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6. 26.
나반존자 신앙
나반존자는
인도·중국·일본에도 없는,
조선 후기부터 유행된 우리나라의 민간 신앙의 한 독특한 행태이다.
1711년에 간행된 풍계명찰(楓溪明察)대사의 문집
『풍계집楓溪集』 하권에
‘독성에게 기도 드리는 글(祈禱獨聖文)’이 있는데,
“공손히 생각하건대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께서는
천태산天台山 바위가에서 미혹한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려 하셨으니,
색하계(사바세계) 가운데에서 어찌 차마 그 처음 제도하셨던 일을 잊겠습니까?
이에 경건한 정성을 쓰시어 감히 밝게 살펴 주시옵소서.
엎드려 생각하건대
아무는 성품과 식견이 미련하고 어리석으며,
허물과 잘못이 절름발이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근심이 나오되 무심에서 나오고 화가 생기되 무망에서 생기나니,
그런 까닭에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여 신의 도움을 바라나이다.
엎드려 기원하건대
길이 성인의 힘을 받드오니,
영원토록 자비의 바람을 힘입어서다시금 상서로움을 영접하오니
삿된 장애를 보이지 마시옵소서.
祈禱獨聖文 惟獨聖那畔尊者。天台巖畔。欲普濟於迷淪。索訶界中。何忍忘其初渡。玆用虔恪。敢于明休。伏念某。性識顓蒙。愆尤迄蹇。患出無心而出。禍生無望之生。故盡眞誠。庶須神佑。伏願長承聖力。永賴慈風。更迎禎祥。勿見邪障。『楓溪集卷之下』
여기에서는 ‘독성 나반존자’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확인된 현전하는나반존자에 관한 기록 가운데
]가장 앞선 문헌(풍계집)이다.
풍계명찰 楓溪明察(1640∼1708)은
풍담 의심(楓潭義諶)의 법을 이은 전법 제자이다.
1704년 통도사 금강계단이 중수되자
3개월 동안 경찬법회를 증명하였으며,
이후 해인사 백련암으로 돌아와서는,
붓다가야를 향해 서쪽으로 돌아앉아 좌탈입망하신 대 선지식이다.
이후 1826년 백파(白坡)대사에 의해 편찬된『작법귀감作法龜鑑』상권‘독성을 청하는 의식(獨聖請)을 행하는 이유를 아뢰는 유치(由致)에서
“ 우러러 생각하건대,
독성께서는 석가세존께서 이미 열반에 드신 뒤이고
자씨(彌勒)께서 아직 태어나시기 전이건만,
티끌과 더러운 구역에 가지 아니하고 숨고 나타남이 걸림 없으십니다.
혹은 층층으로 된 누대 위에서 조용히 머물러
편안하게 선정을 닦기도 하고,
혹은
축축 늘어진 소나무 사이를 마음대로 오고 가기도 하십니다.
산은 은은하고 물은 잔잔한 곳에 있는
한 칸의 난야에 앉거나 눕거나 소요하시고,
꽃이 울긋불긋 피어 있고 새는 조잘조잘 울어대는데,
그 새 소리와 꽃 색깔이 어지러이 섞여 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경행하시기도 합니다.
저녁 노을빛 가사 반쪽 어깨에 걸치신 채 도를 즐기고,
백설 같은 흰 눈썹이 눈을 덮은 채 허공을 관하시며,
현재에 선정에 머물러 계시면서 무량한 공양을 받을 만하신 분이옵니다.
만약 공양을 올리는 의식을 거행하면
반드시 신통력으로 밝게 살펴보신다 하니,
그런 까닭에 …운운…
仰惟獨聖者。釋尊旣滅之後。慈氏未生之前。不徃塵區。隱現無礙。或於層層臺上。靜居安禪。或於落落松間。徃返任意。山隱隱水潺潺。一間蘭若。坐臥逍遙。華灼灼鳥喃喃。聲色紛然。經行自在。霞衲半肩而樂道。雪眉覆眼而觀空。現住禪那。應供無量。若伸供養之儀。必賜神通之鑑。是以云云.
금월 금일에 정갈하고 향기로운 단을 열고
미묘한 공양거리를 가져다가 진설해 놓고
다시 좋은 향을 사르고
우러러
천태산天台山 꼭대기에 계신 나반존자那畔尊者님과
아울러 그 권속들을 경건하고 정성을 다하여 초청하오니,
바라옵건대
자비로운 밝음 돌이켜서
보잘것없는 작은 정성을 굽어 비춰 주옵소서.
삼가 일심으로 간절히 먼저 3청을 펼치옵나이다.
以今月今日淨啓香壇。將陳妙供。再爇名香。虔誠禮請。天台山上那畔尊者。并從眷屬庶回慈鑑。曲照微誠。謹秉一心。先陳三請。
영산회상 당시에
부처님으로부터 부촉을 받고멸도에 들지 않고
항상 천태산에 머물면서
천상과 인간에 복밭이 되어 주시고
용화 세계를 기다리시는 나반존자와,
세상에 머물러 있는 응진應眞 대아라한과,
아울러 따르는 모든 권속님들을 청하오니,
오직 바라옵건대 자비로써…운운…
靈山當時。受佛付囑。不入滅度。常住天台。天上人間。爲作福田。待俟龍華那畔尊者。住世應眞大阿羅漢并從眷屬。唯願慈悲云云。”
이로 본다면
1700년대부터 독성나반존자에 대한 민간 신앙이
사찰에서도 이뤄졌음을 알 수가 있다.
일부에서
이 독성나반존자를‘빈두로존자’라 설명하고 있는 것은,
1826년 백파 긍선(白坡亘璇.1767~1852)에 의해 편찬된
『작법귀감作法龜鑑』 상권
‘독성을 청하는 의식(獨聖請)을 근거로 하고 있다.
하지만작법귀감에서도
’나반존자‘가 ’빈두로존자‘라고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백파대사가,
나반존자가 천태산에 있다고 한 근거를 살펴보면,
천태산天台山은 중국 명산 중 하나로 절강성에 있는 산이다.
『도선율사감통록道宣律師感通錄』,
『법원주림法苑珠林』61권,
『변정론辯正論』8권 등 여러 문헌에는,
예부터 천태산에는 나한을 비롯하여 여러 선인 仙人들이 있었다고 하여,
이를 근거로 나반존자가 천태산 정상에 머문다고한 것이라 사료된다.
하지만 이 자료에도
나반존자가 빈두로존자라고 하지 않았다.
빈두로 존자를독성獨聖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빈두로 존자는 석가세존 당시에
이미 아라한과(성문)를 증득한 16 아라한 가운데 한 분이다.
그런데 독성 獨聖이란,
홀로 12 인연을 깨달아 생사를 벗어난 독각(獨覺)
또는 연각(緣覺)을 말하며,보살·성문·연각의 3승 가운데 하나이다.
이렇게 아라한과 독성은
그 과위(果位)가 분명 다른데,
빈두로존자를 가르켜, 나반존자라고 하는 것은,
불교를 이해하지 못한 우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때문에 백파白坡 또한,
나반존자를 천태산에 머문다고 까지만 하였을 뿐이지,
이를 빈두로존자라고 하지 않은 것이다.
추정하건대,
나반존자 신앙이 1700년대 민간 신앙으로 움트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초기 억불 숭유 정책으로
공무를 제외한 승려들의 서울 사대문 출입이 전격 금지되었고,
따라서
부녀자들의 사찰 출입까지 금지되면서,
민간 기복 ‘독성獨聖’에 대한 독성의 명칭을 ‘나반존자’라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출처; <쌍계암 법요집>
풍계집 표지 (규장각 소장 자료)
풍계집 권하 권수제
기도 독성문 28장(전)
기도 독성문 28장(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