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선생님의 젊은 날의 투쟁에서 배운다
사제에 살아라!
불멸의 정예10만 결집!①
이누보사키의 ‘수호회’와 ‘야외연수회’(上-3)
수호의 맹세
수호회는 사제의 맹세에서 출발한 인재그룹으로 1952년 말에 발족했다. 그러나 어느덧 타성에 젖어 은사의 열화와 같은 질책을 받고 좌절했다.
“투쟁할 패기 없는 제자는 가라.” 은사는 엄격했다.
그러한 수호회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발단을 연 사람이 애제자인 이케다 제1부대장(당시)이었다. 애제자가 ‘수호의 맹세’를 만들었다.
그 맹세는 ‘어본존에 대한 맹세’ ‘스승에 대한 맹세’ ‘회원 동지에 대한 맹세’ 이 세 가지였다.
‘수호의 맹세’를 잊는다면 이미 수호회가 아니다.
은사가 돌아가신 후 수호회를 누가 훈련할 것인가?
“내가 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이 바로 제자가 스승을 대신해서 청년을 온 힘을 다해 육성할 때다!” (수필 신·인간혁명)
이것이 바로 제3대 회장에 취임한 이케다 회장의 심경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열 ‘사자(師子)와 같은 인재’를 육성하려면, 반드시 엄격한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준엄한 혼과 혼의 상호협조가 없으면 확고한 신념을 지닌 진짜 인재는 육성하지 못한다.
“쇠는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 검으로 되고 현성(賢聖)은 매리(罵詈)함으로써 시험되느니라.”(어서 958쪽)는 어서 말씀이 있다.
이케다 회장은 새로운 ‘국사10만’ 결집을 향한 대전진을 새로운 청년부의 핵이 될 ‘수호회’ 훈련에서 개시했다.
당시 이야기 – 다다 쇼고
장황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케다 선생님께서 오시자마자 분주하게 서두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다 못해 선생님께서는 주의를 주셨습니다.
“오늘은 야외훈련으로 모두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진지함도 없다. 결의도 없다. 너무나 한심스럽다. 나는 이런 회합에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현지 조시의 멤버가 잇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서민의 영웅
이케다 회장을 둘러싸고 ‘조시’의 동지들과 야외좌담회가 열렸다.
당시 모습이 <수필 신·인간혁명>에 나와 있다.
“그때 나는 홀로 수호회의 연수장을 떠나 조시의 동지가 많이 모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십 명이 기다려주셨다. 햇볕에 그을린 어부도, 아이를 데려온 부인도 계셨다. 모두 다기차고 진지했으며, 투쟁하는 창가의 긍지가 빛나고 있었다.
해변에 밀려오는 태평양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이 서민 영웅들과 친숙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평생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한 폭의 명화처럼 투영된다.”
고바야시 세이조 씨가 그 야외좌담회를 수기에 이렇게 썼다.
“선생님께서는 질문회를 열어주셨습니다. 빈곤은 어떻게 하면 나아지는지, 병을 고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고기를 잡는 데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등등 여러 가지 질문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하나씩 듣고 ‘어려운 이야기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지만’ 하고 지도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본존을 믿으며 최대한 제목을 부르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절복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복운이 생깁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어본존을 끌어안고 제목을 부르세요. 반드시 행복해집니다. 괴로울 때일수록 제목을 부르십시오.’
우리 부부는 그 지도를 꼭 끌어안고 100세대 이상을 절복했고 행복해졌습니다.”
당시 이야기 – 무라타 토시오
“이케다 선생님이 이누보사키에 오신다!”는 소문을 믿고 저희 가족은 이누보사키로 갔습니다. 해변 주위에는 우리처럼 ‘이케다 선생님을 한번 뵙고 싶다.’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건너편에서 어느 간부가 우리 쪽으로 걸어 왔습니다. 바로 이케다 선생님이었지요.
“학회원이십니까?” 처음 듣는 선생님 목소리였습니다.
우리는 “네, 그렇습니다.”라고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이 “자, 여기에서 좌담회를 합시다.”라고 하자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선생님 곁으로 일제히 모여 감동적인 야외좌담회를 했지요.
“여러분, 질문 있습니까?”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중년의 장년부원이 손을 들고 “저는 어부인데, 최근 들어 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조시 앞바다에 탄약이나 독가스를 버렸기 때문에 어획량이 차츰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질문에 선생님이 대체 어떻게 답하실까 하고 궁금해 하던 찰나에 선생님은 “그것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에게 물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지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즉흥적인 위트에 모두 긴장하던 마음이 단번에 열려 즐겁고 밝은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뒤 선생님은 힘차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면 물고기를 부르십시오. 반드시 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본존을 믿고 제목을 많이 불러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절복을 해야 합니다. 어본존을 끌어안고 투쟁한다면 국토세간이 반드시 변혁됩니다. 국토세간이 변하면 물고기도 잡힙니다. 근본은 제목입니다. 저도 제목을 보내겠습니다.”
그 후 조시에서는 주위가 깜짝 놀랄 정도로 정어리가 대량으로 잡혔습니다. 그리고 나서 조시 광포가 발전하는 데 보조를 맞추니 어획량도 늘어 현재 조시 어항(漁港)은 일본의 정상급 어획량을 자랑하는 항구가 되었습니다.
‘환경은 신심으로 바꿀 수 있다!’ 조시 동지의 가슴속에는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이 대확신이 지금도 맥동하고 있습니다.
학회혼(魂)
학회는 고생하는 민중을 위해 존재한다.
광선유포는 그 민중을 철저하게 격려하고 북돋우는 힘든 작업이다.
피로를 마다하지 않는 혼신을 다한 이케다 선생님의 격려가 조시 광포에 금빛 역사를 남겼다.
오아미 후사 씨가 이케다 회장과 헤어질 때의 일을 이렇게 썼다.
“질문이 끝난 후, 이케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모처럼 많은 분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뜻으로 꽃을 따서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달맞이꽃, 패랭이꽃 등 많은 꽃을 땄습니다.
선생님 팔 안에는 순식간에 꽃이 가득해졌습니다. 선생님은 그 꽃을 ‘먼저 아이들부터’라며 직접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그 자상함을 저도 소중하게 받았습니다.
서쪽으로 석양이 저물 무렵, 선생님은 아직 선생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 동지들에게 ‘살짝 물든 저녁노을’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환송해주셨습니다.
그 관대한 선생님의 진심에 감동받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집에 돌아왔습니다.”
당시 이야기 – 고바야시 히로시
세이쿄신문 기자였던 저는 현지회원과의 야외좌담회를 취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쪽으로 오십시오!” - 선생님의 부름에 이쪽저쪽에서 학회원들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학회원들의 질문에 대해 때로는 농담도 섞으면서 정말로 알기 쉽게 전혼을 담아 격려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긴장하고 있던 멤버도 점차 미소가 번져가고 납득과 결의와 기쁨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야외좌담회가 끝난 뒤였습니다.
“여러분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하고 주변에 피어 있던 노란 달맞이꽃을 꺾어 학회원들 한 사람 한사람에게 건네셨습니다.
순박하고 우직한 학회원을 끌어안듯이 격려하시는 선생님. 그 진심에 눈물짓는 동지의 모습 -. 주변일대가 오렌지 빛 저녁노을에 감싸인 아름다운 사제의 광경이었습니다.
광포의 영웅 - 서민
민중이 바로 광포의 주역이었다. 서민이 바로 학회의 보배였다.
‘가난한 사람과 병자의 모임’이라는 냉소를 받으면서도 광포의 영웅인 서민은 그 악구매리를 웃어넘기며 광포를 위해 전진했다.
아와지방 지바에서 태어난 니치렌 대성인도 자신을 “백성의 자식” “백성의 집에서 나와서” “빈궁하천한 자로 태어나” 라며 가난한 서민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이케다 신임회장은 그 서민을 소중히 하는 속에 광포의 전진이 있음을 ‘수호회’ 동지들에게 몸소 가르쳤다.
그 야외좌담회 중 수호회 멤버는 분주히 식사 준비에 임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장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이야기 – 이자키 나오히토
저희들은 선생님과 조시 회원과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일선의 동지를 진심으로 소중히 하시는 선생님의 행동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저는 송구스러운 마음에 참을 수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반성 속에서 ‘사제(師弟)’라는 것을 머리로 뿐만 아니라 하나의 큰 자각과 결의를 갖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이든 어떤 환경이든 광선유포에 살아가는 자각과 행동이 없으면 제자가 아니다.’ 그것이 제가 배운 것이었습니다.
◇
그날은 석양이 아름다웠다. 저녁 놀 구름이 황금색으로 빛나고 이누보사키의 등대도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훈련’과 ‘격려’ -
수호회 멤버에 대한 ‘엄애’와 조시 동지에 대한 ‘자애’어린 행동.
그 깊은 곳에는 ‘스승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승은 광포를 짊어진 제자에게 얼마나 큰 사명과 책임이 있는지 행동으로 가르쳤다.
“청년이여 일어서라!” “동지를 지켜라!” “광포의 책임을 지녀라!”
‘청년’은 실로 광선유포의 ‘보검(寶劍)’이다.
청년을 육성하기 위한 ‘스승의 엄애’가 담긴 야외연수회는 이후에도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