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관여봉사 단체에 최순영·이형자·정일순 후원했다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관여하고 있는 것이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이라는 봉사 단체다. 이 여사는 지난해 본지와 인터 뷰에서 “임기 중 소외계층을 돕는 모든 활동의 근거가 ‘사랑의 친구 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본지 98년 12월 8일자). 그만큼 이 여사 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봉사단체다. 이 단체의 박영숙 총재(전 평민당 총재권한 대행)는 “이 여사께서 6월부터 손수 도자기를 만들 며 (이 단체를) 준비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사랑의 친구들은 지난해 8월 10일 사단법인으로 발족했다. 조계종 강 석주 스님, 강원룡 크리스찬 아카데미 이사장, 김수한 추기경 등 종교 계 원로와 작가 박경리씨,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주교 등이 고문이다.
이사에는 김갑현 대한YWCA 연합회 후원회 이사장, 김병수 연세대 총 장, 김정배 고려대 총장, 이경숙 숙대 총장, 조정원 경희대 총장, 이기 준 서울대 총장 등과 윤장순 이종찬 전 국정원장 부인(대한적십자사 여성봉사특별자문위 부위원장)이 참여하고 있다. 경제인은 장영신 여 성경제인연합회장, 배종진 종금그룹회장, 이중근 (부)부영 회장, 민병준 한국광고주협회 회장 등이다.
명예총재가 대통령 부인을 비롯해 고문단·이사진의 면면을 보면 우리 나라 최고의 명망가들이 망라된 느낌이다. 사랑의 친구들은 결식아동 돕기와 실직 여가장을 위한 자선행사 로 지난해 10월 24일부터 25일까 지 서울에서 첫 자선 바자회를 열었다.
준비위원장은 이종찬 당시 안기부장 부인 윤장순씨와 장영신 여성경제 인연합회장(애경유지 회장)이 맡았다. 주최측은 5,000여장의 초청장을 발송해 개인에게는 작품 및 소장품을, 기업체로부터는 생산품을 기증 받았고, 헌금도 받았다.
이때 작품 및 소장품을 기증한 사람은 김 대통령을 비롯, 이해찬 교육 부 장관, 김모임 보건복지부 장관,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 홍순영 외 교통상부 장관,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이수성 민주평통 부의장 등 공 직자들이다. 또 조세형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김봉호 국회부의장, 허 경만 전남지사, 유종근 전북지사, 한화갑·김홍일·권정달·국창근 등 국민회의 소속 의원이 참여했다. 주혜란 경기지사 부인도 끼어 있다 (이상 당시 직책 기준).
여기서 첫 번째 의문이 발견된다. 바로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이다. 그는 재벌 회장으로 유일하게 기증자로 참여했다. 기증자 중 경제계 인사로는 유정자 (주)행남자기 대표만 참여했을 뿐 재벌 회장의 참여 는 전무했다.
두 번째 의문은 바자회에 300명의 도우미가 동원됐고, 특별 봉사대 75 명, 먹거리 장터에 80여명의 봉사자가 참여했다. 그런데 신동아그룹 최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 역시 재벌 회장 부인으로 유일하게 먹거리 장터 봉사에 참여했다. 많은 재벌 회장 중 왜 유독 신동아그룹 회장 내외만 참여했을까. 신동아그룹은 지난해 7월부터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었다.
세 번째 의혹은 바로 최근 고위층 옷 뇌물 사건의 핵심 인물인 (주)라 포의 정리정(본명 정일순) 사장이다. (주)라포는 이 바자회에 생산품을 기증했고, 여기서 얻은 수익금 3백56만원을 사랑의 친구들에게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영숙 총재는 “봉사단체를 만들었지만 경험이 없어 YWCA 출신 인 사를 사무총장(이진용씨)으로 모셨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 이 최순영 부인하고 같은 기독교 단체 일로 잘 알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박 총재는 또 “후원업체는 여성경제인연합회 회 원 30여 개 업체”라며 “그때 (주)라포를 배제시킬 이유가 없었다” 고 해명했다.
어떻든 최근 벌어지는 고위 공직자 옷 뇌물 사건의 주요 인물이 이 바 자회에 거론되는 것은 명예총재인 이희호 여사의 입장에서 유쾌한 일 은 아니다. 청와대 제2부속실 김영희 실장은 “그럴 리가”라는 반응 을 보이며 “정일순 사장이 얼마나 후원했는지 또 문제의 사람들이 바 자에서 만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부속실 관계자는 또 “청와대는 대통령 부인으로서 업무를 보좌하는 것이지 (사랑의 친구 들) 명예총재로서 하시는 것은 모른다”고 말했다.
이번 옷 뇌물 의혹 사건에서 연정희씨(김태정 법무부장관 부인)가 사 직동팀에서 진술한 내용에는 이 바자에서 이형자(신동아그룹 회장 부 인) 배정숙(통일부 장관 부인) 이은혜(청와대 정무수석 부인)을 만나 강남의 라스포사에 갔다고 진술했다. 물론 이 바자에는 정일순씨도 후 원자로 참여하고 있었다.
대통령 부인이 명예회장인 단체는 그 취지와 상관없이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우선 여권 실세 부인이 직접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희호 여사는 바자회 초대의 말에서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이 정을 나누 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정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교량 역할을 자임하 고 나섰다”며 “우리 사회를 정과 희망이 넘치는 더불어 사는 세상으 로 만들어 가는 데 함께 하자”고 참석을 권유했다. 이 여사는 그 뒤 에도 바자회 관련 인사를 청와대로 불러 점심을 대접하며 격려했다.
더구나 이 바자회를 실제로 준비한 사람은 당시 현직 안기부장 부인이 었다. 대통령 부인-안기부장 부인이 주도하는 바자회를 내몰라라 할 정부·여당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품을 기증한 사람 대부분이 정부·여당 인사라는 점이 이것을 반증한다. 실제 이 바자회에는 청와 대 수석 부인을 비롯한 정부·여당 부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동료의원의 후원회에 단돈 10만원도 내지 않는다는 국민회의의 한 의 원은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바자회에 물품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고 털어놓았다. 또 모 장관은 실무자의 실수로 기부자 명단에 빠지자 강력히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기자가 “대통령 부인, 현직 안기부장 부인이 여는 바자회라서 고위 공직자가 얼굴을 내민 것이 아니겠느냐”는 질문에 박 총재는 “기자 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박영숙이 주최한다면 (성금을) 줬겠느냐, 명예회장이 있으니까 준 것이다”며 “그런 우려를 지나치게 두려워 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 문제는 후원 혹은 물품을 기증받는 과정이다. 이 바자회에 70 개에 가까운 업체가 생산품을 기증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유력 기업이 참여했고, 여성경제인협회에서 후원했기 때문에 여성 이 사장인 기업체가 상당수 협찬했다. 박 총재는 “정식 서신을 보내 기증업체에서 자발적으로 후원받은 것”이라며 “대통령 부인이 같이 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권력 남용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으며 특히 돈 관계는 투명하게 감사 보고서를 통해 밝힌다”고 말했 다.
일반적으로 기업체에서 자선 단체에 후원 혹은 기증하는 방식은 자선 단체에서 공문을 받으면 공식으로 검토한 후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그래야 기업체는 손비처리되고 세제상의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70여 개 후원업체 중 (주)삼성전자와 축협중앙회 두 곳을 확인 한 결과 모두 본사 차원의 근거 서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공식 서류는 없으며 사실 ‘사랑의 친구 들’이란 이름도 처음 들어본다”며 “그러나 지방 공장이나, 지역 대 리점에서 부탁 받아 개인적으로 가전제품 몇 점을 기부한 것은 본사에 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축협중앙회의 관계자도 “지난해 후원한 단체 기록에 사랑의 친구들은 없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바자회에 공무원이 동원됐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바자회에 별도 부스를 만들어 그림을 팔았다. 여기에서 교육부와 사랑의 친구들 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교육부측은 “사랑의 친구들에서 모은 그림 을 판매만 대행해 준 것”이라고 하고, 바자회를 주관한 이진용 사무 총장은 “교육부에서 미대 교수의 그림을 기증받아 판매하고 그 금액 을 우리측에 입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7천6백26만원의 수익금을 사랑의 친구들에게 특별헌금했다. 교육부가 미대 교수에게 그림을 받은 대목도 논란이 있지만 바자에 공 무원이 동원된 것이 더 문제다. 교육부는 “토요일 오후 도와준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주장했다.
네 번째는 수익금의 처리 문제다. 사랑의 친구들은 이날 바자회에서 9 억5천7백78만6천1백10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 수익금 중 6억원은 결식 아동 구제를 위해 교육부에 전달됐고, 나머지 3억5천7백78만6천1백60 원은 민간단체에 전달됐다.
결식아동 구제 사업은 국가 예산으로 하는 것이 정도다. 민간단체의 자선사업은 국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지원되는 것이 상식이 다. 그런데 민간단체에서 모금한 돈을 국가에 기부한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또 이 돈은 결식아동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결식아동 지원 예산은 지난해 국고만 23억이고 올 해는 2백1억”이라며 “지방비가 국고지원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전체 로 볼 때 6억은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총재는 “민간단체에서 모금한 돈은 민간단체에 주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 러나 당시 교육부는 결식아동을 위한 예산 따기가 어려웠고, 정부도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지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 부인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부인이 참여하는 모임은 아무리 그 뜻이 좋다고 해도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은 과거 정권의 많은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박영숙 총재도 “(기자의) 지적을 고맙게 생각한다”며 “다음 바자 행사 때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사진1/지난해 사랑의 친구들이 개최한 자선 바자회. 오른쪽부터 이종찬 당시 안기부장 부인 윤장숙씨, 이회호 여사, 박영숙 총재.
사진2/이휘호 여사는 사랑의 친구들 관계자를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하며 격려했다.
원희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