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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
장석원 ∣ ARCADE 0007 ∣ A5 ∣ 220쪽 ∣ 2019년 9월 30일 발간 ∣ 정가 15,000원 ∣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신간 소개
천사들, 소멸을 불태우다
이 책은 “꽃비”다. “봄꽃처럼 스러져 버리는 목소리”다. “춘몽(春夢)이다.” “여름날의 시냇물이 난반사하는 부서진 햇빛”이다.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다. “사랑에 빠진 자의 몸을 관통하는 환희”이자 “이별한 자의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이다. “눈물의 냄새, 누적된 어둠의 구취”다. “남겨진 너의 피”다. “무자비한 시간”이자 “처참한 그리움”이다. “보라색 비”다. “하구의 삼각지에서 바라보는 붉은 일몰이다.” 당신이 지금 여기에 없다는 “오래된 공포”다. “헤이! 미스터 탬버린 맨, 날 위해 연주해 줘요”. 이 책은 “곡성(哭聲)”이다. “장전”된 기타다. “대곡역에서 울던 나”다. “슬픔 때문에 파괴되고 만, 될 수밖에 없었던, 이후를 상정하지 않는 열광”이다. “당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 나는 나를 버렸어요.” 이 책은 “사랑이라는 정신 나간 일”이다. “절망과 좌절과 실패와 공포의 총량”이다. “혁명이라는 신기루가 사라졌다.” 이 책은 “검은 성경”이다. “설맹(雪盲)을 불러오는 백색” “기타-토네이도”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흐르는 강”이다. “사랑이 끝난 후에 떨어진 꽃잎들, 흰 절망, 휘발하는 음악, 키스”다. 이 책은 신라의 달밤이고 “삼류” “몽키 몽키 매직”이다. “혼종”이고 “다중체”이고 “잡종교배”다. 이 책은 “‘정말로’ 시끄럽다.” 이 책은 “떼창”이다. “마약 노래”다. “매혹”이다. “우아한 휴식”이다. “블루”이자 “자유와 비애”다. “도마뱀 왕(The Lizard King)”이다. “아메바”다. “돌연변이 미스틱”이다. “아구통이 얼얼하다. 이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한 번 더 묻는다. 이것을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우리가 생각할 수 없었던 것, 우리가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무전기 착신음”이고, “민중의 무장봉기”고, “태양의 프로펠러”이며, “다이너마이트”다. “기타가 나를 분형(焚刑)한다”. “천형. 입 벌린 불가능, 사랑”이다. “산(山)처럼 확실한 절망”이다. “그리하여 키스 더 깊은 키스”다. “선(禪)이다.” “괴멸 후의 평정”이다. “별이 얼굴 앞에 쏟아진다. 천사가 다가온다.” 킹 크림슨(King Crimson), 러쉬(Rush), 툴(Tool), 판테라(Pantera),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존 웨튼(John Wetton), 레미 킬미스터(Lemmy Kilmister),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 프린스(Prince), 올맨 브러더즈 밴드(Allman Brothers Band), 지지 탑(ZZ Top), 써티에이트 스페셜(38 Special),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 씨씨알(CCR), 이글스(Eagles), 스틱스(Styx), 블루스 트래블러(Blues Traveler), 징기스칸(Dschinghis Kahn), 신중현, 김추자, 김정미, 마그마, 어니언스, 조용필, 서태지와 아이들, 현인, 이박사,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 무디 블루스(The Moody Blues),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밥 딜런(Bob Dylan), 짐 모리슨(Jim Morrison),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 어벤지드 세븐폴드(Avenged Sevenfold), 데프톤즈(Deftones), 너바나(Nirvana), 사운드가든(Soundgarden), 펄 잼(Pearl Jam), 앨리스 인 체인즈(Alice In Chains),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 퀸(Queen), 훈 후르 투(Huun Huur Tu), 씽씽, 우한량, 로이 뷰캐넌(Roy Buchanan),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 “과거가 면전에 육박한다.” “사랑했을 뿐이다.”
저자 장석원 시인은 2002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아나키스트> <태양의 연대기> <역진화의 시작> <리듬>을, 산문집 <우리 결코, 음악이 되자>를 썼다. 현재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스틱>은 장석원 시인의 두 번째 음악 산문집이다.
프롤로그
음악이 거기에 있었다. 음악이 나를 호출한다. 음악이 나를 인도한다. 음악이 나를 흡수한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음악. 영원한 현재. 음악이 손을 내민다. 음악이 가슴을 연다. 음악이 나를 안아 준다. 음악이 자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내어 준다. 음악 속으로 들어간다. 음악과 나는 영원에 다다른다. 음악이 여기에 있다.
저자 약력
장석원
2002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아나키스트> <태양의 연대기> <역진화의 시작> <리듬>을, 산문집 <우리 결코, 음악이 되자> <미스틱>을 썼다.
현재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007 프롤로그
009 킹 크림슨
016 러쉬
025 툴
031 판테라
037 우리 곁을 떠난 천사들—레너드 코헨, 존 웨튼, 레미 킬미스터, 크리스 코넬, 체스터 베닝턴
045 프린스
051 서던 락
057 스틱스
062 블루스 트래블러
068 징기스칸
073 사랑을 돌아보게 하는 우리 음악
080 서태지와 아이들—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는데 서태지가 나타났다
086 마음을 뜨겁게 하는 우리 음악
092 크라프트베르크와 탠저린 드림
098 무디 블루스
104 핑크 플로이드
112 밥 딜런
123 짐 모리슨—시와 죽음
132 시스템 오브 어 다운
140 어벤지드 세븐폴드
147 데프톤즈
153 다시, 데프톤즈—우리가 그린 심화(心畫)
165 앨리스 인 체인즈—「Love, Hate, Love」
176 트레이시 채프먼
182 퀸
186 훈 후르 투
194 씽씽과 우한량
205 에필로그
207 보유 로이 뷰캐넌과 데이빗 길모어—불 위의 기타 또는 기타 불꽃
책 속으로
킹 크림슨(King Crimson). 「The Construkction of Light」를 듣는다. 기타 음 사이를 베이스가 촘촘하게 채우고, 다음 기타 음은 한 발 더 나아가고, 다시 축자적(逐字的)으로 음들이 연속된다. 빛의 주렴(珠簾), 빛의 빙폭(氷瀑). 빛의 집이 정교하게 건축되고 있다. 정확하게 전진한다. 조였다가 풀어 버리는, 긴장과 방출의 조화. 킹 크림슨은 한 장의 앨범, 그것도 데뷔 앨범으로 프로그레시브 락의 정점에 올랐다. 킹 크림슨의 음악은 찬란하다. 그들이 건설한 음의 성채(城寨/星彩) 앞에서 느끼는 아나키즘적 열광.
러쉬(Rush). 러쉬의 리듬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연주곡 「YYZ」. 언어가 없는 연주곡의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의 덧없음 또는 불가능함 때문에 발생하는 열패감. 잘게 쪼개진 비트들. 여름날의 시냇물이 난반사하는 부서진 햇빛 같은 음들의 흘러넘침.
툴(Tool). 난해한 가사가 펼쳐 내는 독창적인 세계관과 철학, 독특한 시각 이미지를 집적한 뮤직비디오와 앨범 아트, 현란하고 복잡하고 혼종적인 음악. 이 세 요소의 결합 결과, ‘도구/물건’의 음악은 구성적(構成的) 내용 특성에 가닿은 후, 곧이어 구상적(具象的) 형식미를 획득하는 국면으로 ‘변형/변태’한다. 그들은 우리를 기이한 상상의 세계로 데려간다. ‘심오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툴의 시간 배치는 평면적이지 않다. 그들은 6분 동안 박자를 쪼갰다가 뭉치고, 벌렸다가 욱여넣는다. 시간의 흐름이 리듬에 의해 역동적으로 배치되고 조정된다. 초 단위로 분절된, 과거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지나 미래로 사라지는, 균질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날의 삶이 기록하는 시간이 그렇듯이, 툴이 만들어 내는 리듬은, 생(生)이 우리의 몸에 각인시키는 시간의 구조를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시의 시간과 비슷하다.
판테라(Pantera). 판테라의 앨범 <Far beyond Driven>은 아트(art) 메탈이다. 메탈리카(Metallica)의 네 번째 앨범 <…And Justice for All>은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완벽한 짜임새를 통해 스래시 메탈(thrash metal)에 총체적 예술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헤비메탈을 헤드뱅잉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경청해야 하는 수준을 메탈리카가 이룩했는데, 1994년에 선보인 판테라의 7번째 정규 앨범 역시 그러한 경지를 펼쳐 보인다. 1번 「Strength beyond Strength」부터 4번 「I’m Broken」을 통과, 잠깐의 휴지기가 지나고, 7번부터 11번 「Throes of Rejection」에 이르는 과정이 끝날 즈음, 청자는 두드려 맞은 것처럼 얼얼해진다. 뚫린 것처럼 시원해진다.
우리 곁을 떠난 천사들(Leonard Cohen, John Wetton, Lemmy Kilmister, Chris Cornell, Chester Bennington). 그들과 그들의 음악이 천사가 되어 돌아온다. 그들의 이름을 천사 명단에 등재한다. 고요히 호명하면 돌아와 노래의 등불을 밝혀 주는 천사들. 레너드 코헨, 존 웨튼, 레미 킬미스터, 크리스 코넬, 체스터 베닝턴.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노래를 듣는 우리가, 매일, 이곳에서 쓰러진다.
프린스(Prince). 기꺼이 팝의 왕자라고 불러도 될, 위대한 아티스트가 죽은 2016년 4월 21일.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과다 복용하여, 어이없게, 세상을 떠난 프린스의 키는 무척 작았다. 조금이라도 크게 보이기 위해 굽 높은 구두를 신고, 과격한 춤과 퍼포먼스를 무대에서 선보였기에, 그는 늘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신체의 핸디캡은 음악에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그는 통증 때문에, 결과적으로, 약을 끊을 수 없었고, 그 약 때문에, 찬란한 음악을 버려두고, 보랏빛 새가 되어, 푸드득, 저세상으로 날아갔다.
서던 락(southern rock). 기타가 흐느낀다. 아니다. 이들의 기타에 동사 ‘흐느끼다’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울부짖는다. ‘기타-토네이도’가 몰아친다. 평원을 가로질러 다가와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기타. 피부에 닿자마자 산(酸)처럼 파고드는, 불의 혀처럼 통증을 일으키는 잔인한 기타. 관자놀이를 통과하고 창문을 넘어가 창공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선회하는 ‘알바트로스-기타’. 난파한 선박에게 신호를 보내는 검은 밤의 등대 불빛처럼 우회를 모르고 육박하다가 화르르 타오르는 기타. 목을 움켜쥐고 호흡을 틀어막는 무뢰한의 악력 같은 기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기타. 이곳에는 오로지 기타, 기타 그리고 기타뿐이다.
스틱스(Styx). 스틱스는 어렵지 않다. ‘팝 락(pop rock)’이라는 용어가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유용할지도 모른다. 스틱스의 음악은 귀에 감기는 선율과 다양한 리듬을 지니고 있다. 팝에서 하드 락을 거쳐 프로그레시브 락까지 아우르는 이들의 음악적 지형도를 개관하는 일의 어려움에 상응하는 듣기의 즐거움. 이것은 향락이다.
블루스 트래블러(Blues Traveler). 하모니카! 블루스 트래블러를 집약하는 한 단어. 경이롭다. 이들의 음악을 접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 하모니카를 이렇게 연주할 수 있다니. 하모니카가 이렇게 아름답다니. 파워 하모니카, 괴물 하모니카 같은 말이 과장이 아니다. 블루스 트래블러의 하모니카는 강렬도 면에서 폭탄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하모니카 락이라니……. 블루스 트래블러의 음악은 이것과 저것과 그것의 구분을 허용하지 않는다. 온몸을 한꺼번에 출렁이게 한다. 하모니카와 베이스와 기타가 ‘동시에’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일체(一體)이다.
징기스칸(Dschinghis Kahn). 「Machu Picchu」에 오른다. 혼성 보컬이 안데스의 청량한 바람처럼 휘몰아친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그냥, “마추픽추”를 따라 부른다. 활강하는 콘도르가 보이는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아, 아- 마추픽추 마추픽추. 주문이 따로 없다. 노래가 끝나는데,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음악이 있다. 삶의 곡절을 껴안고 우리를 감정의 심연으로 데려가는 음악이 추억의 청사초롱 들고 찾아온다. 멕시코로 가 보자. 「Pistolero」이다. 플라멩고 기타! 독일어 가사는 입에 붙지 않는데, “피스톨레로” 후렴구를 흥얼거리면서, 판쵸를 입고 선인장 옆에서 춤을 춘다. 징기스칸과 세계 여행을 떠난다. 이스라엘(「Israel」)로, 시에라네바다(「Sierra Nevada」)로, 중국(「China Boy」)으로, 일본(「Samurai」)으로, 사하라(「Sahara」)로, 히말라야(「Himalaja」)로, “가즈아!”
사랑을 돌아보게 하는 우리 음악. 김정미의 노래는 몽환적이다. 바삭거리는 듯한 그녀의 가볍고 얇고 부드러운 목소리. 그 끝을 강하게 잡아채는 비음. 김정미. 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음악을 나는 재즈라고 생각한다. 휘발한 봄 뒤에 남는 상실과 허무는 어찌할까. 봄의 나비처럼, 팔랑, 햇빛 속으로 날아가는 목소리. 봄꽃처럼 스러져 버리는 목소리. 봄날 들녘을 가로지르는 아지랑이처럼 그녀는 아스라하다. 춘몽(春夢)이다. 봄 햇빛 가득한 낮에 시작되어 눈 내리는 겨울밤에 당도하는 그녀. 이상하게도 고독한 자의 음성을 닮았다. 마그마는 심벌즈를 부서뜨릴 것처럼, 기타 줄을 끊을 것처럼 부정한다. 울부짖는 기타가 여름 폭풍처럼 달려온다. 태양이 입을 벌리고 으르렁댄다. 사랑이 들끓는다. 어니언스(onions), 양파들. “고요한 밤하늘에 작은 구름 하나가, 바람결에 흐르다 머무는 그곳”에 그대가 산다. 그곳으로 가지 못하는 “길 잃은 새 한 마리” 하늘을 맴돈다. 「작은 새」의 간주. 피아노가 맑게 떤다. 임창제와 이수영의 코러스가 이어진다. 처연하다. 외로운 나의 분신, 그 새가, “그리운 집을 찾아 날아만” 가는데, 나는 자리에 붙박여 돌아오지 않는 님을 기다린다. 나는 가을만큼 차가워진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죽은 자를 위한 마지막 애도라고 할 만하다. 조용필의 물음에 답한다. 아무도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름다워서 사랑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다. 사랑했을 뿐이다. 지금 조용필은 「간양록」을 토해 낸다. 부모를 잃고 통곡하는 자식이 보인다. 내가 이 거대한 가수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발견하고 또 발견할 뿐이다. 조용필을 들으면서 사랑을 돌이켜 본다.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불손.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욕해도 괜찮아, 지금은 그 시대가 아냐, 18, 절대로, 18, 절대로. 혁명적 변환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시대의 풍운이 그에게 부와 명예를 선사한 것은 배가 아프지만, 우리는 그때, 잘 모르고 있었다. 요! 나안- 몰라요!!
마음을 뜨겁게 하는 우리 음악. 1.4 후퇴, 흥남 철수, 국제시장, 1953년의 「굳세어라 금순아」 그리고 현인. 현인이 부르는 「꿈속의 사랑」이 시이다. 시는 노래 앞에서 무력하다. 가수 현인이 시인이 되는 순간, 그가 노래를 가창할 때이다. 1986년의 현인이 가요무대에서 「고향 만 리」를 노래한다. 그는 30년을 2분 30여 초로 압축한다. 세월을 시로 바꾼다.
크라프트베르크와 탠저린 드림(Kraftwerk & Tangerine Dream). EDM의 시대. ‘일렉트로닉(electronic)’이라는 용어가 아우르는 테크노 음악의 위상은 높고 영역은 광범위하다. 기원으로 올라간다. 신디사이저가 보인다. 독일 출신의 두 밴드가 우뚝 솟아 있다.
무디 블루스(The Moody Blues). 심포니와 락을 결합시킨 무디 블루스의 방법적 혁신은 1970년대 초반을 찬란하게 장식했던 아트 락의 출발점이 되었다. 음악은 때로 거리를 축소시킨다. 공간을 압축해 버린다. 듣는 몸을 두꺼운 벽 사이에 가둔다. 음악이 쏟아 놓은 현악의 빛깔은 블루이다. 한없이 파동 치는 파랑을, 창공을, 몸에 주입한 듯하다. 비상한다. 날개도 없이 날아오른다. 멜로트론의 푸르고 투명한 손이 나를 하늘로 잡아당긴다. 아니다. 이것은 망상이다. 음악을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절망한다. 음악과 언어는 싸우지 않는다. 음악에 먹힌다 한들 어떠랴. 그것조차 행복이다. 무디 블루스, 마이크 핀더, 그가 연주하는, 소리의 대지를 펼쳐 놓는 멜로트론, 소리의 반향을 삭제하는 멜로트론의 광대무변한 넓이를 감지하려 애쓴다. 멜로트론의 선율 속에는 비애가 들어 있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어둠 속에 가둬 놓았지만, 아무리 숨겨 두려 해도, 그것은 스스로 에너지를 내뿜는다. 흑체복사(黑體輻射). 핑크 플로이드, 그 항성을 바라본다. 핑크 플로이드의 기타 선율이 눈물로 바뀐다. 피부를 뚫고 나오는 얼음송곳을,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바람의 찬 손길을 느낀다. 이 기타는 몸을 찢어 내려 한다. 기타가 뿜어내는 ‘소리-빛’이 나를 지운다.
밥 딜런(Bob Dylan). 읽는 시를 쓰는 시인 밥 딜런과 듣는 시를 부르는 시인 밥 딜런의 분리와 결합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노벨문학상은 두 가지를 동시에 실현시킨 아티스트 밥 딜런에게 주어졌다. 가수 밥 딜런의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짐머맨(Robert Allen Zimmerman)이다. 가수가 되려고 했을 때, 그는 시인 딜런 토마스(Dylan Thomas)의 이름에서 자신의 예명(藝名)을 가져온다. 밥 딜런, 그는 가수이면서 시인이다. ‘Dylan’ 다음에 숨겨진 이름 ‘Thomas’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밥 딜런에게는 시인 딜런 토마스가 숨 쉬고 있다.
짐 모리슨(Jim Morrison). 내가 아는 짐 모리슨은 니체와 랭보와 조이스를 사랑했던, 파괴적이고 염세적인 노래를 부르다가 풍기문란죄로 구속되는 등 1960년대 히피 문화의 첨단에 섰던 가수이기 이전에, 시를 쓰고 시집을 내고 자신의 시를 노래로 불렀던, 청년 시인이었다. 그는 죽음이 창궐하는 당대를 폭파하기 위해 오른손에는 권총을 쥐고 왼 손가락 사이에는 마리화나를 끼우고 피를 머금은 살인자의 장미를 문신한 채 뱀의 몸으로 노래를 부른 시인이었다. 노래도 시도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약물로 자신을 파괴하였다. 그는 파충류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시가 자신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의 노래는, 도어즈의 음악은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 그의 육체는 죽음의 문 너머로 떠났지만, 그의 고통은 우리를 인식의 문 앞으로 데려간다.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 리듬이 부서진다. 박자가 바뀐다. 탁 탁 끊기는 기타 리프가 뛰어온다. 꿈틀거리는 힘. 화음에 맞춰 느려진 노래. 음악이 빨라진다. 절규하는 가수. 비명으로 끝난 노래. “아이 에 에이 아이 에이 아이 오”를 따라 부르는 아르메니아인들. 「I-E-A-I-A-I-O」가 시작되었다. 빠르게 쏟아지는 가사, 경련하는 기타, 괴성을 지르다가 랩처럼 쏘아 대다가, 모음으로 이루어진 후렴구 합창. ‘다운’의 음악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의 음악은 과격하다, 소란하다, 기괴하다, 분열적이다, 파괴적이다, 급진적이다……. 그리하여, 독창적이다. 폭우 같다. 천둥과 벼락을 몰고 다니는 메탈이 퍼붓는 비와 자웅을 겨룬다. 덩실덩실 춤을 추는 탄키안. 폭주 기관차가 달려온다.
어벤지드 세븐폴드(Avenged Sevenfold). 매혹은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랑에 도취되는 일, ‘나’를 앗아 가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 어벤지드 세븐폴드가 그랬다. 가마솥더위에 지친 여름날 저녁의 거리에서 이들의 음악을 땀에 젖은 피부 아래로 주입한다면, 당신은, 메탈릭 샤워를 하는 셈이고, 3분이 지나기 전에 차가운 쇠가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세븐폴드는 시원하고 건조한 토네이도이다. 음악이 생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지나간 삶을 두고 외로웠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으리라. 음악 때문에 나는 이곳에 도달한 것이다. 음악 때문에 ‘질병 같은’ 인생을 견딜 수 있었다.
데프톤즈(Deftones). 유광(流光) 같은 목소리가 어둠을 절편(切片)으로 만들고 있었다. 술을 부르네, 이상한 퇴폐네. 맞는 말이다. 그녀가 덧붙인 말. 내면의 감각과 감정을 뜯어내는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슬픔과 분노가 기묘하게 뒤섞인 노래 속에서 나는 휘발된다. 가습기가 뿜는 분무(噴霧)처럼 「Lucky You」가 다가온다. 치노 모레노처럼 울부짖는다. 악마와 천사가 하나가 된다.
다시, 데프톤즈. 그리움도 목마름도 사라진 저녁의 입구. 데프톤즈가 어깨 너머에서 파열한다. 그들은 언제나 고요를 데려온다. 몽상과 평화. 잿빛 구름들 가득하다. 핏방울 하나 입술에 묻어 있는 듯한, 맨가슴에 사각 얼음 하나 닿은 듯한, 꽃잎 구순(口脣)을 스치는 것 같은…… 이상하게도, 육체를 증발시키는, 체액을 건조시키는 음악. 「Around The Fur」. 이 울부짖음이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 쏟아진다. 내장. 이 음악은 나를 할복한다. 데프톤즈는 격렬한 울음이다. 데프톤즈는 선(禪)이다. 하드 코어(hard core)를 들으며 명상한다. 괴멸 후의 평정.
앨리스 인 체인즈(Alice In Chains). 1990년대. 얼터너티브 락의 시작, 영광 그리고 종말. 너바나(Nirvana)에서 출발하여 사운드가든(Soundgarden)에게 항복하고 펄 잼(Pearl Jam)을 온몸에 새겨 넣은 후 만났던 앨리스 인 체인즈. 슬픔 때문에 파괴되고 만, 될 수밖에 없었던, 이후를 상정하지 않는 열광, 오르가즘의 불꽃을 떠올리게 하는, 스스로 뭉개져 버린, 몸을 태워 버린, 재가 되어 날아간, 사람. 어떤 수식어도 궤멸시키는 목소리. 저주와 욕망이 뒤범벅된, 백과 흑을 오가는, 채도와 명도를 상실한, 어둠을 분출하고 빛을 흡입하는, 처음과 끝을 이어 붙인…… 그 목소리를 방사하는 육체, 구멍 없이 쏟아지는 사람, 검은 피 흘러내리는 노래. 「Love, Hate, Love」. 레인 스테일리(Layne Staley)의 목소리는 메가폰에서 퍼져 나오는, 냄새 많은, 핏빛. 그가 외치는 사랑과 증오와 사랑의 무한 순환은, 숙명처럼 목을 옥죈다. 나를 아프게 하는 음악. 병들게 하여 아편쟁이처럼 헐떡이게 하는 목소리. 그 안에 든 사랑의 절망을 읽는다. 쪼개진다. 복합 골절. 언어는 무력하다.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 울림이 깊고 진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사위어 가는 저녁의 햇빛이 들어 있는 듯했다. 일상의 하루가 또 지난 밤, 피로를 짊어진 채 들어간 검은 방의 딱딱한 어둠을 그녀의 목소리가 밀어냈다. 온기가 피어오른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파르르 떠는 연기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Smoke and Ashes」를 듣는다. 그녀는 시인이었고 가수였다. 그녀는 아픈 사람을 따스함으로 감싸는 환한 빛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데, 눈물이 흐른다. 자꾸 액체가 되려고 한다. 무슨 이유일까. 나는 견디려고 하는데, 그것이 부질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무너져도 좋다고, 그녀가 내게 말한다. 그녀에게 나는 고맙다고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노래가 나를 안아 준다.
퀸(Queen). 재회한 퀸, 부활한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를 보기 위해 영화관의 어둠 속에 앉는다. 손에서 땀이 난다. 사전 정보는 감독이 브라이언 싱어라는 것, 배우들이 실제 밴드 멤버들과 무척 닮았다는 것 정도. 주인공이 등장한다. 음악이 시간을 앗아 가기 시작한다. 영화의 줄거리, 배우의 연기, 화면의 빛과 어둠, 시대를 정밀하게 재현한 미장센 같은 것들이 인식되지 않는다. 음악은 나를 지우고, 나는 나를 잊는다. 음악이 시공간을 압착한다. 체온이 상승한다. 「Love of My Life」가 입술을 두드린다. 우리는 늙어 버린 것이다. 산산이 부서진 그날들을 부르고 부른다. 장례는 끝났는데, 우리는 돌아갈 수 없다고 믿었는데, 날아간 생의 명암을 절대로 돌아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신기루처럼 복귀되어 기적 같은 사랑의 열기를 우리에게 돌려주는 음악, 온몸을 열어젖히는 음악……. 환희의 눈물이 나를 찾아온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아직 아름답다. 나는 생의 기쁨과 사랑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이 삶이라고 가르쳐 주는 음악…….
훈 후르 투(Huun Huur Tu). 리드 싱어 카이갈-올 킴-올로비치 코발릭(Kaigal-ool Kim-oolovich Khovalyg)의 목소리를 듣는다. 태양의 프로펠러(‘Huun Huur Tu’의 의미는 ‘sun propeller’다)를 바라본다. 대지를 어루만지는 태양의 빛살 속에서 노래하는 인간이 보인다. 그의 목소리는 하늘에 닿는다. 초원의 훈향(薰香)을 뚫고 멀리 전진한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인간의 육체는 진동한다. 그의 목소리는 마음의 현을 튕긴다. 바람의 몸이다. 그의 노래. 현대시가 포기한 영성과 주술을 품고 있는 소리. 바람을 머금은 초록이 음악을 점령한다. 음악이라는 영원한 현재 속에서 거품이 되는 시간을 본다. 시를 넘어서는 음악이 우리 곁에 있다. 시를 무력하게 하는, 음악이라는 두려운 천사가 바람의 시원에 숨어 있다.
씽씽과 우한량. 밴드 씽씽의 음악은 결합된 다중체이다. 상상하지 못했다, 민요와 락을 혼혈할 생각, 불온하다, 민요와 다른 음악을 섞어서 새로운 잡종을 만들 생각, 천재적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음악은 사람을 멈추게 하고, 변화하게 한다. 그 음악은 열광으로 몰아간다. 씽씽, 이들은 가수이고, 댄서이고, 무당이다. 이들이 펼쳐 놓는, 가늠할 수 없는 새로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서술어가 순식간 증발하는 상태를 경험한다. 뚫렸다, 시원하다. 자유를 만끽한다. 씽씽의 음악은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한량의 앨범 <조선(Chosvn)>에 실린 첫 번째 트랙 「유배」. 빠른 랩으로 구현되는 가사 뒤로 가야금이 연주된다. 황병기이다. 힙합다운 비트가 없다. 국악 연주에 랩을 고스란히 얹은 작품이다. 황병기의 연주와 랩을 결합시켰다. 이것이 새로움이다. 힙합이냐 아니냐를 가리기 전에, 랩의 라임과 플로우를 따지기 전에, 전체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하기 전에 없었던 형식 앞에서 현기증을 느낀다. 아구통이 얼얼하다. 이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한 번 더 묻는다. 이것을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우리가 생각할 수 없었던 것, 우리가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여기에 있다. 창조의 무한함 앞에서, 이루어진 기적 앞에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우리는 이것을 진보라고, 예술의 승리라고 말한다.
로이 뷰캐넌과 데이빗 길모어(Roy Buchanan & David Gilmour).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다. 음악으로 남은 이미지, 살아 있다. 재회를 기다리는 자에게 다가왔던, 달큰한 그 이름, 귓속에서 꿈틀댄다. 순례에 오른 사람. 기타리스트. 그는 울지 않는데 나는 운다. 당신의 빛나는 음악. 나의 육체가 흡수할 수 있는 음악이 있을까. 내 몸이 기타가 된다면, 가슴뼈가 악기로 변한다면, 어떤 음악이 당신을 울릴까. 음악이, 쌓인다, 짙어진다. 음악이, 깊어진다. 거품처럼 나부끼는 색신(色身). 하늘에서 음악이 내려온다. 완전한 현재. 기타가 그림자를 벗고 날아오른다. 죽음보다 앞서 당도한 기타, 벽공(碧空)을 물어뜯으며 빛난다. 기타……라는 응혈. 기타가 나를 분형(焚刑)한다. 기타에 베여 피를 흘린다. 음악, 치명(致命)의 꽃. 절복시키는 기타. 사랑이 작살처럼 다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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