합하여 개교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2006년 3월 1일에는 90년 전통의 여수대학교와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지역사회는 전남대학교가 지역과 함께 발전을 고민하고 땀 흘리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세계로 뻗어가는 호남의 길잡이가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60여 성상동안 전남대학교는 진리(Truth), 창조(Creativity), 봉사(Service)라는 교시를 가슴에 새기고 우리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공유하며 최고 지성의 산실, 시대의 야성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실천적이고 창조적인 지식공동체로서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훌륭한 연구 성과를 제공하며 근대화와 민주화에 기여한 영예로운 전통을 쌓아 왔다.
개교 당시 전남대학교는 5대 단과대학(공과대학, 농과대학, 문리과대학, 상과대학, 의과대학), 18개 학과로 출범했다. 그 이후 통합을 거쳐 2011년 현재, 17개 단과대학, 1개 직할학부, 90개 학과(부), 1개 대학원, 5개 전문대학원, 5개 특수대학원 규모로 성장했다. 개교 당시 교학처, 사무국으로 구성되어 있던 대학 기구도 본부의 4처 1국, 4본부, 2개 법인을 비롯하여 14개의 부속시설, 4개의 대학부설기관으로 늘어났고 대학 전체로 584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전임 교원은 96명에서 1,199명으로, 학생 정원은 720명에서 4,350명으로 늘어났다. 재적 학생 규모는 2011년 현재 학부생 30,392명, 대학원생 6,209명이다. 1953년 3월 26일 제1회 학위수여식에서 학사 48명, 박사 1명, 명예박사 1명을 배출한 이래, 구 여수대학교를 포함하여 학사 140,775명과 함께 대학원 졸업자 29,821명을 배출했다.
그간 전남대학교는 국가 인재와 전문 인재를 배출하는 요람으로서 역할을 다해 왔다. 올해 제53회 사법고시에서 16명의 합격자를 배출하여 거점국립대학 1위를 차지했으며, 현직 판․검사를 배출한 대학으로는 전국 10위이다. 행정안전부가 올해 정기국회에 제출한 정부 부처의 국장급인 3급 이상의 고위공무원 출신학교 현황자료에 따르면 모두 37명으로 전국 9위, 지방대 공동 1위이다. 국내 상장기업 임원들의 출신 대학에서는 지방대학 6위였다. 이 밖에도 의료․보건, 교육, 언론, 공기업 등 각계각층에서 동문들이 활약하고 있다.
1957년 5월에 '한국 Shigella 세균 연구소'가 처음으로 설치된 이래, 연구 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했다. 대학 부설연구소가 광주캠퍼스 56개, 여수캠퍼스 14개로 70개에 이르며, 공학․자연계열 연구소가 41개, 인문사회계열 연구소가 28개, 예술계열 연구소가 1개이다. 산학협력단이 설치되고 기술이전센터와 창업보육센터가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 기초의과학분야 국책연구소 2개를 유치함으로써 바이오하우징, 광기술기반 융합부품, 박테리오봇융합연구, 임상백신연구, 5.18 연구, 호남학연구 등 국책 사업을 수행하는 사업단 및 센터가 40개에 달하고 있다. 2006년 이후 교수들이 한해에 수주한 연구비가 학생들이 납부한 기성회비 1000억 원과 맞먹는 1년 연구비 1,000억 원 시대를 열게 되었다. SCI 발표논문도 2008년 이후 1년에 1,000개를 넘어 섰다.
2011년 11월에는 신성장의 동력이 될 전남대학교기술지주회사㈜(대표이사 오태희)가 설립되어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자본금 38억3,300만원을 출자하여 전국 거점 국립대학 중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기술지주회사는 그린멘트㈜와 J-Care㈜ 등 2개의 자회사 설립을 마쳤으며, 자회사들을 추가로 설립할 절차를 밟고 있는 등 탄탄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전남대학교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질곡의 세상을, 시대의 야성으로 깨뜨리며 국가와 사회를 민주화라는 큰 길로 건강하게 발전시켜 왔다. 4․19 혁명, 6․3 한일 굴욕외교 반대, 유신철폐 등 강인하고 끈질겼던 전남대학생들의 저항운동은 1980년대를 전후로 하여 최고조에 달한다. 1978년 6월 27일, 송기숙, 명노근 등 전남대에 재직하던 11명의 교수들이 유신 정권의 금과옥조였던 국민교육헌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했던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저항의 불길은 활활 타올랐고 대통령 직선제,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의 탄생 등 민주화의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전남대학교 교내에는 민주화에 기여한 대학을 상징하듯 기념조형물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이곳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5·18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된 곳이다." 전남대학교 정문 바로 오른편에 세워진 '5.18 민중항쟁 사적지 1호'에 새겨진 첫 문장이다. 정문 왼편 법과대학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다 중간쯤에 이르면 1980년 당시 총학생회장이었고 옥중에서 목숨을 건 단식투쟁 끝에 꽃다운 나이에 숨진 '광주의 아들' 박관현을 기리는 '박관현 열사 혁명정신 계승비'가 있다. 사회과학대학 정문 뜰 앞에는 광주민중항쟁의 마지막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도청에서 장렬한 죽음을 선택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를 기리는 조형물이 형상화되어 있다. "우리는 오늘 여기서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라는 마지막 남긴 말이 새겨져 있다. 인문대 1호관에서 2호관으로 가는 앞동산에는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선언문 내용과 함께 들어서 있다.
지역에 그 뿌리를 두고 국제 감각과 실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그리고 우수한 연구진들이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창출해내는 세계 속의 대학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1세기를 맞아 무엇보다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학의 국제화 노력을 지속하며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1977년 2월 15일, 미국 Missouri 대학과 최초로 자매결연을 체결한 이래로 2011년 현재, 30개 국가의 228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2011년에는 외국인 학생이 42개국, 1,034명으로 유학생 1,000명 시대를 맞았다. 국외파견 학생수도 꾸준히 늘어 2007년에 1,000명이 넘는 1,250명의 학생이 해외 경험을 하게 됐다. 2011년 1학기에 교환 학생이 9개국 33개교, 121명이었고, 초청 학생이 10개국, 16개교, 77명으로 교환학생도 대폭 늘고 있다. 외국인 교수도 전임교원 11명을 포함하여 45명에 이르고 있다. 이 밖에도 한국 최초 유일의 동아시아 교육센터 설립, 국내 대학 5위 규모의 국제여름학교 개최 등 양방향 국제화가 균형감 있게 실현되고 있다.
2012년에는 제19대 총장선거가 치러진다. 1952년 6월 1일 초대 총장에 최상채 박사가 취임한 이래 제18대 김윤수 총장에 이르기까지 14명의 총장을 배출한 전남대학교는 개교 60주년과 함께 새로운 선장을 맞이하게 된다. 이로써 전남대학교는 개교 60주년을 또 하나의 변곡점으로 삼아 세계 속의 대학으로 성장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