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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에 대한 신화와 철학을 담은 인문학 책 <장미의 열쇠>가 출간되었습니다.
타로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게 권합니다.
다음은 출판사와 나눈 인터뷰 내용입니다.
<장미의 열쇠>에 대하여.
1.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무엇보다도 타로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죠. 쉽게 뜻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들이 뭔가 자꾸 질문을 불러일으키고 그 숨은 뜻을 알고 싶다는 욕망을 건드렸어요. 타로에 사로잡힌 거죠. 그래서 그 비밀을 캐다 보니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의미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타로는 일반적으로 점술이나 상담의 대상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타로는 그 이상의 내용을 품은 그림들이예요, 질문을 품고 자료를 뒤지다 보니 우리말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수 많은 책들이 타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신비주의적 관점, 심리학적 관점, 역사적 관점 등 다양한 입장에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당연히 그걸 알리고 싶었죠. 책을 쓰기 전에 강의부터 시작했어요. 타로에 대한 제 첫 강의는 ‘융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타로’였어요. 융 학파 심리학은 꿈이나 초현실주의 회화 같은 상징적 이미지를 해석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니까요. 인생에서 일어나는 고난이나 방황 같은 경험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해 주는 측면도 있구요. 처음에는 이 주제로 책을 쓰려 했는데, 심리학적 해석에만 고정시키기에는 타로가 품고 있는 의미들이 너무 풍부하더라구요. 그래서 타로에 숨은 신화와 철학, 그리고 상징의 비밀까지 두루 담고 있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2. 이 책은 특히 무엇에 중점을 두고 쓰셨습니까? 또는 국내에 출간된 기존의 타로 관련서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국내에 출판된 타로 관련 책들은 대체로 타로를 점술용으로 전제하고 쓰여진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심리상담이 일반화되면서 타로가 한편으로는 상담용 도구로도 많이 사용되니 그런 식의 접근도 약간 있는 것 같기는 하구요, 하지만 저는 그 두 입장과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측면은 인문학적 측면이예요.
인문학은 철학과 문학과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와 예술이 합쳐진 개념이죠. 저는 책을 쓰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얽혀들 수 있었으면 했어요. 타로에는 철학적 관점도 스며들어 있고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수수께끼 같은 측면도 있어요. 무슨 뜻인지 얼른 알아차리기 힘든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러다 보니 그 의미를 캐면서 다양한 주변 지식들을 참조했죠. 인문학적 연구라는 게 그렇잖아요. 미술사적 연구도 그렇구요. 이미지가 탄생하게 된 배경, 도상학적 의미, 작가의 제작 의도 등을 추론해봐야 하죠. 저는 타로를 이렇게 탐구했어요. 하지만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은 딱딱한 형식의 연구서가 아니었음 했죠. 학자들의 언어라기 보다는 시인의 언어가 되기를 바랬어요. 학자들의 언어는 우리를 위축시키고 긴장시키곤 하죠. 제가 공부한 것들은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타로는 무엇보다도 흔히 신비라고 일컫는 시적인 순간들을 담고 있으니까요.
3. 타로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했다고 하셨는데, 가장 의미를 두고 싶은 부분이나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타로는 제가 보기에 조지프 캠벨이 ‘천 개의 얼굴을 지닌 영웅’에서 말하는 ‘자아를 찾아가는 길’을 그려내고 있는 그림이예요. 말하자면 그림으로 이루어진 신화 책이기도 하죠, 신화가 그러하듯 타로 역시 스토리를 지니고 있어요. 신화의 주인공이 그러하듯 여행을 떠나 난관을 만나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을 그려내고 있죠. 이 과정을 ‘입문, 이니시에이션’이라 부르기도 하죠. 제 책의 뼈대를 이루는 측면이죠. 타로에 그려진 이미지들은 그 과정을 돕는 그림들이예요. 세상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들고 우리가 하는 경험들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주죠.
4. 비학/오컬티즘은 통상 미신/점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책에서는 그것에는 고대의 지혜가 담겨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먼저 ‘미신’이라는 말부터 짚고 넘어가고 싶군요. ‘미신’이란 말은 ‘과학적 관점에서 헛된 것으로 여겨지는 믿음이나 신앙’이란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이죠. 여기서 핵심은 과학적 관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예요. 과학이 주류 신념 체계로 자리 잡기 전에는 아마 기존 종교의 관점에 위배되는 믿음을 미신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예를 들면 서양에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기존의 민속적 관습이나 신화뿐 아니라 지식들 까지도 모두 미신으로 여겨졌죠. 우리나라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기독교적 관념이나 신념 체계들이 문화나 제도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되면서 동일한 관점을 받아들이게 되었죠. 말하자면 근대의 외부에서 통용되던 관습이나 신념 체계, 지식들이 모두 미신으로 여겨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21세기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죠. 오랫동안 비과학적이라 여겨졌던 관점들이나 지식체계들이 오히려 대안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니까요.
오컬트나 비학으로 지칭되는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비학의 대전제는 존재의 상응성이예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양자역학적 세계관이죠. 의식의 주체와 대상이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 수많은 동시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관점 말이예요. 비학 체계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연금술이나 점성학을 비롯해 타로도 모두 이 관점을 전제로 했을 때 의미를 지니죠. 타로가 카드를 뽑는 사람의 마음을 비춰주기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하지만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게 있어요. 타로의 이미지들은 워낙 다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서 누가 어떤 상황에서 이 카드를 해석하는가에 따라 거의 무한한 의미를 생성해낼 수도 있다는 점이예요. 그런 의미에서 카드의 의미는 한 단어로 수렴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죠.
타로에는 고대 신화나 르네상스 회화에서 등장하는 그림들이 스며들어 있어요. 타로가 등장하게 된 게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겠죠. 르네상스 예술작품들은 고대의 플라톤주의와 이집트 신비주의로 알려진 헤르메스학의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어요. 타로에도 이런 내용들이 담겨 있죠. 차이가 있다면 타로는 박물관에 모셔진 거장들의 작품과 달리 이미지들은 소박한 생김새를 취하고 있고 (목판인쇄에서 출발했거든요), 누구나 손에 쥐고 순서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죠. 그게 타로의 매력이기도 해요. 손안에 박물관, 또는 소박한 그림으로 이루어진 가지고 놀 수 있는 철학책이기도 하죠.
5. 칼비로, 베르베르 등이 타로를 작품이나 문화 활동, 강좌 등에 이용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용했습니까? 그렇게 널리 사용되는 만큼 서구인들에게 타로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탈로 칼비노는 타로를 여러 방식으로 배열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한 권의 책을 썼어요. <교차된 운명의 성>이란 작품이죠. 타로는 언제나 순서를 달리해서 읽을 수 있는 78 페이지로 된 책이기도 해요. 어떤 순서로 늘어놓는가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들이 생겨날 수 있죠. 칼비노는 이 방법으로 소설을 완성했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쓰는 방법도 이와 같아요. 칼비노가 이 방법으로 소설을 쓴 것과 달리 베르베르는 글쓰기 강좌에 이용하죠. 글의 구성을 잡을 때나 영감을 얻고 싶을 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유럽에서 타로는 오랫동안 게임용 카드로 사용되었어요. 화투처럼요. 트럼프의 원형이기도 하니까요. 게임은 얼마든지 그 규칙을 변형할 수 있죠. 타로도 마찬가지예요. 타로를 실마리로 소설을 쓸 수도 있고 시를 쓸 수도 있죠. 타로는 운명을 진단하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게 아니예요. 말하자면 사용자 마음이라는 겁니다. 타로가 점술용으로 인식되곤 하는 것은 점술의 유행 때문인 것 같아요. 불안한 시대에 불안한 마음 때문이죠. 사실 무엇이든 점술용 도구가 될 수 있지 않나요? 동전, 막대기, 주사위, 하다못해 쌀알로도 점을 치는데 타로로도 할 수 있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건 타로의 부차적인 용도 같아요. 저는 책으로 점을 치기도 하는데, 눈을 감고 질문을 던지고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펴는 거죠. 하지만 책을 이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책의 본 용도는 아니죠, 타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6. 선생님께서 타로를 만나 공부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또 타로 공부에 심취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타로를 처음 만난 건 제 첫 책인 <예술, 세계와의 주술적 소통>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면서입니다. 그 책이 2000년에 출판되었으니 타로를 만난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네요. 타로를 처음 손에 쥐던 날 이상하게도 왼팔이 아팠어요. 이상한 꿈들도 꾸었구요. 언젠가는 이 이상한 그림들에 대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래전에 쓴 그 책은 예술이 지닌 마술적 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타로가 바로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그림들이었어요, 공부를 하다 보니 타로가 지닌 신비스런 힘이 심층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의 감응과도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구요. 타로의 그림들이 워낙 복합적인 상징을 담고 있다 보니 보면 볼수록 자꾸 빠져들게 되더라구요. 게다가 타로의 종류도 워낙 다양해서 작가마다 다른 이미지들을 첨가하고 변형시키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타로에 영감을 받아 작업에 다루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칼비노나 베르베르뿐 아니라 초현실주의 화가인 레오노라 캐링턴이나 레메디오스 바로도 타로를 작품에 끌어들였죠. 니키 드 생팔은 타로 조각 공원을 만들기도 했잖아요. 영화감독이기도 한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는 아예 타로 연구가로 나서서 타로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어요. 그가 쓴 타로책은 유럽에서 마르세유 타로를 읽는 정본처럼 여겨지기도 해요. 18세기 마르세유 타로를 다시 복원한 새로운 타로 덱을 만들기도 했구요. 타로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 새로운 영감을 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죠. 타로의 매력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기 힘든 측면이 있어요. 그 때문에 옛날에는 악마의 도구라도 불리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해요.
7. 선생님은 저서를 통해 타로는 서양의 철학, 신화학, 점성학, 인문을 종합한 타로야말로 서구 사회 저변에 깔린 숨겨진 지혜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타로는 신비와 미신 사이에 묶여 있습니다. 단순히 미신, 점술 이상일 수 있는 타로의 측면을 무엇입니까?
타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점술용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최초의 타로로 알려져 있는 비스콘티 스포르자 타로나 만테냐 타로는 르네상스 시대 비스콘티 가문 자제들을 위한 교육용 플레시 카드에서 비롯되었어요. 당시 이탈리아는 아다시피 고대 부흥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였으니 카드에는 고대의 신들과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뮤즈들, 태양과 달, 행성들과 우주의 구조들, 그리고 정의, 절제, 힘, 지혜와 같은 윤리적 덕목들에 대한 알레고리를 담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죠. 말하자면 타로는 처음부터 신화와 철학과 인문학적 내용들을 담은 그림들이었어요. 타로가 주로 점술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시간이 흘러 18세기 들어서예요. 계몽의 시대가 되고 합리주의가 득세하게 되면서부터죠. 많은 것들이 과학적으로 설명가능하고 예측가능하다는 신념이 강해지면서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오히려 더 신비화하는 경향이 강해졌죠. 타로뿐 아니라 과학의 범위를 넘어선 많은 것들이 미신 취급을 받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주의가 득세할 때 점술도 더 힘을 발휘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연성의 매력에 더 빠지게 되거든요. 우연은 통제불가능하니까요. 인생처럼 말이죠.
타로를 다른 관점에서 볼 때 타로가 지닌 다른 측면들이 부각될 수 있어요. 점술용이나 심리상담용으로 사용하느라 놓치고 있는 의미들이 보이는 거죠. 저는 타로에 대해 연구하면서 타로에 담긴 이미지들이 미학이나 미술사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어요. 말하자면 타로의 탄생 시기에 따라 당대의 스타일을 엿볼 수도 있고(예를 들면 아르누보 형식으로 그려진 타로도 있고 현대의 만화 형식으로 그려진 타로도 있어요. 타로 제작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추세예요.), 문화연구의 대상으로 볼 수도 있죠. 예술작품이나 문화에는 당연히 특유의 철학과 세계관이 담겨있죠. 타로에도 그 모든 게 담겨 있어요. 그러니 타로 역시 그렇게 사용될 수도 있죠. 감상의 대상으로 볼 수도 있고 철학적 성찰이나 명상의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어요, 물론 글쓰기의 도구로도 다른 창작으로 위한 영감을 제공해주는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구요. 타로의 사용처는 의외로 많답니다.
8. 이 밖에 특히 말씀하시고자 하는 게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 책을 통해 타로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타로가 ‘자아의 길’을 그려내고 있으니 그 길을 따라 독자들도 자기 자신만이 걸을 수 있는 용기와 삶에 대한 신뢰를 얻게 된다면 책이 뭔가 제 역할을 한 거겠죠.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타로는 순례자의 길이라 알려진 산티아고의 길과도 연관이 있거든요. 자아를 찾는 길에서 영혼의 보물상자를 여는 열쇠를 발견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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