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해 연안에 숨겨진 유럽의 보물 슬로베니아
유럽의 숨겨진 보물 슬로베니아는(Republic of Slovenia)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한 면적이 2만 273㎢, 인구가 약 200만명 정도 되는 작은 나라이다. 나는 지난 여름 방학에 슬로베니아수도 류블랴나(Ljubljana)와 블레드를 중심으로 잠시 분주함을 내려놓고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여행을 하였다. 슬로베니아는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계에 위치한 곳으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크로아티아와 맞닿아 있다. 뿐만 아니라 알프스산맥과 아드리아해를 품고 있어 천혜의 보고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것 같다. 수도 류블랴나의 매력은 류블랴나 성, 재래시장, 프레셰렌 광장, 아름다운 거리 등 볼거리와 먹가리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알프스의 진주 브레드 섬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움을 뽐내는 여행지로 슬로베니아의 유일한 섬이다.
류블랴나 성
류블랴나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는 류블랴나 성은 11세기에 처음 지어졌지만, 15세기경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시절에 증축되었고, 17세기에 들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처음 지어졌을 때와 달리 감옥이나 요새, 병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는데, 지금은 관광지로 바뀌어서 각종 이벤트와 전시회 등이 열리고 있다.
류블랴나 성에 가려면 가파른 산책로를 따라 숲길을 올라야 하는데, 올라가는 동안 류블랴나 시내 전경이 보이기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다. 물론 푸니쿨라를 이용해 쉽게 올라갈 수도 있지만, 체력의 여유가 있다면 걸어 올라가 봐도 좋다고 생각한다. 성 입구에 들어서면 류블랴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지하에는 예배당이 있는데 결혼식 장소로 사랑받고 있는것 같다. 소박하고 아늑한 류블랴나 성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리하고 있는 류블랴나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프레셰렌 광장
프레셰렌 광장은 슬로베니아 국민 시인으로 알려진 프레셰렌의 동상이 세워져 있어서 프레셰렌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프레셰렌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슬로베니아 국가를 작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유명한 인물이기도 한데, 그는 사랑했던 여인 유리아와 신분의 차이로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광장에 세워진 프레셰렌 동상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유리아의 조각상도 만날 수 있다. 독립 운동가로, 한 여인을 사랑한 순애보로도 유명한 프레셰렌의 이름을 딴 광장이 류블랴나 여행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광장 주변으로는 다양한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있고 광장은 류블랴나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만남의 광장으로 사랑받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성 프란체스코 성당 광장에서 제일 눈에 띄는 핑크색의 이 성당은 류블랴나의 수태고지 교구성당으로 교회의 분홍 색은 프란치스코 회의 수도적 지침을 상징한다고 한다.1646년부터 1660년에 걸쳐 축조되었으며, 같은 자리에 있던 오래된 교회를 대신해 세워졌다. 핑크 색의 바로크양식 외관에 아르느보 장식을 한 파사드는 1703년~1706년에 건축한 것으로 현재의 건물은 1895년 대지진후 리모델링한 것이다. 1층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2층은 코린트식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붕 꼭대기에 있는 동상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이다. 2008년 들어 이 성당은 슬로베니아의 문화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블레드 성
블레드의 명소인 블레드 성은 블레드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율리안 알프스의 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 이 성은 1400년대 독일 황제 헨리크 2세가 주교인 알부인에게 이 지역의 땅을 선물하면서 지어진 성이다. 지금의 성 모습은 18세기에 들어서 갖추게 되었는데, 성에 가려면 산책로와 계단을 따라 약 20분 정도 올라가야 하지만 힘들게 올라간 만큼 아름다운 블레드 호수와 섬, 그리고 알프스 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성 내부로 들어가면 16세기에 만들어진 예배당이 있는데, 희미하지만 그 당시의 벽화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예배당 옆에는 블레드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한 전시관도 있다. 그리고 블레드 성 안에 있는 레스토랑은 절벽에 세워진 블레드 성의 멋진 전망을 제대로 감상하며 식사를 할 수 있어 인기가 높은것 같다.
블레드 섬
블레드 호수 중간에 떠 있는 블레드 섬은 아주 작은 섬이지만 섬 안에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이 세워져 있다. 원래 슬라브인들이 지바 여신을 모시던 신전이 있던 곳인데, 8세기에 그리스도교를 위한 성당으로 탈바꿈되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의 내부에는 소원의 종(Wishing Bell)*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이 남편을 기리기 위해 이 성당에 종을 달기를 원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로마 교황청이 그녀를 위해 종을 기증하면서 그녀의 소원이 이뤄졌다. 그녀가 남편을 기리는 마음처럼 이 종을 치면 사랑의 행운이 온다고 해서 인기가 높아졌다. 그 이유 때문인지 이 성당에서 결혼식을 한 커플들은 종을 치면서 행운을 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성당은 슬로베니아인들이 결혼식 장소로 손꼽는 인기 있는 장소이다. 블레드 섬 선착장에 내리면 99개의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하는데, 계단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플레트나(Pletna)
블레드 섬을 가려면 플레트나(Pletna)라고 부르는 목선(木船)을 타고 건너가야 한다. 플레타나는 자격증을 가진 사공이 노를 젓는 전통 나룻배로 마을 선착장과 블레드 섬을 오가는데, 23척의 배만 운행되고 있으며 뱃사공 일은 가업으로만 전해지고 있느데, 블레드 지방 출신 남성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18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가의 별장이 있던 이곳이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아 23척의 배만 노를 저을 수 있도록 허가했기 때문인데, 그 원칙이 2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슬로베니아 전통배 플레트나는 블레드 지방 출신만 노를 저을 수 있다고 한다.


류블랴나 성

류블랴나 다리

프레셰렌 광장에 세워진 프레셰렌의 동상
이곳에 시인의 동상을 세우자는 아이디어는 1889년 초등학생에 의해 처음 나왔고, 52명의 슬로베니아 학자들의 지지를 받아, 1898년 류블랴나 시장 이반 흐리바르(Ivan Hribar)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7명의 조각가들의 시안 중 Zajec의 작품이 뽑혀1900년 10월에 정식 동상 제작을 의뢰 하였다. 동상의 대부분의 과정은 오스트리아에서 이루어졌는데 그가 사망한지 56년이 지난 1905년 9월 10일에 완성되었다. 청동상의 높이는 3.5m이다. 프레셰렌의 머리 위에 있는 여인은 바위 위에 앉아 월계수 잎을 들고 있는 뮤즈인데. 이 뮤즈까지의 높이를 더하면 9.6m에 이른다. 양쪽 측 에 있는 부조는 프레셰렌의 작품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프레셰렌 동상이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면 건물 벽에 한 여인의 부조가 붙어 있는 노란색 건물을 볼 수 있다. 그 건물은 프레셰렌이 평생 짝사랑했다는 율리아 프리미체(Julija Primic 1816-1864)가 살던 집이다. 시인이 되기 전에는 변호사였던 프레셰렌은 1834년, 부유한 상인의 딸인 젊고 아름다운18세의 ‘율리아 프리미체’를 사교모임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의 나이 34세 때였는데 소심했던 프레셰렌은 16살이나 어린 율리아에게 그 사랑을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결국 율리아와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1836년, 안나 옐로브섹(Ana Jelovšek)이라는 여자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는 아이 셋을 낳은 안나를 평생 부양하고 배우자처럼 대했지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편 율리아는 1839년 부와 지위가 높은 남자와 결혼을 하였는데, 그럼에도 프레셰렌은 멀리서 그녀를 바라만 보며 짝사랑을 이어갔으며, 그녀를 향한 수십 편의 시를 썼다. 그리고 1849년 2월 8일, 49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율리아를 잊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다. 이와 같은 프레셰렌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이곳에 동상을 세울 때 두 사람을 서로 마주보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율리아 프리미체

프레셰렌이 평생 짝사랑했다는 율리아 프리미체(Julija Primic 1816~1864)가 살던 집


성 프란체스코 성당

푸줏간 다리 (Mesarski most)
푸줏간 다리는 페트코브섹 제방 길과 중앙시장을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다리이다. 특이한 다리 이름은 과거 류블랴나 중앙시장의 정육점들이 모여 있던 장소에 다리가 놓여 있어 붙여진 것이다.1930년대에 역시 요제 플레츠니크가 둥근 아치형으로 설계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보류되었다가 2010년 7월10일이 되어서야 철근과 유리 등을 이용한 현대식 다리로 개통되게 되었다. 새롭게 설계를 맡은 사람은 Jurij Kobe로 양쪽 난간 가까이는 투명한 유리 바닥으로 마감하여 흐르는 강물이 내려다보이게 하였다. 요즘 젊은 남녀가 미래를 약속한 상징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조각물
푸줏간 다리를 건너면, 보스니아 출신 슬로베니아 조각가인 야코브 브르다르(Jakov Brdar)가 다리 곳곳에 그리스신화와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청동 구조물들을 만들어 놓았다. 이 조각물은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다리 건너 성 니콜라스 대성당으로 걸어가는 모습의 청동상이다.

블레드 섬

블레드 섬 99계단

소원의 종
1534년에 만들어진「소원의 종(wishing bell)」에는 전설이 있다. 서기 1500년 즈음 블레드의 우두머리였던 하트만 크레이(Hartman Kreigh) 성주는 매우 사악한 인물로 농부들을 심하게 착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주가 갑자기 사라졌고 시체도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성주를 기다리다 그의 아내 폴록세나를 새 성주로 세웠는데 폴록세나 역시 매우 사악한 여자였다. 그녀는 남편의 실종을 애도하려고 종을 하나 만들어 블레드 섬 교회로 옮기고 있는데 거센 비바람이 불어 닥쳤다. 어떻게든 피해 보려 했으나 바람은 멈출 줄 몰랐고, 종과 뱃사공은 그만 비바람에 밀려 호수 아래로 수장되고 말았다.이 일로 폴록세나는 크게 상심한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로마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녀가 되었는데 이후 폭풍우가 치는 날이면 강바닥 진흙에 묻혀 있던 종이 울리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교황이 종을 새로 만들어 달아 주게 되었는데 그 후 이 종을 울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성모마리아가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준다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


블레드 성

플레트나
마음 수선공
상담학박사/교육학박사/마음 연구와 여행을 즐기는 상담심리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